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자신을 정탐하라(민14장4-10)
성경본문: 민수기14:4-10
4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지휘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하매
5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 앞에서 엎드린지라
6 그 땅을 정탐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자기들의 옷을 찢고
7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정탐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8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9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10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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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이 성년의 날이기 때문에 오늘<성년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우리교회에서 성년을 맞이하는 젊은이들이 130여명이 됩니다. 청년 때는 인생 중에서 가장 빛나고 소망이 있는 때입니다. 우선 미래가 창창하고 신선하고 가능성이 충만합니다.
<세월호>가 침몰했는데 사망자 대부분이 젊은이였습니다. 그래서 모두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
청년 때는 모든 것이 신선합니다. 또 미래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허비하는 청년들도 있습니다. 가끔 보면 새벽녘인데도 길거리에서 술에 취해 방황하는 젊은이들이 있습니다.
시간을 헤프게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헤럴드 쿠쉬너(Harold S. Kushner)라는 분이 <인스턴트 커피> 비유를 했습니다.
커피 병에 커피가 가득할 때는 사람들이 헤프게 먹습니다.
그런데 커피가 병에 반쯤 남으면 아껴 먹어야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다가 바닥이 보이면 병에 붙어 있는 커피가루까지 싹싹 긁어 먹습니다.
청년 때는 이렇게 시간이 넉넉하니까 헤프게 낭비도 합니다. 그러다 시간이 무의미하게 많이 지난 후에는 후회하게 됩니다. 오늘은 젊은이들이 생각을 많이 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본문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바란광야 가데스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바란광야 가데스는 가나안의 입구입니다. 거기서 모세는 12지파에서 1명씩 지도자를 뽑아 가나안에 들여보내 정탐을 하게 했습니다. 그들이 40일간 정탐하고 돌아와서 보고를 했습니다.
아시는 대로 그날 보고는 정반대의 두 보고가 이루어졌습니다.
먼저 12명중 10명의 정탐꾼은 어두운 면만 보고했습니다.
“그 땅 점령은 불가능하다. 삭막한 땅에 너무 강하고 큰 민족이 거주하고 있다.”
그들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12명 중 2명은 거기에 반대하여 긍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무슨 소리냐,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고 그 땅 사람들이 키는 크지만 우리는 충분히 이길 수 있다.”
두 보고는 정반대의 내용이 되었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어느 보고에 더 크게 영향을 받았겠습니까?
당연히 부정적인 보고였습니다. 부정적인 것은 파급 효과가 큽니다. 원래 진리보다 비진리가, 밝음 보다 어둠이, 긍정보다 부정이 영향이 큽니다.
그 보고대회는 축제로 진행되었어야 했는데 그날 보고대회는 절망의 보고대회가 되었습니다.
탄식과 분노와 눈물의 보고대회가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탄식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은 되돌릴 수 없는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하나는 “차라리 애굽 땅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것을...”(14:2)이라는 탄식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우리가 지도자를 새로 뽑아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선동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순간 출애굽 때 보았던 기적들을 다 잊었습니다.
그 결과 그날 사건으로 몇가지 운명이 결정되었습니다.
첫째로 가나안 행진이 40년간 늦추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은 아직 가나안에 들어갈 준비가 덜된 민족입니다. 지도자들도 자질이 부족했고 더 훈련되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을 정탐했던 40일의 시간을 하루를 일년으로 쳐서 40년 광야생활이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두번째로 백성들을 절망시킨 부정적인 보고를 한 자들은 영원히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정탐꾼들의 보고를 받고 손에 돌멩이를 들고 탄식하며 절망했던 자들도 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밟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일생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셋째로 긍정적으로 보고를 했던 두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기성세대를 대표해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넷째로 모세와 아론은 지도자로서 백성들에게 비전을 심어주지 못했기 때문에 그 책임을 물어 가나안에 못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다섯째로 광야에서 태어난 새 세대 즉 20세 이하의 세대만 광야에서 40년동안 재훈련을 받은 후에 가나안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메시지를 받게 됩니다.
그것은 먼저 너 자신을 정찰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나 자신을 정찰해 보아야 합니다.
Ⅰ. 긍정의 지혜와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내안에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자질이 있는가를 정탐해 보아야 합니다. 특히 젊은이는 생각, 사고, 판단기준이 긍정적인가를 정탐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긍정적이지 않으면 내 자아가 병든 것입니다. 그러면 지도자가 되거나 큰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공동체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부정적 사고는 자신을 병들게 만들고 그가 속한 공동체를 병들게 만듭니다. 그래서 내가 먼저 긍정적인 생각과 사고를 가지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의 내면을 가꾸고 만들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밭을 갈아엎고 그냥 놔두면 잡초가 돋아나게 되듯이 내 안을 내가 가꾸고 조성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가 긍정적인 사고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 내 앞길이 밝아지게 됩니다. 그 때에 내 인생이 따뜻하고 미래가 소망적이고 현재의 삶에 감사가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얼마 전 어느 잡지에서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 대한 특집을 다루었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니 이건희 회장은 일반인들과 생각이 좀 다르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는 이런 말들을 했습니다.
“들어온 떡을 먹으려고만 하지 말고 떡이 없을 땐 나가서 떡을 만들어라”,
“장사꾼이 되지 말고 경영자가 되라. 그러면 보이는 것이 다를 것이다”,
“부자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라.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부자가 될 것이다.”
또 이런 말도 했습니다.
“집단에서 잘 나가는 사람의 뒷다리를 잡지 말라.” “전체를 끌고 가는 사람은 전체의 20%이고 나머지 80%는 묻어가는 사람들이다“.
젊은이는 생각이 긍정적이고 전향적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따듯하고 희망적이어야 합니다.
이 백성들이 왜 출애굽을 했습니까?
오직 가나안에 가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정탐꾼들이 가서 보니 가나안 사람들이 장대했습니다. 그 큰 사람들을 보자마자 기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보니 하나같이 두렵게 보였습니다.
그러니까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부정적이고 불가능 한 이야기만 나온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희망을 못 줍니다.
오늘 이런 젊은이가 있다면 그가 경쟁이 심한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겠습니까?
먼저 내안을 정탐해 보아야 합니다. 나는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고 판단하는 지혜와 믿음이 있는가를 정탐해 보아야 합니다.
Ⅱ. 건강한 자아입니다.
또 나는 자아가 건강한 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이 정탐꾼들은 돌아와 보고를 했습니다.
“상대는 너무 크고 장대합니다. 우리는 그들에 비해 메뚜기 같아 보입니다.”
사람들이 이 지점에서 모두 패배감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래서 미리 포기하게 됩니다.
내가 입으로 그렇게 말하면 실제로 그렇게 됩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 가슴에 가지고 있는 생각이 밖으로 그대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내 입에서 희망의 말과 소망의 말이 나온다면 내 자아는 건강하다는 표시입니다.
그러나 절망이 부정이 많이 나온다면 내 자아가 병든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도 병입니다.
그래서 왕자병이 나오고 공주병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자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뒷줄에 앉아서 스스로를 왜소하게 생각합니다. 이것도 병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과대평가 하는 것보다 못합니다. 나 자신은 생각보다 훨씬 힘이 있고 자질이나 능력이 있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적들은 생각보다 훨씬 약하고 나는 보기보다 훨씬 강할 수가 있습니다.
여기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을 보십시오.
10명이 절망이나 불가능을 외쳤지만 이들은 긍정과 희망과 소망을 외쳤습니다.
그래서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걱정하지 말라.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라고 외쳤습니다. 얼마나 자신감이 있습니까?
그래서 그날 이 두 사람 때문에 백성들이 흘리던 눈물이 그치고 멈춘 가나안 행진이 다시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이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의 모습입니다. 사람이 건강한 자아를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자아 이미지 심리학의 선구자 프레스코트 레키(Prescott Lecky) 박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인의 자아가 그 자신의 인생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내가 가지고 있는 내 생각, 내 중심, 내 자아가 내 인생을 만들어간다는 것입니다.
네 손가락으로 피아니스트가 된 이희아라는 자매가 있습니다. 이 자매는 두 손을 합쳐 손가락이 모두 네 개뿐입니다.
그런데 열손가락이 있는 사람도 연주하기 힘든 쇼팽의 <즉흥환상곡>을 네 손가락으로 감미롭게 연주를 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놀라서 어떤 동기가 있었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그것은 하나님이 내게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은 그녀의 자아가 너무 건강하다는 말입니다.
오늘은 자아가 병든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남의 좋은 모습을 보면 찢고 싶고 욕하고 싶어 안달을 합니다. 그래서 인터넷에 수많은 악플들을 쏟아냅니다. 부자와 재벌을 향해서 욕을 퍼붓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 자식은 대기업에 넣으려 기를 씁니다. 부자나 재벌을 무조건 욕을 하게 되면 자신은 절대로 부자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병든 자아가 자신이 부자가 될 수 없도록 자기를 자꾸 억압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을 그렇게 욕하면서 자기 자식들은 유학을 보내지 못해서 안달을 합니다. 모두 자아가 병들어서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안에 건강한 자아가 있는가 먼저 정탐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야 내 입에서 건강한 자아의 소리, 고백, 메시지가 터져 나올 수 있습니다.
Ⅲ. 내안의 애굽입니다.
또 우리는 내 안에 여전히 남아 있을 애굽을 정탐해야 합니다.
10명의 정탐꾼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그 보고를 듣고 백성들이 절망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애굽에서 죽었더라면 좋았겠다(2절)고 울부짖었고 어떤 이들은 새 지도자를 뽑아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선동했습니다.(4절)
여러분은 이 지점에서 이들의 모습을 한번 깊이 통찰해 보십시오.
이들은 지금 몸은 가나안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애굽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것은 불행입니다. 그러니까 매사에 불평하고 불만하고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회만 되면 애굽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들이 과연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이 있습니까?
우리 안에 이 애굽이 남아 있는가 한번 정탐해 보아야 합니다.
내안에 애굽이 남아 있으면 매사 불평하게 되고 불만에 쌓여 살게 됩니다.
그래서 매사 환경 탓을 하고 유산 탓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과 비교해 보니 내 모습이 더 초라하기만 한 것입니다. 그래서 불평을 원망을 하는 것입니다.
엊그제 책을 보니까 남녀가 짝을 이루는 프로그램을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재밌었습니다.
남녀가 만났습니다. 여성이 남성에게 제일 먼저 묻는 말이 어디서 사느냐는 것이었습니다. 남성이 강북에 산다고 말하자 상대방 여성 얼굴이 금방 어두워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강남에 산다는 말을 들은 여성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고 합니다.
강남에 있는 원룸에서 사는 줄도 모르고 말입니다.
어느 택시에 어여쁜 처녀가 탔습니다.
택시기사가 어디서 사느냐고 물었더니 강남에서 산다고 말했습니다.
택시기사는 이렇게 예쁘고 강남에서 살고 부모님이 얼마나 훌륭하시냐, 우리 집에도 아들이 있는데 한번 만나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합니다.
오늘 사회가 이러니까 오늘 젊은이들이 자기를 들여다보면서 더 왜소하고 초라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유산이 없음을 탄식하고 무능한 부모 탓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면 모두 미래가 밝습니까?
환경이 나쁘고 가난하면 사람들의 미래가 모두 나쁜 것입니까?.
이 백성들이 지금 몸은 가나안으로 향하고 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애굽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애굽에서 죽었더라면 좋았을 거라고 탄식을 하고 지금이라도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선동을 한 것입니다. 이 백성들은 아직 가나안에 들어갈 자격이 없습니다. 훈련이 더 필요합니다.
우리안에 이 애굽이 아직도 남아있는가 정탐해 보아야 합니다. 이 마음을 가지고는 절대로 가나안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Ⅳ. 내안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정탐꾼 중 10명은 보고할 때 가나안 정복은 불가능하다고 어둡게 말했습니다.
이것은 지도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런데 나머지 두명, 여호수아와 갈렙은 똑같은 현장을 보고서도 희망을 말하고 소망을 말했습니다.
그래서 탄식하던 백성들의 눈에서 눈물을 멈추게 했고 희망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면 이 두 사람은 왜 그 시간에 희망을 말하고 소망을 말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우리는 나 혼자가 아니고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땅은 이미 하나님이 약속으로 주신 땅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임을 알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의 삶 가운데서 기적을 일구는 것입니다.
137년 전에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이 이 믿음을 가지고 왔습니다.
아펜젤라는 27세에 언더우드는 26세에 스크랜튼은 29세에 알렌은 27세에 게일은 25세에 왔습니다. 당시 한국은 선교지로서는 3급지였습니다.
당시 1급지는 중국이었고 2급지는 일본이었습니다.
유능한 선교사, 경험많은 선교사들은 모두 중국과 일본으로 갔습니다.
우리나라에 온 선교사들은 밀려서 3급지인 한국에 오게 된 것입니다.
그 20대 선교사들이 그 시대에 우리나라까지 어떻게 왔겠습니까?
오직 한가지,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신다는 믿음만 의지하고 온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미지의 나라를 향해 온 것입니다. 이 믿음을 보시고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이 땅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안에 이 믿음이 있습니까?
오늘의 젊은이들이여, 여러분 안에 이 믿음이 있는가 먼저 자신부터 정탐해 보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은 내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강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더 능력있는 존재일 수 있고 더 멋있는 존재일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작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 나에게는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누구보다 유능한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나를 왜소하게 보는 것이 문제입니다. 매사 자신감이 결여되어서 언제나 뒷줄에 서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의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건강한 자아를 갖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자질 때문에 소망을 말하고 희망을 말하고 청중들이 흘리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자질이 우리 신앙인들이 지녀야 할 자질입니다. 고로 이 두 사람은 위기의 때에 무한하게 빛을 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안에 이 믿음을 가지십시오. 나는 나 혼자가 아니라는 이 믿음을 가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미래는 환히 열리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