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싸워 이긴자 야곱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삼대 가족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일컬어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라고 한다.
이는 한분 하나님의 창조사에서 세번에 걸친 창조가 있을 것을
보여주신 예표다.
창조의 일위는 여호와(아브라함), 이위는 초림주(이삭), 삼위는 재림주(야곱),
이렇게 삼위일체를 보여주신 예표로서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한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과 싸워 이긴자가 마지막 야곱이다.
이는 야곱이 삼위 재림주를 뜻하기 때문이다. 물론 여호와도 이긴자이며
초림주도 이긴자임엔 틀림없다. 하지만 삼위 재림주가 그 중에 결정적으로
마지막 이긴자가 되시기 때문에 그 중에 야곱을 “이긴자” 라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은 빛이요, 마귀는 어두움(흑암)이라고만 알고
있었다. 즉 하나님과 마귀의 근본을 따로 분리해서 알고 있었는데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조직전에 하나님의 신격위에
빛도 있고 흑암도 그 무게를 나란히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근본이 빛인 동시에 어두움도 된다는 사실을 알고 놀랄 수 밖에 없다.
다만 근본이 이와 같이 빛인 동시에 어두움이 되는 하나님이
창조를 진행 시키는 과정에서 날마다 빛으로 어두움을 극복하고 승리해
가시기 때문에, 빛과 어두움은 양극으로 갈라지고 있다. 빛이 어두움을
완전히 이기어 떨쳐버렸을 때 하나님 자신의 창조는 완성된다.
이처럼 놀랍겠지만 창조란 정확히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이기어 나가며
창조를 진행해가는 셈이 된다. 하나님이 처음 시작엔 빛과 어둠의 혼재에서
나중엔, 즉 창조 완성에는 완전한 빛으로만 남겨져 계셔야 하기 때문이다.
하늘은 시작의 알파요, 땅은 완성의 오메가이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하나님 자신의 창조란, 본디 순수 영이신 하나님이 이 땅의 사람으로
오시는 것을 의미하며, 그리하여 예수님은 육체로 오시는 하나님이
되시는 것이다.
하지만 초림 때는 율법(빛과 어둠의 혼재)을 세워야 했으므로 떠나가셨고
재림 때에 구원(어둠이 없는 칠배의 빛)의 천국이 지상에서 완성된다.
하나님은 본디 빛인 동시에 흑암이었다 함은, 그리하여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을 창조한다 함은, 하나님은 영적 세계와 육적 세계와 하늘과
땅과 전체속에 계시는 분으로서, 아직 그 전체가 빛과 흑암의 혼재이기
때문에 그 전체가 빛으로 창조되기까지 일하시고 계시는 분임을 뜻한다.
그 창조의 일은 과거, 현재, 미래까지 이어지므로 예수님은 이천년전에
오셔서
"아버지가 지금까지 일(창조)하시니 나도 일(창조)한다" 라고 했던 것이다.
아버지는 일위이고 예수님은 이위이고 예수님이 다시 오시는
재림 때는 삼위가 되는데, 이렇게 세번 연속으로 창조하심으로서
완성을 하시기 때문에 삼위일체(三位一體) 하나님의 창조라고 한다.
따라서 삼위 재림예수님이 창조 완성된 하나님이 되신다.
오늘날 재림 예수님이야말로 하나님 자신의 창조완성이 되시므로
이 땅의 보좌에 앉아 만국을 다스리는 전능한 왕이 되시며 그와 함께한
144,000 또한
왕과 제사장 노릇을 하게 되는 영원한 지상천국을 개막시키게 된다.
그러므로 삼위재림주를 예표한 야곱이 이긴 자가 된다.
이제 하나님의 삼위일체의 예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한다.
<일위 아브라함에 대해서>
아브라함의 본래의 이름은 아브람이다.
아브람은 그의 고향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나오라는 명을 받았다. 갈대아우르에서 그의 아버지 데라의 직업은
우상을 만드는 일이었으므로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나오라함은 이제부터 그를 하나님의 빛의 자녀로 삼아
그 노정을 보여주시겠다 함이다.
아버지나 고향은 근본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근본을 의미하는
아버지와 고향이 우상이었다. 우상은 혼돈과 흑암을 뜻한다.
우상제작의 갈대아우르! 우리인간의 근본이 모두 갈대아우르이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
하시니라" 라고 하신
창세기의 첫 머리가 곧 우상을 제작한 갈대아 우르이며 아브람의 근본이며
하나님의 근본이며 우리의 근본이 된다고 하겠다.
여호와 하나님은 땅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깊음위에 있다고 한
그 곳에서부터 우리를 창조하신 빛이다. 그리고 그 창조의 빛은
한번만에가 아니고 6일 6야를 거쳐서 완성시키시는 역사의 빛이다.
이 역사의 빛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을 성립한다.
여호와 하나님, 초림 예수님, 재림 예수님,
이렇게 삼위가 협력해서 6일 6야의 역사의 빛을 창조 완성하신다.
일위와 이위는 창조의 시작과 과정이고 삼위에서 완성이 된다(알파와 오메가).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우상제작의 갈대아우르를 떠나 하나님이 지시하신
땅으로 나오라함은 이제부터 이와 같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실 창조의
일을 예표로 보여주시게 될 때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신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시기 때문에 그는
"열국의 아비" 라는 새 이름을 받은 후,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게 된다.
즉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는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 아브라함은 일위 하나님을 예표한다.
아브라함은 열국의 아비인 일위 여호와를 예표했다. 일위 여호와를
예표했기 때문에 아브라함의 자손이 셀 수없이 많으리라 하신 것이다.
<이위 이삭에 대해서>
아브라함은 사라의 몸종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다.
그리고 이스마엘을 낳은지 십여년 후, 아주 말년에 자유인 본처 사라를 통해
이삭을 낳았다.
아브라함 당대에서의 이스마엘과 이삭, 이 두 아들은
아브라함이 일위 여호와라면, 그 앞에 초림주와 재림주를 상징하고 있다.
형 이스마엘은 초림주요, 동생 이삭은 재림주다.
즉 이 때의 이삭은 이위가 아니고 삼위를 예표했다.
이위는 창조의 마침표가 아니고 창조의 과정일 뿐이다.
삼위에서만이 마침내 창조는 완성되고 자유한 생명의 자녀를 얻어낸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마엘과 이삭 사이에 불화가 생겼을 때
이스마엘은 정녕 아브라함의 자유한 씨가 될 수 없고 본처 사라를 통한
이삭만이 아브라함의 진정한 자유한 씨가 된다고 하시면서
사라의 말대로 종의 자식 이스마엘을 집에서 내어보내라고 하셨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 당대의 가문에서는
이삭은 자유한 자의 자식이요, 이스마엘은 종의 자식인데,
이스마엘은 이위를 예표하고 이삭은 창조역사의 오메가 포인트를 찍는
삼위를 예표하고 있다.
하지만 이삭은 창조역사의 거대한 줄기에서는 이삭의 다음 세대인 야곱에게
그 빛나는 삼위를 넘겨주어야 하기 때문에 이위를 예표하고 있다.
창조란 일위, 이위, 삼위, 이렇게 시공간의 차례를 따라
진화론적 진행형이므로 반드시 형보다 아우가, 아버지보다 아들이
완성도가 높게 나타난다.
<삼위 야곱에 대해서>
하나님의 우주창조의 시작에서 마침까지 전체 시공간의 창조역사를
삼대의 삼위일체로 표현할 때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이렇게 인간가족 삼대로 예표한다.
하지만 이것을 웃대 "이스마엘과 이삭" 때처럼 좁혀서
가족 당대에서 세밀히 보고자 할 때는 다시 야곱은 형 에서와
상대적으로 존재하게 된다. 즉 아버지 이삭이 일위 여호와라면
그의 두 아들 에서와 야곱은 초림주와 재림주를 예표했다.
형 에서는 이위요, 동생 야곱은 삼위로 예표되었다.
따라서 에서는 그의 장자권을 야곱의 붉은 죽 한그릇에
팔아넘기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그리고 야곱은 장자의 상속권을 쥐고 그의 외삼촌 라반에게 도망가서
21년의 노역 끝에 많은 소유를 거느리고 얍복강 나룻터를 건널 때
하나님과 싸워 이긴 자가 되었다.
밤새도록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목숨 바쳐 싸워 이기고야 말았으니
장자의 상속권과 이긴 자의 매치가 환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과 싸워 이긴 자!
야곱 외에 누가 감히 하나님과 싸워 이긴 자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결정적으로 삼위 하나님으로 예표된 야곱만이 하나님과 싸워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삼위로 예표된 야곱이 하나님과 싸워 이긴 자가 되었다는 것은
일위와 이위 하나님을 극복하고 피흘려 삼위로 유월하신 어린양을 의미한다.
즉 초림 예수님은 일위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오신 이위인데,
그 예수님이 일위는 물론 이위인 초림에서도 머무르지 않으시고 창조를 계속하여
삼위로 재림하신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야곱은 에서를 따돌리고 장자권을 따내기 위해
집안식구들의 먹거리로서 붉은 죽을 끓이는 자로 표현되었다.
집안 식구들이란 삼위 때에 마침내 구원받을 성전 안의 자녀들이다.
그리고 성전 안 구원의 자녀들이 먹는 붉은 죽은 봉한 성경을
낱낱이 해독한 새 말씀이 된다.
삼위의 새 말씀을 얻기 위해서는 봉한 성경을 문자대로 믿었던 과거의 말씀에서
떠나야 한다. 과거의 봉한 성경은 일위의 구약성경과 이위의 신약성경 이다.
지금까지 걸어온 생명의 길, 그 신구약 성경의 문자신앙을 모두 버린다는 것은
과거의 하나님을 버린다는 뜻이며 자기의 영적 목숨을 내어던지는 의미이다.
자기의 영적 생명을 버렸을 때, 즉 영적 피를 흘려 이겼을 때
(밤새도록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하나님과 싸워서 이겼을 때)
거기서부터 삼위 재림주의 새 말씀은 부활하는 것이다.
새 말씀이 집안식구를 먹이는 붉은 죽이다. 붉은 죽으로 장자의
상속권을 얻었다는 것과 하나님과 싸워 이긴 자가 되었다는 말은 동일한
승리의 역사를 의미한다. 그는 집을 떠날 때는 장자의 상속권을 얻는
삼위로 예정된 자임을 뜻했고, 돌아올 때는 하나님과 싸워 이긴 자가 됨으로써
그것이 결정적이고 명실공히 실행됨을 보여주었다.
장자의 상속권을 쟁취해 내고 하나님을 이긴 자가 된다는 것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다. 스스로 지금까지 의지하여 걸어온 생명길인 문자신앙의
하나님을 버리는 일이다. 그야말로 피 한방울 물 한방울 남김없이 자기와 세상과
하나님을 깡그리 버리는 일인데, 그는 왜 그 일을 자초했는가?
살이 녹고 뼈가 부서지는 그 속을 아무도 모를 것이다..
봉한 성경의 문자신앙의 하나님과 싸워 이긴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 만큼 그렇게 범인들이 볼 때는 철도 없이 무모했다.
그러나 그는 위대했다.
그러므로 삼위 야곱은 이긴 자가 된 후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의 이름을
얻었다. 이긴 자 야곱은 12지파 144,000을 첫 열매로 거두게 되는
민족의 이름을 얻었기 때문에 천국의 주인 재림주가 되신 것이다.
144,000과 함께 그리스도는 천년통치를 하신 후에 다시 모든 인류를
둘째 열매로 거두시는 우주의 주인이 되심으로써 현실적으로
그 씨가 셀 수 없이 많게 되는 것이다.
셀수 없이 많으리라고 하신 그 씨는 일위 아브라함에서부터 시작해서
마지막 삼위이신 야곱(재림주)에서 그 실상의 결실을 보게 된다.
이렇게 하나님은 삼대에 걸쳐 창조를 완성하시게 되는데
그 시발이 일위 아브라함이므로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위 이삭을 거쳐 삼위 야곱에서 완성되므로 야곱을
하나님과 싸워 "이긴 자" 라고 했다.
옛적 성경기록 당시의 이긴 자를 표현할 때는 환도뼈가 부러지도록
하나님과 싸워 이겼다고 했다.
그러나 오늘날 이긴 자 야곱의 사명자 곧 오늘의 재림주에게 해당되는
이긴 자 표현으로는 어떻게 기록되었을까?
[이사야 53:11
가라사대 그가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라] 라고 표현되었다.
그러므로 오늘의 야곱이 되는 삼위 재림주는 누구로부터 배워서 봉한 성경을
풀어낸 게 아니다. 자기 영혼의 피를 흘려낸 자기 지식으로 인내의 열매를
맺은 것이며, 자기 지식의 열매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하나님을 몰랐던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여 영생으로 이끌어 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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