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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명백한 위서, 데살로니가 후서 - 성경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일단은 참이라고 주장하는 모리콘님을 위하여

작성자김동진|작성시간06.01.22|조회수251 목록 댓글 1
진서와 위서를 분간해내는 일은 사실 불가능한 일이 전혀 아니다.
현대의 문서비평학은 저자의 기본적인 사상, 문체, 언어 습관, 시대적인 상황 등을 분석하여
어느 정도 진서와 위서를 가려낸다.
물론, 이 방법으로도 그 진위여부를 가려내기 곤란한 문서도 있다.
문서 비평학 역시 한계는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바울 서신에 대한 진위 논란에도 몇 가지 이견이 있기는 하다.

물론 명백한 바울의 진서라고 해서
그 말씀이 하느님의 말씀,
일점 일획의 오류도 없는 진리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해서는 곤란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최소한 문서비평학적으로 어느 문서가 진서이니, 위서이니에
관심이 있는 성서 연구가라면
이미 그 정도의 신앙은 벗어났을 것이다.
물론 근본주의 신앙인들은 이런 노력 자체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생각하니
나와 같은 신앙인은
그들을 어떻게 봐야 좋을지
그들을 어떻게 대해야 좋을지
답답하기 그지 없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바울의 서신은 그의 종교 사상적인 고백들을
당시의 교회 신자들과 함께 나눈 흔적이 아닐까?
거기에 동의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개인들의 신앙적인 판단에 따라서
얼마든지 다양할 있는 것이 아닐까?

데살로니가후서는 명백한 위서이다.
그것은 이 문서와 비교의 짝을 이루는
데살로니가 전서와 같이 분석해 보면
어느 정도 쉽게 드러나는 데,
그 이전에 다음과 같은 아주 이상한 문구 하나로
그 서신 스스로
" 이 서신은 위서입니다"
뻔뻔스럽게 고백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 바울이 친필로 문안합니다.
이것이 모든 편지에 서명하는 표요,
내가 편지를 쓰는 방식입니다."
표준 새번역 데살로니가후서 3:17

"바울로부터.
이렇게 친필로 서명을 하며
여러분에게 문안합니다.
이 서명은 내 모든 편지를 가려내는 표입니다.
이것이 내 글씨입니다."
공동번역 데살로니가후서 3:17


어째 나중에 번역된 표준 새번역 성서가
이 부분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공동번역보다 그 뜻이 명확하지 않다.
뭔가 캥기는 것이 있었나?

가짜 바울이 진짜 바울의 흉내를 아주 그럴 듯하게 냈다.
감히 이 친필(?) 바울의 서명이 없는 편지는
가짜 바울의 편지란다.
그리고 다른 편지들도 정말로 바울의 편지라면
이 편지처럼 바울 자신(?)의 서명이 있어야 한단다.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데살로니가 후서만
바울의 진서로 인정하든가
아니라면, 데살로니가 후서를 뺀
다른 서신들을 바울의 진서로 인정하든가
양자택일 할 수 밖에 없는 기로에
설 수 밖에 없겠으니 말이다.
왜냐하면 유감스럽게도
신약성서에 수록된 바울 서신들 중에서
그렇게 바울이 친필(?) 서명을 남긴 서신은
사실은 데살로니가 후서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바울의 진서가 틀림 없어 보이는
로마서, 갈라디아서, 고린도전서, 데살로니가 전서 등을 제껴 놓고서
데살로니가 후서를 진서로 인정할 수는 도저히 없겠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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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덤바위 | 작성시간 06.01.23 김동진님이 한가지 의심에 몰두하여 다른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시는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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