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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이정익목사]오늘 가장 시급한 것(행 2:43-47)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06.08|조회수378 목록 댓글 0

오늘 가장 시급한 것(행 2장43-47)

성경본문: 사도행전 2:43-47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말미암아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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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시대는 모두 성공하려고 무던히 애를 씁니다. 또 돈을 많이 벌려고 애를 씁니다. 그리고 더 화려하고 좋은 직장에 가려고 오늘 젊은이들이 전쟁을 치르듯 경쟁하고 밤잠을 자지 않고 노심초사 합니다.

우리는 성공도 해야 하고 돈도 벌어야 합니다.

오늘 같은 시기에 사람들 보기에 좋은 직장에 가서 폼 잡고 안정되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오늘 우리에게는 그 보다 더 시급한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성으로 거듭나고 회복되는 일입니다.

 

오늘 신문지상을 뒤덮고 있는 기사들을 볼 때마다 사람들이 모두 악에 바쳐 살아가는 것 같이 보입니다.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악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겨우 말귀를 알아듣는 아이들을 어린이집 교사가 무지막지하게 구타합니다.

부모들이 아이들을 버리기도 하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합니다.

자식들이 노 부모를 버리고, 버림받은 부모들은 자식을 향하여 물려준 재산을 되돌려 달라고 소송을 냅니다.

급기야 어느 목사는 아이를 때려 죽게 하고 11개월이나 방에 방치하고 살았다고 합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오늘은 정말 사람들이 무엇에 홀려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들이 발생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세상이 무섭고 사람이 무서워집니다.

사람이 이렇게까지 살아갈 수 있나 하는 자괴감이 밀려옵니다.

이 세상이 왜 이렇게까지 되었습니까?

사람이 왜 이렇게까지 타락하게 되었단 말입니까?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가 잘못된 것입니까?.

아마도 우리 사회가 그동안 돈을 최고의 목표로 살다 보니까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이 시대는 모두 성공하고 돈을 벌려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살아갑니다.

물론 성공도 하고 돈도 벌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보다 먼저 있어야 할 것은 잃어버린 인간 존엄을 결정짓는 영성을 회복하고 거듭나는 일, 이것이 더 시급합니다.

사람이 영성으로 회복되고 거듭나게 되면 무엇보다 생각이 건강해지고 넓은 인성이 회복됩니다.

그렇게 되면 제일 먼저 나타나는 것이 이웃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마음이 회복됩니다.

사람이 좋아지고 관계가 좋아지고 마음이 서로 교류됩니다.

 

그런데 돈에 목표를 두고 살아가다 보면 가장 먼저 좋아져야 할 이 관계들이 틀어지고 악화됩니다.

이웃을 멀리하고 잃어버리게 됩니다. 가족관계에도 악영향이 미칩니다. 오늘 이 시대의 가치관이 매사 돈에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매사를 돈에 기준을 두고 살아가는 데에 문제가 있습니다. 돈에 따라 부모도 버리고 자식도 버리고 이웃도 버립니다.

돈 때문에 속이고 버리고 죽이기도 합니다. 아주 잘못된 기준입니다.

좋은 집에서 살면서 갈등과 다툼과 불화 속에 살아간다면 그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화려하고 웅장하게 잘 지어놓은 교회에서 파벌과 갈등으로 불화를 겪는다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늘은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고 성공이 아니고 그 보다 더 시급하게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영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먼저는 내가 건강한 내면을 유지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따뜻한 온기를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온기를 형제에게 이웃에게 전파해야 합니다. 이제는 너도 나도 이 영성회복을 위해 노력할 때입니다.

신앙의 삶은 내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과 영을 품고 살아가는 삶입니다. 그 삶을 영성의 삶이라고 합니다. 롬 8:9을 보면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말씀합니다.

지금 내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시면 그 영은 내 생각과 판단을 좌우하실 것입니다.

내 안에서 나로 하여금 말하게 하시고 표현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내 삶에, 내 생각에, 내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대화할 때 신앙내용에 대해서 말하고 관심을 표명합니다.

감사를 말하고 섭리를 말하고 은혜를 말하고 천국을 말합니다.

사람을 존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나누고 섬기는 삶을 살도록 노력합니다.

그것은 내안에 말씀과 하나님의 영이 내주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에게는 무엇보다도 영성을 회복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영성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그러면 영성이 회복될 때 어떤 삶의 모습이 나타날까요?

그 삶의 모습이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기독교 초기시대의 교회 공동체의 모습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령강림 후 그 당시 기독교인들은 영성이 회복되었습니다.

본문은 그 후의 삶의 모습을 소개합니다.

이 모습이 그리스도인들의 진정한 모습입니다.

☞ 모이기를 열심히 하는 공동체를 이루는 일입니다.

그중 하나는 열심히 모이는 일이었습니다. 46절을 보면“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말씀합니다. 그냥 모인 것이 아니고 열심히 모였습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에는 사람들에게 열정이 나타납니다.

제가 어렸을 때 보면 교회들이 아주 열심히 모였습니다.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또 내일도 모였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웃교회에서 집회를 하면 그곳까지 찾아가 모이기도 했습니다. 모여도 억지로가 아니고 자원해서 모였고 아주 즐겁게 모였습니다.

열심히 모이는 것은 성령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모이니까 그곳에 기적도 일어나고 변화의 은혜도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은 모이기를 싫어하는 시대입니다. 성령의 사모함도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모이기를 게을리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을 보면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그리하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시는 곳에는 모이기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성도의 모임은 성령의 역사가 동반되어야 일어납니다. 그래서 모이기를 열심히 하는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십니다. 그러니까 그 모임에 은혜가 동반되고 부흥이 동반되고 치유와 변화와 회복이 동반되는 것입니다.

부흥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은 먼저 사람을 통해 열심히 모이게 만듭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성령강림 이후 그렇게 열심히 모였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나눔의 공동체입니다.

또 예루살렘 교회는 열심히 나누었습니다. 44절을 보면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을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고 말씀합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령이 강하게 역사했습니다. 그러니까 자주 모이고 그 모임의 증거로 나누기를 열심히 했습니다.

그들은 네 것, 내 것 따지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4장 34절을 보면 “밭과 집을 팔아… 사도들 앞에 두매… 각각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다”고 말씀합니다. 또 35절을 보면 “바나바가 밭을 기쁜 마음으로 팔아 사도들 앞에 두매 사도들이 필요에 따라 나누어 주었다”고 말씀합니다.

이 바나바는 나중에 큰 전도자가 되고 바울의 전도 파트너가 되었습니다.

 

물질은 그 시대나 오늘이나 사람들의 우상입니다. 특히 오늘 이 시대는 물질이 최고의 우상이고 가치관입니다. 사람들은 물질을 지키기 위해서 생명도 버립니다.

부모도 버리고 자식도 버리고,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

누가 하나님을 위해서 이렇게 희생적으로 헌신할 수 있습니까?

오늘 사람들은 이 물질에 대해서 이렇게 충성을 다합니다.

오늘은 이 물질보다 더 큰 위력을 가진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본문 45절을 보면 바나바는 그 소중한 물질을 전도를 위해 통째로 내놓았습니다. 이렇게 소중한 물질을 내 놓을 수 있는 것도 알고 보면 성령의 역사입니다. 물질만 내놓은 것도 아닙니다. 몸도 내놓고 열정도 내놓고 인생도 목숨도 내 놓았습니다.

그것이 모두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이 내안에서 내 의지와 내 본성을 움직여서 할 수 없는 것을 할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초대교회 때 예루살렘교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 때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오늘도 그런 역사가 일어납니다.

교회를 건축하는데도 성령의 역사 때문에 우리들이 막대한 헌금을 해서 건축을 합니다.

또 우리들이 십일조 헌금도 합니다. 이것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수입에서 10분의 1을 떼어 낸다는 것이 쉬운 일입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그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그것이 모두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오늘 나의 삶에서도 이렇게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Ⅰ.교회는 교제의 공동체로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 교회는 교제의 공동체로도 나타났습니다.

본문 46절을 보면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라고 말씀합니다. 특히 여기 “마음을 같이 하여”라는 말씀은 참 중요합니다.

또 행 4:32을 보면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라고 말씀합니다. 성령의 역사는 흩어진 마음을 하나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한마음이 되고 한뜻이 되는 것입니다. 그 마음으로 “모이고 떡을 떼고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내 마음에 변화가 주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언어도 변화하고 생각도 변화해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한마음 한 뜻을 이루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위한 공동체는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주님을 중심으로 하나 되게 하는 것 그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렇다면 하나 되는 것을 분열시키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사탄의 역사입니다.

그러면 누가 분열 시킵니까?

교회공동체 안에 있는 성도들이 주체가 됩니다.

 

성도들이 한마음을 이루어야 하는데 왜 분열시키는가 하면 사탄의 조종을 받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직접 나서서 분열시키고 싸우지 않습니다.

모두 성도들을 움직여 공작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자중지란을 일으키고 분열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사탄은 교회 안에 있습니다.

교회안에서 교회안에 들어와 있는 성도들 중 몇 사람을 이용하여 공동체에 분열을 일으키게 합니다.

 

여러분은 사탄의 조종을 받아 사탄의 도구로 사용되지 않도록 조심하셔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마음을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합니다.

초대교회 때를 보면 날마다 모이고 나누고 마음을 같이 하여 떡을 떼고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었다고 말씀합니다.

그 말은 마음이 하나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 하나됨이 성령의 역사 때문입니다.

 

오늘 교회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교회를 건축하는 일이 아닙니다.

나가서 전도해서 많은 사람들을 모이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먼저 마음이 하나 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는 일부터 해야 합니다.

즉 교회가 먼저 교회되게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교회를 크게 건축해 놓고 그 안에서 싸우고 다투고 갈라지면 그곳이 무슨 교회입니까?

오늘 교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

그런데 그곳에 온갖 파벌이 있고 갈등이 있으면 그 많은 사람들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것은 가정도 마찬가지이고, 나라도 마찬가지이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이것은 내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마음조차도 온갖 갈등으로 가득 차있고 불화로 가득 차있다면 그 인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부흥도 없고 발전도 없고 성장도 없고 평화도 없고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본문 46절을 보면 “날마다 모이기를 힘쓰고 마음을 같이하여 나누고 떡을 떼고 음식을 나누고 하나님을 찬미하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런 교회가 왜 부흥이 안되겠습니까? 그런 교회에 왜 은혜가 없겠습니까?

그러니까 47절을 보면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결국 선교하는 공동체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교회공동체에 몸담게 되면 먼저 크게 변화 받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언어의 변화입니다. 언어는 참 무서운 무기입니다. 갈등을 부추기는 언어, 사람들에게 상처 주는 언어, 비난하는 언어, 파괴하는 언어들은 큰 무기와 같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함께 하시는 공동체에 몸담게 되면 먼저 이 언어가 순화됩니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의 언어부터 변화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상처를 주는 언어가 감싸는 언어로 변화하고 덧나게 하던 언어가 치유하는 언어로 변화하고 비난하던 언어가 섬김의 언어와 사랑의 언어로 변화하고 중보하고 치유하고 회복시키고 갈등을 소멸시키는 언어로 변하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는지, 내 믿음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려면 먼저 언어를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숙한 신앙인은 먼저 언어가 변화되어 있습니다. 언어가 세우고 섬기고 치유하는 언어로 변화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생각하지 않으면 입에서 불평과 원망과 불신앙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입에 불평을 달고 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늘 없음에도 감사를 말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어떤 성도는 늘 없고 부족한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불평을 말하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어떤 성도는 늘 신앙적 고백을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 안에 성령께서 함께 하시면 내 입으로 나오는 말 한마디도 순화되어 나오게 됩니다.

성령은 내 안에서 긍정을 표현하게 하고 세우는 말을 하게 하고 치유하는 말을 하게 하고 섬기는 말을 하게 하십니다. 성령이 지금 나와 함께 하시는가를 보면 내 언어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Ⅱ. 성령은 성도로 하여금 창조적인 역할을 하게 합니다.

또 성령은 우리가 창조적인 역할을 하게 하십니다. 43절을 보면 “기사와 이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말씀합니다. 여기 기사와 이적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하도록 힘을 주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물건도 통용하고 재산도 팔아 서로 나누고 한마음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맨 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 나에게 창조의 역할을 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언제나 사람을 통해서 새 일을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시는 곳마다 이런 기적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령이 하시는 일입니다.

성령은 그렇게 창조하게 하시는 영이십니다. 성령은 우리들이 상상도 못하는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성스럽게 하십니다.

 

본문 행 2:43-47의 모습을 거룩한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그 사람들이 성스러운 사람들이라는 말입니다. 그들은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을 팔아 나누고 날마다 모여 떡을 떼고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이 모임이 성스러운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성도(聖徒)라고 부릅니다.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내가 전에는 인간이었고 죄인이었고 욕망의 화신이었지만 내가 예수 안에 들어와 성령을 힘입게 되어 성스러운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 성스러운 존재들이 모인 곳이 교회공동체입니다.

거룩이나 성스러움은 비이성적이며 오감과 자아를 뛰어 넘는 신성을 경험한 것을 말합니다.

즉 절대 타자에 대한 경험이고 인간이 경험할 수 없는 경지를 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강력하고도 압도적인 경험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때 내 마음에 전율을 느끼게 되는데 그 순간 그 힘을 입게 되면 나는 그때부터 평소 내가 할 수 없던 일을 하게 되고 나눔도, 마음이 하나됨도, 고난도 감당하게 되는 신앙인으로 변화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과 성스러움을 경험하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은혜의 성스러움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때 내안에 그 성스러움의 영향이 미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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