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하 9- 17장, 대하 24-28장.
오늘의 제목
"피로 물든 혁명, 그리고 사마리아의 최후 — 돌이키지 않은 자들의 결말"
오늘 읽는 본문은 북왕국 이스라엘의 격변과 멸망을 기록한 가장 비극적인 역사입니다. 예후의 피비린내 나는 혁명으로 아합 왕조가 무너지고, 이후 왕들의 계속된 배교 속에서 북왕국은 앗수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합니다. 남왕국 유다 역시 선한 왕과 악한 왕이 교차하며 흔들립니다. 역대기는 이 시대를 제사장적 관점에서 재조명하며, 성전과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이 모든 역사의 중심에는 "돌이키지 않으면 심판이 임한다"는 하나님의 변함없는 경고가 흐르고 있습니다.
열왕기하 9장은 예후의 등장으로 시작됩니다. 엘리사가 선지자 생도를 보내 예후에게 기름을 붓게 합니다.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 왕으로 삼노니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왕하 9:6-7). 엘리야가 받았던 사명이 이제 성취됩니다. 예후는 즉각 행동에 나섭니다. 이스르엘에서 요람 왕과 유다의 아하시야 왕을 만나 둘 다 죽입니다. 요람이 "예후야 평안이냐"고 묻자 예후의 대답은 서늘합니다.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왕하 9:22).
이세벨의 최후는 강렬합니다. 그녀는 예후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내려다봅니다. 마지막까지 왕비로서의 위엄을 유지하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내시들이 그녀를 창 밖으로 던지고 말이 그녀를 밟습니다. 예후가 식사 후 그녀를 장사하려 하니 "두개골과 발과 손바닥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왕하 9:35). 엘리야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으리니"(왕하 9:36).
10장에서 예후의 숙청은 계속됩니다. 아합의 아들 칠십 명이 사마리아에서 참수되고, 그 머리가 이스르엘로 보내집니다. 아하시야의 형제들 사십이 명도 죽임당합니다. 예후는 바알 숭배자들을 모아 바알 신전에서 몰살시킵니다. "예후가 이스라엘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왕하 10:28), 그러나 여로보암의 금송아지에서는 떠나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 '수르(סוּר)'는 '떠나다, 돌이키다'를 뜻하는데, 예후는 바알에서는 돌이켰으나 여로보암의 죄에서는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땅을 줄이시기 시작하"(왕하 10:32)셨습니다.
11장은 남왕국의 위기를 기록합니다. 아달랴가 왕실을 학살하고 왕위를 찬탈하지만, 아기 요아스가 숨겨져 칠 년을 성전에서 자랍니다. 제사장 여호야다가 거사를 일으켜 요아스를 왕으로 세우고 아달랴를 처형합니다. "여호야다가 왕과 백성 사이에 언약을 세워 그들이 여호와의 백성이 되게 하고"(왕하 11:17). 언약의 갱신이 개혁의 기초입니다.
역대하 24장은 요아스의 통치를 더 상세히 다룹니다. 그는 성전을 수리하고 여호야다가 사는 동안 선하게 행합니다. 그러나 여호야다가 죽자 방백들의 말을 따라 우상을 섬깁니다.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가 책망하자 왕의 명으로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가 죽을 때에 이르되 여호와는 감찰하시고 갚으시리라"(대하 24:22). 예수님은 이 사건을 인용하시며 의인의 피에 대한 책임을 물으셨습니다(마 23:35).
열왕기하 12-16장은 북왕국과 남왕국의 왕들이 빠르게 교체되는 시기를 다룹니다. 북왕국에서는 여호아하스, 요아스, 여로보암 2세, 스가랴, 살룸, 므나헴, 브가히야, 베가, 호세아가 차례로 왕위에 오릅니다. 대부분 쿠데타로 왕위에 올랐고 여로보암의 죄에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앗수르의 위협이 점점 커집니다. 므나헴은 앗수르 왕 불에게 은 천 달란트를 주어 침략을 막습니다.
엘리사의 죽음도 이 시기에 기록됩니다. "엘리사가 죽게 될 병이 들매 이스라엘의 요아스 왕이 그에게로 내려가서 그의 얼굴에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이스라엘의 병거와 그 마병이여"(왕하 13:14). 엘리야가 승천할 때 엘리사가 했던 바로 그 말입니다. 선지자의 계승이 연결됩니다. 엘리사가 죽어 묻힌 후에도 그의 뼈에 닿은 죽은 자가 살아났습니다. 죽어서도 생명의 능력이 흘러나왔습니다.
역대하 26장은 웃시야 왕의 영광과 몰락을 기록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찾는 날 동안 형통했고 군대를 강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강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높아져서 스스로 멸망하였으니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하매"(대하 26:16). 제사장 아사랴가 팔십 명의 제사장과 함께 막아섰으나 왕은 분노했고, 그 순간 이마에 나병이 일어났습니다. 웃시야는 죽는 날까지 나병환자로 별궁에서 살았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사 6:1)에 하나님의 보좌를 본 것은 바로 이 왕의 죽음 직후입니다.
열왕기하 17장은 북왕국의 최종 멸망을 기록합니다. 앗수르 왕 살만에셀이 호세아 왕을 공격하고, 삼 년간 포위 끝에 사마리아가 함락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자기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게 하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께 죄를 지어 다른 신들을 경외하며"(왕하 17:7). 이어지는 구절들은 북왕국 멸망의 원인을 장황하게 설명합니다. 여로보암의 죄, 우상숭배, 선지자들의 경고 무시, 언약 파기 등이 열거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심히 노하사 그의 앞에서 그들을 없이 하시니"(왕하 17:18).
앗수르 왕이 다른 민족들을 사마리아 성읍들에 이주시켜 살게 합니다. 이들은 여호와를 경외할 줄 몰랐기에 사자들이 그들을 죽였습니다. 앗수르 왕이 사로잡아 갔던 제사장 하나를 돌려보내 여호와 섬기는 법을 가르치게 하지만, 그들은 여호와도 섬기고 자기 신들도 섬겼습니다. "그들은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자기들 가운데에서 산당의 제사장들을 삼아 산당에서 자기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게 하였더라"(왕하 17:32). 혼합주의의 시작입니다.
역대하 28장은 남왕국 아하스의 악행을 기록합니다. 그는 바알을 섬기고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자녀를 불 가운데 지나가게 했습니다. 아람과 북이스라엘에 패하고 에돔과 블레셋에게 침략당합니다. 아하스는 앗수르에게 도움을 구하며 성전 보물을 바칩니다. 그러나 앗수르는 도움이 아니라 곤란만 더했습니다. 아하스는 다메섹에서 본 이방 제단을 본떠 예루살렘에 세우고 성전 문을 닫습니다. "아하스가 환난을 당할 때에 여호와께 더욱 범죄하였으니"(대하 28:22). 환난은 회개의 기회였으나 그는 더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멸망은 하나님의 경고를 끝까지 무시한 결과였습니다. 선지자들이 수백 년간 외쳤으나 그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어 '슈브(שׁוּב)'는 '돌이키다, 회개하다'를 뜻하는데, 성경은 이 단어를 수없이 반복하며 돌아올 것을 촉구합니다. 예후처럼 부분적으로만 돌이키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웃시야처럼 강해진 후 교만해지면 무너집니다. 아하스처럼 환난 가운데서도 더 깊이 죄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등불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아직 남아 있었고, 그 계보를 통해 장차 모든 민족을 돌이키실 참 왕 예수 그리스도가 오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돌이킬 기회가 주어져 있습니다.
① 부분적 회개가 아닌 온전한 회개로 여로보암의 죄에서도, 모든 우상에서도 완전히 돌이키게 하소서.
② 형통할 때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환난 중에도 주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공동체가 되게 하소서.
③ 혼합주의와 타협 속에 있는 신앙인들이 오직 여호와만 경외하는 순전한 믿음으로 돌아오게 하소서.
"부분적 회개는 회개가 아니다, 온전히 돌이키라."
존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반쪽 헌신을 받으실 만큼 가난하지 않으시다." 예후는 바알을 멸했으나 금송아지는 남겨두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정리하지 못한 금송아지가 있지 않습니까. 오늘 그것까지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