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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이정익목사]가인과 아벨의 차이(히11: 4;창4: 3-7)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03.29|조회수2,138 목록 댓글 0

가인과 아벨의 차이(114;43-7)

성경본문 : 히브리서 11:4 ; 창세기4:3-7

히브리서 114

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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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4:3-7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 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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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4장에는 최초의 살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담에게는 가인과 아벨이라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이 두 아들이 한날 한시에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습니다. 참 보기 좋은 모습입니다.

성경은 두 형제가 함께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게 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는 것은 헌신을 의미하고 봉헌을 의미합니다. 신앙의 삶은 봉헌의 삶입니다. 그래서 예배에는 반드시 봉헌 순서가 있습니다.

봉헌은 예배의 정신이고 내용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립니다.

그 목적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구속받은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예배 그 자체도 하나의 봉헌입니다.

예배는 나를 드리는 행위이고 몸을 정신을 생각을 드리는 봉헌 행위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워십 서비스(Worship Service)>라고 합니다.

. 가인이 드린 제물은 하나님께 거절당했습니다.

그런데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두 형제가 하나님께 제물을 드렸는데 형 가인의 제물은 거절되고 아우 아벨의 제물만 열납되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성경은 가인은 곡식단으로 제사를 드렸고 동생 아벨은 양을 잡아 바쳤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인의 제물은 거절하셨습니다. 곡식이라서 그러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 이유는 형식적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창 4:3절에서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드렸다고 말씀합니다.

그 말은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드렸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예배에서 암적 요소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형식입니다.

습관처럼 행해지는 예배입니다.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가장 신랄하게 비판한 것이 바리새인들의 형식적인 예배 때문이었습니다. 이사야 1장을 보면 충격적인 말씀이 나옵니다. 이제는 제발 내게 제물을 가져오지 말라(13) 이제는 양이나 염소의 피에 신물이 났다(11)”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형식적인 선물을 받아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때 기분이 어떻습니까?

순간 모욕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선물을 주고도 역효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어느 학부형이 가게에서 장사하다가 남루한 옷차림으로 학교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봉투 하나를 내밀면서 일년치예요하고는 그냥 돌아가 버립니다.

그 선생님은 아주 불쾌했을 것입니다. 형식적이라는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것이 싫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을 신랄하게 비판하신 것입니다.

가인이 그랬습니다. 그냥 하던 대로 아무 생각없이 곡식단을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을 거절하신 것입니다.

 

.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창 4:4절을 보면 아벨은 양의 첫새끼를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받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성경은 첫 열매를 언급합니다. 특히 출 13:2에서는 첫 자식과 첫 열매는 내 것이니 거룩하게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고 말씀합니다.

첫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자식도 첫 자식은 다릅니다. 생각과 처신과 정신이 다릅니다. 막내하고 첫 자식은 상당히 다릅니다.

하나님이 첫 자식은 내 것이라고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짐승도 길러서 처음 새끼를 받습니다.

농사를 지어서 첫 곡식을 거두었습니다.

의미가 다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첫 곡식, 첫 새끼, 첫 자식은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렸습니다.(출 13:2 레 3:12-16) 그만큼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 즉 곡식단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가인이 그냥 땅의 소산을 드렸다고 말합니다. 첫 열매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 말은 별 생각 없이 습관대로 드렸다는 말입니다.

 

문제가 무엇입니까?

가인이 아무 준비도 없이 뜻도 없이 그냥 형식적으로 제물을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벨은 양의 첫 새끼를 드렸다고 기록(창 4:4)합니다.

성경에서는 첫 새끼라는 말에 악센트를 두고 있습니다.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드렸다는 말은 아벨이 제물을 드릴 때 뜻과 정성을 부여하여 드렸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가인의 제물은 거절하시고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다고 하신 것입니다.

창 4:4-5을 보면 특이한 구절이 나옵니다.

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을 받으셨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아벨도 받으셨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아벨의 제물도 받고 아벨의 마음도 받으셨다는 말일 것입니다.

본문 히 11:4절을 보면 아벨은 믿음으로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믿음으로 드렸다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이 믿음으로 드렸다는 의미를 알아야 예배가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여기 아벨이 양의 첫 새끼를 드리게 된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아벨이 하루는 부모가 입고 있는 옷을 자세히 봅니다. 보니까 부모가 입고 있는 옷이 몹시 헤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아벨이 부모님에게옷을 새로 해 입으시지요. 양의 가죽은 얼마든지 있잖아요?” 하고 말합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이 옷은 낡았다고 버릴 수 없는 옷이란다. 이 옷에는 사연이 있다며 숨은 사연을 이야기를 합니다.

네 아버지와 내가 죄를 지었어. 하나님이 선악과를 따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하셨는데 그만 따 먹고 말았어. 우리는 죽을 줄 알고 두려웠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죽이지 않으시고 대신 양을 잡아 제물로 사용하시고 그 가죽으로 우리 옷을 해 입히셨어. 이 옷이 그때 죄 없이 우리 때문에 죽은 그 양의 가죽이란다. 그러니 이 옷이 헤어졌다고 해서 어찌 버리겠냐?”

이 해석이 잘 이해가 되십니까?

이것이 옳은 해석입니다. 그 가인과 아벨이 함께 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얼마나 심오한 내용입니까? 얼마나 깊은 사연이 들어 있는 이야기입니까?

그런데 가인은 그 이야기를 듣고 곧 잊어버립니다.

그리고 제사 때 곡식단을 드린 것입니다.

그 말은 가인이 생각없이 무개념으로 형식적으로 제물을 드렸다는 말입니다.

 

여러분, 형식이 무엇입니까?

생각도 없고 뜻도 없고 준비도 없는 제사 그것이 형식적인 제사입니다.

가인이 그날 그렇게 제물을 드렸습니다.

그래서 거절당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벨은 부모로부터 그 소리를 들은 후에 깊이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내 아버지와 어머니가 죽을 죄인이라면 나는 누구인가? 그 죽을 죄인 사이에서 태어난 나도 역시 죽을 죄인이 아닌가?”하는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아벨이 그날 제물을 드릴 때 양을 잡아 바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제물을 드릴 때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내 부모가 죽을 죄인이었으니까 나도 죽을 죄인입니다. 그래서 나도 양을 잡아 바칩니다.” 그랬더니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하나님께서 왜 가인의 제사는 거부하시고 아벨의 제물을 받으셨는지를 이해하시겠습니까?

 

여기서 예배가 무엇이냐 하는 물음이 나옵니다.

예배는 구속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봉헌이고 헌신입니다.

그래서 예배에는 의미와 고백과 뜻과 준비가 들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벨의 제물은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거절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오늘 우리들이 드리는 예배에 형식이 들어갈 소지가 아주 많습니다.

오늘은 형식적인 예배가 많은 시대입니다.

가장 많은 형식은 억지로 예배드리는 일일 것입니다. 억지로 끌려 나옵니다. 억지로 마지못해 옵니다. 그것이 모두 형식적 예배입니다.

그렇게 하고는 복을 달라고 기도는 많이 합니다.

 

그러니까 신앙생활 하면서 감동이 없고 응답이 없는 것입니다.

예배는 준비가 있어야 합니다.

주일 예배는 토요일부터 시작이 됩니다.

토요일은 내일 예배를 위해서 시간과 헌금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일에 일찍 와서 예배 준비해야 합니다.

 

성경과 찬송을 미리 찾아놓고 묵도로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준비가 있으면 예배시간을 여유있게 맞이하게 됩니다.

이런 준비가 없으면 서둘게 되고 마음이 바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교회 올 때 짜증나게 되고 시간에 쫓기게 됩니다.

 

여유있게 오면 짜증이 없습니다. 주변 구경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빠듯하게 오면 주변이 보이지 않습니다. 신호등도 자꾸 막히게 됩니다. 막상 교회에 오면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습니다. 그래서 주차요원들과 실랑이를 벌입니다. 이렇게 되면 그날 예배를 제대로 드리겠습니까? 본문은 우리에게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무엇이 진정한 예배인가를 가인과 아벨의 경우를 통해서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 가인은 자기의 예물을 하나님이 받지암흐시니까 항의합니다.

그런데 창 4장을 보면 가인이 하나님께 항의를 합니다. 5절에서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가인이 하나님께 항의했다는 말입니다. 가인이 몹시 불쾌하게 생각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대개 자신의 죄, 자신의 잘못은 잘 모릅니다. 그래서 남을 탓하고 원망하게 됩니다.

여기 가인은 자신의 잘못을 모릅니다. 그래서 가인이 하나님께 항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대답을 하십니다.

네가 올바른 일을 하였다면 어찌하여 네 얼굴을 펴지 못하느냐.”(7)

가인의 행위가 악함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요한1서 3:12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가인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나.”

가인이 제물이 거절되었을 때 감정적인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그래도 가인은 그때 회개하고 자신을 돌아보았어야 합니다.

무엇이 문제인가를 살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거절하셨는지 생각해 보았어야 합니다.

 

가룟 유다가 그릇에 손을 넣는 자가 나를 팔리라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 자리에서 회개하였어야 합니다.

그러면 베드로처럼 용서받고 재기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유다는 나는 아니지요고 반문하였습니다.

 

유다는 이미 영혼이 병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회개할 기회를 놓친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베드로는 참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비록 큰 실수를 했지만 그런데도 곧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용서받고 재기해서 수제자가 되었습니다.

 

다윗도 지혜자입니다.

나단이 와서 “당신이 그 사람이요했을 때 다윗은 그 즉시 용상에서 내려앉아 눈물로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용서받았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부분 그 순간 회개하지 않습니다.

 

유다는 그게 나는 아니지요했습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네동생 아벨이 어디있느냐?”하고 물으셨을 때 그는 내가 동생을 지키는 자입니까?” 하고 대답했습니다.

가인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가인은 분노를 조절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인은 결국 동생 아벨을 죽이게 되었습니다.

창 4:8절을 보면 “가인이 아벨을 쳐 죽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쳐 죽이니라는 히브리어로 하라그 라는 말입니다.

이는 아주 잔인하게, 무자비하게, 처참하게 죽이다라는 뜻입니다.

가인은 옆에 있는 돌을 들어 머리위로 내리쳤을 것입니다. 그 순간 가인은 눈앞에 보이는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오직 분노가 가인을 점령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의 살인은 모두 이렇게 해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가인이 너무 많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이웃에도 내 집안에도 심지어는 내 안에도 이 가인의 살의가 들어있습니다.

오늘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살인은 이런 과정을 거쳐서 발생하게 됩니다. 대부분 살인은 분노에서 시작됩니다. 순간 분을 이기지 못해서 일어납니다.

 

. 예배의 중요성을 알아야 합니다.

본문이 주시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배의 중요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입니다. 이것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간혹 카톨릭과 불교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주일마다 나가 예배를 드립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그들이 무슨 신앙인입니까? 신앙이 그렇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까? 기독교 초기에 신앙인들은 예배를 생명을 걸고 드렸습니다.

 

당시 예배자들은 핍박 때문에 산속으로 도망가 예배를 드렸고 땅속으로 피신하여 거기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주일날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려고 학교에 출석하게 했습니다.

공산주의는 예배를 철저하게 금지했습니다.

 

그럼에도 신앙인들은 목숨을 걸고 나가 예배를 참석했습니다.

그들도 적당히 놀며 수양하듯 했으면 핍박도 순교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왜 목숨을 걸고 그랬을까요?

예배는 그리스도인의 생명이고 목적이고 정체성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배생활에 목숨을 걸으십시오. 그것이 이 땅에서 복을 받는 길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 마다 제단을 쌓았다고 합니다.

그 말은 가는 곳마다 멈추면 그곳에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야곱은 도피 중에 야경지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복을 주리라, 함께 하리라, 내가 너로 반드시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그렇게만 해 주신다면 내 평생에 주께 십일조를 드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야곱이 복을 받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정신이 이스라엘의 안식일 신앙으로 발전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안식일 정신은 유명합니다.

유대인의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때부터 시작됩니다. 일주일 내내 시끌벅적 하다가 안식일이 시작되는 시간이 되면 그 순간 온 시내가 정적이 감돌고 택시, 버스, 식당, 카페, 주점, 기념품점들이 모두 일제히 문을 닫습니다.

 

여행객들은 발을 동동 구릅니다.

그래도 휴일 간판을 내걸고 문을 닫아버립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불금입니다. 불타는 금요일이라는 말입니다.

한국은 금요일밤부터 북적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는 안식일이 시작되는 금요일 밤부터 모든 욕망과 놀이를 거두고 정적의 밤이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금요일 해질 때부터 시작하여 토요일 밤까지 시간을 소위 “사바스라는 안식일로 지킵니다. 사바스가 시작되면 이스라엘에서 모든 호텔의 엘리베이터가 자동적으로 멈춥니다. 층수를 누르는 버튼도 금지됩니다.

 

오늘은 외국 손님을 위해 손대지 않고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를 따로 둡니다.

2001년 이스라엘 의회에서는 건물을 지을 때 자동운행 엘리베이터를 하나 이상 의무적으로 두라고 사바스 특별법을 제정했습니다. 또한 모든 가정에서는 안식일에 일하지 않도록 토요일에 먹을 음식을 미리 준비합니다.

 

강국 이스라엘>도 안식일이 되면 모든 휴대폰도 컴퓨터도 다 끊습니다. 안식일을 아주 바보스럽게 지킵니다. 안식일이 시작되면 운전도 요리도 엘리베이터 버튼 누르기도 모두 멈춥니다. 유대인 학생들은 사바스가 시작되면 손에서 책을 놓습니다. 그럼에도 세계 명문대학 진학률이 세계 최고입니다. 예배생활은 철저할 수록 힘과 능력과 강한 믿음이 주어집니다.

 

록펠러 어머니 엘리자가 아이들을 양육하였다는 10가지 양육 지침이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철두철미하게 하나님 중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을 친 아버지로 모셔라.

둘째, 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셋째, 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를 준비하라.

넷째, 누구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다섯째, 아침에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여섯째, 예배 때에는 언제나 앞자리에 앉으라.

일곱째, 잠들기 전에는 반드시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여덟째, 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아홉째, 주일 예배는 꼭 본 교회에 가서 드려라.

열째, 아침에는 가장 먼저 하나님 말씀을 읽으라.

이렇게 양육을 하니까 이 지도를 받은 아이들에게서 큰 믿음의 열매들이 열리는 것입니다.

 

가인이 이 예배를 경히 형식적으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아벨은 이 예배의 중요성 깨달았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기뻐하신 예배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아벨은 죽었지만 그 줄기와 후손에게서 신앙의 줄기가 흘렀고 마침내 그 줄기에서 예수님이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도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예배가 존재합니다.

하나는 가인의 예배입니다.

가인의 예배는 형식적인 예배입니다.

또 하나는 아벨의 예배입니다.

아벨의 예배는 뜻과 의미와 내용과 진정성이 들어 있는 예배입니다.

그 예배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예배에 하나님께서 임하시고 열납하시고 복을 주시는 예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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