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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정근두목사]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7-39)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09.11|조회수344 목록 댓글 0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237-39)

성경본문: 사도행전 2:37-39

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40 또 여러 말로 확증하며 권하여 이르되 너희가 이 패역한 세대에서 구원을 받으라 하니

41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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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는 성도 여러분,

지난 주일 <잊어버린 약속>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시작했지만 오히려 "우리가 어찌할꼬?"라는 청중들의 질문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의 첫 부분을 살폈을 뿐입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39절)

 

지난 주일 우리는 베드로의 대답 속에는 포함된 명령만 살폈습니다.

오늘 우리는 베드로의 대답 둘째 부분을 살필 차례입니다. 명령을 순종하는 자에게 주신 약속을 살필 차례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어찌할꼬(37절) 하는 청중들에게 회개하고 세례를, 그것도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설교는 명령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명령을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순종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두 가지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백성이 될 때 누리는 첫 번째 선물은 1 죄 사함의 축복입니다.

여러분과 제가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일원이 될 때에 우리는 사죄의 축복을 경험합니다.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 자들은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을 또한 믿습니다.

 

다시 한 번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소리치던 베드로의 청중의 입장에서 이 말을 들어보십시오.

심지어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를 거부한 죄까지도 용서를 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의 입장에서 번역해보십시오.

지금껏 하나님 없이 살아온 모든 죄가 용서함을 받습니다.

내 마음대로 하나님이 주신 기회를 허비한 죄를 용서받습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모든 재능을 낭비한 죄조차 사함을 얻습니다.

 

여러분은 사죄의 축복을 경험해 보셨습니까?

물밀듯 내 맘에 기쁨이 넘치는새로운 삶을 체험해 보셨습니까?

이전의 모든 불안과 염려가 사라지고 위에서부터 오는 평화에 휩싸인 적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의 인생길이 더 이상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매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환하게 비치는 빛 속에서 천성을 향하여 순례의 걸음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사죄의 축복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죄용서의 체험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일 수 없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38절) 여러분은 이런 찬송을 불러보신 적이 있지요?

지난 주일에 이어서 두 번째 같은 찬송을 불렀습니다.

예수 앞에 나오면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

어떤 사람은 예수 앞에 나오고 모든 죄 사하고 주의 품에 안기어 편히 쉬리라는 찬송을 자기 입으로 부르면서도 어떻게 하면 죄의 용서를 받는지 알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 앞에 나와서 은총을 받으며 맘에 기쁨 넘치어 감사하리라고 찬송하면서도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다.

마음에 기쁨도 없고 입술의 감사도 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면 나이가 들어가도 밝고 빛난 내 집에 길이 살리라는 소망이 없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 번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 우리가 무엇을 노래하는지 되새겨 보십시오.

세월과 함께 육신의 눈은 침침해질 수 있지만 영적인 눈은 저 건너편 빛난 곳을 더욱 환히 내다봅니다.

육신의 귀는 나이와 함께 어두워지지만 여러분의 영혼에 속삭이는 주님의 음성은 더욱 분명해질 것입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그 마음에 기쁨이 있는 자에게는, 주 얼굴 뵈올 때에 넘치는 기쁨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는 죄에 대한 용서를 망각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주님 앞에 나온 것은 죄용서 받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는 성찬은 죄용서의 특권을 확인하는 의식입니다.

주님의 살이 나를 위해 찟겨진 것을 믿고, 그분의 피가 나를 위해 흘려진 것을 믿는 자들은 죄용서의 특권을 누립니다.

 

그러나 그것이 예수 믿는 자들이 누리는 축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베드로는 회개하고 세례를 받는 자에게 제 2의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 용서에 대한 약속보다 더 크고 자주 잊힌 약속입니다.

 

구속 곧 죄 사함은 성도들이 누리는 축복의 첫 시작일 뿐입니다.

죄 용서를 체험한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영광스러운 신분이 주어집니다.

이 세상에서 빛 가운데 살아가는 성도들에게는 하늘의 빛 가운데 주어질 기업에 대한 약속이 남아있습니다.

성도들과 함께 누리게 될 그 영광스런 기업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즉시 이 모든 축복이 우리에게 보장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하나님은 우리를 천국으로 데려가지 않습니다. 우리를 세상에 남겨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미 우리의 죄는 용서되었습니다.

이제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릴 영광의 소망이 확보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죄 많은 세상에 우리를 남겨둔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 패역한 세대에서 우리들만 구원을 얻는 것이 결코 하나님의 계획일 수 없습니다.

그러기에 우리에게는 베드로가 설교한 또 하나의 약속을 되새겨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자에게 죄 사함의 약속과 더불어 두 번째로 성령을 선물로 받는 약속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면 이 성령의 선물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우리를 중생시키는 성령 사역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 사역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연합시키는 성령 사역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를 변화시키는 성령 사역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베드로가 말하는 성령의 선물은 베드로 자신과 기다리던 일백 이십 여명의 성도들이 받은 성령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그들이 한 두 시간 전에 받았던 그 성령을 청중들도 회개하고 세례를 받을 때에 죄 사함과 더불어 받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입니다. 1장의 표현을 빌리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행 1:5)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그들에게 증인으로서의 능력을 주시는 일입니다.

맥추감사절, 신령한 추수를 감당하기 위해서 우린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마지막 추수를 위해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오순절 아침 9시에 임한 성령의 선물은 그들을 중생시키는 성령 사역이 아닙니다.

그들을 그리스도께 연합시키는 사역도 아닙니다.

내주하셔서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임한 성령이 아닙니다.

 

오순절 이른 아침에 임한 성령의 선물은 그들로 하여금 사역자로서 능력을 주십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땅 끝까지 이르러 그리스도의 능력 있는 증인이 됩니다.

이 약속이야말로 사죄의 약속보다도 더 빈번하게 잊혀진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39절)고 베드로는 상기시킵니다.

달리 말해서 성령의 선물로서 능력을 받는 것은 아직도 유효합니다.

회개하고 죄 사함을 얻는 자에게 약속된 능력의 성령은 모든 믿는 자에게 유효합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우리 주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39절)

잘 들어보십시오.

베드로는 지금 자신들에게 임한 성령으로 하나님의 선물이 끝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청중들을 향해서 너희들에게는 기회가 지나갔다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너희뿐만 아니라 너희 자녀에게도 이 약속은 유효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유효하다고 그는 설명합니다.

 

다시 한 번 반복하겠습니다.

우리를 증인으로 만드는 성령의 선물은 열 두 사도들에게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권능을 주시는 성령의 선물은 기다린 백 이십 명의 제자들에게만 한정되지 않습니다.

성령의 선물은 특수 집단이나 특정 세대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자기 앞에 있는 청중들에게 이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를 이어갈 그들의 아이들에게도 동일한 약속을 제공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먼 데 사람에게도 이 약속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여기 모든 먼 데 사람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어떤 사람들은 세상에 흩어져있는 유대인들만으로 한정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기록을 남긴 누가의 생각은 결코 유대인에게만 한정되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가 누가의 비전속에는 처음부터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한 이 기록을 읽게 되는 초대교회도 유대인 디아스포라에게만 한정해서 듣지 아니했을 것입니다.

아니, 베드로 자신이 모든 먼 데 사람에 대한 부연적인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39절)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사죄의 약속과 더불어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약속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이 이 약속이 처음 선포된 시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살고 있다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약속이 처음 선포된 현장에서부터 지역적으로 멀리 떨어져 산다고 염려하지 마십시오.

 

만약 여러분을 하나님이 부르셨다고 하면 이 약속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유효합니다.

이 잊어버린 약속이 새롭게 기억될 때에 교회는 영광스러운 모습을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선교는 새로운 활기를 되찾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놀랍게 확장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나누는 성찬은 죄용서의 특권을 확인하는 의식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기로 서원하는 의식입니다.우리 각 개인에게 죄 용서의 체험을 주신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에게 이 경험을 증명할 능력을 주시는 분입니다. 죄 사함이 믿어지는 것도 성령의 사역이지만 죄 사함의 소식이 전파되기 위해서 성령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는 약속을 귀담아 들어보십시오.

이 약속의 문맥 속에서 오순절 성령 강림을 이해하십시오.

그 날 아침 백 이십 명 성도들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백성은 그가 체험한 진리를 입증해야 될 책임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주 하나님은 사죄의 복음이 땅 끝까지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기를 소원하십니다.

그러나 그는 명령만 하시지 않습니다.

그 명령을 수행할 능력을 부여하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39절)라는 약속을 더 이상 잊어버리지 마십시오.

잊어버린 약속이 여러분과 저의 마음속에 되살아날 때에 교회는 새로운 활기를 찾게 될 것입니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42절)라는 기록은 더 이상 옛 기록으로만 남지 아니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 14:12)

베드로가 깨우친 이 약속을 믿고 간구하는 우리를 통해서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 . .”(요 14:12)라는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주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울산 교회는 잊어버린 약속을 조국 교회에 깨우치는 역할을 이 시대에 감당하기를 소원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요 14: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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