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1-12장
📖 오늘의 제목
"헛되고 헛되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라 — 해 아래 인생의 끝에서 발견한 진리"
전도서는 성경에서 가장 당혹스럽고도 깊이 있는 책입니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는 첫 선언은 독자를 단숨에 실존적 질문 앞에 세웁니다. 이 책의 저자는 스스로를 '코헬렛(קֹהֶלֶת)'이라 부르는데, 이 히브리어는 '회중을 모으는 자, 전도자, 설교자'를 뜻합니다. 전통적으로 이 인물은 말년의 솔로몬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젊은 시절 지혜를 구하여 받았고, 중년에 성전과 왕국의 영광을 누렸으나, 이제 인생의 황혼에서 모든 것을 돌아보며 묻습니다.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
1장은 이 책 전체의 주제를 압축합니다. "해 아래에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슨 유익이 있는가"(전 1:3). '해 아래(타하트 하쉐메쉬, תַּחַת הַשָּׁמֶשׁ)'라는 표현이 전도서에 29번이나 반복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관점이 아닌 인간의 눈높이에서 본 세상, 초월적 계시 없이 관찰되는 삶의 현상을 가리킵니다. 해는 뜨고 지며, 바람은 불다가 돌아오고, 강물은 바다로 흘러도 바다는 차지 않습니다. 이 순환 속에서 새것이란 없고, 지나간 세대의 기억도 남지 않습니다. 고대 근동의 다른 지혜 문학들, 특히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나 애굽의 '하프 연주자의 노래'에서도 유사한 허무의 주제가 등장하지만, 전도서는 이 질문을 여호와 신앙의 맥락 안에서 끝까지 밀고 나간다는 점에서 독특합니다.
2장에서 코헬렛은 자신의 실험을 보고합니다. 그는 쾌락을 시험하고, 웃음과 포도주를 탐구하고, 집과 포도원과 정원을 만들고, 노비를 사고, 금은을 쌓고, 노래하는 남녀를 두었습니다.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마음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였으니"(전 2:10). 이것은 솔로몬의 전성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러나 결론은 무엇입니까. "내가 돌아보니 나의 손으로 한 모든 일과 내가 수고한 모든 수고가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에서 무익하도다"(전 2:11). 히브리어 '헤벨(הֶבֶל)'은 '숨결, 안개, 덧없음'을 의미합니다. 잡으려 해도 손에 남지 않는 아침 안개처럼, 인간의 모든 성취는 영속하지 못합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지혜자나 어리석은 자나 결국 같은 운명에 처한다는 사실입니다. "지혜자의 죽음과 어리석은 자의 죽음이 같음이로다"(전 2:16).
3장은 전도서에서 가장 유명한 시로 시작합니다.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전 3:1-2). 스물여덟 가지의 때가 열거되는 이 시는 인간이 시간의 주인이 아님을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전 3:11). 인간은 영원을 갈망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처음과 끝을 알지 못합니다. 이 긴장 속에서 인간은 무력감을 느끼지만, 동시에 겸손과 신뢰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4장에서 6장까지 코헬렛은 사회적 부조리를 관찰합니다.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 홀로 수고하는 자의 외로움, 끝없는 부의 추구 속에서 만족을 모르는 눈.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전 4:9-10). 공동체와 우정의 가치가 허무의 세계에서도 빛을 발합니다. 5장에서는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한 태도를 권면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함부로 입을 열지 말며 급한 마음으로 말을 내지 말라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너는 땅에 있음이니라"(전 5:2). 성전 예배에 대한 이 권면은 코헬렛의 회의주의가 신앙의 부정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7장과 8장은 지혜의 한계를 탐구합니다. "지혜가 유산 같이 아름답고 햇빛을 보는 자에게 유익이 되도다"(전 7:11). 지혜는 분명히 유익하지만 만능이 아닙니다. "나는 내 마음을 다하여 지혜를 알고자 하며 세상에서 행하는 일을 살피고자 하였으나 사람이 밤낮으로 자지 못하여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능히 깨달을 수 없도다"(전 8:16-17). 인간 지혜의 겸손한 한계 인식입니다. 의인에게 악인의 일이 임하고 악인에게 의인의 일이 임하는 현실(전 8:14) 앞에서 전통적 응보신학은 균열을 보입니다. 그러나 코헬렛은 이 불합리 속에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놓지 않습니다.
9장은 죽음의 보편성을 다시 직시합니다. "무릇 산 자들에게는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전 9:4). 살아 있는 한 희망이 있다는 현실주의적 긍정입니다. 그러므로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전 9:10). 이 구절은 죽음 이후의 무(無)를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주어진 삶을 성실히 살라는 권면입니다. "네 옷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아니하게 할지니라 네 헛된 날의 모든 날에 하나님이 네게 주신 네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전 9:8-9). 허무 속에서도 일상의 기쁨을 누리라는 이 권면은 쾌락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선물에 대한 감사입니다.
10장과 11장은 실제적 지혜의 격언들을 담고 있습니다.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쪽에 있고 어리석은 자의 마음은 왼쪽에 있느니라"(전 10:2). 고대에 오른쪽은 길함과 능숙함을, 왼쪽은 불길함과 서투름을 상징했습니다. "너는 아침에 씨를 뿌리고 저녁에도 손을 놓지 말라 이것이 잘 될는지 저것이 잘 될는지 혹 둘이 다 잘 될는지 알지 못함이니라"(전 11:6). 결과를 알 수 없어도 성실히 일하라는 권면입니다. 젊은이에게는 "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들을 마음에 기뻐하여 네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전 11:9). 기쁨을 누리되 심판을 기억하라는 균형 잡힌 권면입니다.
12장은 전도서의 장엄한 결론입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들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전 12:1). 이어지는 구절들은 노년의 쇠퇴를 아름답고도 슬픈 은유로 묘사합니다. 집을 지키는 자들(팔다리)이 떨리고, 문들(귀)이 닫히고, 새의 소리(청각)가 약해지고, 아몬드나무 꽃(백발)이 피어나고, 메뚜기(몸)가 짐이 되고, 은 줄(척추)이 풀리고, 금 그릇(머리)이 부서지고, 흙(몸)은 흙으로, 영(루아흐)은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마지막 결론은 모든 허무의 탐구 끝에 도달한 진리입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전도서는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추구하는 것이 정말 영원한 가치가 있는가, 해 아래서의 수고가 바람을 잡는 것은 아닌가. 그러나 이 책은 절망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헛됨을 직시한 끝에서 하나님 경외라는 견고한 반석을 발견합니다. 솔로몬이 평생의 실험 끝에 도달한 이 결론은, 장차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요 11:25)라고 선언하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응답을 얻습니다. 해 아래의 모든 것이 헛될지라도, 해 위에 계신 분이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수고가 헛되게 느껴질 때, 창조주를 기억하십시오. 그분 안에서 우리의 삶은 영원한 의미를 얻습니다.
① 헛된 것을 쫓지 않게 하시고, 청년의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며 경외함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② 우리 공동체가 세상의 성공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 경외를 모든 가치의 기준으로 삼게 하소서.
③ 삶의 의미를 잃고 방황하는 이들이 해 아래의 허무 너머 영원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하소서.
"해 아래 모든 것이 헛되나, 해 위에 계신 분은 영원하시다."
블레즈 파스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만이 채울 수 있는 빈 공간이 있다." 전도서의 코헬렛이 쾌락과 지혜와 부로 채우려 했던 그 공허함은 결국 하나님 경외 외에는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오늘 하루, 그 빈 공간을 영원하신 분으로 채우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