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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통독

052일 : 요나서, 미가서 "도망친 선지자와 베들레헴의 약속"

작성자에셀나무|작성시간26.06.16|조회수22 목록 댓글 0

요나, 미가서

📖 오늘의 제목

"도망친 선지자와 베들레헴의 약속 — 심판 너머 긍휼을 품으신 하나님"

 

요나서와 미가서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긍휼을 보여줍니다. 요나서는 원수를 향한 하나님의 자비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선지자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 사랑의 범위가 이스라엘을 넘어선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미가서는 사회 정의의 날카로운 고발과 함께 베들레헴에서 나실 통치자의 놀라운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두 책 모두 심판을 선포하면서도 결국 긍휼의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요나서는 구약에서 가장 독특한 선지서입니다. 다른 선지서들이 선지자의 메시지를 기록하는 반면, 요나서는 선지자 자신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하였음이니라"(욘 1:1-2). 니느웨는 앗수르 제국의 수도였습니다. 앗수르는 고대 근동에서 가장 잔인한 제국으로 악명이 높았고, 이스라엘을 멸망시킬 운명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바로 그 원수의 도시로 가라고 명하십니다.

 

요나의 반응은 놀랍습니다. "요나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욘 1:3). 히브리어 '바라흐(בָּרַח)'는 '도망치다, 피하다'를 뜻합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합니다. 니느웨는 동쪽인데 요나는 정반대 방향인 서쪽 다시스로 향합니다. 다시스는 아마도 오늘날의 스페인 지역으로, 당시 알려진 세계의 서쪽 끝이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에게서 가능한 한 멀리 도망치려 했습니다.

 

욥바에서 배를 타고 도망가던 요나에게 큰 폭풍이 덮칩니다. 뱃사람들이 각기 자기 신에게 부르짖을 때, 요나는 배 밑바닥에서 깊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제비를 뽑아 재앙의 원인이 요나임이 밝혀지고, 뱃사람들은 두려워합니다. "그들이 묻되 우리가 너를 어떻게 하면 바다가 우리를 위하여 잔잔해지겠느냐"(욘 1:11). 요나가 대답합니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욘 1:12). 이방인 뱃사람들은 여호와께 기도하며 마지못해 요나를 바다에 던지고, 바다가 잔잔해지자 여호와를 크게 경외합니다.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욘 1:17). 히브리어 '다그 가돌(דָּג גָּדוֹל)'은 '큰 물고기'입니다. 이 물고기는 심판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구원의 도구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을 자신의 죽음과 부활의 예표로 언급하셨습니다. "요나가 밤낮 사흘을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 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을 땅 속에 있으리라"(마 12:40).

 

2장은 물고기 뱃속에서 드린 요나의 기도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고 스올의 뱃속에서 내가 도움을 구하였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2). 죽음의 문턱에서 요나는 하나님을 부릅니다. "물이 나를 둘러싸서 생명까지 이르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해초가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욘 2:5). 바닥까지 내려간 곳에서 하나님을 기억합니다. "거짓되고 헛된 것을 따르는 자들은 자기에게 베풀어진 긍휼을 버렸사오나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욘 2:8-9).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라는 고백은 이 책의 핵심 주제입니다.

 

3장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임합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욘 3:2). 이번에 요나는 순종합니다. 니느웨는 "하루를 걸을 만큼 큰 성읍"(욘 3:3)이었습니다. 요나는 외칩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 3:4). 히브리어로 단 다섯 단어의 짧은 메시지였습니다. 구원의 약속도 없고, 회개의 초대도 없고, 오직 심판만 선포했습니다.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굵은 베를 입"(욘 3:5)습니다. 왕까지 보좌에서 내려와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습니다. "누가 아느냐 하나님이 돌이켜 뜻을 바꾸시고 그의 진노를 그치시면 우리가 멸망하지 아니할 것을"(욘 3:9). 이방 도시의 회개가 이스라엘의 완고함과 대비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욘 3:10).

 

4장은 요나의 분노를 다룹니다. "여호와여 이것이 내가 본국에 있을 때에 먼저 말한 것이 아니니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욘 4:2). 출애굽기 34장 6절의 하나님 자기 계시가 여기서 반복됩니다. 그러나 요나에게 이것은 기쁜 소식이 아니라 분노의 원인입니다. 하나님이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것이 요나는 견딜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박넝쿨로 요나를 가르치십니다. 하룻밤에 자란 박넝쿨이 요나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었다가 하룻밤 만에 벌레에 먹혀 시들자 요나는 분노합니다. 하나님이 물으십니다. "네가 이 박넝쿨을 위하여 애통히 여김이 어찌 합당하냐"(욘 4:9). 하나님의 결론이 울립니다.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욘 4:11).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어린아이들과 짐승까지 아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책은 이 질문으로 열린 결말을 맺습니다. 독자에게 묻는 것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미가서로 넘어갑니다. 미가는 유다의 모레셋 출신으로 이사야와 동시대 선지자였습니다. 그의 이름 '미카(מִיכָה)'는 "누가 여호와와 같으랴"라는 뜻입니다. 미가서는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가 교차하며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1장과 2장은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며 포도 심을 자리 같게 하고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 내리며 그 지대를 드러내리라"(미 1:6). 북왕국의 멸망이 예고됩니다. 그러나 유다도 안전하지 않습니다. "그 병이 유다까지 이르렀음이니"(미 1:9). 사회 지도자들의 죄가 고발됩니다. "침상에서 죄악을 꾀하며 악을 행하다가 아침 빛이 밝으면 그들의 손에 힘이 있으므로 그것을 행하도다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빼앗으니"(미 2:1-2).

 

3장에서 지도자들에 대한 고발이 심화됩니다. "야곱 족장들과 이스라엘 집 지도자들아 들으라 정의를 아는 것이 너희의 본분이 아니냐 너희가 선을 미워하고 악을 좋아하여 내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내는도다"(미 3:1-2). 백성을 잡아먹는 지도자들의 이미지는 충격적입니다. 거짓 선지자들도 책망받습니다. "먹을 것을 입에 물려 주면 평강을 외치나 그 입에 무엇을 채워 주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전쟁을 준비하는도다"(미 3:5). 돈에 따라 메시지가 달라지는 선지자들입니다.

 

그러나 미가는 달랐습니다. "나는 여호와의 영으로 말미암아 권능과 정의와 용기를 얻었노니 이는 야곱의 허물을 야곱에게 보이며 이스라엘의 죄를 이스라엘에게 알리기 위함이라"(미 3:8). 미가의 선포는 권력에 아부하지 않습니다.

 

4장과 5장은 미래의 회복을 노래합니다. "말일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성전 산이 모든 산꼭대기에 굳게 서며 모든 작은 산보다 높아지리니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라"(미 4:1). 이사야 2장과 거의 동일한 이 비전은 두 선지자의 공유된 계시입니다.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미 4:3). 평화의 나라 비전입니다.

 

5장에는 가장 유명한 메시아 예언이 등장합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서 작으니라 그러나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히브리어 '케뎀(קֶדֶם)'과 '올람(עוֹלָם)'은 '태초부터, 영원부터'를 의미합니다.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영원한 통치자가 나실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이"를 찾을 때,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바로 이 구절을 인용했습니다(마 2:5-6). 예수님의 탄생지가 베들레헴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예언의 성취였습니다.

 

6장은 법정 장면으로 전개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고발하십니다. "내 백성아 내가 네게 무엇을 행하였으며 무엇으로 너를 피곤하게 하였느냐 너는 나를 향하여 증언하라"(미 6:3). 출애굽과 광야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 이에 이스라엘이 묻습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곧 일 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미 6:6). 수천의 숫양, 만 줄기의 기름, 심지어 장자까지 바칠까요.

 

하나님의 대답은 명확합니다.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 6:8). 히브리어 '미쉬파트(מִשְׁפָּט)'는 정의, '헤세드(חֶסֶד)'는 인자, '차나(צָנַע)'는 겸손히 걷는 것입니다. 아모스의 정의 요구와 호세아의 인자 강조가 미가에서 통합됩니다.

 

7장은 탄식으로 시작하여 희망으로 끝납니다. "슬프도다 나여 나는 여름 열매를 모은 것 같고 포도를 수확한 뒤와 같아서"(미 7:1). 의인을 찾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그러나 미가는 선언합니다. "나는 여호와를 우러러보며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나니"(미 7:7).

 

책의 마지막은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찬양입니다.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유산인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고 인자하심을 기뻐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그들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미 7:18-19). '누가 여호와와 같으랴'라는 미가의 이름이 책의 결론에서 메아리칩니다. 죄를 바다 깊은 곳에 던지시는 하나님, 그분과 같은 분은 없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긍휼을 원수에게까지 베푸시는 것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니느웨의 십이만 어린아이들과 짐승까지 아끼셨습니다. 우리의 마음은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내가 미워하는 사람에게도 미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미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수천의 제물이 아니라 정의와 인자와 겸손임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영원한 통치자가 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이 예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그분은 요나보다 큰 이로서 삼 일 만에 부활하셨고, 베들레헴에서 나신 영원한 왕으로서 우리의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셨습니다.

 

① 요나처럼 하나님의 긍휼에 분노하지 않게 하시고, 원수까지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품게 하소서.

② 우리 공동체가 정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동행하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③ 좌우를 분별하지 못하는 연약한 영혼들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잃어버린 자들을 품게 하소서.

 

"주와 같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는 하나님이여."

 

조나단 에드워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무한하시며, 그 긍휼을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에게 베풀어진다." 요나는 니느웨가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를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도 자격이 없지만 긍휼을 받았습니다. 그 긍휼을 나누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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