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5: 5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미 5: 5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 이 사람은 우리의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
메시아께서는 회복된 이스라엘로 원수를 이기게 하실 것이다.
‘이 사람’은 메시아로 우리의 평안이 되신다.
그는 우리 마음의 불안과 두려움, 슬픔, 우울을 제하시고 평안을 주시며, 몸의 건강과 물질적 안정과 사회적 안정을 주실 것이다.
회복된 이스라엘 곧 신약교회에도 핍박자들이 있지만, 그 교회는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칠 것이다.
신약교회에는 유능한 지도자들, 영적 전사들이 충분히 있을 것이다.
신약교회는 원수들을 충분히 물리칠 것이다.
신약교회 지도자들은 앗수르 땅을 복음의 칼로 정복하며 니므롯 땅의 어귀를 복음화시킬 것이다.
신약교회의 일꾼들로 인하여 온 세계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복음화될 것이다.
메시아께서는 교회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건져주신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평안, 우리의 힘과 승리, 우리의 구원이시다.
1]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이'(*, 제)는 앞 절에서 언급된 메시야를 가리킨다.
메시야는 남은 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이다.
이것은 신약 성경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다.
* 고후 5: 19 -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 엡 2: 14 -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2]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앗수르 사람은 미가가 말한 것과 동일하게 이사야도 앗수르가 패망할 때 다윗의 집안에서 새로운 왕이 등장할 것으로 예언하였다.
* 사 10: 34 – 11: 1 - 34 쇠로 그 빽빽한 숲을 베시리니 레바논이 권능 있는 자에게 베임을 당하리라. 11: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러나 본 절의 '앗수르'를 역사상 존재했고 이스라엘을 위협했던 강대국 앗수르로 해석하는 것은 어려움이 따른다.
왜냐하면 본 절 후반부에 기록된 것처럼 실제로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대항해서 효과적으로 그들을 물리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앗수르는 이스라엘을 대적하며 위협하는 모든 이방 국가로 이해되어야 한다(McComiskey, Delitzsch).
그들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이스라엘을 억압하고 공격하는 모든 국가이다.
3]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은 구체적으로 어떤 왕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이것은 히브리 문학적 기법으로 여러 명의 지도자가 일어나서 앗수르를 물리칠 것을 의미한다(Smith, McComiskey).
4] 영원한 통치자 ( 5: 2-5 )
대림절 기간이 다해 가고 크리스마스가 내일로 다가왔습니다. 성탄이 오면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이 탄생하신 베들레헴이 관심이 갑니다.
베들레헴은 지금 파레스타인의 땅이 되어 예루살렘에 비해보면 보잘 곳 없는 지역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서남쪽 12키로 정도 떨어진 작은 도시인데 거기에 예수님의 탄생교회가 세워지고 많은 사람이 몰려들지만 주님이 나실 때는 마구간이었습니다.
성지를 찾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인도하였다는 별 모형을 만져보고 감격해 합니다. 또 지하실에 마구간의 모형을 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오심은 영원한 통치자가 이 땅에 오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영원한 통치자가 되셨는가를 상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1) 근본은 태초니라(2)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이지만 유명한 성지가 된 것은 거기서 세상을 다스리는 자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에 에브라다야 하는 말은 베들레헴에 정착한 에브랏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약하고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작은 곳이라는 베들레헴은 보잘것없는 도시라는 말입니다.
찬송가 120장 오 베들레헴 작은골 너 잠들었느냐
피립스 브룩스 목사가 1865년 베들레헴을 방문하고 3년 뒤에 작사한 찬송가입니다. 그가 돌아본 베들레헴도 역시 작고 초라함 동네입니다. 이렇게 보잘것없는 곳에 창조 이전부터 계신 예수님이 탄생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원은 태초라는 것입니다. 약한 곳 별로 보잘것없는 동네가 예수님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관심을 갖는 유명한 땅이 된 것입니다. 그 땅에 누가 태어났느냐에 따라서 땅의 위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대통령 고향마다 기념관을 짖고 있습니다. 생가도 보존하고 도서관도 짖습니다. 통치자가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보면 작고 별로 주목받지 못한 나라가 예수님을 모심으로 결코 작은 나라가 아니라 세계에 복음을 수출하는 복음 강국이 된 것과 같습니다.
러시아는 우리나라 국토의 100배 기독교 역사는 1011년이지만 한 사람도 선교사를 파송하지 못하고 우리나라 선교사 400명이 러시아에 활동하고 우리 국토의 40배 인구 20배인 중국도 선교사가 한 사람도 없으나 중국에 500명을 파송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작은 나라 코리아! 너희나라는 큰 나라도 아니고 힘이 있는 나라가 아니지만 너희 나라를 통하여 세계를 다스릴 것이다. 땅이 크냐 작으냐가 문제가 아니라 그 땅의 주인공이 누구냐 따라서 달라지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에 오신 예수님은 요 1: 2-3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근본이 태초라는 말은 영원까지 계실 분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계 22: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그가 영원한 통치자가 된 것은 근본이 땅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역사적으로 보면 기원전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세상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어느 나라나 경계와 영토가 있지만 주님이 다스리는 나라는 온 세상입니다. 부정과 부패가 없는 완벽한 다스림이 있는 통치자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2) 그가 땅끝까지 미치리라(3-4)
그러므로 임산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 형제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예언된 통치자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지금은 고통과 진통의 기간이지만 땅끝까지 다스릴 왕이 태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쁜 아이를 낳기까지 10개월간 고생과 진통을 통하여 아이를 낳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을 때 헤롯을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진통이 없는 축복은 없습니다. 예수님이 오심이 진통이었고 오셔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진통하심으로 우리를 낳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고 믿는 일은 마치 산모가 진통하는 것과 같습니다. 잘 참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진통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진통 중에 생명이 잉태하는 것입니다. 내가 복음으로 너희를 낳았다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향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교회를 낳은 것이고 성도를 낳은 것입니다. 성탄을 마지하는 성도 여러분 잘 참으셔서 아름다운 신앙의 열매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집을 내면서 서두르면 이스마엘 참으면 이삭이라는 제목을 썻습니다. 참지 못하여 하갈을 통해 육신의 자녀를 낳지 말고 기다리고 참아야 이삭을 출생하여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개인의 다시 태어남을 경험하는 진통이 있어야 나를 다스리시는 주님을 마지하는 것입니다. 아이를 낳을 때 힘주세요 다 됐습니다. 힘내세요 의사가 외칩니다.
그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모든 능력을 공급받으시고 그 힘을 가지고 약한 자를 붙들어주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주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힘내라고 하십니다. 그는 목자가 되셔서 이리나 사자에게 잡혀가는 양 떼를 보호하심과 같이 그를 따르는 성도들을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선한 목자는 양을 우리 안으로 인도하시는 그 능력이 땅끝까지 미치리라는 것입니다. 그가 다스리시는 영역은 이스라엘이라는 작은 땅이 아니라 세상 땅끝까지 라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세상 전부를 지배한 왕이나 통치자는 없었습니다. 한정된 지역이나 땅이지 세상 전부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주님이 못 가시는 곳은 없습니다. 공산주의 나라고 무슬림이 다스리는 나라라고 할지라도 어디든지 통치하십니다. 이 땅에는 영원한 통치자는 없었습니다. 주님은 온 세상을 통치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3) 우리의 평강이 되리라(5)
이 땅의 문제는 평강이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오심은 우리에게는 평강이 될 것입니다. 평강은 샬롬입니다. 인간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으며 그로 인하여 세상은 싸움과 분쟁이 끝이 없습니다. 이것을 해결하려고 주님이 오신 것입니다.
엡 2: 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그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막힌 담을 허셨습니다. 그리고 요 14: 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평화와 안전 그리고 친구가 된다는 말입니다.
수많은 싸움이 그치고 평화와 안전을 가져다 주며 사 2: 4절과 같이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나라는 다스리는 왕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도 사람 마음 마음속에 평강을 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 글을 쓸 당시에는 앗수르의 위협이 아주 심각한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제나 주변 나라들의 위협 속에 살았습니다. 침략을 참으로 많이 받았습니다. 예수님이 진정한 평화를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적당한 때에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때로는 초강대국 같은 미국을 일으켜 악한 자들을 대신하여 징벌하기도 하신다는 말입니다.
결국은 주안에서만 하나님과 인간의 평화가 있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평화가 있습니다. 평화로다 하늘 위에서 내려오니 469장입니다. 이 땅에 누구도 평화를 줄 수 있는 통치자는 없습니다. 예수님이 가는 것마다 평화가 임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통지차입니다. 그렇게 싸우던 가정이 예수님이 들어가면 평화가 넘치고 국가와 국가가 평화가 넘치는 것입니다.
김정은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6자 회담이 필요 없습니다. 이락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나라가 되면 테러가 끝이 날 것입니다. 베들렘이라는 이름은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온 세상에 생명의 떡이 되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마지하여 풍성한 만족을 누리고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