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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정근두목사]하늘의 보좌(계 4: 1- 3)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08.17|조회수450 목록 댓글 0

하늘의 보좌(계 4장 1- 3)

성경본문: 요한계시록 4: 1-3

1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일어날 일들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되었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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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변하는 사랑을 받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해 12월 초까지 살폈던 요한계시록으로, 약 한 달 만에 다시 돌아가게 되어서 감사합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그 종 요한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계시를 본격적으로 살피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성경 맨 마지막 책, 요한 계시록은 인류 종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종말을 향해서 치닫고 있는 오늘 역사를 깨닫기 위해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입니다.

왜 세상이 날로 악해지는지에 대해서 이 책을 떠나서 우리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을 더 이상 어렵고 수수께끼 같은 책으로 남겨둘 수 없습니다.

이제 때가 가까워졌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계 1:3)

예, 그렇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지난 해 계시록 설교를 시작했을 때보다 더욱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 이 말씀 선포를 통한 축복이 더욱 넘치기를 바랍니다.

지난 해 12월 초, 계시록 3장까지 소아시아 일곱 교회를 우리는 살폈습니다.

이제 새해를 맞이해서 4장부터 다시 계시록 설교를 시작하게 된 것을 정말 기쁘게 생각합니다.

계시록의 전망대

요한이 본 환상은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네 본 것,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1장 19절의 구분대로 그가 본 것은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에 관한 환상입니다.

그러므로 2장과 3장은 이제 있는 일, 요한의 현재, 그 당대의 상황을 설명한 계시입니다.

그리고 4장부터는, 더 정확하게 말해서 6장부터 끝까지는 장차 될 일에 대한 환상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4, 5장은 계시록 전부를 바라보는 전망대입니다.

계시록 4, 5장은 앞뒤의 환상을 연결해서 살펴볼 수 있는 전망대입니다.

계시록 4, 5장은 요한의 계시, 전부를 한 눈에 살펴볼 수 있는 전망대에 우리를 세워줍니다.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요한이 보았던 일곱 교회의 환상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전망대 역할을 4장과 5장은 하고 있습니다.

이 전망대에 서서 일곱 교회를 살펴보십시오.

어떤 교회들은 그 소명에 충실한 대가로서 환란과 시련 속에 처해 있기도 했고 다른 교회는 세상의 향락에 잠들어서, 세상의 향락의 유혹 속에 빠져있는 상태에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일곱 교회는 때로 책망을 받기도 했지만 버림당하지 아니했습니다.

 

요한이 본 그 첫 환상 중의 일곱 교회는 요한 당대의 교회의 모습인 동시에 오고 오는 세대의 교회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항상 교회는 두 가지 위험에 직면해 있습니다.

언제나 성도들은 두 반대 방향의 적들을 물리쳐야 합니다.

한 쪽에서는 적그리스도의 핍박이 교회를 괴롭힙니다.

다른 한 쪽에서는 음녀의 유혹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서도 교회가 존속하는 궁극적인 설명이 계시록 4장과 5장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서는 그 엄청난 시련을 당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는 존속합니다.

또 한편으로서는 세상 문명의 쾌락에 빠져들어 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교회는 존재합니다. 두 가지 싸움의 와중에서도 지상에 하나님의 교회는 계속 존속하고 있습니다.

 

처절한 핍박과 다양한 유혹 속에서도 교회는 계속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꺼져가는 등불을 꺼지 아니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4장과 5장은 장차 될 일들을 이해하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반드시 속히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시작과 과정, 그 완성을 궁극적으로 관장하고 있는 곳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편지를 받을 당시의 교회들은 요한의 환상 제 2막을 통해서 핍박과 시련까지도 당신의 선한 뜻을 이루시는 도구로 사용하시는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을 새롭게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시련의 바람과 유혹의 물결 속에서도 초대교회 성도들은 그 시선을 보좌에 계신 분과 어린양께 향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당신의 교회로 하여금 왕 중의 왕, 만유의 주이신 그분을 바라보도록 우리 주님은 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 분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입니다.

봉사하는 성도, 보살피는 장로답게 한 해를 살기 위해서 우린 하늘 보좌를 앙망해야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편에”

앉으셔서 온 세상을 다스리는 우리 주님께서는 주님의 일에 참여하는 당신의 종들에게 능력을 부어 주시길 원하십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그러면 이제 1절 말씀으로 돌아가 봅시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이르되 이리로 올라오라.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니.”

일곱 교회의 환상을 본 다음에, 일곱 인을 떼기 전에 막간의 역할을 계시록 4, 5장은 하고 있습니다.

막간을 통해 또 다시 새로운 환상, 중요한 환상을 보게 된 것을 여기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 하늘의 열린 문이 있습니다.

흘깃 들여다보도록 조금 열려져 있는 문이 아닙니다.

요한이 들어가서 보도록 활짝 열려져 있는 문입니다.

요한은 하늘 장면을 바라보는 동시에 하늘에서부터 나팔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게 됩니다.

‘밧모’라는 섬에서 주의 날 성령에 감동해서 들었던 그 동일한 음성이 그 때 그에게 들렸습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후에 마땅히 앞으로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후에 마땅히 앞으로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계시록 1장에서 3장까지의 계시와는 대조를 이루는 내용입니다. 그

에게 이제 새로운 계시를 보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있는 일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장차 될 일에 대한 환상을 보여 주겠다고 합니다.

“마땅히 앞으로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요한의 환상은 그냥 장차 막연하게 일어날 일들에 대한 기술이 아닙니다. 그냥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그걸 미리 추측해서 말한 것이 아닙니다.

요한은 지금 마땅히 일어나야만 하는 하나님의 뜻의 실현에 관심을 쏟고 있습니다.

우연에 의해서 일어나게 될 것을 미리 보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분의 뜻에 따라서 실현될 내일에 관해서 요한은 환상을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의 실현으로서 미래사를 여기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이심을 여기서 보여 주십니다.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음성을 듣는 순간에 요한은 한 차원 더 깊은 영적인 상태로 빠져들게 됩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열려진 하늘 문을 보고 나팔소리 같은 음성을 들은 것도 그 새로운 환상 중에서 들은 것입니다.

 

어떨 때는 사람이 환상을 보는 중에서도 주변의 환경을 감지할 수가 있습니다.

스데반은 하늘에 인자가 선 것을 보면서도 자기에게 돌을 던지고 있는 사람들을 의식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떨 때는 더 깊은 황홀경으로 들어갈 수도 있습니다.

성령에 깊이 감동된 상태에서 환상을 볼 때는 주위의 모든 물리적 환경과 의식의 접촉이 끝나버립니다.

요한은 지금 더 이상 육신의 눈으로 하늘에 있는 보좌를 보고 있지 않습니다.

더 이상 육신의 귀로써 설명을 듣고 있지 않습니다.

그의 영은 환상 속에서 그에게 나타난 보좌 가까이 옮겨져 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아는, 여러분이 경험한 것으로 영적인 현상을 모두 설명하려고 들면 어리석은 시도입니다.

제발 자신을 모든 영적 현상의 판단의 척도로 삼지 마십시오.

그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새로운 차원의 깊은 영적인 황홀경으로 그가 들어갔던 것을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지금부터 요한은 더 깊은 차원에서 환상을 접합니다.

찬송가 작가가 말했던 대로 “세상과 나는 간 곳이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라고 노래한 차원의 환상 속에서 지금 앞으로 될 일들을 접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보좌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날 하늘도 없어지고 땅도 사라질 것입니다.

다만 모든 인류의 눈앞에 하늘의 보좌만이, 심판하시는 그분만이 나타날 것입니다.

지금 사도 요한의 눈앞에도 하늘의 보좌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는 하늘의 보좌의 환상 앞에 압도당하고 있습니다.

“보좌”라고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본문이 말하는 보좌는 권력자의 권좌입니다. 통치자의 권좌를 보좌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보좌는 땅에 있는 보좌가 아니라 하늘에 마련된 보좌입니다.

 

그리고 하늘의 보좌에 앉으실 분은 위로 하늘과 아래로 땅에 오직 한 분밖에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권좌 위에 높이 있는 보좌입니다.

거기에 앉기에 합당한 분은 한 분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지상의 모든 권력을 다스리시는 하늘의 권좌의 주인은 창조주 하나님, 만유의 주(主)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시는 왕 중 왕, 주의 주되신 하나님만이 하늘보좌의 주인공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계시록은 권력 투쟁에 관한 책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권력 투쟁의 전모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악의 세력을 궁극적으로 파멸시킬 전능자의 권력 투쟁의 전부를 기술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보좌”는 요한 계시록에서 중요한 단어입니다.

신약에서 62번이 “보좌”라는 말이 나오는데 그중에 47번은 요한이 사용한 말이라고 합니다. 계시록 총 22장에 걸쳐서 거의 모든 장마다 보좌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이 “보좌”는 계시록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열쇠가 됩니다.

특히 오늘 4장에서 보면 12번 이상 이 하늘의 “보좌”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구절마다 위엄의 “보좌”를 묘사해 주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요한은 태생적으로 권좌에 관한 관심이 지대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쩌면 이건 대물림한 관심 같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예수님에게 나와서 뭐라고 요한의 어머니가 부탁했습니까?

“우리 아들 하나는 예수님의 오른 편에, 하나는 왼 편에 앉혀 주십시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지요?

그 어머니부터 아들 둘에 이르기까지 권좌에 대한 애착이 대단했던 집안 같습니다.

지금 요한이 가이사의 권좌에 의해서 귀양 가 있습니다.

땅의 통치자의 힘에 밀려나서 유배되었습니다.

사도 요한뿐만 아니라 당대에 많은 성도들이 세상의 권좌에 의해서 시달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여기 하나님의 위로의 방법을 눈여겨보십시오.

하나님은 요한에게 하늘 궁정의 보좌를 보게 하심으로 위로해 주시고 계십니다.

하늘의 보좌를, 온 우주의 중심 위치에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그 보좌를 보게 하심으로 요한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결코 권력 투쟁에 밀려나서 밧모 섬에 귀양 온 사람이 아닙니다.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하늘의 보좌는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의 상징입니다.

 

지금부터 여러분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그 보좌가 하게 될 일들을 계시록을 살펴가면서 보게 될 것입니다.

그의 통치와 심판 속에 그 보좌의 위엄이 드러날 것입니다.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백옥 같고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를 둘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보좌의 위엄 앞에 압도당한 요한은 다만 상징적인 말로서 묘사하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백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를 둘렀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무엇 무엇과 같더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자신을 묘사하는 대신에 그 영광과 광채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영광을 백옥 같다고 하고 있습니다. 맑은 수정이나 금강석 종류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위엄과 순결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은 하나님의 영광을 여기 “홍보석 같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핏빛 같이 붉은 이 보석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대개 보고 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불의를 결코 용인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심을 여기서 상징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지요.

 

끝으로 녹보석 같은 무지개가 보좌를 둘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진노 중에서도 긍휼을 잃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다고들 보고 있습니다.

무지개는 다시는 인류를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의 상징입니다.

생명의 약속에 대한 보장이 녹보석 같은 무지개로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여기에 특별히 하나님의 진노의 잔들이, 진노의 나팔들이, 진노의 대접들이 쏟아 부어지기 직전에 그 하나님의 보좌에 그래도 녹보석 같은 무지개가 두르고 있다는 것이 소망이 됩니다.

 

당시 성도들의 눈으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 당시 성도의 눈으로 하늘보좌의 장면을 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늘 보좌의 환상은 우주의 통치자가 누구인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이 세세한 묘사들은 사실 이 보좌의 위엄을 높이기 위해서 한 묘사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늘의 보좌의 환상은 땅의 권좌에 시달리는 그 백성을 위로하기에 충분한 계시였습니다.

 

당시 교회는 소수의 흩어진 무리였습니다.

조롱당하는 무리였고 무시당하고 박탈당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떠나지 아니하셨습니다.

세상의 환란 풍파를 뛰어넘어서 하늘의 보좌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다시 한 번 확인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악이 지배하고 불의가 성행해 보입니까?

오늘도 하나님의 보좌가 하늘에 베풀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의 입으로 하는 신앙고백을 여러분의 귀로 들어보십시오.

어디에, 우리 주님 지금 계십니까?

우리는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신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이 궁극적으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고 자기 뜻을 만물을 통해서 실현해 가십니다.

요한 당시의 성도들처럼 악한 파도가 여러분을 엄몰해 올 때에 하늘의 보좌를 기억하십시오.

땅의 보좌에 앉은 자들이 그 권좌에서 우리를 유린한다 할지라도 우리의 눈이 향할 곳이 하늘의 보좌입니다.

역사의 폭풍이 미치지 못하는 하늘에 보좌를 두시고 하나님은 통치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역사 저 편의 권좌에 앉으셔서 지금도 다스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받는 핍박과 우리가 당하고 있는 유혹까지라도 하나님은 자기의 목적을 이루시는 도구로써 사용하고 계시는 역사와 우주의 실세이십니다.

 

사랑받는 성도 여러분,

올해는 이 하늘 보좌의 관점에서 만사를 보는 성도들이 되십시오.

그때에 여러분은 비로소 역사를 바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실권은 세상의 권좌에 앉아있는 자들이 아니라 하늘 보좌에 앉으신 아버지께 있다는 것을 알 때에 우리가 처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위로를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이 본 환상의 세세함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혹 제가 해석한 것이 여러분과 조금 다르다고 하더라도 신경 쓸 이유가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하늘의 보좌”가 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늘 보좌에 우리의 시선을 모으는 것입니다.

하늘의 보좌, 거기에 만물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하늘 보좌, 그것이 우리의 위로의 원천이십니다.

 

하늘 보좌 거기에 계신 창조주의 영광을 바라볼 때에 세상 역사의 흐름을 바로 이해하게 됩니다.

하늘 보좌 거기에 계신 전능자의 영광을 바라볼 때에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시시로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시시 때때로 그 하늘의 보좌를 응시하고 묵상하십시오.

그 때 우리 자신을 새롭게 하고 세상을 새롭게 하는 부흥의 도래를 기도할 수 있습니다.

시시로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영광의 찬송을 돌리십시오.

부흥을 위한 기도는 하늘 보좌를 바라는 기도입니다.

수시로 하늘 보좌를 향해 부르짖는 복된 한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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