CAFE

행랑채 게시판

그리스도가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말씀의 의미는?

작성자이드로|작성시간20.12.10|조회수321 목록 댓글 0

그리스도가 영원히 함께 하신다는 말씀의 의미는?


요한복음 12:34
“이에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는 율법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신다 함을 들었거늘 너는 어찌하여 인자가 들려야 하리라 하느냐 이 인자는 누구냐 “
예수를 따르던 무리들이 예수님 자신이 죽어야 할 일에 대하여 말씀하심에 대해 그리스도는 영원히 살아있는 존재(죽지 않는)인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왜 죽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질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하셨습니다. 잠시 동안 빛이 있을 때에 그 빛 가운데 속하여 어두움에 붙잡히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빛은 무엇이며 어두움은 무엇을 의미하였을까요? 바로 그 예수가 빛이었던 것입니다. 그 빛에 속하여서 어두움에 붙잡히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어둠에 속한 자는 자기의 가는 길을 알지 못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라는 그 빛에 속하지 아니하면 그냥 어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그리스도가 살고 죽는 문제에 질문을 한 무리들에게 예수님은 엉뚱한 답변을 하시는 듯한 답을 내어 놓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많은 교인들의 생각에서도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신다는 그 말씀을 믿고들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공중에서 그 예수님이 우리를 감찰하시고 계셔서 우리 성도의 삶을 이끌고 계시듯이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이천년 전 예수 앞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그 그리스도 예수가 왜 죽어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그 무리들처럼 오늘날의 교인들도 영원히 죽지 않는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우리의 삶의 일거수일투족을 간섭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들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와 예수를 혼용해서 쓰기도 하고 단독으로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리스도라는 단어의 의미는 기름을 붓다라는 뜻이며 그렇게 기름부음된 그 사람을 예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름부음받은 예수를 그리스도된 예수 즉, 그리스도예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리스도라고 하면 그냥 예수라고도 하고 예수라면 그리스도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명확하게 표현해야 할 경우에는 분리해서 구분해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한다는 그 말은 그 예수가 영원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기름부음)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이를 두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는 십자가에 매달려서 죽어야 합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고 하는데 왜 다시 오셔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말의 의미는 이천년 전의 그 예수가 오신다는 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만약에 그 이천년 전의 예수님이 정말로 오셨다면 세상 사람들의 눈에 보여 나타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 예수가 나타난 것을 말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요한복음 14: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예수가 다시 왔다면 그 예수를 세상은 보았을 텐데 그 예수를 본 것에 대해 일언반구 내용이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이 예수를 봤다는 말은 뭘까요? 그것은 그 제자들이 예수들이 된 자신을 보았다는 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죽게 될 일을 말씀하시면서 서두에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요 요지는 보혜사를 보내주신다고 한 것이지 그 이천년 전의 그 예수가 다시 오신다는 말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 예수는 죽고 오순절에 그 예수의 말을 지키며 마가요한 다락방에서 기다린 그들에게 성령이 오셨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 그리스도(성령)이 오심을 제자들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한다는 말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가서 처소가 예비되면 다시 와서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가 부활승천 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았다고 하였습니다. 처소가 무엇인가요?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 처소입니다. 예수를 처소삼아 계시는 곳이 하나님보좌(성도) 우편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활승천 하신 후에 제자들도 성령이 계시는 하나님의 처소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집(성도)에 내주하시는 성령(하나님의 뜻, 마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늘나라 어떤 곳에 집을 많이 지어놓고 훗날에 이 땅에 사는 성도들을 데리러 오신다는 말이 아닌 것입니다. 오늘날의 교인들이 바로 이러한 예수를 기다리며 살고 있을 것이지만 이것은 너무나도 잘못된 교리인 것입니다. 이천년 당시의 무리들이 그리스도가 영원히 살아계시는 것으로 오해했듯이 오늘날도 많은 교인들이 그리스도(예수)가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천년 전 그 예수님은 그리스도가 영원히 한다는 그 전제 조건으로 잠시 빛이 있을 동안에 그 빛에 속하지 않는 자는 어둠이라고 하시면서 그 어둠에 속한 자는 자기의 길을 알지 못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어둠에 속한 자들은 그리스도가 영원히 자신들을 다스리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요지가 아니라 잠시 동안 있는 그 빛에 속하였느냐 속하지 못하였느냐에 따라서 그리스도가 영원히 계시느냐 계시지 않는 어둠이냐로 결정된다는 말의 의미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빛이라는 개념을 더 확장하면 성경에서 그 빛을 성도라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자신을 빛이라고 하셨으면서 더불어 제자들까지도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도라면 빛이라는 것입니다. 유일하게 이천년 전의 그 예수님만이 빛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빛(성도)은 잠시 동안만 있는 빛이라는 것입니다. 그 빛의 존재기간이 이 땅에서 유한하다는 것입니다. 즉, 주어진 기회의 시간이 잠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도 죽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인생을 잠이 왔다가 사라지는 안개와 같은 존재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천년 전의 그 예수님도 잠시 왔다가 사라지는 빛(안개와 같은 존재)이라서 죽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시대에서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구원하시기 위하실 뜻이 계시다면 그 빛(사람)을 이 땅에 잠시 동안이라는 유한의 시간 동안에 허락하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을 사는 어둠된 사람들은 그 빛이 존재할 그 동안 그 빛에 속하여야만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입니다. 마치 이천년 전의 그 제자들처럼 말입니다. 그 제자들은 잠시 동안의 기간(예수님을 영접하고 부활승천까지의)동안 그 빛 안에 속하여서 가르침을 받은 후에야만이 천년동안 왕노릇하는 삶을 누렸습니다.  예수와 왕노릇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입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이후 그 이천년 전의 예수는 이미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너희들에게서 떠나가는 것이 유익하다고 한 말씀이 바로 그런 의미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잠시 있던 그 빛 예수는 사라져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제자들과 함께 함으로 인하여 제자들이 성령을 받았듯이 동일한 모양으로 오늘날도 빛으로 보내지는 그 사람에게 속하여서만이 성령을 받아 천년동안 왕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성도가 된다는 것, 택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확고하게 믿고 있는 이천년 전의 그 예수의 죽음이 나를 대신해서 죽었다고 하는 그런 맹신적인 사고는 완전 잘못된 것이라는 겁니다. 이천년 전의 예수의 죽음은 제자들에게는 아주 유익한 죽음으로서 예수가 영원히  제자들과 함께 하면 안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예수가 부활승천하니 드디어 제자들이 성령을 받게 됨으로 제자들에게는 큰 유익이 되었던 것입니다.

 

영원히 함께 하는 그 예수를 오늘날의 교인들은 그 마음에 고이고이 간직하고들 있습니다. 처소가 예비되면 다시 데리러 오신다는 확고한 믿음으로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런 이천년 전의 예수는 영원히 오지를 않습니다. 오실 분은 또다른 보혜사를 입은 사람이 이 땅에 보내지는 것이지 이천년 전의 그 예수가 다시 오신다는 말이 절대로 아닌 것입니다. 성경은 항상 한알의 밀알이 시대마다 보내지는 것으로 예수를 보낸다고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알의 밀알과 그 밀알이 죽고 싹 이삭 열매로 맺히는 밀알은 순서의 차이만 있었지 모두가 동일한 밀알들인 것입니다. 예수와 제자들 간의 차이는 어렸을 제자들과 장성한 예수와의 차이였지만 예수가 사라진 후의 그 제자들은 역시 그 선생님 예수와 동일한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차등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성도를 하늘에 있는 장자들의 총회(히12;23)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장자라고 합니다. 더불어 그 제자들, 모든 성도이면 장자인 것입니다.


계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위 본문에서 “먼저 나시고“라는 단어가 바로 장자라는 의미입니다. 왜 예수를 먼저 나셨다고 할까요? 당연히 제자들을 가르치는 선생으로 이 땅에 한알의 밀알로 먼저 주어졌기에 먼저 나시고(장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뒤이어 맺히는 열매들은 역시나 그 먼저 나신 예수가 사라지면 동일하게 밀알들이 되는 장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처음 뿌린 밀알과 주렁주렁 맺힌 밀알은 역시 동일한 밀알인 것입니다. 단지 먼저 익고 나중 익은 시간적인 차이만 있을 뿐이지 동일한 밀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도들을 하늘에 있는 장자들의 총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천년 전 그 예수는 그 제자들에게 먼저 뿌려진 장자(한알의 밀알)였지 지금 이 시대에 뿌려지는 밀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천년 전의 예수가 여러분을 구원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시대에는 또다른 밀알이 보혜사의 사명을 갖고 하나님에 의해 뿌려진다고 하는 것이 세상 끝날에 천사를 보내어 택한 백성들을 추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천년 전의 그 예수님이 여러분을 데리러 온다고 하는 그러한 신앙은 마치 20세기 말에 다미선교회처럼 휴거한다고 기다리다가 맹탕한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시대마다 보내지는 그 천사 안에 붙어 있는 것이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동안 왕노릇 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예수가 영원히 살아서 여러분과 함께 한다는 말이 절대 아닌 것입니다.

 

출처; 네이버카페 생명의 만나 남용모 목사
       유튜브                       남용모 목사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