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17장부터 22장, 대하17-20장
📖 오늘의 제목
"불의 선지자 엘리야, 가뭄과 불과 세미한 음성 사이에서"
오늘 읽는 본문은 구약 역사서 가운데 가장 극적인 장면들로 가득합니다. 암흑 같은 아합 시대에 혜성처럼 등장한 엘리야 선지자, 삼 년 반의 가뭄, 사르밧 과부의 마르지 않는 기름 항아리, 갈멜 산 정상에서 벌어진 하나님과 바알의 대결, 그리고 이세벨을 피해 호렙 산까지 도망친 선지자에게 임한 세미한 음성까지. 동시에 역대하는 남왕국 유다의 신실한 왕 여호사밧의 개혁과 기도를 상세히 기록하여,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열왕기상 17장은 돌연 엘리야를 무대에 등장시킵니다. "길르앗 디스베에 우거하는 자 중에 디스베 사람 엘리야가 아합에게 말하되 내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 년 동안 우로나 이슬이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 아무런 배경 설명 없이 등장한 이 선지자의 이름 '엘리야(אֵלִיָּהוּ)'는 '나의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의미입니다. 바알 숭배가 극에 달한 시대에 그의 이름 자체가 선언이었습니다. 바알은 가나안의 폭풍과 비의 신이었기에, 엘리야의 가뭄 선포는 바알의 무능력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로 보내셔서 까마귀를 통해 먹이십니다. "까마귀들이 아침에도 떡과 고기를, 저녁에도 떡과 고기를 가져왔고 그가 시내 물을 마시더니"(왕상 17:6). 율법에서 부정한 새로 규정된 까마귀가 선지자를 먹인다는 것은 역설적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수단이든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시내가 마르자 하나님은 엘리야를 시돈의 사르밧으로 보내십니다. 시돈은 바로 이세벨의 고향이며 바알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거기서 가난한 과부가 엘리야를 맞습니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와 기름으로 떡을 만들어 아들과 함께 먹고 죽으려 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한 개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왕상 17:13). 이 요청은 가혹해 보이지만, 순종의 문을 열면 공급이 임한다는 원리를 담고 있습니다. 과부가 순종하자 "여호와의 말씀대로 통의 가루가 떨어지지 아니하고 병의 기름이 없어지지 아니하니라"(왕상 17:16). 히브리어 '카라트(כָּרַת)'는 '끊어지다, 떨어지다'를 뜻하는데, 가뭄 속에서도 그녀의 항아리는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후에 과부의 아들이 죽자 엘리야는 그 아이 위에 세 번 엎드려 기도하여 살려냅니다. 구약에서 명확하게 기록된 최초의 부활 사건입니다.
18장은 갈멜 산 대결의 장엄한 무대입니다. 삼 년째 가뭄이 계속되자 하나님이 엘리야에게 명하십니다.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지면에 비를 내리리라"(왕상 18:1). 엘리야와 아합이 마주칩니다. "아합이 엘리야를 볼 때에 아합이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너냐"(왕상 18:17). 아합은 가뭄의 원인을 엘리야에게 돌립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단호하게 반박합니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리고 당신이 바알들을 따랐음이라"(왕상 18:18).
갈멜 산 정상에 온 이스라엘이 모였습니다.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명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명이 이세벨의 상에서 먹는 자들이었습니다. 엘리야가 외칩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왕상 18:21). 히브리어 '파사흐(פָּסַח)'는 '절뚝거리다, 비틀거리다'를 뜻하는데, 두 신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신랄하게 묘사합니다. 백성은 한 말도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대결의 규칙은 단순했습니다. 각각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되 불을 붙이지 말고, 응답하는 신이 참 하나님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알 선지자들이 아침부터 낮까지 "바알이여 우리에게 응답하소서"라고 외쳤으나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조롱합니다. "큰 소리로 부르라 그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은 그가 잠시 나갔는지 혹은 그가 길을 행하는지 혹은 그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왕상 18:27). 바알 선지자들은 칼과 창으로 자기 몸을 상하게 하며 피를 흘렸으나 정오가 지나고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아무 응답이 없었습니다.
엘리야가 행동에 나섭니다.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열두 돌로 수축하고, 그 둘레에 도랑을 파고, 나무와 제물을 올린 뒤 열두 통의 물을 부었습니다. 삼 년 반 가뭄 중에 구하기 어려운 물을 쏟아부은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절대적 신뢰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6).
응답은 즉각적이었습니다.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왕상 18:38). 백성이 엎드려 외칩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왕상 18:39).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을 기손 시내로 끌고 가서 죽이고, 그 후에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엘리야는 허리를 동이고 아합의 병거 앞에서 이스르엘까지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19장에서 엘리야는 급격히 무너집니다. 이세벨이 "내가 내일 이맘때에는 반드시 네 생명을 저 선지자들 중의 하나의 생명과 같게 하리라"(왕상 19:2)고 위협하자, 갈멜 산에서 불을 내린 그 선지자가 두려워 도망칩니다. 브엘세바까지 달아난 후 광야에서 로뎀나무 아래 앉아 죽기를 구합니다.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거두어 가옵소서 나는 내 조상들보다 낫지 못하니이다"(왕상 19:4). 극적인 승리 직후의 극적인 침체입니다. 번아웃과 우울의 성경적 사례로 종종 인용되는 대목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보내 떡과 물로 먹이시고, 엘리야는 사십 주야를 걸어 호렙 산에 이릅니다. 호렙은 모세가 불붙는 가시나무를 보았고 십계명을 받은 바로 그 산입니다. 굴에서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9). 엘리야의 대답은 고독과 절망으로 가득합니다. "오직 나만 남았거늘 그들이 내 생명을 찾아 빼앗으려 하나이다"(왕상 19:10).
하나님은 엘리야를 굴 밖으로 불러내십니다.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여호와는 바람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다. 바람 후에 지진이 있었으나 여호와는 지진 가운데 계시지 않았습니다. 지진 후에 불이 있었으나 여호와는 불 가운데도 계시지 않았습니다.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왕상 19:12). 히브리어 '콜 드마마 다카(קוֹל דְּמָמָה דַקָּה)'는 '고요하고 부드러운 소리' 혹은 '침묵의 소리'로 번역됩니다. 갈멜 산에서 불로 응답하셨던 하나님이 이제는 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엘리야에게 세 가지 사명을 주십니다. 다메섹으로 가서 하사엘을 아람 왕으로 기름 붓고, 예후를 이스라엘 왕으로, 엘리사를 자신의 뒤를 이을 선지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로하십니다.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칠천 명을 남기리니 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하고 다 바알에게 입맞추지 아니한 자니라"(왕상 19:18). 엘리야만 남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20장과 21장은 아합의 전쟁과 나봇의 포도원 사건을 기록합니다.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포위했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를 통해 승리를 약속하셨고, 아합은 두 번 아람을 격파합니다. 그러나 아합이 벤하닷을 살려주자 선지자가 책망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멸하기로 정한 자를 네가 놓았은즉 네 생명이 그의 생명을 대신하고 네 백성이 그의 백성을 대신하리라"(왕상 20:42).
21장의 나봇 포도원 사건은 이스라엘 사회 정의의 근간을 흔드는 사건입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원했으나 나봇은 "여호와께서 금하신 것이오니 내 조상의 기업을 왕에게 줄 수 없나이다"(왕상 21:3)라고 거절합니다. 레위기 25장에 따르면 조상의 땅은 영구히 팔 수 없었습니다. 땅은 여호와의 것이며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나그네와 우거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아합이 근심하자 이세벨이 개입합니다. "당신이 지금 이스라엘의 왕이 되지 아니하셨나이까"(왕상 21:7). 이세벨은 바알 숭배가 보편화된 페니키아의 왕권 개념, 곧 왕이 원하는 것을 취할 수 있다는 관념으로 행동합니다. 그녀는 거짓 증인을 세워 나봇을 신성모독죄와 역모죄로 몰아 돌로 쳐 죽입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 나타납니다.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왕상 21:19). 심판이 선포됩니다.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아합의 피를 핥을 것이며, 이세벨은 이스르엘 성벽 곁에서 개들이 먹을 것입니다. 아합이 회개하며 굵은 베를 입자 하나님은 심판을 그의 아들 대로 늦추십니다. 악한 왕도 겸비하면 하나님이 돌아보십니다.
22장은 아합의 마지막 전쟁을 기록합니다.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아람의 라못 길르앗을 공격하려 할 때, 사백 명의 선지자들이 승리를 예언합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이 여호와의 선지자를 구하자 미가야가 불려옵니다. 미가야는 진실을 말합니다. "내가 보니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 같이 산에 흩어졌는데"(왕상 22:17). 그리고 하나님이 거짓말하는 영을 아합의 선지자들 입에 보내셨다고 밝힙니다. 아합은 변장하고 전쟁터에 나갔으나 어떤 사람이 우연히 쏜 화살이 갑옷 솔기를 뚫었고, 그는 피를 흘리며 저녁에 죽었습니다. "개들이 그의 피를 핥으니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왕상 22:38).
역대하 17-20장은 남왕국 유다의 여호사밧을 집중적으로 다룹니다. 여호사밧은 "그의 조상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며 바알들을 찾지 아니하고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을 찾아 그의 명령을 행하며"(대하 17:3-4). 그는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을 유다 각 성읍에 보내 율법을 가르치게 합니다. 종교 교육의 체계적 시행입니다. 그러나 여호사밧은 아합과 혼인 동맹을 맺는 실수를 합니다. 아합의 딸 아달랴가 여호사밧의 아들 여호람에게 시집왔고, 이것이 후에 유다 왕실에 큰 재앙을 가져옵니다.
역대하 20장은 여호사밧의 가장 빛나는 순간을 기록합니다. 모압과 암몬과 마온 거민의 대군이 쳐들어올 때, 여호사밧은 두려워하며 여호와께 간구하고 온 유다에 금식을 공포합니다. 성전 뜰에 모인 회중 앞에서 여호사밧이 기도합니다. "우리 하나님이여 그들을 심판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는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당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대하 20:12). 히브리어 '에인(אֵין)'은 '없다'를 뜻하며, 완전한 무력함의 고백입니다.
레위인 야하시엘에게 여호와의 영이 임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큰 무리로 말미암아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라 이 전쟁은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대하 20:15). 다음 날 여호사밧은 군대 앞에 성가대를 세워 찬양하게 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하세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대하 20:21). 찬양이 시작되자 하나님이 복병을 두셔서 적군이 서로를 쳐 멸망시켰습니다. 유다 군대가 도착했을 때는 시체뿐이었고, 삼 일 동안 노획물을 거두었습니다. 그 골짜기를 '브라가(복의 골짜기)'라 불렀습니다.
엘리야는 불의 응답과 세미한 음성을 모두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은 때로는 불처럼 강렬하게, 때로는 침묵처럼 부드럽게 말씀하십니다. 갈멜 산의 승리 직후 로뎀나무 아래서 죽고 싶었던 엘리야의 모습은, 가장 큰 영적 승리 뒤에 가장 깊은 침체가 올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지친 선지자를 먹이시고, 새 사명을 주시고, 칠천 명의 남은 자가 있다고 알려주십니다. 여호사밧의 고백처럼 우리도 어떻게 할 줄 모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오직 주만 바라보면,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찬양이 전쟁의 무기가 됩니다. 그리고 엘리야가 갈 길이 멀다며 먹이신 그 떡과 물은, 장차 "내가 곧 생명의 떡이라"(요 6:35)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미리 비추고 있습니다.
① 영적 승리 후의 침체를 경계하게 하시고, 둘 사이에서 머뭇거리지 않고 오직 여호와만 따르게 하소서.
② 어떻게 할 줄 모를 때 오직 주만 바라보는 믿음을 주시고, 찬양으로 전쟁을 이기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③ 바알과 물질과 권력 앞에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처럼, 이 시대에도 숨은 신실한 자들을 일으켜 주소서.
"불 가운데도, 세미한 음성 가운데도,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할 일이 많아서 먼저 세 시간을 기도에 써야 한다." 여호사밧은 대군 앞에서 먼저 기도하고 찬양했습니다. 엘리야는 떡과 물로 힘을 얻어 사십 일을 걸었습니다. 급한 순간에 먼저 하나님 앞에 서는 것, 이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갈멜 산이 어디든, 하나님이 응답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