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의 보좌와 네 생물들(계 4장 4- 9)
성경본문: 요한계시록 4: 4-9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관을 쓰고 앉았더라
5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우렛소리가 나고 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6 보좌 앞에 수정과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들이 가득하더라
7 그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그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그 셋째 생물은 얼굴이 사람 같고 그 넷째 생물은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8 네 생물은 각각 여섯 날개를 가졌고 그 안과 주위에는 눈들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시라 하고
9 그 생물들이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돌릴 때에
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살아 계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리며 이르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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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한 가운데 맞이한 주일 예배입니다.
그렇다고 절기설교로 들어갈 수 없는 이유를 여러분도 아실 겁니다.
한 달여 만에 다시 요한계시록으로 지난 주일 들어가서 하늘의 보좌를 살피기 시작했는데, 아직 그 보좌의 상황을 다 살피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가기에는 부담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주일 하늘의 보좌를 설교하면서 요한 계시록을 대하는 오늘 우리들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살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루하루 살면서 하늘을 바라볼 기회가 없었다는데 있습니다.
한 주간 이레를 살면서도 형편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데 있습니다.
우리의 눈은 인간 세상을 보기에 바빴고, 우리의 눈에 들어오는 장면은 세상의 것에 한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주일인 일요일 이 자리에 나와서 갑자기 하늘의 열린 문을 바라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늘 보좌와 네 생물과 이십 사 장로를 응시한다는 것은 쉽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함께 계시록을 읽으면서 기도하며 이 자리를 사모합시다.
기도하며 계시록을 통해 우리에게 하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합시다.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께서 계시록을 통해서 말씀을 주시도록, 그리고 그 말씀을 제가 담대히 전하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사도 요한은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서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자기 뒤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듣고 본 것을 기록했습니다.
전에 주의 날 밧모 섬에서 성령에 감동했던 요한은 다시 한 번 성령에 감동되어 하늘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24장로와 네 생물을 보고 그들의 찬양 소리를 들었습니다.
하늘은 무엇보다 찬양으로 가득한 곳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여기 하늘 보좌를 설명하면서도 네 생물의 찬양과 24장로의 찬양을 들을 수 있습니다.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마지막 날이 오면 하늘도 없어지고 땅도 사라지고 난 후에, 마치 모든 인류의 눈앞에 보좌만이, 심판하시는 그분만이 나타날 것처럼 지금 사도 요한의 눈앞에 보좌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보좌’라고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본문이 말하는 보좌는 통치자의 보좌입니다.
그러나 이 보좌는 땅에 있는 보좌가 아니라 하늘에 배설된 보좌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좌 위에 높이 있는 하늘의 보좌입니다.
그 하늘 보좌에 앉기에 합당한 분은 한 분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지상의 모든 권력을 다스리시는 하늘의 보좌의 주인은 창조의 하나님, 만유의 주(主)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온 세상을 다스리시고 심판하시는 왕 중 왕 되신 하나님께서 그 보좌의 주인공이십니다.
그런 면에서 계시록은 온 세상나라를 다스리는 하나님의 권력 투쟁에 관한 책입니다.
요한 계시록은 모든 나라와 권세를 격파하는 하나님의 권력 투쟁의 전모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악의 세력을 궁극적으로 파멸시킬 전능자의 권력 투쟁의 전모를 기술해 놓고 있습니다.
지금 요한이 가이사의 권좌에 의해서 밧모 섬에 귀양 가 있습니다. 세상 통치자의 힘에 밀려나서 유배되었습니다.
요한 뿐만 아니라 당대에 많은 성도들이 세상의 권좌에 의해서 여러 가지 시달림을 받고 있었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요한에게 하늘 궁정의 보좌를 보게 하심으로 위로하십니다.
온 우주의 중심 위치에서 온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늘의 보좌를 보게 하심으로 요한을 위로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늘 보좌의 비전을 가지면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여러분 자신의 처지가 새롭게 해석됩니다.
요한은 결코 권력 투쟁에 밀려나서 밧모 섬에 귀양 온 사람이 아닙니다.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하늘 보좌를 의식하고 사는 이는 새로운 차원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비록 몸은 귀양 가 있더라도 그 마음은 하늘 보좌의 통치에 동참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몸은 고달파도 여러분의 마음은 독수리 날개 침 같이 새로울 것입니다.
요한은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영광을 묘사하고 나서 또한 그 보좌를 둘러싼 이십사 보좌를 말하고 있습니다.
“또 보좌를 둘러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중심 보좌를 둘러싼 이십사 보좌의 역할은 무엇입니까?
이 보좌에 앉은 장로들이 금관을 벗어 던지고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드림으로써 거기 중심 보좌에 앉으신 분이 얼마나 탁월한 분이신지를 보게 하십니다.
이십사 장로들은 오늘 살펴볼 네 생물과 마찬가지로 천사들의 한 그룹을 나타냅니다.
“보좌와 주관과 정사와 권세” 이런 칭호들은 신약에서 천사들의 계급을 나타냅니다.
이들 이십사 장로들이 하는 역할은 제사장적인 역할과 유사합니다.
네 생물과 더불어서 하나님을 예배하며 성도들의 기도를 드리는 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네 생물처럼 장로들은 천사 중에 탁월한 지위에 있는 무리를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보좌로 관심을 기울이십시오.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에 일곱 등불 켠 것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5절)
번개와 음성과 뇌성은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출애굽기 19장에 하나님이 시내 산에서 나타나셔서 율법을 주실 때에, 그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려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에 이런 현상으로 기술해 놓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도 같은 사실을 다음과 같이 말해 주고 있습니다.
“너희가 이른 곳은 만질 만한 불붙는 산과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무슨 말입니까?
새 언약의 백성들이 참여한 특권을 구약 언약에 참여한 사람들과 대조해서 “그들은 흑운과 흑암과 폭풍과 나팔 소리와 말하는 그 우렁찬 소리 앞에 있었지만 너희는 그렇게 무서워 떨면서 이 언약을 받지 아니했다”고 히브리서 기자는 말합니다.
시편 18장 9절과 16절 이하는 이런 현상을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의 표현으로 나타냅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번개와 음성과 뇌성과 폭풍 속에 임재하심은 심판과 동시에 구원을 나타내는 수단입니다.
계시록 역시 지진과 함께 등장하는 번개와 천둥은 일련의 심판 행위의 마지막을 장식하며(8:1 이하, 11:15 이하, 16:17 이하) 동시에 하나님께서 곧 영광 가운데 그 모습을 나타낼 것을 알리는 예비 신호이기도 합니다.
항상 켜 있는 일곱 등불
“보좌로부터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나고 보좌 앞 일곱 등불을 켠 것이 있으니”
번개와 음성과 뇌성과 함께 일곱 등불을 보여줍니다.
하지만 일곱 등불에 관해서는 일곱 영이라고 저자 자신이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일곱이라고 하는 것은 충만한 하나님의 영의 임재를 상징합니다.
“켜져 있더라.”는 말 역시 항상 하나님의 영이 그 앞에 충만하게 임재 해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수정 같은 유리바다
다시 한 번 우리는 하늘 보좌 주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보좌 앞에는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6절).
계속해서 요한은 그 환상 속의 장면을 묘사합니다. 여기서 요한은 그 엄청난 광경을 보고 지금 감동 가운데 그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모든 피조물로부터 엄연한 거리를 가진 하나님을 묘사하기 위해서 거기 “바다가 있더라.” 바다같이 넓은 광활한 공간을 상징하고 있는 동시에 유리같이 밝은 것은 하나님 앞에서 전부가 드러나는 것을 상징하고 있다고들 생각합니다.
유리바다 그것은 그 광활하고 보배롭고 영광스럽고 두려운 광경을 전달하기 위한 표현으로 보입니다.
여러분이 서울 경복궁 근정전 앞에 가면 거기 품계석과 함께 백관들이 섰던 자리가 있습니다.
그 자리들은 전체가 깎은 돌로 덮여 있습니다. 옛날에는 콘크리트가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임금 앞에는 먼저가 날리지 않게 돌로 덮어둔 자리, 박석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천 년 전, 극한 영광의 솔로몬의 보좌 앞에는 수정 같은 유리가 덮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유리가 너무 맑아서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만나기 위해서 나올 때 거기에 물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치마를 걷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지상의 왕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보좌 앞에 수정 같은 유리로 덮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계시록의 표현들은 솔로몬의 영광이 나타내는 것 이상의 영광으로 가득해 있는 그 하나님의 보좌를 설명하는 표현들입니다.
지상 어떤 임금의 영화와 견줄 수 없는 하늘 보좌의 영광을 부각시키기 위해 요한은 그가 본 수정 같은 유리 바다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있는 네 생물
“보좌 앞에 수정 같은 유리 바다가 있고 보좌 가운데와 보좌 주위에 네 생물이 있는데 앞뒤에 눈이 가득하더라. 첫째 생물은 사자 같고 둘째 생물은 송아지 같고 셋째 생물은 그 얼굴이 사람 같고 넷째 생물은 독수리 같은데 날아가는 독수리 같은데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이사야가 보았던 스랍의 환상과 에스겔이 본 그룹들의 환상이 기억나는 묘사입니다.
이 네 생물은 피조물 가운데 가장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있는 생물들입니다.
달리 말해 하나님의 최측근 천사입니다.
그만큼 존귀한 위치에 부름 받은 이들인 동시에 그만큼 신속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에 바쁜 모습을 여기에 보여 주고 있습니다.
두 날개가 아니라 여섯 날개로써 부지런히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거꾸로 적용도 가능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모시고 싶습니까?
신속하고 부지런히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도 하나님을 가까이서 뵙고 섬기는 특권과 영광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여기 네 생물의 눈이 안팎에 있어서 항상 깨어서 살피는 것을 보여줍니다.
네 생물은 하나님의 표정을 항상 살피면서 그 뜻을 준행하기 위해 늘 깨어있습니다. 마치 대통령의 표정을 살피는 비서실장처럼 하나님의 표정을 헤아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네 생물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사자, 송아지, 사람, 독수리 같다고 합니다.
새 중에 가장 강한 새가 독수리이고, 가축 중에 가장 힘센 동물이 소이며, 들짐승 중에서 가장 강한 짐승이 사자이며, 그중에 피조물의 강자는 그래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네 생물은 피조물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존재들이고 보좌 가까이에서 하나님을 항상 찬양하며 모든 피조 계에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되도록 받들어 섬기는 천사들입니다.
하여튼 네 생물은 모든 창조 생물을 대표해서 창조주 하나님을 끊임없이 예배하고 있는 것을 여기서 보여 줍니다.
네 그렇습니다.
천국의 또 다른 특징은 예배하는 곳입니다.
다행히 예배 한 시간이 지겨운 사람은 영원한 예배의 장소에는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 가장 가까이 섬기면서 눈이 가득해서 언제든지 모든 정보를 다 입수할 수 있는, 따라서 뜻을 어김 없이 시행할 수 있는 탁월한 존재들로서 하나님의 네 생물을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네 생물의 찬양
그러면 마지막으로 네 생물들의 찬양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이사야가 웃시아 왕이 죽은 다음에 성전에 들어가 들었던 스랍들의 노래를 연상시키는 찬양입니다.
그가 들었던 스랍들의 찬양은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도다.”하는 찬양입니다.
이사야서의 “그 영광이 온 땅에 가득하다”는 표현이 여기 계시록에는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는 표현으로 바뀌었습니다.
전능하신 창조주께서는 영존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신 그분의 미래는 장차 오시는 일로 특징지어지고 있습니다.
그가 어떻게 오실 것인지를 설명하는 것이 계시록 나머지 부분이 하는 역할입니다.
그가 오심이 세상에 미칠 영향을 계시록은 앞으로 서술해 줄 것입니다. 다만 그의 본성의 신실하심으로 인해서 창조주께서 피조 계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실 것이라는 것을 여기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온 세상을 창조하신, 만물을 지으신 그분이, 지으신 피조물을 향한 당신의 뜻을 다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목표는 우리 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 그 일에 끝나지 않습니다.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모든 피조물과 삼라만상이 하나님을 본래처럼 찬송하고 칭송하는 데까지 나아갈 것입니다.
“주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미래는 오시는 일로서 특징지어지고 있습니다. 심판주로서, 구원주로서 그가 오심으로 인류와 우주의 운명은 마감될 것입니다.
인간의 구속에서부터 시작해서 만물의 회복까지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십니다.
그래서 여기 계시록 4장은 창조의 하나님을 부각시킵니다. 그리고 21장에서는 최후의 회복을 선언합니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 21:5)
네 생물은 하나님의 본성의 거룩과 위엄을 찬양한 반면에 이십사 장로들은 하나님의 사역의 영광과 능력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사역만이 피조계 만물의 존재의 근원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존재의 근원이 되는 그분께 힘과 존귀와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까?
그분의 뜻대로 지음을 받은 인생들은 모두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만물은 그를 통해서 존재했으며 만물은 그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만이 존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아무리 깊이 생각해 보아도 인간은 자기 안에서, 자기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뜻! 그것이 세상을 창조했고 그것이 인생을 지었으며 그것이 사람으로 사람 되게 하십니다.
비록 이 세상에 악한 세력이 반항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날 온 우주가 그분의 영광을 환호할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모든 자들이, 그 모든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술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거기서 통치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네 생물은 찬양합니다.
지상의 어떤 세력도 그 선하신 뜻을 파괴할 수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영원토록 지금도 찬송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하늘 보좌의 관점에서 만사를 보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때에 여러분은 비로소 역사를 바로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역사의 실권은 세상의 권좌에 앉아있는 자들이 아니라 하늘 보좌에 앉으신 아버지께 있다는 것을 알 때에 우리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위로를 받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 맺습니다.
요한이 본 환상의 세세함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네 생물과 이십사 장로들을 어떻게 생각해도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우리에게 “하늘 보좌”가 있다는 것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서 우리 주님이 통치하십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나아오신 여러분에게 중요한 것은 하늘 보좌에 시선을 모으는 것입니다.
하늘의 보좌, 거기에 만물의 운명이 달려있습니다.
하늘 보좌, 거기가 우리의 위로의 원천이십니다.
하늘 보좌 거기에 계신 창조주의 영광을 바라볼 때에 세상 역사의 흐름을 바로 이해하게 됩니다.
주일마다 예배의 자리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 계시록은 인류종말에 관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정말 마지막 때가 가깝기 때문입니다.
영광의 그날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계시록을 읽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매주 하나님의 말씀을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예배의 자리가 되도록 여러분의 기도의 후원이 꼭 필요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새로운 상황이 창조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새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부르짖으면 하늘의 하나님께서 개입하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의 처지를 저는 잘 알지 못합니다만 말씀이 있는 자리로 오신 것은 한 주간 동안 그 어떤 결정에 못지않게 잘 하신 결정입니다.
말씀 붙잡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응답하시고 창조의 역사, 치유의 역사, 회복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시시로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십시오.
나날이 하늘 보좌를 사모하십시오.
시시로 그 하늘의 보좌를 묵상하십시오.
날마다 하나님의 보좌를 향하여 영광의 찬송을 돌리십시오.
그 때 하나님이 개입하는 역사, 부흥이 이 땅에 임할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