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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소서

그가 힘을 크리스트 안에서 활동하심 (에베소서 1장 19~22절)

작성자백대영|작성시간26.06.06|조회수89 목록 댓글 0

첫째로 성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그 부름의 소망입니다(엡 1:18).

둘째로 성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그 상속의 영광이 풍부함입니다.

셋째로 성도들이 알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엡 1:19).1)

 

3) 그 능력의 뛰어난 위대함이 무엇인지 알아보게 간구합니다.

에베소서 1장 19절에 “무엇이 그의 힘의 그 세력의 활동을 따라 믿는 우리 안으로 그의 능력의 뛰어난 위대함인지를 알기 위해서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개역 개정에 ‘지극히’라고 번역된 히브리어(휘페르발로)는 “능가하는”, “뛰어난”(surpassing), ‘대단한’(exceeding)을 의미합니다.

“뛰어나다”라는 “excel”은 “밖으로”라는 “ex”와 “올린다”라는 “cel”이 연결된 것으로 “뛰어나다”, “빼어나다”를 의미합니다.

위대함”은 헬라어로 “메게도스”입니다. “위대한”을 뜻하는 “메가스”에서 나온 명사입니다.

출애굽기 15장 16절에 “주의 팔이 위대하므로”라고 하였습니다.

“위대함”, “큼”이라는 의미의 헬라어 “메게도스”로부터 “매우 큰”을 의미하는 영어의 “mega”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영어에서는, 이 말이 앞에 붙어서 크다는 것을 뜻합니다.

“메가폰”(megaphone)은 작은 소리를 크게 하는 “확성기”를 뜻합니다. “메가톤”(megaton)은 톤(ton)보다 엄청나게 많은 100만 톤을 뜻합니다.

“메가바이트”(megabyte)는 컴퓨터에서 100만 바이트(byte)를 뜻하며 1바이트(byte)가 8비트(bit)니까 1메가바이트는 800만 비트(bit)입니다.

이처럼 “mega”라는 말 속에는 “매우 큰”이라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power)은 메가톤급 다이너마이트보다 크십니다.

국내의 커피 시장을 양분하는 스타벅스와 메가 커피(Mega Coffee)는 ‘경험’과 ‘실용성’이라는 반대 전략으로 시장을 선도하고 있습니다.2)

지난달 2026년 5월 스타벅스의 ‘5·18 이벤트’ 논란이 불거졌습니다.3) 메가 커피가 스타벅스를 제치고 1위를 질주하였습니다.4) 스타벅스는 카카오톡 선물 카페 카테고리 1위를 재탈환하였습니다.5) 용진이 형을 응원합니다.

셋째 간구는 ‘하나님의 능력의 뛰어난 위대함’을 깨닫는 것입니다.6)

하나님의 능력은 사람들의 표현력과 이해력을 능가하여 위대합니다!7) 하나님의 능력은 참으로 크고 위대합니다.

파울은 하나님의 능력의 능가하는 위대함을 알기를 위해 간구합니다. “능가하다”라는 말은 훨씬 뛰어나고 훨씬 넘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이해력의 범위를 훨씬 넘고 뛰어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의 “뛰어난 위대함”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은 우리의 표현력을 넘기에 표현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활동(working)”은 헬라어로 “에네르게이아”입니다. “활동”, “활동력”, “능력”, “효능”을 뜻합니다.

“활동적인”이라는 뜻의 “에네르게스”에서 나왔습니다. “활동”, “작용”, “힘”, “에너지”(energy), “능력”, “효능”이라는 뜻입니다.

‘에너지’(energy)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는데, 에너지는 ‘활동’입니다. 에너지는 살아 움직입니다. 에너지는 운동하는 힘이며 일하는 힘입니다. 에너지는 ‘작용’인데 에너지는 무엇을 짓기도 하고 쓰기도 합니다. 에너지는 운동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에너지가 있어야 일하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힘의 세력의 에너지 결과로써 믿게 되었습니다.

“활동력”이라는 것은 자유롭게 실제 일하고 있는 힘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운동하는 힘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그 자체로 일하고 있는 힘과 모든 것을 침투하는 힘입니다.8)

세력”(크라토스)은 “이기는 힘”, “정복하는 힘”입니다. 그 앞에 설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9)

(strength)”(이스퀴스)은 하나님의 힘을 의미합니다.10)

파울은 “능력”, “활력”, “세력”, “힘”이라는 비슷한 뜻의 용어들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이 무한히 크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11)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하는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을 인식합니까?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일하는 그 힘의 그 세력의 활동을 인식합니까?12) 그의 능력의 위대함은 “믿는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13)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광에 우리의 능력으로 도달하기란 불가능하나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는 거기에 도달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능가하는 위대함을 알아야 현재의 삶에서 용기를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14)

하나님께서 자신의 힘을 활동하신 결과로 우리가 믿게 되었습니다.15) 믿는 우리가 믿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그의 힘을 활동하셨습니다.16)

고린도전서 2장 14절에 “혼적인 사람은 성령의 것들을 받지 아니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 미련한 것이고 그가 알 수 있지 아니함이니 그것들이 영적으로야 분별 받기 때문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힘을 활동하신 바에서 믿음의 설명이 가능합니다.17) 그렇지 않을 때 그 누구도 우리의 주 예수 크리스트를 믿을 수 없습니다.

복음이 덮인다면 멸망시킴을 받는 자들 가운데에 덮입니다(고후 4:3). 그들 안에 이 시대의 신(神)이 불신자들의 사상을 눈멀도록 만든 것이니 크리스트의 영광의 복음의 빛이 빛나지 않기 위하여서입니다(고후 4:4). 그래서 그 복음은 가려지게 되고 그들은 그 복음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베일이 그들의 마음에 놓여 있습니다(고후 3:15).

사람들의 마음은 “의도적으로 사악하기” 때문에 악을 좋아합니다.18) 그 빛이 그 세상 안으로 왔고 사람들이 그 암흑을 더욱더 사랑한 것이 그 유죄판결(condemnation)인 것입니다(요 3:19).

성경에 의하면 사람의 마음은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을 미워합니다.19) 육체의 사고방식은 사망이나, 성령의 사고방식은 생명과 평화입니다. 그 이유는 육체의 사고방식은 하나님 안으로 적의인 때문이니,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함이니 할 수 있지 아니함입니다(롬 8:7).

사람들은 진화론 같은 단순한 이론을 게걸스럽게 잘 받아들입니다.20)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그의 능력만을 전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21) 하나님의 능력이 없으면, 우리 중 한 사람도 복음을 믿지 못합니다.22)

믿는 사람들은 예수 크리스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기 때문에 내가 육체 안에 사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 안에 삽니다(갈 2:20).

우리는 크리스트 안에 활동하신 하나님의 힘으로 보호함을 받고 있고, 그 하나님의 힘의 보호가 아니면 우리는 절대로 서 있을 수 없습니다.23)

우리는 이 세상과 싸워야 할 뿐 아니라 육체에 대해 싸워야 합니다.24)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을 철회하시면 세상은 금방 붕괴하고 맙니다.25)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완성된 작품으로 만들어 가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은 아직 미완성인 까닭에 여러모로 볼품이 없고 부족하여도, 우리는 우리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능력으로써 완성품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 안에 일하고 계심을 인식하여야만 합니다.

 

 

3. 그 힘을 하나님께서 그 크리스트 안에 활동하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20~23절에 “하나님께서 크리스트 안에 활동하신 바니, 그를 죽은 자들에서 일으키셨고 하늘에 그의 오른쪽에 앉히신 분이시라. 모든 지배(rule)와 권위와 능력과 지배권과 모든 이름 위쪽이고. 발아래 모두를 복종시키셨고 그를 모두의 위에 머리로 교회에 주셨으니. 그 몸이라 모든 것들 안에 모든 것들을 채우는 자의 채우는 것이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 안에 활동하시고 우리를 다듬고 계십니다.26)

그것을(Which) 그가 그 크리스트 안에 일하셨으니(work), 그가 그를 죽은 자들에서 일으키셨으며 그의 오른쪽에 앉히신 때입니다. 그 하늘의 장소들(places) 안에 그러하셨습니다(엡 1:20).

여기 “활동하다”라고 번역한 말은 헬라어로 ‘에네르게오’며, 앞 절의 “에네르게이아”라는 명사와 같은 말에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힘의 그 세력의 활력을 크리스트 안에 활동하셨습니다.

크리스트 안에 활동하신 그는 크리스트를 죽은 자들에서 일으키시고 “그 하늘의 것들 안에” 그의 오른편에 앉게 하신 분이십니다.

만일 그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의 주택이 폐지함을 받는다면 우리가 하나님에서 건물을 가지는(have) 것을 우리는 알아보는데 손으로 만들지 아니한 하늘 안에 영원한 주택입니다(고후 5:1).

하나님께서 크리스트 안에 활동하신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가 그를 죽은 자들에서 일으키셨으며 그의 오른쪽에 앉히신 때입니다. 그 하늘의 장소들 안에서인 것입니다(엡 1:20).

예수 크리스트의 부활은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에 의한 것입니다.27) 그의 능력은 크심은 크리스트를 높이심을 통하여 나타난 것입니다.28) 시편 110편 1절에 “나의 오른쪽에 앉아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에 모든 권위를 크리스트께 주셨습니다(마 28:18).29) 크리스트께서는 부활하시어 이제 “하늘의 영역에” 높아지셨습니다.30)

“그 하늘의 장소들 안에서”라고 하였습니다. 크리스트께서는 하늘의 영역으로 오르셨습니다.31)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효력 있는 힘을 메시아 안에 발휘하셨습니다.32) 모든 원수가 그의 발아래 있게 됩니다(고전 15:25).33)

에베소서 1장 21절에 “모든 지배(rule)와 권위와 능력과 지배권 위에, 이 시대뿐만 아니나 곧 려는 것 안에 일컬어지는 모든 이름 위에”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승리의 범위는 우주적 세력들을 패배시키신 것으로 분명해집니다. 에녹 2서에 일곱째 하늘에 열 계급의 천사들이 있다고 나옵니다. 이런 존재들에게 일어난 일이 민족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이교의 신(神)들은 타락한 천사들이며 악마적 세력들입니다.34)

하나님께서는 모든 지배와 권위와 능력과 지배권과 모든 이름의 위에, 그의 오른편에 크리스트를 앉히셨습니다(엡 1:21).

하나님의 오른편은 최고의 권위를 의미하는 말입니다.35)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할 자들에 미련함이나 구원되고 있는 우리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임이니”라고 하였습니다. 부름을 받은 그들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능력이 되십니다(고전 1:24).

로마서 15장 13절에 “그러나 소망의 하나님께서 성령(Holy Spirit)의 능력으로 너희를 채우셨기를 내가 희구하노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악마의 굳은 진지를 훼파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십자가 말씀입니다.36) 뱀과 여자 사이와 뱀의 씨와 여자의 씨 사이에 증오가 두어졌고 여자의 씨는 뱀을 머리를, 뱀은 그를 뒤꿈치를 상하게 합니다(창 3:15). “여자의 씨”이신 크리스트께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크리스트께서는 현재 모두 위에 뛰어나시고 높은 장소에 계십니다. 여기서 ‘지배와 권위와 능력과 지배권’은 악한 천사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에베소의 아르테미스(Artemis) 여신 배후에 활동합니다.37)

이들은 또한 로마의 황제숭배 사상과 연관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르테미스 여신 숭배는 황제숭배 사상과 관련되었을 것입니다.38)

에베소의 동전에 네로와 그 모친 아그리피나의 얼굴이 있습니다. 파울이 에베소서를 쓴 시기는 62년경입니다. 네로는 54년경에 17세의 나이로 황제에 등극하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가 마크 안토니와 클레오파트라의 연합군을 무찌른 후에 ‘로마의 평화(Pax)’는 승리와 평화의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네로 시대에 네로 황제를 찬양하던 시인 루칸(A. D. 39-65)은 선임 황제인 아우구스투스가 전쟁을 통해 로마에 평화를 제공하였지만, 네로는 시민의 전쟁 없이 로마에 평화를 주었다고 찬양했습니다.39)

로마를 선전하는 자들은 네로가 평화의 복음의 시대를 주었기 때문에 세상의 어떤 황제가 주는 것보다 찬란하다고 선전하였습니다. 그런데 십자가 사건으로 이룩된 우주적 평화의 새로운 시대의 도래는 네로가 주었다는 새로운 황금시대를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의 평화는 네로가 가져온 평화의 시대에 도전하는 것입니다.40)

따라서 예수의 평화를 선포하는 크리스트교가 박해를 당한 것입니다. 크리스트교가 로마의 황제숭배 사상에 도전으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예수 크리스트께서는 모든 지배와 권위와 능력 위에 뛰어나십니다.41)

사탄의 ‘지배’와 ‘권위’는 높은 지위를 차지하는 세력입니다. 세상의 72개의 민족을 다스리는 수호신의 개념입니다(창 10장). 그들은 민족들 뒤에서 활동하는 어둠의 세력입니다(신 32:8~9). 유대인의 믿음은 신약성경에 사탄의 ‘지배’와 ‘권위’로 나옵니다. 이방의 신들은 악령들이며 우상들이라는 구약의 배경을 가집니다.42) 십자가 부활 사건으로 사탄의 지배와 권위는 패배하였습니다.43)

에베소서 1장 22~23절에 “그가 모든 것들을 그 발아래 복종시키셨고, 그를 모든 것들의 위에 머리를 되도록(to be) 그 교회에 주셨으니. 그 몸이라 모든 것들 안에 모든 것들을 채우는 자의 채우는 것이라”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크리스트를 모든 이름 위에 앉히셨습니다(엡 1:20~21). 그리고 그가 모든 것들을 그의 발의 아래에 복종시키셨습니다(엡 1:22).

창세기 1장 26절에 “인류를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닮음처럼 만들고 그 바다의 물고기와 그 하늘의 새와 짐승과 그 땅의 모든 것과 기는 것 가운데 그들이 다스리게 하자”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열매 맺고 많아지고 땅을 채우고 정복하고, 그 바다의 물고기와 그 하늘의 새와 그 땅에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손의 제작품들 안에 인간을 통치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두를 인간 발아래 놓아두신 것은 완료되었습니다(시 8:6).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만물을 크리스트의 발아래에 복종시키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만물 위에(over) 머리로 그 교회에 주셨습니다.

에베소서 1장 22절의 ‘그를’은 20절에 나온 ‘크리스트’를 가리킵니다. ‘그가’라는 주어는 17절에 나온 ‘예수 크리스트의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그가 크리스트를 모든 것들의 위에 머리를 되도록 교회에 주셨습니다. 그가 모든 것들을 그 발아래 복종시키신 크리스트를 교회에 주셨습니다.

그 능력은 모든 것을 크리스트의 발아래 복종시키심에 발견됩니다. 그 능력은 크리스트를 만물 위에 머리로 세우셨음에서 발견됩니다. 크리스트께서 모든 것 위에 머리가 되셨는데 교회를 위해서입니다.44)

크리스트께서는 교회를 위해서 모든 것에 머리로 주어지셨습니다.45) 크리스트께서 만물 위에 머리가 되신 것은 교회의 혜택을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크리스트를 만물 위에 머리로 그 교회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크리스트를 그 교회에 혹은 그 교회를 위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만물 위에 머리가 되신 통치권자를 그 교회에 주셨습니다.

만물 위에 머리를 교회에 주셨다는 말씀은 교회의 위상을 보여줍니다. 가장 높은 머리가 되신 예수 크리스트께서 교회에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1) 김상훈, 『개혁주의 해석 에베소서』 (서울: 총신대학교 출판부, 2013), 101.

2) https://www.google.com/search?q=%EB%A9%94%EA%B0%80%EC%BB%A4%ED%94%BC+%EC%8A%A4%ED%83%80%EB%B2%85%EC%8A%A4

3) https://www.google.com/search?q=%EC%A2%8C%ED%8C%8C+%EC%8A%A4%ED%83%80%EB%B2%85%EC%8A%A4

4) https://www.pinpoin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57665

5) https://www.smarttoday.co.kr/ko-kr/articles/108091

6) 김상훈, 『개혁주의 해석 에베소서』, 102.

7) D. M.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서문강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1984), 526.

8)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26.

9)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26.

10)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26.

11) 길성남, 『에베소서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울: 성서유니온, 2005), 117.

12)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32.

13) 이승현, 『에베소서』, 한국신약해설주석 9A (서울: 감은사, 2023), 91.

14)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34.

15)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36.

16)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38.

17)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39.

18)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43.

19)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44.

20)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45.

21)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47.

22)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50.

23)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52.

24)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55.

25)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59.

26)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61.

27) 한천설, “하나님과 그분의 부르심 알기를 바라는 기도”, 『에베소서 골로새서 어떻게 설교할 것인가』 (서울: 두란노아카데미, 2009), 132.

28) 이승현, 『에베소서』, 93.

29)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84.

30) Klyne Snodgrass, 『에베소서』, NIV 적용주석, 채천석 옮김 (서울: 솔로몬, 2014), 95.

31) Andrew T.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42, 배용덕 옮김 (서울: 솔로몬, 2006), 236.

32) Frank Thielman, 『BECNT 에베소서』, BECNT 성경주석, 최갑종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20), 168.

33) Kenneth E. Bailey, 『지중해의 눈으로 본 바울』, 김귀탁 옮김 (서울: 새물결플러스, 2017), 666.

34) Lincoln, 『에베소서』, WBC 성경주석, 237.

35) 한병수, 『교회란 무엇인가』 (서울: 복 있는 사람, 2018), 65.

36) 한병수, 『교회란 무엇인가』, 67.

37) 홍성철, “에베소서 1:17-23에서의 정사와 권세와 로마 황제숭배사상”, 『신약논단』 제15권 제1호 (2008): 142.

38) 홍성철, “에베소서 1:17-23에서의 정사와 권세와 로마 황제숭배”, 143.

39) 홍성철, “에베소서 1:17-23에서의 정사와 권세와 로마 황제숭배”, 144.

40) 홍성철, “에베소서 1:17-23에서의 정사와 권세와 로마 황제숭배”, 145.

41) Lloyd-Jones, 『에베소서 강해 ❶ 영적 선택』, 581.

42) 홍성철, “에베소서 1:17-23에서의 정사와 권세와 로마 황제숭배”, 157.

43) 홍성철, “에베소서 1:17-23에서의 정사와 권세와 로마 황제숭배”, 158.

44) 이승현, 『에베소서』, 94-96.

45) Snodgrass, 『에베소서』, NIV 적용주석, 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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