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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정근두목사]시냇가에 심은 나무(시1: 1- 3)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08.02|조회수109 목록 댓글 0

시냇가에 심은 나무(11- 3)

성경본문: 시편1: 1-3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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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복된 자리에 함께 하신 이웃 여러분,

이번 여름은 무척이도 더웠습니다. 무더운 날씨 때문에 잘못하면 모든 생활의 리듬이 깨어지고 경건훈련조차 중단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날씨가 무덥다고 모든 것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삶을 살지 않았기를 바랍니다.

 

덥든지 춥든지, 바쁘든지 한가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해야 신앙이 자랍니다.

영적 영역에는 휴가가 없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더워도 세끼 밥은 먹어야 하고, 숨 쉬는 일도 멈출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만나인 성경을 읽고, 영적 호흡인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복 있는 사람은 . . .”으로 시작되는 시편 1편은 주님이 주신 <산상보훈>을 기억나게 해 줍니다.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축복을 선언하시고 또한 그 축복의 길을 보여주시기를 기뻐하시는 분이 우리가 오늘 예배하는 성경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복의 근원일 뿐 아니라 그 복을 나누어 주시기를 즐거워하십니다.

 

사람들과는 다르죠?

사람들은 좋은 것을 혼자 가지려고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복을 나누어 주시는 것을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특징적인 성품이 복주시기를 원하시는데 있습니다.

복 주시는 하나님,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오늘 예배할 수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은혜입니다.

 

사람들은 모두 복 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도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시편 1편 전반부를 통해서 복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살펴봅시다.

 

먼저 시인이 말하는 복을 받는 사람은 무엇을 멀리할까요?

.신앙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충고를 멀리합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요즈음 같은 열대야에 밤마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앉아 있지는 않습니다. 거나해지면 온갖 욕지거리를 입에 담는 사람이라고 볼 필요는 꼭 없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은 신앙이 없는 사람임에 분명합니다.

하지만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모두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 가운데는 전기료 폭탄이 무섭긴 해도 어쩔 수 없이 에어컨 켜고 열대야를 넘기다가 주일에는 예배하는 장소를 찾기도 합니다.

더운 날에도 가난한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좋은 이웃이기도 하고, 존경을 받을만한 사람일 수 있습니다. 공무원일 수도 있고 국회의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신앙이 없다고 해서 이런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라는 법이 없습니다.

다만 이들의 결정적인 허물은 가장 중요한 본분을 망각하고 산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창조주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인간의 기본 도리를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지 않고 살기에 하나님을 위한 여지가 조금도 마련되어 있질 않습니다. 더운 여름에 선풍기도 없이 비지땀 흘리는 가난한 이웃을 생각하며 친구와 친척을 기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십계명의 둘째 돌판에 기록된 이웃에 대한 의무는 그나마 어느 정도는 지킨다고 말할 수 있지만 첫 번째 돌판에 기록된 하나님을 향한 의무는 깡그리 무시하고 사는 자입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은 다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이며 하나님을 그 생각 속에 두고 사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려는 열망을 가진 자입니다. 바로 이것이 신앙이 없이 사는 사람과 신앙을 가진 사람이 결정적으로 다른 점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세상이 무엇이라고 하는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이 어떻게 보실까를 중시합니다.

이게 요즈음 유행이냐?”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이 세상의 흔적은 모두 사라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게 대박을 터트릴 것이냐?”에도 무관심합니다.

잃든지 얻든지, 오히려 상호간에 약속을 지키며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지를 관심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릴 것인지를 추구하기에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돈 되면 무슨 짓이라도 하려듭니다. 이득이 있으면 어떤 일이라도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거짓말도 불사하고 속이는 일도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달라야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이 없는 사람,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의 원리나 표준에 따라 살지 않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악인이 신봉하는 원리대로 따라 살지 않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공부를 해도 그렇고 시험을 치러도 그렇습니다.

 

교제나 결혼을 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취직이나 사업을 하여도 마찬가지입니다.

악인이 추구하는 목표나 생활원리에 따라 살지 마십시오.

내적 은혜가 풍성한 사람은 외적 삶의 방식이 달라집니다.

 

더 나아가 복 있는 사람은

2. 죄인들의 삶의 모습을 멀리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심령에 깃든 사람은 삶의 모습이 죄인들과 같을 수 없습니다.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죄인은 하나님의 표준에 미치지 못하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표준을 넘어서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죄인은 하나님의 표준에 어긋나는 삶을 사는 자입니다.

죄인들의 뚜렷한 특징은 쾌락을 위해서 삽니다.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기보다 더 합니다.

 

물론 신앙인도 즐기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것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만난 다음에는 더 이상 세상적인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고 고백합니다.

즐거움을 위해서 죄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수천가지가 되어도 성도들은 그 모든 것을 따르지 않습니다.

동시에 신앙인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수많은 즐거운 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같은 방향으로 달음질하지 않습니다.

 

물론 세상 사람들은 그런 우리의 모습을 조소하고 조롱할 수도 있습니다.

조크로 취급하거나 재미거리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인은 죄인의 길을 떠납니다.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여도 성경이 금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어떤 태도나 행위에 대해서는 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좋은 신앙인은 신앙에 도움이 되지 않는 텔레비전 프로 앞에 시간을 죽이지 않습니다.

 

나쁜 프로그램을 바라보고 있으면 용인하게 되고, 마음으로 수용이 되면 결국 행동으로 모방하게 됩니다.

그 결과 나쁜 길, 악한 행동을 본받게 됩니다.

 

죄인의 삶의 방식을 추종하지 마십시오.

부정, 부패, 뇌물이나 속임수를 사용해서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삶을 버리십시오.

누가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사는 자들인지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자기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자들과 친구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처음에는 죄인이었지만 이제는 예수의 피로 씻음을 받았습니다.

그 피로 씻음을 받아 마음이 새로워진 사람은 동일한 중생의 체험을 받은 자들과 더불어 지내기를 원합니다.

 

여러분이 어울려 다니는 친구들은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의인의 회중에서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맛본 자라면 엿새 동안의 삶에서 자신의 친구를 선별합니다.

이전에는 아무나 좋은 친구였지만 이제는 좋은 친구가 따로 있습니다.

 

아직도 누구든지 긍휼히 여기지만 본받을 만한 친구, 시간을 함께 하고픈 친구는 아무나 될 수 없습니다.

어울리는 친구들로 인해서 신앙생활에 손해를 보지 마십시오.

신앙성숙에 방해를 받지 마십시오.

그들이 주장하는 생각에 오염되어 영적인 침체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 하십시오.

엿새 동안 여러분이 만난 친구들의 이름을 적어 보십시오.

그들 중의 몇 명이 좋은 삶의 방식을 보여줄 만한 사람입니까?

추한 농담, 무절제한 행동으로 소일하는 자들에게서 멀어지십시오.

복 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복 있는 성도는

마지막으로 오만한 자들의 자리를 멀리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고, 거룩을 조롱하는 무리와 어울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 사는 자는 하나님을 함부로 말하는 이들과 한 패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분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을 함부로 말하는 자들과 어떻게 같이 지낼 수 있습니까?

오히려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이름이 무시를 당할 때 그 피가 역류해야 마땅합니다. \악한 자가 하나님의 법을 무시할 때 거룩한 두려움을 느끼는 자입니다. 그러기에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피하며 선한 것을 붙잡는 자입니다.

 

 

오만 한 자, 그는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불손합니다.

하나님의 법에 미치지 못하는 자를 죄인이라고 한다면, 오만 한 자는 하나님의 법, 그까짓 거 무슨 소용이 있냐고 큰소리치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밥 먹여주냐? 옷 입혀주냐?”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스스로 교만하여 그 악한 생각을 기탄없이 내세우며 실행하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생각 속에는 세상에서 무서울 것이 없고 높아질 대로 높아져 있지만 실상은 지옥 문 앞에 살고 있는 자입니다.

 

그들의 모임에 함께 어울리지 않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들의 재앙에 동참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사단의 말에 귀를 기울이므로 첫 여인 하와는 세상을 파멸로 몰아넣었습니다.

동일한 유혹에 귀를 기울일 때 그 날 이후로 얼마나 많은 재난들이 세상에 몰려 왔는지 모릅니다.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서 멀어지십시오.

세상을 살면 어쩔 수 없이 세상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일들이 있지만, 복 있는 사람은 죄인들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학교도 함께 가고 군대도 함께 가고 같은 직장에 다니지만 그들과 깊은 우정을 나눌 수는 없습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과 결혼을 더더욱 선택할 수 없습니다.

 

사업상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습니까?

물론 그들처럼 나쁜 삶을 살지는 않는다고요?

하지만 결국은 물이 들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의 방식대로 따라 살지 마십시오. 더더욱 오만한 자들과 어울려 지내서는 안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과 더불어 어떤 면도 함께 해서는 안 됩니다. 생

각으로도 그들에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수긍하고 나면 자신도 모르게 실천하게 됩니다. 실행하다 보면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단계로 나아갑니다. 자기 죄를 옹호하게 되는 더 나쁜 자리로 빠져들게 됩니다.

 

악인, 죄인, 오만한 자라고 하여 점점 심한 단계로 나아갑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지만 죄의 정도나 죄를 짓는 모습이 꼭 같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죄 가운데 살면 살수록 그 정도가 점점 악화됩니다.

1절에 나오는 동사를 눈여겨보십시오. “따르지 아니하며. . . 서지 아니하며. . . 앉지 아니하고

음에는 따라 다니다가 다음에는 머물러서고 마지막에는 아예 주저앉는 단계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악인의 생각을 본뜨고 다음에는 악인의 생활 습성을 닮아가고 마지막에는 오만한 자와 동일한 입장을 취하게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무엇을 즐거워합니까?

사람들은 누구나 즐기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텅 빈 진공상태로 둘 수는 없습니다. 무언가로 채워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무가치한 것으로 채울 수도 있습니다. 실망스런 것으로 채울 수도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비유를 아시지요? 악한 자가 그 마음을 떠나 있다가 돌아와 보니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었습니다. 그랬더니 자기보다 더 악한 자 일곱을 데리고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곳간에 알곡으로 채우지 아니하면 여러분의 대적은 그 곳을 죽정이로 채우려 들 것입니다. 깨끗한 강물이 흐르지 아니하면 더럽고 냄새나는 물이 흘러갈 것입니다. 뭔가 즐거워 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마음을 채우십시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사람들은 진정한 가치가 있는 곳을 찾지 못합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정월부터 섣달까지 항상 바쁘게 설치다가 진정한 기쁨을 놓치고 삽니다. 빛나는 눈과 미소를 띤 얼굴로 살도록 하나님은 의도하셨지만 삶의 참된 아름다움을 상실하면 그 자리에 화장, 분장, 변장할 뿐입니다. 얼굴 치장이 최대 관심사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내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 37:4)

물론 신앙생활을 정신건강을 위해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얼마간의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성소를 강도들의 소굴처럼 은신처와 안식처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엿새 동안 온갖 나쁜 삶을 살다가 여기에 와서 마음에 평안을 얻는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복 있는 사람, 좋은 신앙인은 다릅니다.

참된 신앙인은 거룩한 기쁨을 맛보며 나아옵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기쁨이 그 무엇보다 큽니다. 성도들과 함께 예배하고 교제하는 기쁨, 세상에서 달리 찾을 수 없는 즐거움입니다.

 

그러면 우리 신앙인은 왜 성경으로 기뻐해야 합니까?

그것은 여호와의 율법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하나님의 것이라면 성도들의 기쁨의 대상입니다. 객지 생활을 할 때 부모님이 보내주신 것을 기뻐하는 자녀처럼 하늘 아버지께서 보낸 편지이기 때문에 우린 기뻐합니다.

 

사실 다윗이 가진 성경은 오늘 우리가 가진 성경과 비교해 볼 때 아주 빈약했습니다.

졸졸 흐르는 개울물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갈수록 풍성해져서 지금은 큰 강을 만들고 있습니다.

만약 다윗이 그 개울물을 두고도 기뻐했다면 우리는 그보다 열배는 더 기뻐할 수 있습니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깊은 마음에 담긴 계획을 우리가 알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당신의 사랑의 마음을 깨닫기를 바라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뻐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권위, 하나님의 확신, 하나님의 기쁨을 우리에게 선물하기 때문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면 우리가 성경말씀을 기뻐하며 읽어야 할 이유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성경은 오래된 책입니다.

골동품을 모우는 사람들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하다못해 찌그러진 동전까지도 옛 것이라고 하면 수집을 합니다. 금이 간 그릇조차 돈을 주고라도 사들입니다.

 

이 성경말씀은 여러분이 대하는 어떤 기록이나 책보다도 오래된 것입니다.

<삼국유사>, <삼국사기>라고 해도 천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기록은 그 가운데 가장 최근에 기록된 책이라도 2천년 가까이 되었습니다.

우리 손에 있는 이 책은 오래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으로 빛나는 책입니다.

 

또한 우리는 그 법이 공정하기에 즐거워합니다.

세상 모든 기록은 아무리 공정해도 어느 정도 편파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절대 공정합니다.

제대로 <성경>을 이해했다면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비록 사람들은 자기를 미워해도 그는 이웃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탁월한 지혜 때문에 우리는 <성경책>을 사랑합니다. 다른 어떤 책에서도 얻을 수 없는 지혜를 얻기 때문에 사랑합니다. 물론 천문학과 지질학에 대한 교본으로 삼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과학, 하나님의 탁월한 지혜를 여기서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린 이 책을 통해서 자신에 관해서 그리고 하나님에 관해서 배울 수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접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극한 지혜입니다.

게다가 <성경>은 참되기에 우리는 사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점일획조차 틀림이 없습니다. 천지가 없어져도 그 말씀 하나도 훼손되지는 않습니다. 하늘과 땅은 풀어지겠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다 이뤄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가 사모해야 할 이유는 그 말씀이 달콤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꿀보다 송이 꿀보다 더 달콤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바로 읽으면 성도의 가슴은 뛰게 마련입니다. 가나안 땅을 바라보고 뛰었던 모세의 가슴처럼, 그 말씀을 사모하는 여러분의 가슴은 기쁨으로 뛰놀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말씀을 사모해야 할 이유는 그것처럼 유익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최고의 부를 가져다주며 영원을 위한 보물을 허락합니다.

자, 이제 여러분이 진지하게 답할 차례입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말씀을 규칙적으로 읽느냐고 묻는 것이 아닙니다.

기쁨으로 즐거워하며 밤낮 묵상하는지를 묻습니다.

 

의무감으로 매일 읽으면 <성경>에서 달콤한 메시지를 듣지 못합니다. 의무감으로 <성경>을 읽는 것은 진정한 경건의 표시가 아닙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은 날마다 <성경>을 읽고 주야로 묵상하지만 부담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치 입안의 사탕처럼 녹여가며 맛보고 즐거워합니까?

병들었을 때 건강해 지는 것처럼 좋아합니까?

가난한 자가 부해지는 것처럼 기뻐합니까?

이것이야말로 복 있는 사람의 진정한 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을 갖는 사람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시간을 가진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읽기를 즐거워하십니까?

그렇다면 그것은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된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기뻐하십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증표입니다.

무엇을 하면서 하루 24시간을 보냅니까?

여러분의 시간을 무엇이 점유하고 있는지를 살피면 여러분의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음도 진공상태로 비워둘 수 없지만 여러분의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언가로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채우고 있습니다. 일주일 168시간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가운데 아무도 올 한해를 살면서 시간을 저축해 두지 못했습니다. 아껴서 다음에 쓰려고 모아두지 못했습니다. 하루 24시간, 지난 8개월을 모두 다 사용했습니다.

신앙이 있든 없든 누구나 해야 하는 시간도 하루 일정에는 있습니다. 잠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직장을 가는 시간, 집에서 가정을 꾸려가는 시간들은 누구나 사용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시간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효용가치를 높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잘 사용하면 더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소위 개인적인 시간들이 있습니다. 스마트 폰이나 텔레비전을 본다든지, 아니면 잡지나 책을 본다든지 하는 시간으로부터 시작해서 전화로 수다를 하거나 아무 하는 일 없이 빈둥대거나 낮잠을 자거나 하는 행동으로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채우기 때문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시간을 사용하는 데서도 세상 사람들과 다릅니다. 틈만 나면 스마트폰만 보질 않습니다. 틈틈이 성경을 듣고 읽습니다. 텔레비전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밤에도 묵상할 시간을 찾아냅니다. 올림픽의 영웅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보다 자신이 믿음의 영웅으로 서게 되는 것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은 <성경>을 읽을 뿐 아니라 성경을 듣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읽는 것만 헤아려 몇 독(讀)을 물었지만 저는 십 수 년 전부터 성경을 듣는 것도 동등한 의미를 부여합니다. 읽는 일은 자리에 앉아서 할 수 있지만, 듣는 일은 서서 다른 일을 하면서도 가능합니다.

집중하지 않아도 될 단순한 일들은 들으면서 할 수 있습니다. 그릇 씻는 일도 그렇고 콩나물을 손질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운동할 때도 음성파일을 들으면서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운전할 때도 훈련만 하면 듣는 것을 동시에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이 곡식이 익어가는 과정이라면, 묵상은 타작을 하고 방아를 찍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을 듣거나 읽는 것이 마치 소가 여물을 먹는 것이라면 묵상은 마치 되새김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귀로 음성파일을 듣거나, 눈으로 성경을 읽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묵상할 때 영혼의 양식을 씹어 소화를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수십 독(讀), 수십 청(聽)을 하는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태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으로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태도는 여러분의 영적 신분을 보여줍니다.

그런 마음으로 주야로 묵상하면 여러분의 영혼은 날마다 부요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얼굴빛은 주님을 닮아가게 될 것입니다.

 

가을바람과 함께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는 훈련을 해 보시지 않겠습니까?

말씀 사모하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십시오.

한번 훈련이 되면 다음부터는 이 일을 훨씬 쉽게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은 하루 24시간 중 몇 분 동안을 말씀과 더불어 지냅니까?

하나님의 법이 여러분에게 즐거움으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주야로 묵상하십니까?

 

땅에 있는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 여기에 있습니다.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남도록 하나님이 의도하신 축복의 방편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달리 특별한 방도가 없습니다.

묵상을 통해 하늘의 즐거움을 맛보십시오.

성도가 말씀을 통해 즐거움을 얻지 못한다면 어디서 기쁨을 누리겠습니까?

 

여기 저기 기웃거리고 헤맬수록 더욱 고갈될 뿐입니다.

인터넷 서핑은 여러분을 만족시켜 주지 않습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삶의 즐거움이 없습니다. 사업이 아무리 잘되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백성인 이상 여러분의 즐거움은 하나님으로 부터 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이 누리는 복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생명의 복을 누리는 것을 시냇가에 심긴 나무와 같다고 묘사합니다. 복 있는 사람이 사는 땅은 메마른 땅, 죽음의 땅이 아닙니다. 그의 삶은 세상 사람과는 생판 다릅니다. 성경을 묵상하는 사람은 산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사방이 다 가뭄에 타들어가지만 시냇가에 심긴 나무처럼 철을 따라 그 열매를 맺습니다. 은혜의 수액이 그의 삶에는 흐르고 있습니다. 그 뿌리가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심겨진 나무입니다. 땅에 심긴 나무처럼 요동함이 없습니다. 땅에 뿌리를 잘 박았기 때문입니다.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흩날리지만 의인의 삶은 여호와께서 붙들고 계십니다. 굳건한 기쁨과 지속적인 즐거움이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의 몫입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성도는 영적으로 자랍니다. 가뭄에 시달리지 않는 나무는 위로 아래로 옆으로 사방으로 그 가지를 뻗치며 무성하게 자랍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풍성한 성도는 주님의 형상을 닮아가기 위해서 애씁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성도, 주야로 묵상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습니다.

그러면 누가 그를 시냇가에 심었습니까?

하나님이 친수로 우리를 당신의 은혜의 강가에 심어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책임지시고 공급하십니다.

사막에 심긴 것도 아닙니다. 강물이 뿌리에 닿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입니다. 그는 항상 주인의 음성을 듣습니다.

여호와를 의뢰하고 선을 행하라 땅에 머무는 동안 그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을지어다.”(시37:3)

 

말씀을 사모하며 밤낮 묵상하는 자를 하나님은 아름답게 보십니다.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같습니다.

하긴 나이를 먹으면 이전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전에는 젊고 예뻤지만 이제는 예쁘기만 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은 비록 젊음의 아름다움은 사라지지만 인격의 아름다움은 새롭게 자리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며 밤낮 묵상하는 사람은 젊은 감람나무와도 같고 늙은 백향목 같습니다. 노년이 되어도 신부화장을 한 것처럼 신앙의 아름다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 모든 것 위에 철을 따라 열매를 맺습니다. 젊은 때에 어울리는 열매가 있고 노년에 어울리는 열매가 따로 있습니다.

만사가 잘 될 때 맺는 열매도 있으며 환난 가운데도 맺히는 열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릇 의인의 길은 항상 인정을 받습니다. 혹 세상의 물질을 잃게 되면 더욱 하늘의 상급을 사모하게 됩니다. 세상 것이 떠나가면 하늘의 것이 더 가깝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다는 비유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만듭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나무의 모습이 여러분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여러분이 걷는 길을 점검해야 합니다. 무엇이 여러분의 시간을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좋은 신앙인이라면 악인의 생각을 버리고 죄인의 삶을 떠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동참하지 마십시오.

날마다 말씀을 사모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자리로 나가가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생명이 넘칠 것입니다.

철을 따라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조차 마르지 아니할 것입니다. 여러분의 하는 모든 일에 형통함의 복을 누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남은 생애는 꼭 말씀을 사모하며 묵상함으로 얻는 모든 신령한 복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말씀이 주는 복을 받지 못하면 하나님의 저주를 상속하게 될 것입니다.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면 불에 던져져서 파멸될 것입니다.

지금껏 말씀을 사모하지 않는 삶을 사셨다면 이제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말씀을 사모하는 여러분의 결단은 여러분의 남은 생애를 복되게 만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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