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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정근두목사]죽도록 충성하라(계 2: 8-11)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08.15|조회수162 목록 댓글 0

죽도록 충성하라(28-11)

성경본문: 요한계시록 2: 8-11

8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이르시되

9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이라

10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관을 네게 주리라

11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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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동일한 신앙의 걸음을 걷기 위해 이 자리에 나오신 이웃 여러분,

오늘도 계속해서 각 교회를 살피시는 주님의 음성에 다시 귀를 기울이겠습니다.

주님이 보낸 둘째 편지,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이 편지에는 역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우선 도시 서머나를 생각해 보십시오.

첫 편지를 받은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56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또 하나의 항구 도시입니다. 동방에서 오는 도로가 끝나는 지점이고 일찍부터 번영을 누린 곳입니다.

당시 서머나는 아시아의 제일의 도시라는 칭호를 두고 에베소, 버가모와 더불어서 겨루던 곳입니다. 현재도 서머나는 이즈미르란 이름으로 터어키의 3대 도시이며, 이스탄불 다음으로 큰 항구 도시입니다.

일찍부터 서머나는 충성심이 뛰어난 도시입니다.

로마가 세계를 제패하기 전부터, 로마와 동맹함으로써 소문난 도시입니다.

또 로마를 위해 신전을 지어 바치는 열심으로 아시아에서 첫째가는 도시라는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이 편지를 보내신 주님께서는 자기를 어떻게 소개하십니까?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소개합니다.

처음인 분은 마지막일 수 없고, 죽은 이는 살 수 없는데, 주님은 역설적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처음이요 마지막이신 분입니다. 즉 모든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때로는 환난과 핍박을 허락하시지만 그럴 때는 궁극적인 의도가 있습니다.

오직 당신 백성의 유익을 위해서 허락하실 뿐입니다.

 

계속되는 환난 속에 살아가는 성도는 과연 주님이 통치하고 계시는가?’ 하고 질문할 것입니다.

어려움의 연속으로 부딪힐 때에 과연 내 삶을 주장하시는 전능하신 분이 계신가?’하는 것이 우리 마음속에서 갖게 되는 질문일 것입니다.

주님이 계신다면 이 풍요로운 도시 서머나에서 성도들은 가난하게 살아야만 하는가?

왜 억울한 비난을 받고 있는 자기 자녀들을 변호해 주지 않으시는가?

사단의 무서운 계략을 이미 파악하고 계신다면 왜 그것을 무산시키지 아니하시는가?

 

서머나 교인들의 마음에 품고 있는 의문을 다 읽은 것처럼 나는 처음이며 마지막이라고 소개합니다.

주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분이 오늘도 역사의 주관자로 계십니다. 여러분의 상황이 어떠하든지 이 진리를 붙드십시오. 어떤 어려움도 그분의 선하신 뜻 안에서 허락됩니다.

주님이 통치하시는 세상 속에 무의미한 고난이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고통에는 뜻이 있습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신 주님의 선하신 뜻을 헤아리십시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의 심중의 질문이 잠재워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라고 지금 서머나 교회를 향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격려합니다.

주와 함께 죽으면 그와 함께 다시 사실 것입니다. 함께 고난 받으면 함께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모든 순간에 우리는 주님과 함께 있습니다.

죽었다가 사신 그분이 우리의 주님이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환난과 순교를 앞둔 그들에게 주님은 자신이 역사의 주관자인 동시에 죽음의 정복자로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알거니와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비방도 알거니와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당이라.”

주님은 서머나 교회의 실상을 손바닥 보듯이 환히 보고 계십니다.

그들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지금 환난 가운데 있으나 활기가 넘치는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비난을 받고 있었지만 주님의 칭찬을 받는 교인들입니다.

그들은 경제적으로 가난했지만 실상은 영적으로 부요했습니다.

그들의 비방은 소위 유대인들로부터 왔습니다. 핍박의 진원지는 소위 여호와께 속한 무리들의 모임인 회당이었지만 그 모임의 실상은 사단의 회당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실상을 알고 계신 주님을 신뢰하십시오.

주님은 서머나 교회의 실상을 멀리서 바라보고만 계시는 분만은 아닙니다.

주님은 그들의 형편을 동정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우리와 같은 처지에서 우리 형편을 아십니다.

사람들로부터 비난과 소외당하는 것이 어떠한 고통인지를 아십니다.

남들은 부요하게 살아가는데 가난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십니다.

우릴 위해 스스로 가난하게 되신 주님이시기에 풍요의 도시 속에서 가난을 택한 그들을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서머나는 일찍부터 지금까지 풍요로운 도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왜 서머나 교인들은 가난 속에 살았습니까?

서머나 성도들을 고발한 유대인들은 어쩌면 성도들의 재산까지 자신의 몫으로 차지했던 모양입니다.

그리스도를 밀고하는 사람은 그 밀고당한 사람의 재산이 자기 것이 되는 그런 무법천지였습니다.

그리스도라는 이유로서 법의 보호를 전혀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당대에 그리스도인들이 받았던 고난이었습니다.

 

핍박과 가난, 조롱은 서머나에만 존재하고 역사에서 사라진 것이 아닙니다.

오늘 한국 사회처럼 공공연한 핍박과 투옥, 약탈이 끝난 곳도 있지만 지난 20세기는 가장 많은 순교자를 배출한 세기임을 우리가 기억해야만 합니다.

 

우리의 눈을 세계로 향해야 합니다.

세계 곳곳에 있는 교회의 현실을 직시합시다.

신앙 때문에 서머나 교회의 길을 걷고 있는 이들을 우리의 기도 속에, 우리의 관심 속에 포함시켜야만 합니다. 특히 북쪽 성도들을 기억합시다.

어쩌면 남쪽 우리 가운데서도 서머나 교회의 몫을 자기 몫으로 택한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신앙 때문에 더 좋은 조건의 직장을 포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신앙 때문에 지난 한 주간도 은근히 핍박과 조롱의 말을 들어야 했던 형제자매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더 나은 기업이 있습니다.

복음을 위해서 고귀한 부분을 보상하고 남는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습니다.

사람의 사는 것은 소유의 풍부에 있지 않습니다.

사는 즐거움은 풍부한 소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기쁨과 보람은 하나님을 향한 부요한 삶에서부터 나옵니다.

그러기에 구약의 모세는 그리스도를 위한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귀히 여겼습니다.

신약의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세상이 주는 특권과 혜택을 기꺼이 포기했습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위해서 가난을 택할 수 있는 자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부를 추구하면서 살기로 작정한 자들입니까?

땅위에 여러분의 보물을 쌓고 있는 자입니까?

아니면 하늘에 여러분의 보물을 축적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삶에는 예수 믿는다는 그 이유로서 포기한 것이 있습니까?

예수 믿기 때문에 받아본 조롱이 있습니까?

직장에서 동네에서 집안에서 학원에서 빈정거림과 미움의 소리를 들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렇다고 하면 여러분은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서머나 성도들은 어떤 비난을 받았을까요?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사람들에게서 네가 비방을 당하고 있는 것을 내가 알고 있다.’

서머나 교회가 배출한 위대한 순교자 폴리갑의 이야기를 아십니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그리스도를 비방하고 그를 모른다고 하라. 그러면 맹세코 너를 놓아주리라.’ 총독은 회유를 했습니다.

그때 폴리갑이 했던 말은 모든 성도들의 가슴 속에 남을 말입니다.

내가 86년간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고 믿어왔는데 그는 나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물며 나의 주인이시며 왕이시요 구세주이신 분을 어떻게 내가 지금 배반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다시 한 번 총독이 그를 회유하려고 시도했습니다.

그때 폴리갑이 대답하기를 헛수고를 마십시오. 내가 가이사에게 생명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누구며 무엇 하는 사람인지를 모른척하지 마십시오. 내가 지금 당신에게 들려주는 말을 분명히 기억하십시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러자 총독이 화가 나서 그대 운명은 지금 내 손아귀에 달려있다. 돌이키지 않으면 사나운 짐승의 밥이 되는 줄 알고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이제 너를 화형에 처하겠다.’고 그렇게 마지막 위협을 가했습니다.

그때 폴리갑이 대답하기를 한 시간 정도면 타다가 꺼질 불로서 나를 위협하고 있으나 악인들을 위해서 예비된 장차 올 심판과 영원히 타오를 불을 모르고 있습니다. 무엇을 주저하십니까? 시행하십시오.’

 

늘 그랬듯이 유대인들은 이방인과 함께 폴리갑의 죽음을 요구했고 그를 화형 시킬 장작을 부지런히 가져다 날랐습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그날은 유대인들이 그처럼 신성시하던 안식일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전통은 안식일에 장작을 나르는 일을 금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작 갖다 나르는 일은 서슴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폴리갑을 죽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여호와에 속한 자들이 아니라 실상은 사단의 회당에 속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유대인, 하나님의 백성답지 못한 처신을 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주특기인 참소하는 일에 자신을 내어 맡기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절대로 남을 비난하는 일에 가담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사단의 주특기입니다. 밤낮없이 성도를 비난하고 성도를 헐뜯고 악평을 하려고 드는 그 일이 사단이 하는 일이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특히 성도를 비난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지를 생각하십시오.

그것은 자신을 사단의 도구로서 내어주는 일입니다.

유대인들을 닮지 마십시오.

물론 첫 개종자들은 모두 다 유대인 가운데서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핍박자들 역시 유대인 가운데서 나왔습니다.

 

2천년 동안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극심한 핍박은 유대인의 회당에서 시작해서 이름만의 성도들이 모인 교회당에서 계속되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이 사단의 모임으로 전락했듯이 그리스도인의 모임도 적그리스도의 모임으로 전락할 수가 있습니다.

극악한 핍박은 세상에서부터 왔던 것이 아니라 소위 교회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얼마나 많이 순교를 당했는지 아십니까?

중세에 천년을 넘는 기간 동안에 정말 그 마음속에 주님을 사랑했던 사람들이 수없이 교인들에 의해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는 이름을 여러분이 가지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적극적으로 긍정적인 기여는 못해도 그 나라를 무너뜨리는 일에 가담해서는 안 됩니다.

형제자매를 함부로 폄론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성도들을 비방하는 것은 가장 무서운 죄악입니다.

밤낮 사단이 하는 그 일에 가담하는 행위입니다.

하물며 여러분의 영적 지도자를 향해서 비난하는 일에 참여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껏 서머나 교회가 처한 상황에 대한 기술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주님이 명령과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에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다시 한 번 역설이 나오고 있습니다.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고난이 없을 것이니까 너희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도 그들은 이미 숱한 싸움을 싸워오고 있습니다. 비방을 받고 있습니다. 환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가난 속에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는 너희에게 고난이 없을 것이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질 않습니다.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그냥 잠간 구류하는 것이 아니라 옥에 던진다고 하는 것은 거기에서 생명이 끝장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온 교회에 주님께서는 서머나 교회의 현재 형편을 묘사한 다음에 그들이 당하게 될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무서운 환난이 다가오고 있으나 두려워하지 말라.” 그렇게 역설적인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너희에게는 지금보다 더 극심한 환난이 다가오지만 두려워하지 말라.”

그 환난의 실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환난과 가난과 비방이 오늘 그들의 몫이었는데 이제 투옥과 순교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설상가상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죽도록 충성하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현재의 서머나 교회의 열악한 상황을 아실뿐 아니라 미래의 서머나 교회의 극심한 핍박을 내다보시는 분입니다.

주님은 오늘과 내일의 상황을 아시면서 당신이 그 상황에 개입하시는 것을 억제하고 계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주님은 그들의 그 궁핍한 상황에 도와주시지 않으십니까?

여기에 대한 몇 가지 이유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극심한 환난은 어떤 유익을 성도들에게 줍니까?

뜨거운 불은 더 정제된 제품을 생산하듯이 극심한 환난은 더 순수한 성도들을 배출합니다.

환난은 개인의 신앙을 더욱 순수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주님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게 만듭니다.

 

예수 믿고 나서 곧 바로 일들이 잘 풀리면 누가 예수 안 믿으려고 하겠습니까?

일마다 다 잘 되면 예수 믿는 것이 뭐가 어렵겠습니까?

믿고 얻는 유익 때문이 아니라 믿음의 대상이신 주님 때문에 주님을 사랑하는 그 순수한 사랑을 주님은 요구하십니다.

 

또한 환난은 공동체의 신앙을 새롭게 합니다.

바람이 불을 꺼트릴 때도 있지요? 꺼져야 할 때는 꺼져야 합니다.

그러나 어떤 바람은 더 불을 활활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의 불길을 한 번 기억해 보십시오.

바람은 그 불을 끄지 못하는 것입니다. 바람은 그 불을 더 활활 타오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시련의 바람은 공동체의 신앙을 더욱 활기 있게 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성냥불,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질지 모르겠습니다.

함께 타오르는 불은 결코 꺼지지 않을 것입니다.

아무런 시련이 없었던 사데 교회는 살았으나 죽었다고 주님이 진단하셨지만 지금도 시련이고 앞으로 더 큰 시련이 임박해 있다고 말씀하시는 서머나 교회를 통해서는 죽도록 충성할 자들이 계속 배출될 것을 주님이 여기서 암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시련의 때를 겪고 계시는 분은 없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시련의 시기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신앙을 더욱 순수하게 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새로운 힘을 공급받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생각과는 달리 시련은 여러분을 승리자로 만들 것입니다.

 

끝까지 신실한 성도, 죽기까지 신실한 성도는 세상에서 패배자가 아닙니다.

그는 승리자입니다.

그는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승리에 동참하는 자입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서 부활의 승리에 참예한 주님을 본받아서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사단을 패배하게 만드는 자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은 영광으로 여러분 자신을 장식하는 기회입니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그 생애의 대부분을 환난과 멀어져 본 적이 없는 삶을 살았던 사도가 바울입니다.

고난이 그에게서 멀찍이 사라져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승리자의 노래를 부르면서 성도들을 격려했습니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고후 4:17, 18, 개역한글판)

 

주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우리 앞에 고난이 확실히 기다릴지라도 그 고난은 또한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그것이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는 의미입니다. 열흘 동안 너희가 고난을 받을 것이다.”

이것은 산술적으로 하루 이틀, 셀 수 있는 열흘이 아니라 투옥과 박해의 때가 있지만 그것은 잠간 후에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산술적인 표현이 아니라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열하루 째 되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을 바라보며 그날을 기다리십시오.

핍박의 바람은 짧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 서머나 교회를 강타할 것입니다.

그러나 얼마 후면 모든 환난이 끝나고 하나님의 섭리가 밝은 대낮처럼 나타날 것입니다.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이 내가 도와주마.’라고 하지 아니하고 ‘다만 견디라 끝까지 견디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 죽기까지 충성하는 자에게 주님이 준비하신 생명의 면류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나아갈 길을 다 달려서, 붙잡아야할 그 목표를 붙잡도록 함으로써, 거기 이르는 자를 위해서 준비하신 상급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난이 없는 기독교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십자가 없는 삶에는 면류관이 없습니다.

오늘의 고난은 내일의 영광을 얻는 기회입니다. 오늘 다 잃은 자들처럼 보이지만 내일 모든 것을 다 소유할 자들입니다.

주님을 보십시오.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해서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고 사셨습니다.

믿음의 창시자이시고 믿음의 완성자이신 예수, 그분만을 우리가 바라보면서 살아야겠습니다.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승리자로 거기 지금 앉아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으로 경주하는 여러분 앞에 기다리는 상급이 있습니까?

약속된 생명의 면류관은 모든 성도들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습니다.

죽든지 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죽음으로 삶을 마감하는지는 상관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승리자가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기만 하면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승리한 자들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있는 자들입니다.

에베소서 2장을 보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일으키셨습니다. 우리를 올리셨습니다. 우리를 하늘 보좌에 이미 앉히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에게는 영광스러운 승리가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의 은혜로써, 그의 힘으로써 넉넉히 이길 것입니다. 어떤 분은 넉넉히 이기느니라.’라는 말로써 계시록의 주제를 삼고 있습니다. 승리자 이상이 될 것입니다.

 

열흘간의 기간을 여러분의 신앙을 입증하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생명을 승리자의 면류관으로서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승리자의 위치에 서게 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약속이 서머나 교회 뿐 아니라 이 말씀을 듣는 모든 교회에 주어지고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둘째 사망의 해가 무슨 말입니까?

첫째 사망은 몸과 혼이 분리되는 육신의 죽음입니다. 아담 이후에 모든 죄지은 인생은 이 몸과 혼이 분리되는 육신의 죽음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사람 중에서 이것을 경험하지 아니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리스도인들 역시 이 첫째 죽음을 경험합니다. 오히려 불신자들보다 더 처참하게 최후를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상 많은 순교자들의 죽음을 기억해 보십시오. 편안한 죽음대신에 잔혹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에게서는 둘째 사망은 결코 해치지 못할 것입니다.

영과 육이 불 못에 함께 던져지는 그 재난 속에 빠져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에게는 둘째 사망이 해치 못할 것입니다.

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세상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노릇하리라.”

둘째 사망이 그들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더불어서 천년 동안, 무궁한 세월 동안 왕 노릇하리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 약속된 풍요로운 새 생명은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난다고 단절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새 생명을 맛본 분들은 생명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이제 후로는 결코 한 순간도 단절될 수가 없습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통해서 기쁨을 소유한 사람은 기쁨의 원천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결코 이후로는 단절될 수 없습니다.

아름답고 소망스런 모든 것의 원천되신 하나님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을 분리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서머나에 곧 불어 닥칠 환난의 바람은 순교자까지 배출할 것입니다.

처참한 죽음이 그들의 육신의 생명을 끝장낼 수도 있습니다만 그들의 영원한 생명은 둘째 사망의 해를 조금도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않습니다.

두 번 태어난 자는 한 번만 죽습니다.

그러나 한 번만 태어난 자는 두 번 죽음을 맛볼 것입니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영원히 하나님의 존전에서부터 멀어지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죽기까지 신실하게 살던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다릅니다.

그들은 한 번 죽지 두 번 죽지 아니할 것입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받은 자들은 둘째 사망의 해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 안에 충만해 있기 때문입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능력이 오늘 우리의 삶을 지배한다면 우리는 영원히 그 생명의 능력 안에서 거하게 될 것입니다.

 

충성된 자들에게 약속된 것을 마음속에 새기면서 말씀을 맺겠습니다.

생명의 면류관을 주실 것이라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금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고통을 굳건히, 담대하게 견디어내십시오.

장차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영광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죽도록 충성하십시오.

이것은 세상을 사는 모든 성도들의 숭고한 임무입니다.

고급병실에서 숨을 거두는 것이 여러분의 마지막 소원입니까?

아니면 그리스도인다운 승리자로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습니까?

누구나 세상을 떠납니다.

그 때 승자와 패자가 구별됩니다.

참 어리석게 살았다고 한탄하며 최후를 맞이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승리자로 최후를 맞이하시려면 세상을 사는 한 계속해서 그리고 끝까지 충성하십시오.

생명의 면류관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님 나타남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 약속된 상급입니다.

그 면류관을 받아쓰기까지 끝까지 죽도록 충성하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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