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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정근두목사]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눅21:34-38)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09.20|조회수536 목록 댓글 0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으라(2134-38)

성경본문: 누가복음21:34-38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37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38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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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는 성도 여러분,

이제 우린 봄의 한 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바쁘다고만 자신을 설득하지 말고,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면, 온통 봄소식이 가득합니다. 햇살도, 나무도, 꽃잎들도 봄 인사를 하기에 무척 바쁜데 눈길조차 주지 않고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일뿐 아니라 나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처럼 마음을 쓰셔서 지면을 새롭게, 아름답게 가꾸시며, 여러분의 눈길을 기다리며, 여러분과 눈 맞춤을 하려는데, 제발 딴 짓들 하지 말고, 봄날이 지나가기 전에 아름다운 봄을 즐기시길 바랍니다.

제가 또 이렇게 말했다고 다음 주일날 예배를 빠지려는 청개구리는 없겠지요?

 

이 아름다운 봄날과는 대조적으로, 오늘 본문을 통해 주님이 하시는 말씀은 진지하고 엄숙한 말씀입니다.

사실 지난주일 본문을 통해서는 종말의 확실성에 대해서 힘주어 강조하는 주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더없이 분명한 어조로 재림의 확실성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하늘과 땅의 소멸을 언급하며 세상의 종말에 대한 당신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선언합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33절)

 

가끔 하나님께서 가장 엄숙한 말씀을 사람들에게 하실 때에 천지(天地),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세웁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누가복음 21장 33절은 주님이 발하신 최상급 경고의 교훈입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눅 21:33)

 

마태와 마가 역시 글자하나 다르지 아니한 꼭 같은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막 13:31)

가장 중요한 교훈이기에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두 증인이 아니라 세 증인을 통해서 당신의 교훈을 꼭 같은 문장으로 기록하도록 하셨나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는 청중들로 하여금 종말이 분명히 온다는 사실을 뇌리에 먼저 심어주고, 오늘 본문 34절부터는 거기에 대비한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교훈하십니다.

오늘 본문에는 종말적 삶의 매뉴얼을 구체적으로 들려주십니다.

마지막 날들을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할지를 이제 본격적으로 일러주십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실제적인 교훈을 하기 위해서 21장 전체를 통해서 종말의 도래를 예언하시고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눅 21:33)고 엄숙히 선언하셨다고 보아도 좋습니다.

 

그 때에 사람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7절)

이 편한 세상을 살기에 바쁜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이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27절)

이번에는 푸른 하늘에 흰 구름을 그린 무인기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편한 거처에서 TV를 통해서 보는 것과는 다른 스케일로 오시는 주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역사는 방향 없이 흘러가는 것이 아닙니다.

목적을 정해진 목적을 향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역사는 의미 없는 순환이 아니라, 목적 지향적입니다.

또한 우리가 아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역사의 주인이요 만주의 주라는 사실입니다.

우린 이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이 사실은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거처에 산다는 생각을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에는 어느 곳도 영원한 도시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항상 하늘 본향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거기서 만나 뵐 하늘 아버지를 기다리며 사는 사람입니다.

 

항상 성도들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구주께서 오시는 것을 기다리는 사람입니다. 2천 년 전 데살로니가 성도들뿐 아니라 오늘 우리도 장차 닥쳐 올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예수께서 하늘로부터 내려오시기를 기다리는”(살전 1:10, 표준새번역)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늘로 올라간 예수님을 2천 년 가까이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2천 년 전에 올라가신 하늘로부터 이제 내려오셔서 장차 닥쳐올 진노에서 우리를 건져 주실 것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관심은 성도들의 마음에서부터 사라진 적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입술에서 고백되고 있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믿는 것처럼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려 오십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재림을 약속한 주님은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눅 21:33)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천 년의 세월이 두 번이나 흘러가도 우리 성도들은,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주님의 재림을,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영광스런 약속의 성취가 언제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거기에 대비한 마지막 날들을 어떻게 준비하며 살아야 할지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에게 종말적 삶의 매뉴얼을 구체적으로 들려주십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34절)

주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의 삶은 깨어 있는 삶입니다.

스스로 조심하는 삶입니다.

오늘 우리가 처해있는 위험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가 예상하지 않았고 준비되지도 않은 때에 종말이 온다는 사실입니다.

우주적인 종말인 주님의 심판의 날뿐 아니라 죽음이란 개인적인 종말 역시 예고 없이 닥칩니다.

 

온 세상 사람과 함께 맞이하는 우주적인 종말이나, 개인적으로 홀로 맞이하는 죽음이나 본질적으로는 꼭 같이 주님을 만나는 일입니다.

예상하지도 준비되지 않는 때에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임하지 않도록 준비하십시오! 주님의 마지막 부름이 뜻밖에 . . . 덫과 같이 되지 않도록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비극적 최후를 피할 수 있습니까?

세상에 살되 세상에 빠져들지 않아야 합니다.

세상에 빠져드는 삶을 어떤 삶입니까?

정신을 차리지 않고 사는 삶입니다.

주님은 그것을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라고 꼭 집어냅니다.

 

세속적인 삶의 첫 번째 특징은 세상을 즐기는 삶입니다.

세상을 즐기는 대표적인 현상이 방탕함과 술취함입니다.

죄악된 본성이 좋아하는 것들에 빠지고 감각적인 쾌락에 빠져드는 것이 방탕함입니다.

 

사람들은 대개 무절제하게 먹고 마시는 것 때문에 몸도 마음도 망칩니다.

의사요 목사였던 로이드 존스의 전기를 읽어보면 신사의 나라 영국의 가장 정상급 인사들이 병원을 찾는 주원인은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마신 결과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방탕함과 술취함으로 인해서 죄를 짓기도 하고, 육체적인 삶의 무질서가 마음에 악영향을 끼치고, 마음이 둔하여지게 합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빠져들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소홀히 하기 쉽습니다.

 

마땅히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점점 둔감하고 결국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방탕함과 술취함은 양심을 둔하게 만들어서, 가장 민감해야 할 일들에 대해서 마음이 무감감하게 되는 일이 벌어집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삶의 두 번째 특징은 세상에 대한 염려입니다.

가진 사람들의 문제가 방탕함과 술취함이라면, 갖지 못한 사람들의 문제는 생활의 염려라고 지적합니다. 일반적으로 말해서 가진 자들은 방탕함과 술취함이라는 쾌락의 덫에 걸려든다면 갖지 못한 자들은 생활의 염려라는 늪에 빠져듭니다.

 

사람들은 많이 주어도 방탕함과 술취함에 빠져서 마음이 둔하여지고반대로 형편이 어려워도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하는 생활의 염려에 빠져서 마음이 둔하여지고 맙니다. 결과적으로 모두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정신 차리고 살도록 권면합니다.

주님의 백성들의 정신을 빼앗는 것은 방탕하고 술 취한 것뿐이 아니라, 이 세상의 먹고 사는 문제에 온 마음을 다 빼앗기면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게 됩니다.

 

주님은 오늘 본문에서만 세상에 빠져서 사는 삶을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라고 지적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도 지적하셨습니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눅 8:14)

 

세상을 살면서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히면 마음이 둔하여 지고 말씀이 결실하지 못합니다.

이생의 염려재리와 일락이든 풍성한 삶을 살도록 방해합니다.

생명의 기운을 막습니다.

 

제가 즐겨 살펴보는 메시지 성경(The Message)은 같은 본문을 이렇게 번역합니다.

잡초 밭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지만 세상사는 일로 내일을 염려하면서 돈벌고 즐기느라, 씨가 자리 잡지 못해 아무 소득이 없는 사람이다.”(눅 8:14, 메시지성경)

 

또한 <산상보훈>에서도 주님은 갖지 못한 청중들을 향해서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1~32)

 

동시에 사도들도 성도들을 향해서 권면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7~8)고 보통 신자들에게 권면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특히 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자들에게 권면합니다.

그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유혹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도 해로운 욕심에 떨어집니다. 이런 것들은 사람을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합니다.”(딤전 6:9, 표준새번역)

 

돈만 있으면 행복해 보이는 세상을 살면서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초연해서 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답게 맑은 정신으로 살아가려면 부자가 되고 싶은 유혹을 물리쳐야 합니다. 오히려 선한 일을 향해서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그대는 이 세상의 부자들에게 명령하여, 교만하지도 말고, 덧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도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고 하십시오.” “또 선한 일을 하고, 좋은 일을 많이 하고, 아낌없이 베풀고, 즐겨 나누어 주라고 하십시오.”(딤전 6:17, 표준새번역)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백성들의 정신을 빼앗는 것은 방탕하고 술 취한 것뿐이 아니라, 이 세상의 먹고 사는 문제에 온 마음을 다 빼앗기면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임하게 됩니다.

 

그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덫과 같이 임할 것입니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35절)고 주님은 엄숙히 선언하십니다.

 

오직 땅의 일만 생각하고, 하늘과 아무런 교통이 없는 자들에겐 당연히 덫과 같이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사람은 자기의 시기도 알지 못하나니 물고기들이 재난의 그물에 걸리고 새들이 올무에 걸림 같이 인생들도 재앙의 날이 그들에게 홀연히 임하면 거기에 걸리느니라.”(전 9:12)

 

그렇습니다.

사람들은 언제 어떤 일이 자기에게 닥칠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물에 잡히는 물고기처럼, 올가미에 걸리는 들짐승처럼 사람들은 누구나 갑자기 재앙을 만나 내리 덮치는 죽음의 덫 속으로 똑같이 빠져 들어갑니다.

 

그날은 그들에게 두려운 날이자 멸망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날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자들에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서운 순간일 것입니다.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35절)고 하늘과 땅은 사라져도 반드시 성취되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날입니다.

모든 사람은 다 심판자 되시는 주님 앞에 호출될 것이고 서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선언합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 2:10~11)

 

그러므로 계속되는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입시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36절)

 

주님은 이 큰 날을 위해서 준비하라고 명하십니다.

미리 마지막 심판의 계획을 공개하는 이유는 제자들로 하여금, 성도들로 하여금 깨어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의 목표는 무엇이어야 합니까?

우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할 수 있을까요? 성도들의 삶이 오직 주님께만 순종할 때 가능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깨어 경계하고 기도할 때 인내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것은 순종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대망하는 것은 기대하는 눈빛을 가지고 주님의 돌아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를 자기에게 데리려 올 것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는 주님께서 믿음으로 걸을 힘을 주실 것을 바라보며 의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져도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일차적인 목표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악한 세상에 퍼부어질 때 그 혹독한 심판으로부터 면하는데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당하는 재앙을 우리는 당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운명이 우리의 운명이 되지 않도록, 죽음의 날에 그 사망의 독침을, 곧 하나님의 진노와 지옥의 저주를 피하게 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입니다.

 

그러려면 하늘의 음성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그 죄는 이미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모두 기억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죄에서부터 벗어나야 재앙으로부터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재판장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무죄방면을 받고 그리스도의 날에 담대함을 얻는 것입니다.

 

이뿐 아니라 우리 주님이신 그리스도 앞에 모셔 서는 것입니다.

그의 보좌 앞에 늘 서서 그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를 섬기는 것입니다.

천사들과 함께 항상 그의 얼굴을 뵈옵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5~17)

 

우리 하나님께서는 성도들 안에서의 은혜의 선한 역사를 통해서 성도들을 이러한 복을 받기에 합당한 자들로 만드시고, 성도들을 향한 은혜의 선한 뜻으로 말미암아 성도들을 이런 복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여기십니다.

하지만 성도들은 자신의 무가치함을 인정하고 항상 고백합니다.

 

이 목표를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깨어 있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항상 함께 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기도가 되는 날은 새벽에도 정신이 맑아져 옵니다.

기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어떻게 그렇게 밤낮없이 잠이 오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여기서 깨어 있다는 뜻은 신체적인 수면보다 정신적인 깨어있음을 더 의미할 것입니다.

 

하여간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는 명령은 항상 순종해야 합니다.

일생동안 꾸준히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는 명령아래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죄를 짓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모든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우린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합니다.

오실 주님을 대망하며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항상 주님 맞이할 준비된 상태에서 살기 위해서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는 명령이 필요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계속 유지하기 위하여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는 명령은 항상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이 습관이 되려면 시간을 정해놓고 하는 것이 효율적입니다.

그래서 우린 새벽이나 저녁에 함께 모여서 기도합니다.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는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 하루 어떤 일보다 기도하는 일을 우선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일에 기도해야 합니다.

마치 일과를 세세히 부모님께 아뢰는 착한 자녀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 아버지께서 무척 기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서 기도의 삶을 사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저 세상에서 찬양의 삶을 살기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 기쁨 기도 감사의 삶을 살면 거기서도 기쁨의 찬양을 하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두절을 살펴봅시다.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37~38)

 

오늘 본문의 마지막 두 절은 주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승리의 입성을 하신 때로부터 그가 붙잡히신 밤께서 며칠을 어떻게 보내셨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셨습니다. 안식일만 아니라 평일에도 가르치셨습니다.

 

매월 받은 사례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만 사역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가르치게 하셨습니다.

대적자들의 면전에서도 담대히 가르치셨습니다.

그를 죽일 빌미를 찾고 있던 자들 앞에서도 가르치기를 중단하지 아니했습니다.

 

밤에는 성을 빠져나가서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셨습니다.

아마 베다니에 있는 친구 집으로 갔을 것으로 생각하는 이도 있고, 아예 별빛 아래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통해 백성들을 가르칠 힘을 공급받았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친구와의 교제도 가끔 우리에게 힘을 공급하지만 하나님 아버지와의 교제는 세상 어디서도 얻을 수 없는 힘을 항상 공급합니다.

은밀한 교제, 은밀한 기도의 시간은 이른 아침부터 모여드는 백성들에게 가르칠 힘을 얻는 원천이기도 했을 것입니다.

 

어쨌든 다음날 다시 예루살렘 성안으로 돌아오셨을 때는 이미 모든 백성이 그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이른 아침부터 모여 있었습니다.

주님도 열정적으로 가르치셨지만 백성들도 열심히 몰려들었습니다.

진지하고 진솔한 가르침은 재치 있고 학식 있는 자들, 권세 있는 자들의 연설보다 더 백성들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습니다.

 

바라기는 울산교회 강단위에서 선포되는 말씀들이 울산시민들이 들으려고 나아오는 복된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재림에 대한 주님 말씀은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무도 예외가 없습니다.

가장 좋은 대비책은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한 주간 동안 우리가 오늘 들은 말씀처럼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는 복된 삶을 살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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