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의 불순종은 좋은 일인가
근래에 "아담의 선악과 범법의 불순종은 좋은(잘 한일)일이다" 라는
주장이 유포되고 있는 혼돈의 때다.
앞뒤 문맥이 통하도록 창세기를 일목요연하게 풀어내면서 아담의
불순종이 좋은 일이다고 주장한다면 최소한 나름대로 논리가 있다 하겠다.
하지만 무턱대고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죽게된 죽음은 범죄에 의한 죽음이 아니라
생명의 부활을 전제한 자기의 버림이라고 한다. 선악과는 지혜의 나무요
은혜의 나무인데, 하나님이 거짓말로 먹으면 죽는다고 엄포를 놓았기
때문에 아담이 금기의 선악과를 먹은 불순종은 참 좋은 일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하나님은 거짓말로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며
아담의 불순종은 좋은 일인가? 그리고 그 불순종의 결과 아담의 죽음은
생명의 부활을 전제한 좋은 죽음인가? 절대로 아니다. 아담의 죽음은
생명을 얻기 위한 죽음이 아니라 생명을 죽인 죽음이다.
선악과 범법에 의한 그의 죽음은 불순종한 범죄가 되기 때문에
그가 손을 들어 생명과를 따 먹지 못하도록 조치되었으며
그는 일곱머리 열뿔짐승(적그리스도)의 더러운 비진리의 옷을 상징하는
짐승(적그리스도)의 가죽옷이 입혀진 후에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된 것이다.
만일 선악과 범법의 죽음이 생명의 부활을 전제한 자기의 버림이었다면
결론적으로 말해서 그는 에덴동산 안에서 곧장 생명과를 따먹는 은혜를
누리며 짐승의 가죽옷이 아니라 흰옷이나 세마포가 입혀져서 영광의
하나님 앞에 인도되어 영원한 생명으로 진입했을 것이다.
그리고 심문과 형벌이 아니라 온갖 칭찬과 은혜를 받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아담과 하와가 따먹은 선악과나무가
지식의 나무요, 은혜의 나무요, 불순종은 좋은 일인가?
이제 아담과 하와가 어떤 존재인지 살펴보고 그 진위를 밝혀본다.
아담은 예수님(초림)을 예표했으며 그의 아내는 복음백성을 예표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초림 때 주신 복음은 비유이기 때문에 예수님을
예표한 아담 자신과 그의 복음을 받은 백성(아담의 아내)이 모두 벌거벗은
몸으로 에덴동산에 놓이게 된다. 벌거벗었다는 것은 아직 말씀을
명백히 알지 못하는 어둠의 자식임을 뜻한다.
그처럼 그들은 벌거벗은 몸이지만 벗은 몸임을 깨닫지 못하고
천국의 자녀가 다 되어버린 것처럼 믿고 출발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동산 각종나무열매는 임으로 먹되 중앙에 있는 선악과는 먹지 말라"
라는 율법을 주셨다. 동산 각종나무열매는 세상의 여러 가지 학문과
종교의 가르침과 사상들인데 그런 것들을 임으로(뜻대로,선별적으로)
취할 때 비유로 감추어진 신구약 성경이 풀리게 되어 있기 때문에 임으로
먹으라고 하신 것이다.
즉 성경이란 하나님의 말씀이며 하나님은 온 세상을 지으신 크신
분이므로 동산각종나무열매가 되는
세상의 학문과 종교와 사상의 대통합 속에서 풀리게 되어 있고
따라서 무소부재 크신 하나님이 온전하게 드러나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초림 때 주신 비유의 복음만을 고수하며
천국자녀가 다 되었다고 믿는 것이, 즉 자신들은 선이요, 내 이웃의
학문이나 종교나 사상들은 모두 타도대상으로 삼는 행위가
선과 악을 분별하는 선악과인 것이다.
이같이 초림주의 복음을 받은 자신들은 선이요 내 이웃은 악이라는
선악분별심이 선악과인데 그 선악과는 중앙에 있었다.
중앙이란 복음백성이 지참하고 있는 성경자체이며 복음백성의 현주소로서
그 중앙에는 생명나무도 있었다.
하나님은 중앙에 있는 선악분별심의 선악과를 엄금하셨으며 중앙의
생명나무열매도 먹으라고 허락하지 않으셨던 것이다.
그 이유는 복음은 아직 말씀이 감추어진 비유이기 때문이다.
자, 사정이 이러한데 이천년동안 복음을 받아온 복음백성은 어떠했는가?
초림 예수님이 당장 구원인줄 믿고 천국자녀가 다 되었다고 믿었다.
이것이 동산중앙의 선악과(성경) 를 범한 행위이다.
그 선악과는 먼저 백성을 예표한 하와가 따먹고 예수님을 예표한 아담에게
주었는데, 아담이 아무 말없이 받아먹었던 것은 그가 백성들의 죄를
뒤집어쓰는 대속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만일 그들이 순종하여 동산각종나무열매를 임으로 먹었다면 곧장
말씀을 다 깨닫게 되는 생명과가 허락되엇을 것이며 영생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범한 결과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자신들의 벌거벗은 몸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불야불야 예수님이 열매는 없이 잎만 무성하여 찍어버리겠다고
저주하신 무화과 나무잎으로 치부만을 가리고 숨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무얼까?
우선 벌거벗은 몸이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죄악을 뜻한다.
그리고 선악과를 범하면 눈이 밝아지는 이유는 그만큼 선과 악에 대한
분별심에 투철해지고 예민해지며 지각력이 생겨서 보이지 않던 자신들의
벗은 몸이 보이기 마련이다. 이같이 벗은 몸이 보이므로 그게 수치스럽고
두려워서 하나님을 피하여 숨어 있게 된것이다.
만일 순종하여 임으로 먹으라는 동산각종나무열매를 먹었다면 그들이
곧장 하나님을 온전히 깨닫는 세마포 옷을 입게 되어서 생명과를 따먹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범하므로써 벗은 몸을 보게 되고, 벗은 몸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죄인됨을 뜻하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을 떠나
숨어 있어야만 하는 비운을 맞은 것이다.
그러므로 창3장 10절, 11절에서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가라사대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라고 하나님은 호되게 책망하시고 신문하시게 된 것이다.
그들이 벗은 몸을 보자마자 하나님께 회개하고 말씀을 깨닫는 옷을
입혀달라고 간구했는가?
아니다. 간구하기는 커녕 한달음에 달려가서
예수님이 찍어버리겠다고 저주하신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잎으로
치부만(전체가 아니라 치부만) 간신히 가리고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 무화과 잎은 말씀의 내용은 없이 인물이나 역사를 분류해놓은
허장성세의 방대한 기성교단의 주석집이라고 할 수 있다.
기독교계의 주석집으로는 성경을 깨달을 수 없으나 그들은 그것을
의지하여 오늘날까지 버티어 왔으므로 체면치레의 치부만 가리고
숨어 있은 꼴이 된다.
그러므로 날이 서늘해질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심문을 하기 위해
나타나시는데, 날이 서늘해질 때란 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된
마지막 때를 뜻한다. 즉 오늘날에 하나님은 그들의 선악과 범법에 대해
심문하고 형벌을 언도하신다.
그 형벌이란 자칭 메시야인 적그리스도 집단에게 붙이시는
일이다. 오늘의 자칭 메시야들은 자의적으로 성경을 풀어내어
그 말씀으로 무지한 복음백성들을 사로잡는 것이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아담네가 짐승의 가죽옷이 입혀진 후에 추방되고 있는 모습인데,
이는 모두 백성들의 죄를 예수님을 예표한 아담이 뒤집어 쓰기 때문에
아담이 범죄한 것이 된다. 즉 우리(하와)가 하나님 앞에 죄를 짓고
불순종한 것이 곧 아담이 죄를 짓고 불순종한 일이 된다.
성경은 오늘날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미리 기록해 놓은
예언서다. 결코 흘러간 이야기로 끝내면 안된다. 따라서 과거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시대의 예수님과 백성들에 대한 예언서로서
아담은 예수님을 예표했고 하와는 백성들을 예표했다.
그런데 만일 오늘의 많은 교단에서 주장하듯이,
(하와로 말미암아) 아담의 불순종이 좋은 일이라고 가정한다면 그리고
그처럼 불순종한 결과 우리가 지금까지 사망에 처해 있고, 온갖 질병과
재난과 환난 풍파가 인류를 강타했는데, 이 모든 것이 좋다는 말이 된다
이것은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어불성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