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시90편 1-11)
성경본문: 시편90: 1-11
1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2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
3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4 주의 목전에는 천 년이 지나간 어제 같으며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5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6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7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8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에 두셨사오니
9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11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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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 대망 2021년 마지막 주일 예배에 나아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복주시기를 바랍니다.
한해 마지막 주일이라는 이 엄숙한 순간을 맞이하는 가장 합당한 말씀이 시편 90편 모세의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모세의 기도 첫 부분은 하나님의 영원성에 대조해서 인간이 얼마나 연약함과 유한함을 상기시킴으로써 뒷부분에 나올 간구의 기반을 닦고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는 표제를 살펴봅시다.
출애굽기에 나타난 모세는 능력의 사람입니다. 당대 최강대국 애굽에 열 가지 재앙을 선포한 자입니다. 홍해를 갈라서 마른땅처럼 건너가게 했습니다. 날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때로는 반석에서 샘물이 솟게 했습니다. 어떤 선지자에 못지않게 능한 일을 행한 자입니다.
또한 신명기서를 읽어보면 그는 위대한 설교자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으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기도의 사람이라는 사실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언제나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출하는 큰일을 위해서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또한 그는 구약 오경을 기록하는 일을 위해서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택하시고 감동시켰을 뿐만 아니라 존귀히 여기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온 집에서 그 맡은 일에 충성한 자였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기에 합당한 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교회에서 어떤 칭호를 얻기를 바라고 있습니까?
안수집사나 권사입니까? 장로나 목사입니까?
모든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랄 가장 영광스러운 칭호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는 일입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도록 사는 날 동안 힘써 노력합시다.
하나님의 사람은 기도의 사람입니다.
시편 90편은 모세가 드린 유일한 기도가 아닙니다. 다만 그의 드린 기도의 한 실례입니다. 시편 90편은 150편의 시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일 뿐 아니라 가장 장엄한 시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장엄함과 영원함에 대비해서 인간의 연약함을 보여준 시편입니다.
1. 신앙의 기도는 하나님을 묵상하므로 시작합니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1. 모세는 언제 이 기도를 드렸을까요?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라는 표제는 있지만 언제 그가 이 기도를 드렸는지는 기록되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의 정황을 미루어 살필 때에 이스라엘이 광야에 있을 때에 지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면 ‘비록 거친 바람이 귓가에 들리는 광야에 지금 우리가 처해 있지만, 주님, 당신의 품안에 우리의 거처가 있습니다.’라는 의미가 될 수 있습니다.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가나안 땅에서 우거하던 우리 조상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당신만이 우리의 영원한 거처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거처는 어디에 있습니까?
몸과 마음을 두는 처소는 어디에 마련되어 있습니까?
성도는 고급 아파트 대신에 하나님의 품에 그 거처를 마련하는 사람들입니다.
성도는 광야의 거친 비바람 소리를 들을 때에도 하나님의 품에서 그 순간을 지내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위로자이십니다. 그가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분이십니다.
여우는 굴에, 새는 둥지에 그 거처를 마련하지만 성도는 하나님의 품에 자신의 거처를 마련하는 사람입니다.
성도는 여기 복산동이나 매곡, 신정의 예배당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그 거처를 확보합니다.
여러분 대부분은 이사를 다녀 보셨을 것입니다.
이사를 가면 퇴거신고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하는 퇴거신고는 여러분이 사는 세상의 거주지를 옮긴 것을 의미할 뿐입니다.
여러분의 영원한 거주지에는 변동 사항이 없습니다.
화려한 왕궁도 세월 속에 매몰되기도 하지만 왕 같은 제사장이 된 우리의 신분은 결코 변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나그네의 삶 속에서도 하늘의 시민권을 확인하십시오.
그러면 순례자의 노정을 찬송으로 채울 수 있을 것입니다.
혹시 거처나 직장에 대한 불안 속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분은 없습니까?
비워 달라는, 그만 두라는 통고를 받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지만 우리의 영원한 거처, 거기에는 변동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내 안에 거하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약속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지나간 365일, 여러분은 어떤 열매를 맺었습니까?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그 사람은 열매를 많이 맺는다고 주님은 약속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90편 1절이 한 해 마지막 주일을 보내는 여러분의 묵상이 되게 하십시오.
“주여 주는 대대에 우리의 거처가 되셨나이다.”
모세는 임종 시에 열두 지파를 위해서 축복했습니다. 아셀 지파를 위해서 이렇게 축복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이 너희의 처소가 되시니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도다.”
여러분이 이 땅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이 여러분의 좋은 거처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2 우리의 거처가 되신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2절을 보십시오.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도 주께서 조성하시기 전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시니이다”(시 90:2)
만년설을 뒤집어쓴 그 어떠한 산악도 만들어지기 전에 하나님은 존재하신 분입니다.
땅과 하늘도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은 계셨습니다.
만물이 존재하기 전에 하나님은 스스로 충족하신 분으로 존재하셨습니다.
만물이 창조되기 전에도 아무런 아쉬움이 없이, 넘치는 영광 가운데 계셨습니다.
온 세상이 흑암 속에, 혼동 가운데 있던 그 때도 하나님은 빛 가운데, 질서 속에 계셨습니다.
하늘이 빛을 발하고 땅이 생명을 내기 전에 하나님은 생명으로 충만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과 저는 역사 속에 왔다가 가는 조연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하신 주연이십니다.
그 분만이 하나님 나라 역사를 확장하는 주인공이십니다. 오직 그분께 여러분의 소망을 두십시오.
히브리서 기자의 표현을 빌면 그 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분이십니다.
사도 요한의 표현을 빌면 그 분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이십니다. 그 분은 새로운 역사를 열고 오시는 분입니다.
모세의 표현을 빌리면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주는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 드릴 수 있습니다.
그 분 안에 여러분의 거처를 마련하십시오.
3 하나님의 영원성을 묵상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 자신의 유한성과 연약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은혜란 사람이 자기 크기를 발견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기 삶의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를 바로 알게 만듭니다.
망년회 회식은 자신의 처지를 잊게 만들지 모르지만 이 같은 예배는 여러분의 인간됨을 기억나게 만들 것입니다.
“주께서 사람을 티끌로 돌아가게 하시고 말씀하시기를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하셨사오니”
우리는 흙에 불과합니다. 흙으로 지음 받은 인생임을 기억하십시오.
숨이 끊어지는 순간부터 여러분의 신체는 분해되기 시작하고 결국 흙으로 환원되고 맙니다.
범죄한 인생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사라져 갈 뿐입니다.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주의 선고 아래서 인생들은 모두 티끌로 환원되고 맙니다.
올 한 해 동안 우리의 곁을 떠나간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게 참 소중한 분들, 우리 울산교회에 존귀한 분들 가운데서도 올해 떠난 분들이 많습니다.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 사람은 떠나갑니다. 사람은 죽고 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역사를 완성해 가십니다.
우리가 남길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나는 죽으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사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 조상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시리라”
하나님이 결정하시면 우리 인간은 결단 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우리를 만드셨고 그 말씀이 우리를 끝장내십니다.
어떤 사람도 자기의 결정에 의해서 세상에 오지도 않았고, 자기의 결정에 따라서 세상을 떠나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인생은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서 왔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서 돌아갈 뿐입니다.
영원하신 그 분의 손길을 지켜보십시오.
영원하신 그 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주의 손짓, 주의 말 한 마디에 여러분의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그 분의 허락 없이는 참새 한 마리도 땅에 떨어지는 것이 허락되지 않습니다.
물 한 그릇도, 밥 한 그릇도 그 분의 선하신 뜻을 따라서 여러분에게 공급되어 집니다.
하나님이 살리기로 작정하면 온 세상이 달라붙어서 죽이려고 해도 불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죽이기로 결정하면 하늘의 천사가 모두 달라붙어도 살려낼 수가 없습니다.
자기 분수, 자기 한계를 인식하면 거룩하신 그 분의 손에 우리의 남은 날들을 의탁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신앙의 기도는 자신을 돌아봄으로 그 깊이를 더합니다.
모세는 사람 사는 것을, 그 유한함을 몇 가지 비유로서 연속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1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지나간 하루 같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천년은 짧은 세월이 아닙니다. 수많은 나라가 시작하고 수많은 정권이 매몰되는 기간입니다. 새로운 사건이 나타나기도 하고 새로운 역사가 기록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이 주님의 눈에는 하루가 지나간 것밖에 되지 않습니다.
2. “밤의 한 순간 같을 뿐임이니이다.”
개역성경에는 “밤의 한 경점뿐”이란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여러분은 야간 보초를 서 보셨습니까? 저는 다행히 방위 출신이어서 밤에 보초를 서 본 적이 없습니다. 천년이라고 해 봤자 하늘 보초병하나 교체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고 표현합니다. 수많은 영웅호걸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져 간 역사의 무대를 향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3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순식간에 쓸어 가시나이다.”
갑작스러운 폭우로서 냇물이 불어서 모든 것을 순식간에 쓸어 가듯이 하나님은 인생을 그 눈앞에서 죽음으로 쓸어 가십니다. 폭풍우가 검은 구름을 몰고 가듯이 시간은 인생을 보내어 버립니다. 사람은 순식 간에 삶의 터전에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갈 뿐입니다.
4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피곤한 오후 잠간 눈을 붙여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러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실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삶은 우리의 경험 속에 꿈과 같다는 말입니다. 순식간에 사라질 뿐입니다. 우리의 꿈과 우리의 계획만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 존재 그 자체가 꿈과 같이 순식간에 사라질 뿐입니다.
5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풀은 아침에 꽃이 피어 자라다가 저녁에는 시들어 마르나이다”
사람들이, 성경기자들이 아주 즐겨 사용하기 좋아했던 주제가 풀의 꽃과 같다는 표현입니다. 아니 인생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생각해 본 사람이라고 하면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소나무가 아닙니다. 우리는 전나무가 아닙니다. 우리는 참나무가 아닙니다. 그냥 풀에 지나지 않습니다. 봄에 무수히 돋아나다가 여름 한 철 끝까지 버티지도 못하고 시드는 존재, 그것이 우리 인생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살아가다가 꽃피우고 그러다가 벤바 되어 마르는 것이 풀의 생태고 인생의 역사입니다. 풀이나 인생이나 잠간이면 모두 끝장을 봅니다.
자라다가 꽃피우고 열매 맺고 사라져 가는 것은 보편적인 과정 같기도 하지만 그것이 누구에게나 보편적인 과정은 아닙니다. 할 일 다 하고 가는 사람은 축복 받은 사람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중도 탈락하는지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 어릴 때 친구들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 가운데는 중도 탈락을 하고만, 한참 꽃피울 때도 되기 전에 벤바 되어 마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지금 생명 있음을 찬양하십시오. 생명 주심을 감사하십시오.
3. 신앙의 기도는 자신의 죄악됨을 인식함으로 간절해집니다.
그러면 인생은 어쩌다가 이렇게 유한한 존재가 되고 말았습니까? 왜 이렇게 연약한 존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까? 7절부터 11절이 그 이유를 밝혀 주고 있습니다.
1 “우리는 주의 노에 소멸되며 주의 분내심에 놀라나이다.”
인간의 유한한 것이 우연한 사건이 아닙니다. 쉬 사라지는 것은 창조주의 본래적인 의도가 아닙니다. 죄로 인한 하나님의 분노의 결과로 인생은 그렇게 사라집니다.
특히 지금 모세는 자기 눈앞에 사라져 가는 세대를 바라보면서 드린 기도라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광야 40년간의 시간 속에 벤바 되어 사라지는 동료 인생들을 바라보면서 읊는 시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모든 세대가 광야에서 소멸되는 것을 보면서 드리는 탄식이기도 합니다.
주님이 기뻐하면 우리가 살 수 있습니다. 주님이 노하시면 우리가 끝납니다. 아스팔트 위에 풀은 자랄 수 있을지언정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인생은 결코 번영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주의 분내심에 쓰러질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진노 속에 내일을 계획하는 어리석음을 범치 마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을 기뻐하지 아니하는데 여러분이 세우는 계획이 설 수 있습니까?
먼저 하나님과 더불어서 화해하십시오. 하나님의 호의 속에서 구주대망 2016년 새해를 설계하십시오.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께 의탁하십시오. 세끼 밥 찾아 먹듯이 하나님을 즐겨 하십시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삶의 소원으로 삼아 보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달픈 한 해 보내셨습니까? 지금도 목에까지 차오르는 답답함이 여러분에게 있습니까? 부르짖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때로는 이루게 합니다. 우리가 이 한 해 동안 당했던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우리를 빚어 가고 있습니다. 잠시 환난의 경한 것이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가져다줍니다.
모세의 기도에 계속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주께서 우리의 죄악을 주의 앞에 놓으시며 우리의 은밀한 죄를 주의 얼굴 빛 가운데 두셨사오니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 하였나이다.”
2 하나님이 보신 죄악은 반드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보실 수 없는 죄악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마음에 숨은 동기까지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나는 착한 사람인데 나는 이런 선한 일을 하려고 했고 이런 좋은 일을 하려고 했는데’
때로 우리는 자기 자신을 설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뒤편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신 분입니다.
모든 죄악은 그 대가를 지불하고야 맙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지금도 불변하는 진리입니다. 정오의 햇빛보다 더 밝은 하나님의 얼굴빛 아래에서 숨길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빛이신 그 분 앞에 어두움은 조금도 용납되지를 않습니다. 숨은 죄를 낱낱이 고백하는 시간을 이 해가 다가기 전에 가집시다. 그 분 앞에 있는 그대로 고백하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속죄의 피만이 여러분의 죄를 용서하십니다.
여러분의 앞날이 복되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의 심중에 죄악을 품지 마십시오.
오직 죄인의 소망은 사죄의 보혈에 있습니다.
항상 기억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9)라고 약속하셨습니다.
3. 죄악을 품고 살면 인생이 소모적입니다.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시 90:9) 다른 번역은 ‘주께서 노하시면 우리의 인생은 사그라지고, 우리의 한 평생은 한숨처럼 스러지고 맙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에만 삶은 의미가 있습니다.
사는 것이 진지해집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에만 우리의 삶이 참으로 사람의 삶답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올해가 가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부질없이 지나간다고 생각듭니까?
사는 하루하루가 보람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만나야 할 그 분을 만나 보십시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그 분을 기쁘시게 하는 소원이 자리하면, 사는 것이 황홀해질 것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사실 모세는 보통 사람보다 더 오래 살았습니다.
동시대인의 수명뿐 아니라, 요즈음의 평균 수명과 비교해도 예외적인 기록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지금 옛 족장들의 연한과 비교해서, 특히 영원과 비교할 때 몹시 짧은 것을 고백합니다.
나이가 들면 움직이는 것도 힘들고 숨 쉬는 것조차 괴롭습니다.
감각은 무디어지고 손에 힘조차 빠져나갑니다.
메뚜기도 짐이 되고 원욕도 사라집니다.
“아무 낙이 없다”고 한탄하기 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주를 아는 백성에게는 노년도 세상 사람과 다릅니다. 백향목 같이 청청하며 결실 합니다.
비록 태양이 떨어지면 열기는 사라지지만 달콤한 고요와 저녁의 시원함이 찾아옵니다.
복잡하고 분주한 날들은 이제 지나갔지만, 어둡고 무서운 밤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소망의 날로 연결됩니다.
죽을 것은 죽지 않을 것에 자리를 내어 주게 될 것입니다.
옛 사람, 낡은 신체는 잠들고 영원한 젊음으로 충만한 새 사람으로 우리가 깨어날 것입니다.
모세는 지금 수고와 슬픔뿐인 삶을 살다가 떠나가는 동료 인생들을 위해서 슬퍼하고 있습니다.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하지만 성도들은 그 날아가는 날들을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수고와 슬픔의 날이 바람에 불려서 날아간 후에 보람과 기쁨의 날이 도래하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들은 ‘세월이 흘러가는데 이 나그네 된 나는 괴로운 세월 가는 것 금할 것 아주 없네 주께서 오라 하시면 내 고향 찾아 가리.’라고 노래합니다.
한 해가 지나갈 때마다 인생이 서글퍼집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월이 흘러가는데 이 나그네 된 나는 괴로운 세월 가는 것 금할 것 아주 없네.’라고 찬송하는 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순례자의 묵상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누가 주의 노여움의 능력을 알며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모세는 주위에서 죽어가고 있는 인생들을 보고 있습니다.
모세는 그 인생이 장례 행렬 속에 살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40년 동안 60만 명이 죽어 나가는 것을 목도했어야만 했습니다.
머무는 곳마다 무덤을 남기는 진노의 여정의 길잡이 노릇을 했던 사람이 모세였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삶은 스러져 가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최후를 보면서 절규하고 있습니다.
“누가 주의 진노의 두려움을 알리이까!”
4 성경은 하나님의 진노를 있는 그대로 묘사합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관한 한 결코 과장법을 쓸 수 없습니다.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드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것인지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를 입기 전에는 알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조차도 그들은 농담처럼 여깁니다.
그러나 한날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글로서 기록한 것이 전혀 과장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사람들은 깨닫게 될 것입니다.
어떤 작가의 묘사도 실상보다 결코 지나친 과장이 아니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기억하십시오.
욕망을 따라 살다가 광야에 남긴 무덤들을 여러분 잘 기억해 두십시오.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장소를 명심하십시오.
누가 능히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구원을 얻겠습니까?
“너희 인생들은 돌아가라”고 명하시는 그 분 앞에 누가 거역하겠습니까?
좀 더 있다가 가야 되겠다고 누가 말대답하겠습니까?
말씀 맺습니다.
우리를 오늘 티끌로 돌리시고, 내일 우리를 지옥에 던지시는 하나님 앞에 두려움을 배우게 될 때에 인생은 은혜 입은 자 됩니다.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 티끌에 불과한 자신을 아는 복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영원 자존하신 그 품안에 여러분의 거처를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기도문>
“주여, 우리에게 주의 품안에 안식하는 법을 배우게 해주옵소서.
모든 짐을 내려놓고 그 영원하신 품속에 우리의 거처를 정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사는 복된 연습을 하는 우리의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영원하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유한하며 쉬 사라지는 연약한 인생, 우리를 기억해 주시옵소서.
우리의 천년이 주님께는 밤의 한 순간에 지나지 않습니다.
주의 진노 가운데 소멸되어 지지 않도록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주의 진노 가운데 소모적인 시간들이 이상 더 지속되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광야의 40년, 지나간 60년을 뒤로하고 약속의 땅에서, 영광가운데 살아가는 날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제는 우리에게 돌아와 주시옵소서.
슬픔을 당한 햇수대로 고통을 느낀 날 수 대로 우리를 기쁘게 하시고 즐겁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의 크신 행사를 저희들에게 나타내소서.
저희 자손들에게 보여 주시옵소서.
우리 손으로 하는 일들을 견고케 하여 주옵소서.
견고케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