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디 보이
구상모
| birth date | 1953-03-08 |
| division | light welterweight |
| stance | southpaw |
| height | 5′ 9½″ / 176cm |
| country | South Korea |
| residence | Pusan, South Korea |
| birth place | Pusan, South Kore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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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unds boxed 170 KO% 50 | |
1970년대 초반에 혜성처럼 나타나 한국프로복싱계를 뜨겁게 달군 복서가 있었다. 스마트한 복싱스타일과 잘생긴 얼굴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구상모는 아마추어시절의 화려함을 등에 업고 라이트급과 주니어웰터급에서 내일의 세계챔피언으로 주목받았으나 천성적으로 매에 약했던 위크포인트를 극복하지 못하고 동양챔피언에 머물고 말았다. 한때 일요일밤 방영되었던 챔피언스카웃의 주인공중 한명이었던 구상모를 글로 만나보자.
국가대표에서 프로로
페더급과 라이트급에서 아마추어 국가대표로 맹활약하던 구상모는 뮌헨올림픽을 기점으로 프로복싱에서 스카웃 제의를 듣게 되는데 결국 1973년 프로로 전향한다.
극동프로모션과 계약을 하고 이광주씨를 매니저로 프로생활을 시작한 구상모는 11월 25일 백호를 상대로 데뷔전을 갖는다. 아마추어에서 몸에 익은대로 레프트스트레이트는 기가 막혔다. 그러나 결정력이 없어 보였다. 일방적인 경기를 운영했지만 8회 판정승으로 첫선을 보인 것이다.
두달 후 다카하시 마사오에게도 판정승 다시 두달 후 이왕순이란 터프가이에게도 판정승이었다. 기대에 비해 3연속 판정승이란 결과에 주변의 실망은 커 보였다. 너무 깨끗한 복싱을 해 프로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성급한 이야기도 튀어나왔다.
그러나 프로에 적응하기 시작하자 달라진다. 단순히 사우스포로 기다렸다가 받아치는 카운터잽이로서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이 너무 멀고 험했기에 그는 전투적인 모습으로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라이트급 한국랭커 최장현과의 시합에서 멋진 레프트스트레이트로 2회 KO승, 손맛을 보기 시작한 구상모는 드디어 애벌레가 탈을 깨고 나와 제모습을 찾아가듯 주먹에 불이 붙기 시작한다.
나이지리아의 레이 아디오도 4회 KO로 물리치며 유망주 구상모라는 이름을 얻는다.
탄탄대로
이후로는 아우토반이었다.
연달아 벌어진 국제전을 통해 주먹에 물이 오른 구상모는 7연속 KO승을 달리며 팬들을 매료시킨다. MBC텔리비전에서 일요일 밤에 방영되던 챔피언 스카웃에서 그를 메인이벤트로 방영을 하기 시작한다. 당시 라이트급엔 오영호가 터줏대감이었다. 구상모와는 완전히 다른 스타일의 선수로 가공할 훅을 휘두르던 오영호는 TBC텔리비전의 간판스타로 활약중이었다.
10승(7KO)를 기록한 구상모는 화이팅 강이 보유하고 있던 한국 라이트급 타이틀에 도전한다. 비록 연속 KO 행진은 멈추지만 프로에서 첫 타이틀을 허리에 두르는데 성공한다.
그러나 그에게 고비가 찾아온다. 1차방어전이었다. 부산에서 벌어진 이 경기에서 구상모는 도전자 윤영석에게 고전끝에 무승부로 타이틀을 지키는데 성공한다. 연승가도를 달릴때는 보이지 않던 그의 약해보이는 맷집이 이 경기를 통해 문제점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은 구상모는 점보 나까스카(6회 KO승) 최진비(10회 KO승) 마사 이또(4회 종료 TKO승)를 모조리 KO로 잠재우며 다시 연승가도를 달린다.
그리고 필리핀의 에스피노사에게 판정승을 거두며 16전 15승(10KO) 1무를 기록한 그에게 그의 복싱인생 최대 고비가 찾아온다.
아마추어에서 활약하다 넘어온 저돌적인 승부사 김광민을 맞이한 2차방어전이 바로 그 경기였다.
김광민에게 무너지다
두 선수의 스타일은 극과 극이었다.
접근전보다는 떨어져서 거리를 두고 싸워야 제 기량을 발휘하는 구상모와 비교해 김광민은 스테미너를 밑천삼아 엄청난 추진력을 발휘하며 접근해야 재미를 보는 스타일이었다.
경기전의 예상은 구상모쪽이 유리했다. 그러나 그 예상이 틀렸다는걸 확인하는데는 채 3분도 걸리지 않았다. 공이 울리자 저돌적으로 밀어부치는 김광민의 대쉬에 구상모는 당황하는 빛이 역력했고 마치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김광민의 양훅에 구상모의 턱은 덜컥거리기 시작하며 다운..다운...또 다운
그의 흔들리는 다리와 풀려버린 눈동자, 그렇게 그의 복싱은 허무하게 주저 앉았고 타이틀을 풀어야 했다. 이 경기로 엄청난 쇼크를 받은 구상모는 복싱을 접기로 결심한다. 그러나 극동프로모션에서는 그의 자질을 아깝게 여겨 다시 링에 설 것을 종용했고 결국 한체급을 올린 주니어웰터급으로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
7개월의 공백 끝에 박백용을 상대로 링에 오른 구상모는 8라운드 KO승으로 부활에 성공한다.
그리고 세계랭커 나니 마레로를 불러들여 세계랭킹 진입을 모색한다. 그가 MY BEST FIGHT'에서 자신의 최고 경기로 꼽은 그 경기에서 구상모는 판정승을 거두며 김광민전에서 받았던 상처를 회복해 간다.
1979년 8월 구상모는 구야마 노부로에게 판정승 OPBF 주니어웰터급 타이틀을 차지하는데 성공한다.
막내리는 그의 시대
그러나 구상모는 타이틀을 걸고 싸우는 시합마다 평소의 그답지 않은 모습으로 팬들을 실망시키곤 했는데 그것은 그의 심장이 문제라는 지적을 받을만 했다.
1차방어전은 세계랭커이자 오영호를 잡아낸 페차얌 페차로엔이라는 태국복서였다. 그는 이 경기에서 1회, 8회, 10회 세차례나 다운을 당하는가 하면 마지막 라운드에서도 다운을 당하지만 레퍼리가 슬립으로 인정하면서 부끄러운 무승부 판정을 받아내 타이틀을 지키는데는 성공하지만 누구도 그의 시대가 더 이상 이어지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결국 극동프로모션에서도 구상모가 복서로서 용도폐기되어야 할 시점임을 인지하고 인도네시아 원정길에 나선다.
토마스 아메리코의 도전을 받은 구상모는 8회 KO로 패하며 타이틀을 넘겨준다. 그리고 이듬해 베네수엘라로 원정, 홈링의 후레이시스코 모레노에게 5라운드 TKO패를 당하며 링레코드에 마침표를 찍는다.
아마추어에서 쌓은 착실한 기본기와 스피드, 그리고 날카로운 레프트 스트레이트와 콤비블로우는 일급복서가 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으나 프로복서로는 어울리지 않는 약한 심장과 상대와의 접근을 꺼리는 결벽증 비슷한 것이 그를 더 이상 훌륭한 복서로 성장하는데 장애가 되었고 천성적으로 약한 맷집이 늘 부담이 되었다.
그는 은퇴 이후 포항에서 자리를 잡고 사업을 하기도 하고 체육관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그다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지금은 건설쪽에 몸을 담고 열심히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