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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정근두목사]후대하시는 하나님(시116: 1- 7)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08.02|조회수302 목록 댓글 0

후대하시는 하나님(1161- 7)

성경본문: 시편116: 1-7

1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2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3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5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6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7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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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추석인데도 불구하고 본 교회당에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일에 우선순위를 부여한 성도 여러분이 남아 있어서 좋은 교회 울산교회가 맞습니다.

 

오늘 저는 감사의 절기 한가위에 주님 앞에 나아온 여러분과 함께 “후대하시는 하나님이란 제목으로 시편 116편을 살피려고 합니다.

시편 116편은 추석과 같은 감사의 절기에 살펴보기 합당한 시입니다.

신앙의 시인이 노래한 이 감사의 시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처음 두절은 서론이면서도 이 시 전체의 결론처럼 보입니다.

두 번째 부분은 3절에서 7절까지 그 결심에 도달한 구체적인 사연을 풀고 있습니다.

세 번째 부분은 8절에서 12절로 다시 한 번 자신이 받은 구원을 회상하며 은혜의 보답을 어떻게 할 것인지 스스로 자문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 부분은 구체적인 서원의 이행을 기술합니다.

 

오늘 설교는 1절부터 7절에 한정해야 하겠습니다.

말하자면 처음 두 부분을 살피는 것으로 한가위를 맞이해서 드리는 주일예배 설교를 대신하겠습니다.

하지만 이 두 부분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하시길 바랍니다.

첫 부분을 봅시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1, 2절)

오늘 시편 116편은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 시작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신앙은 무엇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시편 18편에도 비슷한 고백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신앙인은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그 무엇보다도, 그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그 사랑이 여러분을 이 자리로 인도하셨는지 살펴보셔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이 무서워서도, 아니면 자기의 관습에 따라서도 교회당에 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자신이 속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이 이 자리로 여러분을 인도했기를 바랍니다.

 

신앙의 시인은 더 나아가서 현재의 고백뿐 아니라 미래의 결심까지 밝힙니다.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그렇습니다. 신앙인은 또한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드리되 쉬지 않고 평생 동안 그 분께 기도하리라고 각오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면서 힘들면 언제나 여러분을 가장 환영하는 곳을 찾으십시오. 고향의 부모친척도 여러분을 환영하지만 하늘 아버지만큼 반갑게 여러분을 맞이하는 분은 없습니다.

반갑게 맞이할 뿐 아니라 제대로 대접해주실 분은 하늘 아버지임을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그러기에 성도들은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위에 넘치는순간에도 하나님을 찾습니다.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할때에도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는 것을 중시합니다.

그러므로 명절이지만 좋으신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로 잘 오셨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예배의 자리를 귀히 여기는, 평생에 기도하는 일에 헌신하는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주님을 사랑하는 자리에, 주님께 기도하는 복된 자리에 이르렀습니까?

 

흔히 사랑은 맹목적이라고 합니다. 사랑을 하면 눈이 먼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랑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 때에 더 깊은, 더 강한, 더 풍성한 사랑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오늘 시인은 우리를 대신하여 그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눈이 멀어서가 아니라 분명한 이유를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나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을 체험하고 나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할 수 없습니다.

 

보십시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를 신약 사도는 고백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1서4:19)

오늘 시인이 여호와 하나님을 사랑했던 것은 기도를 들어주시는 그분의 사랑 때문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시인은 여기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내 음성으로 소리를 내어서 기도하는 것은 신앙에 유익이 많습니다.

생각을 정리하고 졸음을 멀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때로는 음성을 높여도, 너무도 큰 고통 속에서는 제대로 된 말로 기도할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고 다만 신음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신음소리조차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자, 하나님의 평안을 바라보는 자, 너의 모든 것 창조하신 우리 주님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는 주만 바라볼찌라”고 권면합니다.

 

물론 우리의 기도는 언제나 신음일 수는 없습니다.

때때로 분명한 내용으로 힘 있게 부르짖기도 합니다.

최선을 다한 우리의 간구를 들으시므로 오늘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자주 하나님께 나아가십시오.

하나님께서 영접해 주십니다. 상한 마음의 부르짖음도 들으시고, 균형 잡힌 간구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어떤 기도라도 모두 들어주시고, 부족한 표현조차 완벽하게 응답하시는 분이기에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기도응답을 받을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게 됩니다.

기도의 문이 열리면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간구의 문이 열리면 축복의 문이 열립니다.

입을 크게 벌려 부르짖는 성도님들 되십시오.

올해 마지막 분기 닛시기도에 참여해 주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울산교회 기도시간이 아름답다는 소문이 나도록 가을에는 기도합시다.

매일 기도응답을 받을 때에 지속적인 사랑이 넘쳐납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사랑하고 싶은 소원을 가지신 여러분, 자주 하나님께 아뢰십시오. 그러면 더 성숙한 자리로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시인은 고백합니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여기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라는 표현을 눈여겨보십시오.

존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를 들으시려고 몸을 굽힌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마치 자상한 의사처럼, 사랑하는 친구처럼 거의 알아들을 수 없는 희미한 음성이나마 들어보려고 아픈 사람에게 귀를 기울이는 모습을 떠올려보십시오.

우리의 기도가 너무도 약해져서 우리 자신도 그 소리를 거의 들을 수 없을 때에도 하나님은 귀를 기울이시며 우리의 간구를 들으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한 번 우리의 도움을 받고 나서, 앞으로 평생 동안 계속 도움을 청하겠다고 말하면, 우리는 그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릅니다.

성도들이 계속 하나님께 도움을 청할 것을 결심할 때 이를 매우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무궁하신 하나님을 지금 여러분은 예배하고 있습니다. 이제 평생토록 그 분께 기도하며 그분을 찬양하기로 결단합시다.

 

주를 사랑하기로 결단한 자들은 노래합니다.

내 평생 사는 동안 주 찬양하리

여호와 하나님 내 주를 찬양하리

주님을 묵상함이 즐겁도다

내 영혼 주안에서 참 기쁘리

내 영혼아 주님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

내 영혼아 주님을 송축하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양하라

 

평생토록 주님을 찬양하고 주님께 기도하기로 결단하면, 일생토록 우리는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일생토록 헌신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뜨거운 기도와 열정적인 찬양의 습관은 여러분을 영적으로 성숙시키는 지름길이 될 것입니다.

 

두 번째 부분으로 갑시다.

왜 시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만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까?

그것은 고통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을 돌아보며 그 때 드린 기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려운 시절은 기도하기에 좋은 때입니다.

이상하게도 우리 대부분은 평안할 때에 기도하는 것은 오히려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어려워질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게 됩니다.

달리 기댈 데가 사라져야 우린 하나님을 찾나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기도할 때 시인의 처지는 어떠했습니까?

죽음에 던져진 자신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미치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3-4)

 

마치 죽음이 저승사자처럼 포승으로 자신을 묶으려고 하는 것 같고, 사냥꾼들이 사냥개와 더불어 사슴을 에워싸서 달아날 길을 막아버리듯이 절망적인 상태였습니다.

사망의 줄뿐 아니라 음부의 고통이 그를 사로잡았습니다.

사망의 줄에 매여 스올의 감옥으로 끌려가는 모습입니다.

스올이란 고통스런 곳입니다. 다시 희망이란 바랄 수 없는 곳입니다.

 

죽음 앞에서 한 많은 사연들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뒤를 돌아볼 때 위로를 찾을 수도 없고, 현재를 보아도 희망은 없습니다.

아내와 자식들과 사랑하는 친구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합니다.

게다가 미래를 보아도 어둡습니다.

저 세상을 생각하면 더욱 깜깜합니다. 내세를 준비하지 못하고 죽음 앞에선 사람의 고통이란 가히 절망적입니다. 환난과 슬픔을 동시에 경험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길이 다 막힌 상황이기에 시인은 위를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죽음과 음부의 세력에서 달리 그를 건져줄 수 없기 때문에 주님을 바라보며 기도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죽음 앞에 섰을 때 비로소 가장 진실한 기도를 드린다고 합니다.

언제나 기도할 수 있지만 가장 열악한 처지에서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사실 극한 상황에서는 사람들에게 호소해 보았자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극한 상황에서는 하나님께 부르짖어도 별 수 없이 보일 수도 있습니다.

마귀는 우리에게 헛수고 말라고 속삭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때에 여러분의 믿음이 전면에 부각되어야 할 순간입니다.

온 영혼을 기울여 하나님의 이름을 불러야 합니다.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이 말은 주님의 이름을 부른다는 의미이고 주님을 찾는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달려갈 수 없을 때라도 여러분을 그 분을 부를 수 있습니다. 불러서 아뢸 수가 있습니다. 궁핍한 처지를 호소할 수 있습니다.

지금 처지가 어렵습니까?

한가위 명절조차 여러분을 짓누르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이름으로 간구해보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은 도와주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름을 통해서 주님이 어떤 분인지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 선하신 이름을 통해서 주님을 더욱 잘 알게 됩니다.

그러기에 구약시대 성도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불러 기도를 시작했으며 신약시대 성도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끝맺습니다.

 

여기 시인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너무나 짧은 기도입니다.

짧은 기도이지만 간절하고 심오한 기도입니다.

죽음 앞에 선 사람은 상투적인 기도의 형식을 찾을 겨를이 없습니다.

이 기도 속에는 우리의 모든 소원이 다 담겨 있습니다.

이제 5절을 보십시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자비하시도다.”(5절)

4절에서는 기도하다가 5절에선 갑자기 찬양합니다. 중간에 뭔가 빠진 것 같습니다.

시인은 기도 응답을 바라보고 미리 찬양한 것일까요? 아니면 기도하던 구원을 경험하고 바로 찬양에 들어갔을까요?

 

신앙의 시인은 4절에서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라는 간절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 때 주님은 은혜롭고 의롭고 자비하신 분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분은 은혜와 의로 인해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십니다.

 

죄인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은 은혜로 말미암는 일이요 의로우신 분이기에 백성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아니하십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은혜와 의가 가장 잘 나타난 곳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주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은 그 의를 만족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또한 자비하신 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자는 그분의 자비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아니하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비하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입니다.

은혜와 자비 가운데 하나님의 의는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로우시고 의로우시고 긍휼이 많으신하나님을 만난 자는 어질고 자비하고 의로운 자로 성숙해 가야 합니다.

여러분의 모습과 행동이 여러분이 만난 하나님을 보여주는 기회로 삼기를 바랍니다.

바른 것을 주장하는 여러분의 삶에 은혜와 긍휼이 항상 자리해야 합니다.

 

그분의 속성을 노래한 다음 그분의 사역을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보존하시나니 내가 낮게 될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6절)

세상이 보기에 어리석은 자를 하나님은 보호하십니다.

너무나 순진하고 악의가 없는 어린 아이와 같은 자입니다. 단순하기 때문에 악한 자의 속임수나 함정을 보지 못하는 자입니다.

 

재주가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를 돌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세상적인 재치와 간교한 꾀를 갖지 못하고 단순히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보호하십니다.

세상적인 지혜를 가진 자들은 아무리 지혜롭게 처신해도 자기 꾀에 속아 넘어가곤 하지만 비록 어리석어 보이는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보호의 대상입니다.

 

내가 어려울 때에라는 표현은 질병으로 비참하게 낮아지는 경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아니면 사업의 실패로 인해 비천하게 되는 경우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모함을 받아 명예가 실추된 경우를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사람 사이에 천덕꾸러기가 되고 미움과 눈총을 받는 자리에 있을 때 주님은 우리의 구원자로 찾아오십니다.

죽을 질병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사업의 실패에서 다시 일어나게 하시고 떨어진 명예를 다시 회복시키시는 분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구원은 늘 우리가 낮아졌을 때 임하는 법입니다.

겸비하게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무서운 질병입니까? 처참한 실패입니까? 아니면 실추된 명예입니까?

그 어느 것이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은 거기서 여러분을 구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주님의 구원을 체험한 시인은 이제 스스로를 달랩니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7절)

시편에는 이와 같은 스스로를 타이르는 투가 자주 나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시편 42편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42:5상)

신앙의 시인은 자주 자신에게 타이르곤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하나님의 진리로 자신을 타이르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진리로 자신을 타이르는 대신에 자기 안의 부정적인 소리를 듣고만 있습니다.

사탄의 파괴적인 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침체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진리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지금도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아직도 당신을 위하여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병든 자신만 바라보지 마십시오.

실패한 사업만 생각하지 마십시오.

실추한 명예에만 전전긍긍하지 마십시오.

잃어버린 것에만 연연해하지 마십시오.

 

아직도 남겨진 것들로 인해서 감사하십시오.

사랑하던 이가 떠난 것으로 괴로워하는 대신 아직도 당신의 사랑을 기다리는 이들이 남아있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제발 이제 스스로를 달래기를 바랍니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7절)

아직도 여전히 후대하신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스스로를 격려하는 자에게 하나님은 위로하시길 기뻐하십니다.

 

그러기에 시인은 스스로를 격려합니다.

내 영혼아 네 평안함에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7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전히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그러면 온전하고 충만한 평안이 찾아옵니다.

근심 걱정으로 매몰된 자리에서 구출을 받아 악몽을 벗어나 단잠에 빠질 수 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을 초대하시는 주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으로 의심과 불안은 사라지고 놀라운 평안이 누리게 됩니다.

 

물론 불순종으로, 세상의 기쁨을 추구하다가 주님 주시는 평안을 잃기도 합니다.

그럴 때는 지체 말고 주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품고 있는 알을 다 빼내어도 그냥 앉아있는 암탉처럼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도 여전히 옛날처럼 행복하게 앉아 있는 어리석은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저녁에 새들이 둥지로 날아가듯이 영혼의 피난처이신 하나님께로 향해서 돌아가야 합니다.

마음의 평화를 찾도록 애쓰되 세상에서나 자신의 경험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여호와 안에서 구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후대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후대하시는 하나님을 회상하십시오.

여러분이 누구였으며 지금 누구인지를 기억하십시오.

이전에 누구에게 속했는데 지금 누구에게 속한 자인지를 기억하십시오.

 

올 한 해 살면서 힘들었던 처지에서 여러분이 드렸던 간구와 서원을 기억하면서 후대하시는 하나님을 다시 만나보십시오.

한가위, 감사의 절기에는 하나님의 후대하심을 기억하는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식구들끼리 둘러앉아서 한 가지씩 감사의 기억들을 나누어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을 후대하셨습니다.

우리 모두에게 풍성한 은혜로 찾아오셨습니다.

한가위의 기쁨보다도 더 큰 기쁨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땅의 어떤 열매보다 존귀한 하늘의 최상의 선물인 아들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아들 안에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성령을 보내셨고 그 성령님을 통해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축복을 다 허락하셨습니다.

우리를 존귀한 자로 여겨 주십니다.

모든 하늘의 충만한 은사들을 허락하시며 그 충만한데서 우리는 모든 것을 얻습니다. 그리하여 은혜 위에 은혜를 누리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색한 사람의 식탁에 초대받지를 아니했습니다.

아까워하는 사람에게서 옷을 얻어 입고, 밥을 얻어먹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못해 대접하는 친척집을 방문한 것이 아닙니다.

좋은 것 아껴놓고, 보통 것을 마지못해 내어놓는 친구 집에 찾아간 것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을 후대하시는 하나님을 회상하십시오.

이제 다른 이를 찾지 마십시오.

이제 다른 평안을 구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을 부요케 하고자 친히 낮아지신 사랑의 하나님께로, 여러분을 후대하시는 하나님께 돌아가셔야 합니다.

그 때 시편 116편의 기자의 마음을 헤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때 비로소 1, 2절에서 터져 나오는 고백아멘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1, 2절)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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