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과 하나님의 나라(롬14장17-18)
성경본문: 로마서14:17-18
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18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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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 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18)
우리 신앙인들의 궁극적인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 천국"입니다. 그 나라에 가서 누릴 삶이 곧 우리 신앙인들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천국이 없다면 우리가 이렇게 고되게 신앙생활을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 나라 때문에 우리가 지금 이 수고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일제시대> 때 주기철 목사가 온갓 고문을 당하면서도 끝까지 항복하지 않고 죽기를 한하고 고집을 피웠습니다. 그러니까 경찰이 물었습니다.
"왜 그렇게 죽으려고 하느냐".
그때 주기철이 짤막하게 대답합니다.
"나에게는 그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니까 듣던 사람들이 모두 순간 숙연해지더라고 합니다. 그 나라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 신앙인으로 하여금 이렇게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말씀하기를 "그 나라가 없다면 이 세상에서 우리가 가장 불쌍한 자"라고 했습니다.
존 번연이 쓴 <천로역정>이라는 책은 참 유명한 책입니다. 사람들은 이 책을 성경 다음 가는 책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앙인들에게 교훈을 많이 주는 책입니다.
이 책을 보면 "천국에 이르는 길"(天路歷程)이 얼마나 "험난한 길"(天路逆程) 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인공인 크리스챤이〈파멸의 도시〉를 떠나서 외롭게 순례의 길을 떠납니다.
가는 동안 숫한 장애물을 만납니다. 가다가 <절망의 수렁〉에 빠지기도 합니다. <좁은 문〉을 힘겹게 통과하기도 합니다, 〈허영의 시장〉거리를 지나 <고난의 산〉을 넘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마침내〈죽음의 어두운 강〉을 건너서 마지막 종착지인〈천국〉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그 길이 <천로역정>이라고 말합니다.
천국은 이렇게 최선을 다해서 그 길을 걸어간 사람이 가는 곳입니다. 천국은 이렇게 그 나라를 위해서 수고하고 피흘리고 관심두고 살아간 사람들이 가는 나라입니다. 그리고 그 나라에 뜻을 두고 오직 한길만 걸어간 신앙인들만 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천국입니다.
아무나 갈 수 있다면 그곳은 천국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떤 곳인 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보면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나라와 정반대의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성경은 천국에 대해서 두 가지 전제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천국은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세상이 어떤 곳인가를 아주 잘 표현해 주는 말씀입니다.
즉 "세상은 인간이 주권을 행사하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이 주권을 행사하는 곳은 먹고 마시는 것이 주가 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먹고 마시는 것이 주 목적입니다.
사람들의 제일가는 관심과 목표는 먹고 마시는 일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오늘 사람들이 모두 동분서주하면서 살아갑니다.
이 기본적인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인간은 참 유치해질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배고파본 적이 있습니까?
이 문제는 아주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사람이 좀 근사하게 살아가는 것도 이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 문입니다.
나는 나이 30에 군대를 갔습니다.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는데 이 먹는 문제가 참 중요하게 생각되었습니다. 그 때는 웬일인지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앞사람의 밥그릇이 내것 보다 더 많은 것에 관심이 쏠렸습니다.
토요일에는 라면이 나왔습니다. 그 때 마다 앞사람의 그릇에 라면국물 이 내것보다 좀 많다는 것에 몹시 신경이 쓰였습니다. 그때 제가 느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먹는 것이 참 사람을 유치하게 만드는구나"하 는 것이었습니다.
옛말에 “수염이 석 자라도 먹어야 산다”는 말은 바로 이런 문제를 두고 한 말 같습니다.
이 문제는 이렇게 중요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이 이 문제가 해결 되었다고 하면 그 다음에는 고상하게 살아가지는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어서 배부르게 되면 그때부터는 사람이 인간답게 살고 좀더 높은 뜻을 찾아나서 살아가게 되느냐 하는 겁니다.
그런 유감스럽게도 그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 나라는 어디까지나 인간 세상 그 차원을 넘지를 못합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즐기는 일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사람은 배가 부르게 되면 다음에는 즐기는 일에 관심을 갖고 눈을 돌리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즐기고 유희하는 일을 찾아서 분주하게 돌아다니게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유흥적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골목골목을 눈여겨 보십시오. 또 한적하고 경치 좋은 근교에 한번 나가 보십시오.
보면 순전히 먹고 마시는 음식점이나 술집들만 서 있고 여관과 호텔만 들어 서있습니다. 모두 '먹자판'이고 '즐기자 판'입니다.
그곳이 모두 먹고 즐기는 곳 아닙니까?
그래서 세상은 이래저래 병들고 세속화되기 마련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소유하고 간직함으로서 즐겼는데 오늘 사람들은 이렇게 먹고 즐기는 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오늘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대부분이 즐기는 문제로 사건이 일어납니다.
즐기기 위해서 도적질을 하고 강도짓을 하고 부모를 죽이고 사람을 죽이고 그럽니다.
그러니 이 세상이 온전하겠습니까?
우리 나라가 그동안 허리띠를 졸라매고 참아가며 드디어 1만불 시대를 열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인간답게 살아가는 세상이 될 줄로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남은 것은 허탈감 밖에 없습니다. 돈 때문에 대학교수가 아버지를 죽이고 보험금을 타내려고 아버지가 아들을 죽이고 남편이 아내를 죽이고 자신이 자신의 발등을 찍는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세상이 왜 이러냐 하면 이 세상은 인간이 주권을 행사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다스리는 곳은 모두 이런 모습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먹고 마시는 곳이 아니다"라고 했습 니다. 그러면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두 번째 천국은 성령이 지배하시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천국은 하나님이 주권을 행사하시는 곳"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그곳이 천국입니다.
그 말은 "지옥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라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그 곳이 지옥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국은 넉넉하고 호화롭고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 곳이 천국이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곳이 천국이라는 말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천국에 대해서 많은 오해를 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금과 보석으로 꾸며진 찬란한 곳이 천국 이라고들 알고 있습니다. 그런 곳은 이 세상에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저 아랍의 부자들이나 왕궁에 가 보면 사람들을 놀라게 할 만큼 호화찬란하게 꾸며놓은 곳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그러면 그곳이 천국입니까?
천국이 고작해서 그런 곳이라면 우리들이 이토록 그 나라를 기대하고 숫한 어려움과 고난을 이겨가면서 집착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천국은 한마디로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는 곳이기 때문에 천국"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곳에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천국의 요소들입니다.
이 세상을 보십시오. 이 세상 어디에 이 세가지 요소가 있습니까?
세상 어디에 의가 있으며 평강이 있으며 희락이 존재합니까?
이것들과는 정반대의 요소들인 갈등과 불화와 속임과 거짓들만 난무하지 않습니까?
그것은 여기가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언제나 이런 거칠은 요소들만 상존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무엇보다도 천국적 삶의 요소를 중시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람은 얼마나 부하게 사느냐, 얼마나 잘 먹고 잘 입고 잘 누리며 살아가느냐?하는 문제는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얼마나 건강하고 오래 사느냐하는 문제도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닙니다.
사람이 얼마나 큰집에서 살고 잘 꾸며놓고 살아가느냐 하는 문제 역시 근본적인 문제는 아닙니다.
그것들은 모두 부차적인 문제들입니다.
사람이 좀 풍족하게 살고 넉넉하게 살고 가능하면 건강하게 살고 오래사는 것도 축복일 수 있습니 다.
그러나 그것은 삶의 한 수단이고 방편이고 좀 편리함을 주는 요소 들일 뿐이지 삶의 근본적인 문제는 아닌 것입니다.
그런것 들보다 더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는 사람이 의와 평강과 희락을 소유하고 사느냐 아니냐 하는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말은 나의 삶에 지금 하나님의 주권이 행사되고 성령께서 나의 삶에서 나를 지배하고 계시냐하는 문제가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 결과 나의 삶에 의가 있고 평강이 있고 희락이 있느냐 하는 문제가 더 소중한 문제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불의하고 세상적으로 성공하고 출세했다고 생각 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삶에 무슨 의가 있습니까?
사람이 사람들을 속이고 그래서 원수맺고 원한을 품게 하고 나서 내가 부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러면 그 부가 무슨 행복을 가져다 줍니까?.
사람이 마음속에 희락이 없고 매일같이 불안하고 불편하게 살면서 큰 집에서 살면 무엇합니까?
그 큰집이 그에게 무슨 소용이 있으며 그 부가 무슨 행복을 가져다 주며 그 삶이 그에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잠언을 보면 "채소를 먹으면서 화목하게 살아가는 것이 고기를 먹으면서 불화한 것 보다 낫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큰 집에서 다투며 사는 것 보다 움막에서 평화롭게 혼자사는 것이 낫다"고 했습니다.
그 말은 의와 평강과 희락을 잃은 생활은 지옥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의와 평강과 희락이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이 땅 에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이것은 신앙인들이 할 일이고 또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뜻을 펼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때로 손해도 감수해야 하고 희생도 감수해야 합니다.
모두 손해는 보지않고 희생도 하지 않으려고 하면 이 세상에 평강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내 희생은 곧 이 세상의 건강으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은 때로 필요할 때는 희생도 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 누군가를 희생시키실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 의를 심기 위해서입니다.
<미국>이 <걸프전>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그 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게 된데는 그럴만한 일화가 있습니다.
<미국>이 <월남>과 전쟁할 때 공을 세운 장군 가운데 노르만 슈바스코프 (Norman Schwarzkopf)라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이 장군에게는 신화와 같은 전설이 있습니다.
어느 병사가 전투에 나갔다가 지뢰 밭에서 지뢰를 밟았습니다. 이 병사가 피를 흘리고 쓰러져있는데도 누구도 그를 구해내기 위해서 지뢰밭에 들어가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곁에 있던 소대장도 중대장도 동료 누구도 보고만 있습니다. 자신도 그런 불행을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 이 슈바스코프 장군이 그 소식을 듣고 뛰어나갑니다. 가서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가서 그 병사를 메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장군은 일약 신화적인 장군이 되었습니다.
잘못하면 자신도 희생의 제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희생제물이 되기를 각오하고 뛰어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이 <걸프전>을 하는데 바로 이 장군이 그 전쟁일 이끌었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러니까 모두 그 장군을 신뢰해서 그 전쟁이 아주 단합된 마음으로 승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장군 한 사람의 의가 모두에게 용기를 주었고 소망을 주었고 혼쾌하게 전쟁에 임하게하는 원동력을 만들어 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을 의로운 세상을 만드는 데는 이런 용기와 희생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희생하는 용기를 가지라는 말입니다.
또 우리는 "평강의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힘써야" 합니다.
평강의 삶은 가장 힘있고 조화가 잘 이루어진 삶을 말합니다. 이런 삶은 개인이나 국가나 모두에게 소망적인 삶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평강이 주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인들은 이 세상으로 하여금 평강을 유지하는 세상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 평강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가장 좋은 요소는 "나누는 삶"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부나 지식이나 재능들을 서로가 나눌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나눌 때 내 개인에게나 이 땅에 평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얻어지는 가장 큰 기쁨과 보람은 "나눔의 삶"에서 얻어집니다.
여기서 진정한 기쁨이 나오고 보람이 나옵니다. 그래서 요즘에 보면 자손에게 재산을 상속하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아주 지혜롭고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자손을 보면 더 우애 있고 효성이 깊고 살아가는 태도가 진지합니다.
오히려 많은 재산을 물려 준 사람들의 자손이 더 갈등이 많고 방탕하고 인생을 그르치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진 분들이 봉사활동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며 살아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돈이 많고 한가해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고 바쁜 시간을 쪼개서 활동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예를 들면 뜻있는 의사들이 일주일씩 휴가를 얻어서 저 오지의 나라에 가서 의술 활동을 통해서 사람들을 도와주고 마음을 나눕니다. 얼마나 만족스런 삶입니까?
금년 <노벨 평화상>은 "국경없는 의사회"가 탔습니다. 그들은 세계 어느 곳이나 필요한 곳이면 찾아가서 의술을 펼쳤습니다. 그 위험한 분쟁지역에도 찾아가서 용기있게 생명을 내놓고 자신들이 하여야 할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노벨상>을 받는데 누가 이유를 달겠습니까?
바로 이런 사람들이 이 세상을 평강의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어떤 의사는 병원에서 얻어지는 수입에서 80%를 그렇게 지출하고 있는 분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아주 작은 아파트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사람들이 모두 이 세상을 평강의 세상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얼마나 성스럽고 소중한 삶입니까?
그렇게 보면 인생은 참 성스러운 존재입니다. 한번 살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는 "희락의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사람은 이 희락의 삶을 살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희락이라는 것이 뭡니까?
희락은 세상이 아무리 어려워도 내 가슴에 찬송이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는 삶입니다. 그것이 희락의 삶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천국의 요소로 하늘이 인간에게 주시는 귀한 선물입니다.
의는 하나님을 향한 요소라면 평강은 이웃을 향한 요소입니다.
그런데 희락은 나 자신을 향해 주시는 선물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이 희락의 삶이 있어야 합니다. 이 희락의 삶은 나를 기쁘게 하고 남도 기쁘게 하고 세상을 기쁘게 만드는 삶입니다.
오늘 성경은 마지막에 결론으로 말씀하기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궁극적인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표이고 삶의 내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