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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이정익목사]선교 동역자들의 헌신(롬16: 1- 5)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05.12|조회수179 목록 댓글 0

선교 동역자들의 헌신(161- 5)

성경본문: 로마서16:1-5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 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5 또 저의 집에 있는 교회에도 문안하라 내가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그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맺은 열매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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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희대의 인물입니다. 20세기가 지났지만 그만한 인물이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출신성분이 좋았습니다. 부잣집 아들이었고 다소에서 예루살렘까지 유학했던 사람이었으며 당대의 학문 주류였던 헬라철학에 능통했던 명사집안의 아들이었습니다.

또한 정통 바리새인이었고 철두철미하게 경건으로 율법을 지켰습니다.

거기에 사명감이 출중하여 유대교인으로서 유대교를 위하여 열중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예수를 만나 회심하여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예수를 위해서 그 열정을 불태우게 되었습니다.

그는 1세기 초에 예루살렘과 그리스와 로마를 휘젓고 다녔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기적이 일어났고 회심과 변화가 일어났고 그의 발이 멈추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심지어 옥중에 있으면서도 밖에 있는 성도들에게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외쳤던 인물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와 체질이 다릅니다. DNA가 다릅니다.

그래서인지 마침내 사도로서 대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성공하게 된 원인이 몇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복음에 대한 뜨거운 열정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자로서, 사도로서 열정적으로 역할을 다했습니다.

그는 평생 4번에 걸쳐 전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1차 여행은 바나바와 함께 기원후 44년, 48세 때에 떠났습니다(행 13:1-14:28).

그들은 수리아 안디옥을 시작으로 구브로의 살라미, 바보, 버가,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더베, 루스드라, 앗달리아, 실루기아를 거쳐 다시 원점인 수리아 안디옥으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 거리가 2,000km였습니다.

 

또한 2차 여행은 기원후 51년, 55세 때에 떠났습니다(행 15:36-18:2).

그 때에는 바나바와 함께 가지 않았습니다. 바나바는 생질인 마가를 동행시키자고 했지만 바울은 아직 성숙치 못하다 하여 반대하였습니다. 결국 그들은 결별하였고 바울은 바나바 대신 실라와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안디옥 교회에서 더베, 루스드라, 이고니온, 비시디아 안디옥, 드로아, 네압볼리, 마게도냐,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덴, 고린도, 에베소, 가이사랴, 예루살렘, 두로, 시돈, 그리스를 거쳐 다시 수리아 안디옥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 여행 길이가 자그마치 1만km나 됩니다.

 

또한 3차 여행은 54년 58세 때에 출발합니다(행 18:23-21:16).

그 때에는 수리아 안디옥을 출발하여 다소, 브루기아, 에베소, 드로아, 네압볼리, 마게도냐, 아덴, 마게도냐, 드로아, 앗소, 미둘레네, 기오, 사모, 밀레도, 바보, 두로, 돌레마이, 가이사랴, 예루살렘을 거쳐 돌아오게 됩니다. 그 여행거리도 1만km였습니다.

 

그리고 4차 여행은 기원후 62년, 66세 때에 죄수의 신분으로 로마로 압송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에서 종교적인 문제로 상소하였다가 석방되어 전도길에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 전도 여정도 5천km나 되었습니다.

 

이 네 번의 여행 여정을 합하면 35,000km나 됩니다.

당시 로마 군단이 하루 행군하는 거리가 보통 25km였는데 바울의 전도여행은 거리상 매일 10km씩 이동한 꼴입니다.

그렇게 그는 충실하게 전도여행을 하며 많은 회심자들을 만들었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말년에 가서 고백하기를 나는 달려갈 길을 다 가고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믿음을 지켰다(고후 4:7-8)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을 준비하셨을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하였습니다.

 

수고한 자나 씨를 뿌린 사람은 기대가 있고 소망이 있습니다.

공부를 열심히 한 학생은 그만큼의 기대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그는 그의 인생에서 사도로서 여한이 없을 만큼 열정적으로 전도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64년 68세로 순교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인생이었습니다.

 

두 번째 사도 바울에게는 많은 동역자들이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이웃이, 친구가, 동료가 필요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가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도바울도 전도할 때 혼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공생애가 시작되자마자 12제자부터 부르셨습니다. 그들을 훈련하셔서 전도사역을 맡기시고 승천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사도 바울 곁에는 아주 좋은 동역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늘 로마서를 끝맺으면서 사도 바울은 그 동역자들을 일일이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바나바였습니다.

바나바는 사도 바울에게 참 좋은 동역자였습니다.

바울이 처음 회심하고 난후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은 위장 전향이라고 생각하여 경계심을 풀지 않았습니다. 그때 바나바는 바울 곁에 서서 여전히 경계하는 사도들과 그리스도인들을 이해시켜서 친교하고 신뢰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 1차 전도여행 때에는 직접 동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바나바는 잊을 수 없는 동역자였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서도 이 바나바의 역할이 필요합니다.

교회에 처음 나온 분들이 얼마나 어색합니까?

그분들을 잘 안내하여 적응시키고 안착시키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나바의 역할입니다.

그런 점에서 바나바는 잊을 수 없는 동역자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성경에서 여러번 동역자 바나바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뵈뵈입니다.

1절을 보면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천거하노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겐그레아는 고린도의 남쪽에 있는 항구도시로 교통 요충지였습니다.

뵈뵈는 그곳 출신의 여집사였습니다.

뵈뵈는 빛을 발하다라는 뜻인데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이 뵈뵈를 천거한다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속히 로마를 가려고 했지만 여건이 여의치 않아 가지 못하고 먼저 뵈뵈를 보내면서 그 편에 로마교회에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라(2절)고 당부하였습니다.

로마 교회의 성도들은 개종한 유대인들로 이방인에 대해서 배타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뵈뵈가 겐그레아 사람이고 이방인이라 하여 소홀히 하지 말고 정중히 영접하라고 당부하고 또 그에게 소용되는 물품을 도와주라고 당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사도 바울은 왜 그토록 뵈뵈 집사를 자상하게 배려하였을까요?

그 이유가 2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는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뵈뵈는 사도 바울이 어려울 때 상당한 위안을 준 집사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어려울 때 위로하고 도와준 사람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본문에서 이는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목회를 하다 보면 여러 계층의 성도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냥 스쳐가는 성도들이 있는가 하면 두 번 다시 생각하기도 싫은 성도가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떠난 후에도 잊을 수 없는 분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뵈뵈 집사는 그렇게 잊을 수 없는 집사였습니다.

 

세 번째는 브리스가와 아굴라입니다.

3절을 보면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을 동역자라고 표현합니다.

그 말은 이들이 사도 바울의 사역에 상당한 역할을 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들을 고린도에서 만났습니다(행 18:2).

이 두 사람은 부부로 원래 로마에 거주하였는데 황제 글라우디오 시대에 유대인 추방령을 내려서 고린도에서 거주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사도 바울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언제나 아내인 브리스가를 먼저 부르고 남편인 아굴라를 나중에 부릅니다.

그것은 아내가 더 활동적이었다는 말일 것입니다.

아내 브리스가는 성경 공부를 잘 가르쳤다고 합니다.

행 18:23-26을 보면 그들이 아볼로를 만났습니다.

그는 당대에 언변과 웅변에 뛰어났던 사람으로 전도자였는데 요한에 법도만 알고 있었지 성령도 못받았고 성령에 대해서 알지도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브리스가가 아볼로에게 믿음의 도리를 가르쳤고 성령에 대해서 교육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후 이 부부는 바울과 에베소까지 동행(행 18:18-19)하였고 오랫동안 동역자로 활동하였습니다.

후에 로마황제 글라우디오가 죽자 로마로 가게 되었는데 그때 바울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이 부부를 잘 도와주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 두 부부를 이렇게 챙기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4절을 보면 저희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 자기의 목이라도 내 놓았나니라는 표현은 사형 집행자의 도끼 밑에 자기 목을 대신 내놓는 상황을 표현한 말입니다.

즉 이는 바울이 전도하다가 극심하게 핍박을 받을 때에 그를 구하고자 이들이 극단적인 위험도 마다하지 않았던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나온 것 같습니다.

아마 에베소에서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켜 바울을 죽이려 할때 바울을 구하려고 죽음을 무릅쓰고 개입했던 사건을 회상하며 표현한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행 19:28-31, 고전 16:9, 19).

그러니까 이 부부는 일사각오로 사도 바울과 함께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 두 부부에게 존경을 표하며 감사하고 있고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저를 본 받으라”는 메시지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은 에배네도입니다.

5절에서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배네도라는 말은 칭찬받을 만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 때 에베소에서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함께 전도하였는데 그 때 이방인으로서 최초로 회심한 자가 에배네도였습니다. 그는 회심 후 브리스가와 에베소에서 로마까지 동행하였습니다.

여기서 바울은 에배네도를 말하면서 아시아에서 처음 익은 열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에배네도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첫열매였으니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첫사랑이 귀하고 첫 자식이 귀한 법입니다.

전도를 해서 처음 열매를 맺었으니 그 열매가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아시아에 와서 전도해서 첫 열매로 에배네도를 얻었다고 말합니다.

 

다음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입니다.

13절에는 주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나의 어머니니라고 하였습니다. 막 15:21을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가실 때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간 사람이 구레네 시몬입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루포인데 사도바울은 그 루포에 대해서 표현하기를 주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13절)라고 말합니다.

루포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봉사나 헌신이나 충성도가 아주 뛰어났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의 어머니를 가리켜 그는 곧 나의 어머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이 수리아 안디옥에서 전도할 때 구레네 시몬의 집에서 유숙하였는데 그때 바울은 가족들을 떠나 아주 외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루포의 어머니가 그를 자식처럼 모성어린 돌봄과 따뜻한 친절과 사랑으로 돌보아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루포의 어머니를 나의 어머니라고 부른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가 지금 로마에 있습니다. 그래서 로마교회 교인들에게 그에게 문안하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디모데입니다.

21절에는 나의 동역자 디모데에게 문안하라고 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아주 좋은 관계였습니다. 그래서 둘의 만남을 소크라테스플라톤의 만남이라고도 부릅니다.

플라톤은 원래 정치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를 만나 대화하면서 철학자가 되기로 꿈을 바꾸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유명한 철학자였지만 책 한권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유명해진 것은 제자 플라톤이 그의 철학을 이론화하여 발전시켰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플라톤이 없었다면 소크라테스도 없었을 것이고 플라톤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어서 유명해졌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 둘의 만남을 아주 좋은 만남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디모데는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비중있는 동역자였습니다.

디모데는 아버지가 헬라인이고 어머니가 유대인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가 헬라에서 크게 성공하기를 기대하였고 어머니는 장차 아들이 좋은 전도자가 되는 것을 바랬습니다. 결국 디모데는 어머니의 기도를 따르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마게도냐와 아가야에서 전도할 때 디모데가 동행했습니다(행 17-18장). 또한 고린도교회에 문제가 생겼을 때에도 디모데가 나서서 해결하였습니다(고전 4:17, 16:10).

그래서 바울은 로마교회 성도들에게 디모데를 동역자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고전 4:17에서는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자로서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수많은 지역을 다니며 전도하였고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능력이 있었고 성령이 충만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역은 그것만 가지고는 안됩니다.

거기에 좋은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바울에게는 아주 좋은 동역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로마서를 끝내면서 그동안 도와주고 힘이 되어준 동역자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전도가 성공한 것이 이같은 동역자들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곁에 좋은 친구나 이웃, 좋은 동료가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셋째,사도 바울에게 어려움을 준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의 전도 여정에는 아픔을 준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딤후 4:10을 보면 그 아픔을 준 네 사람 데마, 그레스게, 디도, 알렉산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여기 데마는 초기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습니다.

그런데 그는 세상을 사랑하여 중간에 포기하고 돌아가 버렸습니다.

바울은 그 사건으로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저도 목회하면서 가장 마음이 아픈 일이 한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한 여집사가 도중에 절로 돌아간 일입니다.

물론 그분의 성장배경이 절과 밀접해서 그런 것이지만 그 사건은 가장 마음 아픈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사도 바울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래서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고 표현하였습니다.

여기서 그는 나를 버리고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곤경에 처한 바울을 버리고 돌아간 것도 문제지만 신앙마저 버린 사실에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또 하나는 아픈 마음을 안겨준 경우입니다.

딤후 4:14을 보면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해를 많이 입혔으매 주께서 그 행한대로 그에게 갚으시리니 너도 그를 조심하라 그가 우리에게 심히 대적하였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알렉산더는 당시 구리세공업자 즉 대장장이였습니다. 그가 예수를 믿고 바울을 따라다니다가 후에 배교하여 이단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이 재판받을 때 불리한 증언을 함으로 바울이 어려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그 사건을 생각하면서 주께서 그가 행한대로 저에게 갚으시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모든 심판을 주께 맡긴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디모데에게 그를 조심하라고 환기시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원하십니까?

할 수 있으면 우리는 생각만 하면 마음이 따뜻해지는 사람,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목회하다가 보면 개중에는 두 번 다시 생각하기조차 싫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목회자들 대부분이 심장병을 가지고 있고 사모들의 8-90%가 우울증을 가지고 산다고 합니다.

어떤 목사님이 목회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산기도를 갔는데 산에 고목나무 하나가 밑둥이 시커멓게 다 썩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도 목회하니?”하고 말했다고 합니다.

여기 기록된 좋은 동역자들은 하나님 나라 생명책에서도 기록되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직장에서든지 일터에서든지 사역지에서든지 살아가는 현장에서 누구에게나 좋은 동역자로 힘이 되고 언덕이 되어주는, 주의 나라의 생명책에 기록될만한 역할을 다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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