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1-9장
📖 오늘의 제목
"공의를 물 같이, 정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
아모스서는 구약 선지서 가운데 가장 날카로운 사회 정의의 외침을 담고 있습니다. 양을 치던 드고아의 목자가 북왕국 이스라엘의 번영 한가운데로 들어와 심판을 선포합니다. 여로보암 2세 시대, 군사적 성공과 경제적 풍요에 취해 있던 이스라엘에게 아모스의 메시지는 청천벽력이었습니다. 종교 의식은 화려했으나 가난한 자는 짓밟혔고, 성전은 북적였으나 공의는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제물의 향기가 아니라 정의의 강물을 원하셨습니다.
아모스서는 독특한 구조로 시작합니다. 1장과 2장에서 아모스는 이스라엘 주변 여섯 나라에 대한 심판을 먼저 선포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다메섹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암 1:3). '서너 가지 죄'라는 표현은 히브리 시문학의 숫자 병행법으로, 죄가 가득 찼음을 의미합니다. 다메섹, 가사, 두로, 에돔, 암몬, 모압 순서로 심판이 선포될 때, 이스라엘 청중은 아마도 환호했을 것입니다. 원수들에 대한 심판이니까요.
그러나 아모스의 전략은 교묘했습니다. 점점 원을 좁혀오더니 마침내 유다를 거쳐 이스라엘 자체를 겨냥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의 서너 가지 죄로 말미암아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암 2:6). 신발 한 켤레 값에 사람을 파는 이 이미지는 충격적입니다. 가장 하찮은 금액에 인간의 존엄이 거래되었습니다. 히브리어 '에브욘(אֶבְיוֹן)'은 '가난한 자, 궁핍한 자'를 뜻하는데, 아모스는 이들에 대한 착취를 반복적으로 고발합니다.
아모스의 배경은 그의 메시지에 권위를 더합니다.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라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재배하는 자로서 양 떼를 따를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데려다가 내게 이르시되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라"(암 7:14-15). 그는 전문 선지자 집단에 속하지 않았습니다. 드고아는 예루살렘 남쪽 유다 광야의 작은 마을로, 그곳에서 양을 치며 뽕나무 열매를 재배하던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이 그를 북왕국의 중심부로 보냈습니다.
3장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선택받은 지위가 오히려 더 큰 책임을 의미함을 선언하십니다. "내가 땅의 모든 족속 가운데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러므로 내가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암 3:2). 히브리어 '야다(יָדַע)'는 단순히 '알다'가 아니라 친밀한 관계적 앎, 선택과 언약의 관계를 뜻합니다. 선택은 특권이 아니라 책임이었습니다. 아모스는 질문을 던집니다. "두 사람이 뜻이 같지 않은데 어찌 동행하겠으며"(암 3:3).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더 이상 같은 길을 걷지 않고 있다는 선언입니다.
4장에서 아모스는 사마리아의 부유한 여인들을 "바산의 암소들"(암 4:1)이라 부릅니다. 바산은 요단 동편의 비옥한 목초지로, 살찐 가축으로 유명했습니다. 이 여인들은 가난한 자를 학대하고 남편에게 "술을 가져다가 우리에게 마시게 하라"고 요구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경고들—기근, 가뭄, 역병, 전쟁—에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다섯 번이나 반복되는 후렴구가 울립니다. "그래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느니라"(암 4:6, 8, 9, 10, 11).
5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애가로 시작합니다. "처녀 이스라엘이 엎드러졌음이여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로다 자기 땅에 던져졌으나 일으킬 자 없도다"(암 5:2). 아직 심판이 임하기 전인데 이미 과거형으로 애도합니다. 선지자적 완료형으로, 하나님의 선언은 반드시 성취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애가 직후에 희망의 문이 열립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르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4). 히브리어 '다르쉬(דָּרַשׁ)'는 '찾다, 구하다, 탐구하다'를 뜻합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이 생존의 유일한 길입니다.
5장 21-24절은 아모스서의 정점이자 구약 선지서 전체에서 가장 강력한 구절 중 하나입니다. "내가 너희 절기들을 미워하고 멸시하며 너희 성회들을 기뻐하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내게 번제나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받지 아니하겠고 너희의 살진 희생의 화목제도 내가 돌아보지 아니하리라 네 노랫소리를 내 앞에서 그칠지어다 네 비파 소리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라"(암 5:21-23). 당시 이스라엘의 예배는 화려했습니다. 벧엘과 길갈의 성소는 순례자들로 넘쳤고, 제물은 풍성했으며, 찬양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미워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바로 다음 절이 대답합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 히브리어 '미쉬파트(מִשְׁפָּט)'는 '정의, 공정한 판결'을, '체다카(צְדָקָה)'는 '공의, 의로움'을 뜻합니다. 물과 강의 이미지는 강력합니다. 팔레스타인의 많은 강은 건기에 마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의는 마르지 않는 강처럼 끊임없이 흘러야 합니다. 예배와 정의는 분리될 수 없습니다. 성전에서 손을 들고 찬양하면서 시장에서 가난한 자를 착취하는 것은 하나님이 받으실 수 없는 예배입니다.
6장은 안일한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들"(암 6:1). 상아 침상에 누워 어린 양과 송아지를 먹고, 비파에 맞추어 노래를 지어 부르며,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고 귀한 기름을 바르면서도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들"(암 6:6). 부의 향유 자체가 죄가 아니라, 형제의 고통에 무관심한 것이 죄입니다.
7장부터 9장까지는 다섯 가지 환상이 연속됩니다. 메뚜기 환상과 불 환상에서 아모스가 중보하자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십니다. "야곱이 어찌 서겠나이까 그가 작으니이다"(암 7:2). 선지자의 중보가 심판을 유예시킵니다. 그러나 다림줄 환상에서 하나님은 선언하십니다. "내가 다시는 그들을 용서하지 아니하리니"(암 7:8). 다림줄은 건축에서 수직을 측정하는 도구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림줄로 재시니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벧엘의 제사장 아마샤가 개입합니다. 그는 아모스를 왕에게 고발하고 유다로 돌아가라고 명합니다. "너 선견자야 유다 땅으로 도망하여 거기서나 먹으며 거기서 예언하고 다시는 벧엘에서 예언하지 말라 이는 왕의 성소요 왕국의 성전임이니라"(암 7:12-13). 벧엘을 '왕의 성소'라 부른 것에 주목하십시오. 여호와의 성소가 아니라 왕의 성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권력에 종속된 종교입니다. 아모스는 물러서지 않고 아마샤의 가문에 대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8장의 여름 과일 환상은 언어유희를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어로 '여름 과일(카이츠, קַיִץ)'과 '끝(케츠, קֵץ)'이 유사하게 발음됩니다. 이스라엘의 끝이 왔습니다. 그들의 죄는 구체적으로 열거됩니다. "새 달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곡식을 팔며 안식일이 언제 지나서 우리가 밀을 내게 할꼬 에바를 줄이고 세겔을 크게 하며 거짓 저울로 속이며 은을 받고 가난한 자를 사며 신 한 켤레로 궁핍한 자를 사며"(암 8:5-6). 안식일과 절기를 형식적으로 지키면서 그 시간이 빨리 지나 장사할 수 있기를 바라고, 저울을 속이고, 사람을 물건처럼 사고팝니다.
8장 11절은 가장 무서운 심판을 예고합니다. "보라 그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 땅에 기근을 보내리라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암 8:11). 물질적 기근보다 더 끔찍한 것은 하나님 말씀의 기근입니다. 동서남북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찾아 헤매도 찾지 못할 것입니다.
9장은 심판의 완전함을 선언합니다. 하늘에 올라가도, 스올에 내려가도, 갈멜 산에 숨어도, 바다 밑에 숨어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책의 결말은 놀라운 회복의 약속입니다. "그 날에 내가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일으키고 그것들의 틈을 막으며 그 허물어진 것을 일으켜서 옛적과 같이 세우"(암 9:11)리라. 사도행전 15장에서 야고보는 이 구절을 인용하여 이방인의 구원을 설명합니다. "황무지를 수리하는 자"(사 58:12)이신 하나님은 무너진 것을 다시 세우십니다.
마지막 구절은 아름다운 회복의 비전입니다. "파종하는 자가 곡식 거두는 자의 뒤를 이으며 포도를 밟는 자가 씨 뿌리는 자의 뒤를 이으며 산들은 단 포도주를 흘리며 작은 산들은 녹으리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암 9:13-14). 파종과 추수가 겹칠 만큼 풍요로운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심판의 책이 은혜의 약속으로 끝납니다.
아모스의 메시지는 이천칠백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날카롭게 울립니다. 예배당은 가득하지만 정의는 어디 있습니까. 찬양은 울려 퍼지지만 가난한 자의 신음소리는 들리십니까. 하나님은 화려한 종교 의식보다 마르지 않는 정의의 강을 원하십니다. 드고아의 목자가 왕의 성소에서 두려움 없이 외쳤듯이, 우리도 불의 앞에서 침묵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다윗의 무너진 장막을 세우시겠다는 약속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분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을 허시고 하나의 새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무너진 것을 회복하시는 하나님, 그분이 오늘 우리의 소망입니다.
① 예배와 삶이 분리되지 않게 하시고, 형제의 고통에 무관심하지 않는 깨어 있는 마음을 주소서.
② 우리 공동체가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흘려보내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③ 신발 한 켤레 값에 팔리는 가난한 자들, 착취당하는 약자들의 편에 서시는 하나님의 공의가 이 땅에 실현되게 하소서.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하라."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는 아모스 5장 24절을 즐겨 인용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의가 물처럼 흐르고 공의가 강처럼 흐를 때까지 우리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천칠백 년 전 드고아의 목자가 외친 말씀이 현대의 인권 운동을 이끌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불의에 저항하고 정의를 세우는 힘이 됩니다. 오늘 우리도 그 강물의 일부가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