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지용수 목사

[정근두목사]서원한 것을 지키리로다(시116:12-14)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08.01|조회수195 목록 댓글 0

서원한 것을 지키리로다(11612-14)

성경본문 : 시편116:12-14

12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14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함께 복된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이웃 여러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지난 번 한가위를 전후해서 살핀 시편 116편 말씀으로 다시 한 번 돌아갑니다.

 

12절에서 끝난 두 번째 설교였지만 오늘 세 번째 설교도 12절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12절)

그래서 지난주일 설교 중에 이번 <추수감사절>에는 내게 주신 모든 은혜가운데 열 가지만 적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저는 무엇보다도 어머니를 고달픈 인생길의 수고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으로 인해서 감사합니다.

내 나이가 어때서 . . ?”라며, 신랑 예수께서 빨리 데리러 오질 않는다고 투정하기도 하셨지만, 마침내 95년의 험난한 생애를 마감하고 아버지 품에 안긴 것이 제게는 올 한해 가장 큰 감사의 제목입니다.

 

그것도 3주간 해외에서 귀국한 지 사흘 만에, 목사 아들 주일엔 바쁜 줄 아시고 월요일 오전에, 아침 6시부터 10시까지 큰 아들, 큰 며느리와 작별의 시간을 품위 있게 가지고, 당신이 좋아하는 것과 당신의 남편이 즐겨 부르던 찬송가를 불러드리고,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라는 주일말씀을 떠올리며 드린 아들의 기도에 힘을 모아 아멘으로 응답하며 마지막 시간을 가졌으니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 시편 116편의 시인은 고백합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12절)

이 질문은 은혜를 경험한 신앙인의 마음을 잘 드러냅니다.

앞부분에서 시인은 자기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고백한 바 있습니다.

죽음의 슬픔이 자신을 얽어매고, 지옥의 고통이 자기에게 미쳐, 고통과 슬픔에 잠겨 있던 그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니 은혜롭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자기를 구원해 주셨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시인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구속함을 받은 성도는 마음 깊은 곳에서 이 감격의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습니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12절)

이 질문 속에는 구원받은 성도의 깊은 감사가 깔려 있습니다.

 

먼저 한 해를 돌아보며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헤아려보아야 우린 감사가 구체적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추수감사헌금만 드리는 대신에 한 해를 돌아보며 감사제목 12가지를 써서 함께 드리기로 제안했습니다.

교역자들의 감사제목을 간추려봤습니다.

1. 목사로 불러주시고 부르심에 합당하게 쓰임 받게 하심을 감사

2. 좋은 교회에서 좋은 동역자들과 함께 섬기며 배울 수 있어서 감사

3. 좋은 중직자들과 구역장을 만나 공동체를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 감사

4. 전반기 말씀연구모임과 주일오후설교를 통해 훈련하심을 감사.

5. 새벽마다 깨워주시고 기도하게 하심을 감사.

6. 매주 수요일 설교사역을 통해 말씀묵상과 영적인 긴장감을 늦추지 않게 하심을 감사

7. 아내와 함께 자녀를 위해 기도하며 경건한 가정을 세우게 하시니 감사

8. 아내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사랑하고 위할 수 있게 하심을 감사.

9. 아내의 삶에 위로와 회복이 있게 하심 감사

10. 학업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깊어지게 하심을 감사.

11. 다른 이들을 돌 볼 수 있는 마음과 여유를 허락하여 주셔서 감사.

12. 때를 따라 돕는 은혜로 채워주시는 주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

 

시인은 주님의 은혜로 마음의 평화를 얻었기 때문에 외적으로 뭔가 보답하고 싶어 합니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 116:13, 14)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13절) 앞에서 시인은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4절) 기도드렸습니다.

여기서는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구원을 만민에게 알리겠다는 결심입니다.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13절)

여기서는 감사의 표시로 구원의 잔을 들고, 17절이 말하는 “감사제물을 드릴 것입니다. 감사제물과 함께 드리는 구원의 잔을 들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위대한 구원을 감사하겠다고 결심합니다.

 

앞서 그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시로 율법에 정해진 전제(奠祭, drink-offering)를 드리겠다는 고백입니다.

자신의 구원을 기억하며 마시는 잔이었기에 구원의 잔이라고 부릅니다.

 

경건한 유대인들은 가끔 사적인 식사 자리에서 축복의 잔을 들었습니다.

가장이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하고 먼저 마시면 식탁에 앉은 다른 사람들도 함께 마셨습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우리도 식탁에서 마시는 한 잔의 음료수조차도 신앙의 의미를 담아내는 새로운 문화가 싹트길 소원합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다 주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가르침을 기억하며 그 나라를 위하여” “그 왕을 위하여 먹고 마시는 새로운 성도의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구원의 잔을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잔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 손에 들려준 잔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리하여 구원의 잔을 내가 들며라기 보다는 고난의 잔을 내가 받을 것으로 이해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여러분에겐 올 한해가 유난히 힘들었습니까?

속지 마십시오. 힘들 때에 우리의 원수는 속삭입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밀쳐두셨든지 아니면 아예 버리셨다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고난을 통해서 비로소 그리스도의 고난과 교제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고난의 잔은 우리에게 구원의 잔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무도 많은 은혜를 베풀어주셨기에 어떤 잔을 우리의 손에 들려주신다고 해도 아무런 이의도 제기하지 않는 성숙한 신앙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기꺼이 그 잔을 받아드리고 그의 거룩하신 뜻을 받아드리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우리의 구주, 우리의 주님께서 남기신 언행이 우리 삶의 좌표가 되어야 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요18:11)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면해 보겠다고 어쭙잖게 칼을 뽑아서 날뛰면 성도의 체신만 손상시킬 뿐입니다.

품위 있게 살면서, 마음에 헛갈림이 없이, 오직 주님만을 섬기는 삶이 우리의 몫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 여러분에겐 올 한해가 특별히 좋은 일이 많았던 해입니까?

잘나갈 때도 우리의 원수는 속삭입니다.

세상의 화려함과 쾌락에 우리의 영혼을 내어주도록 유혹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조심하십시오.

이 세상과 그 모든 아름다움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가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네 그렇습니다.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의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도다. 풀은 시들고 꽃은 떨어지나 주의 말씀은 영원토록 있도다.”(벧전 1:25, 26)라는 말씀을 영혼 깊숙이 새기십시오.

 

야고보 선생도 동일한 교훈을 우리에게 합니다.

부한 자는 자기의 낮아짐을 자랑할지니 이는 그가 풀의 꽃과 같이 지나감이라. 해가 돋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 풀을 말리면 꽃이 떨어져 그 모양의 아름다움이 없어지나니 부한 자도 그 행하는 일에 이와 같이 쇠잔하리라(약 1:10~11)

 

한 해가 멋진 해였다고요?

잘 나갈 때에 그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 여러분이 바라볼 좌표, 나아갈 항구를 향해서 눈길을 떼지 말길 바랍니다.

아무리 부요한 사람이라도 들에 핀 꽃처럼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해가 떠서 뜨겁게 내려 쬐면 풀은 마르고 꽃은 져서 그 아름다움이 없어져 버립니다.

 

세상의 번쩍거림에 현혹되지 마시고 그럴 때일수록 그리스도의 영광, 그분의 영화로운 광채를 주목하십시오.

빛나는 해와 은은한 달빛,

수많은 별들 빛나나,

주 예수 빛은 더 찬란하여,

참 비교할 수 없도다.”란 찬양을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들은 저 세상에서의 우리의 유일한 분깃일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의 내 잔의 분깃입니다.

때로는 고난의 잔이든 때로는 위로의 잔이든 하늘 아버지의 손에서 온 것으로 여길 때 그 잔에 담긴 것으로 우리는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는 하늘의 순례자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주대망 2021년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새로운 서원을 합시다.

무엇보다 먼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일에 열심을 다합시다.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찬송하는 일에 시간을 드립시다.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일에 헌신합시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축복하는 일에 동참합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또한 <추수감사절>과 같은 절기에는 감사의 제물과 함께 서원을 갚는 기회여야 합니다.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 116:14)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감사의 제물을 드리는 절기입니다.

모든 민족, 어떤 종교에서도 제물은 오늘 같은 절기에 적절한 것입니다.

내가 주께 감사제물을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겠습니다.”(시 116:17)

 

힘든 한 해였든지 멋진 한 해였든지 한 해를 주신 분께 드리는 제물은 성의가 담긴 제물이어야 합니다.

성의만 담기면 액수는 상관이 없다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액수는 성의를 나타내기도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저뿐이 아니라 여러분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사람에게 성의를 표시해도 그 액수로는 낯이 뜨거울 것인데 우린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의 삶 전부를 빚지고 살면서도, 생각 없이 혹 <추수감사 헌금>을 넣어서 나오신 분은 없습니까?

게다가 헌금은 무명으로 드리는 것이 더 성경적이라고 이름을 쓰지 않고 <추수감사 헌금>을 하시렵니까?

 

거의 바리새인급 위선적인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그 액수를 계수하는 위원들에게도 자기 이름을 밝히기는 부끄러우니까 무명이 성경적이라고 강변하는 것은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지난 20년 동안 중직자들은 기명으로 드리도록 몇 차례 부탁했습니다.

그러면 최소한 자기 이름이나 직책에 부끄러움이 없을 만큼 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직분을 생각해서 어울릴만한 헌금을 하기엔 형편이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 부끄러움이 없으면 사람들의 시선이나 입놀림에 신경을 쓰지 마십시오.

우린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공자의 제자가 아닙니다.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눈을 의식합니다.

 

그리고 환난의 날에 드렸던 서원을 떠올려 보십시오.

환난과 슬픔을 당하였을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 때 그 어려움으로부터 구원해 주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를 사랑합니다. 이는 주께서 내 목소리를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도와 달라는 나의 울부짖음을 들으셨습니다. 주께서 내게 귀를 기울이셨으므로 나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주를 부를 것입니다.”(1~3절)

 

<추수감사절>은 환난 중에 서원한대로 찬송의 제사를 드릴뿐만 아니라 약속했던 자신의 서원을 꼼꼼히 갚고 약속했던 것을 실천하는 절기여야 합니다.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시 116:14)

 

무엇보다 먼저 서원한 것은 우리가 반드시 갚아야 하는 빚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서원하고서 서원을 갚지 않는 것보다는 차라리 서원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서원을 갚겠다고 고백합니다.

지금 갚겠다는 의미입니다.

네가 하나님께 서원하였거든 갚기를 더디게 하지 말라 . . .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전 5:4,5)

 

또한 시인은 자신의 서원을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갚겠다고 합니다.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14절)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18절)

 

신앙인은 하나님께 대한 서원을 대충 해치우고자 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자기 과시를 위하여 겉치레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위하여 해야 할 일을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14절)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18절) 하겠다는 것은 자기가 하나님을 섬기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동시에 다른 사람들도 그와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도록 초청하기 위해서입니다.

건강한 성도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숨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 모든 은혜로 인해 오히려 감사 찬양하려고 소원합니다.

 

그러므로 사람들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말고 자신의 형편에 따라 떳떳하게 이름을 써서 드리는 감사헌금이길 원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한 번도 헌금봉투의 이름을 살핀 적이 없습니다. 혹 본적이 있더라고 기억하지 못합니다.

 

어쨌거나 여러분은 하나님께 드렸는데 왜 제가 이름을 살펴보겠습니까?

하나님이 즐겨 받으셨다면 됩니다.

그러나 우린 죄인이라서 무기명이 성경적이라고 우기고, 오랜만에 만난 손자에게 쥐어주는 돈보다도 못한 감사헌금을 드리고도 자신을 돌아보지 않을까봐 걱정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의 연보를 드리는 자들은 또한 이웃에게 선을 행하는 것과 서로 나누어 주는 일에 인색하지 않습니다.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면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던 것뿐 아니라 그들이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 8: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릴 사랑하시듯이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선을 행하는 것과 서로 나누어주는 일에 동참합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물이기 때문입니다.

오직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누어 주기를 잊지 말라. 하나님은 이 같은 제사를 기뻐하시느니라.”(히 13:16)

 

<추수감사절>은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는 절기이면 좋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대한 믿음의 감사와 찬양이 마음에 자리하면 우린 관대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후히 주신 것으로 우릴 위해서는 아껴 쓰고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는 아낌없이 나누어줄 때 하나님의 이름이 열방가운데 찬송을 받습니다.

 

하다못해 여름 헌옷을 가져오는 일도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쓸데없고 비용이 들지 않는 것만 이웃의 것으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주의 이름에 합당한 것을 주께 드리는 <추수감사절>이길 원합니다.

 

오늘 추수감사의 예배의 자리에 오신 성도 여러분,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실 때마다 무엇으로 보답할까?”라는 질문을 가져야 성숙한 성도입니다.

무슨 방법으로 드려야 할까를 생각하는 성숙한 신앙의 자리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라고 결단하는 <추수감사절> 되길 바랍니다.

이제 감사의 마음으로 우릴 위해 전부를 주신 주님의 성찬으로 나아갑시다.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