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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정근두목사]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 5)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09.28|조회수87 목록 댓글 0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55)

성경본문: 마태복음 5: 5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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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린 요즈음 예수께서 산위에서 가르치신 복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들이 모두 여덟 번 복이 있나니로 되어 있기에 팔복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그 세 번째 말씀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그런데 온유하다는 말은 가끔 오해를 불러옵니다.

온유한 자라고 할 때 온유란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까? 온유한 사람은 유약한 사람이 아닙니다. 무기력한 맥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온유란 잘 통제된 힘을 가르칩니다.

온유라는 본래 말(헬라어)은 길들어진 야생마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펄펄 나는 열을 가라앉히는 약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사람은 힘없는 사람이 아니라 좌중을 제압하는 권위 있고, 절제 된 힘이 있는 사람입니다.

 

온유하다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바른 견해요, 특히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타나는 태도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만심을 갖지 않은 사람이요, 자기에 대한 과민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을, 우리의 주장을, 우리의 권리를,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맡기는 것입니다.

 

온유란 통제 아래 있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라는 말은 이렇게 바꾸어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과잉 반응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나니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사람들에게 반응합니까?

나의 행동이 복의 원천이 되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요?

온유한 사람은 어떻게 사람들을 대할까요?

그 다섯 가지 태도를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1 온유한 사람은 섬기는 사람들에게 요구하는 대신 그들을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각각 자기 일을 돌볼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4,5)

 

여러분을 섬기는 사람을 어떻게 대합니까?

사무직원이나 가사도우미나, 창구직원이나, 아니면 패스트푸드 음식점에서 일하는 사람을 대할 때, 여러분은 그들을 이해하는 편입니까?

아니면 지시하고 요구하는 편입니까?

 

우리 교회 성도들에 대해서 근처의 상점들이나 음식점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요?

급하게 다가오는 사람들, 까다롭고 요구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로 비취지 않기를 바랍니다. 잘 이해하고 친절한 사람들이라고 알려지길 원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상대방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대합니다.

 

2. 온유한 사람은 실망시키는 사람들에게 비판하는 대신에 부드럽게 대합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견을 비판하지 말라(롬 14:1, 개역개정).

현대어성경은 이렇게 풀어서 번역합니다.

여러분이 동료가 되기를 원하는 형제가 있거든 그의 믿음이 약하더라도 따뜻이 맞아들이십시오. 옳고 그른 일에 대해 서로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롬 14:1, 현대어성경)

 

행복은 자기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수용할 때 옵니다.

여러분의 사랑을 받을 만큼 수준이 되지 못해도 사랑으로 받아드릴 때 행복은 찾아옵니다. 사랑할 만한 사람을 사랑하고, 이해할만한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수준에 미치지 못해도 받아드리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만일 어떤 그리스도인이 죄에 빠져 있거든 성령을 따라 사는 여러분이 부드럽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를 도와 바른길로 돌아오게 하십시오. 그리고 혹시 여러분 자신도 악한 길에 빠져 들지 않을까 늘 주의하십시오. 서로 남의 어려움과 짐을 함께 나누어지고 주님의 명령에 복종하십시오.”(갈 6:1,2 현대어성경)

 

자기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사람을 보면 여러분은 어떻게 처신합니까?

짭짤한 재미를 느끼고 절호의 기회가 온 듯이 비난합니까?

내가 그렇게 된다고 말했잖아! 내 그럴 줄 알았어! 아이구 멍청이 같으니라구!”

 

다른 사람이 실패하면 은근한 만족을 느낍니까?

온유한 사람, 복이 있는 사람은 그런 순간에 다른 사람을 비난하지 않고 부드럽게 대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예수께서 가장 화를 낸 대상은 스스로 신앙이 좋다고 여기면서, 자기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을 비판하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3.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따라가는 대신에 부드럽게 대안을 제시합니다.

살다보면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할 수는 없습니다.

한 무리를 기쁘게 하면 다른 무리들이 행복해 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일순간 영웅이 되기도 하지만 다음 순간 역적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굴복하지 않고도 바른 태도를 견지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은 의견이 다른 사람들과도 어울리는 사람입니다.

성가시게 하는 사람들, 항상 다른 의견을 내세우는 사람들도 받아주는 사람입니다.

논쟁을 하고 싸우기를 즐기는 사람조차도 수용하는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 어떻게 합니까?

두려워하며 물러설 수도 있습니다. 화를 내어 공격할 수도 있습니다. 사랑으로 반응할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대개 세 가지 중 하나를 선택할지 모릅니다.

 

온유함은 자신의 확신을 굽히고 타협하는 것이 아닙니다.

굴종하지 않고도 부드럽게 처신할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취급해도 가만히 있고, 학대를 받아도 짓밟히기만 하고, 매사에 양보하고 다른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하도록 내어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온유한 태도가 아니라 유약한 처신입니다.

 

그렇다고 온유는 화를 내며 반응하는 것도 아닙니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을 한 방에 날려 보내는 것이 아닙니다.

한 마디 말로 상대방을 박살을 내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얻거나 잃는 상황이 아닙니다.

훌륭한 사람은 승리해도 아무 것도 아닌 일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이러나저러나 상관이 없는 일에 이기려고 싸우지 않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부드러운 대답은 분노를 가라앉히지만, 거친 말은 화를 돋운다.”(잠 15:1, 표준새번역)

그래서 야고보 선생은 말합니다.

질투나 이기적인 욕심이 들끓는 곳은 무질서하고 온갖 악한 것들이 범람합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오는 지혜는 순결하고 온유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평화를 사랑하고 예의가 바릅니다. 남의 의견을 존중하고 남에게 기꺼이 양보합니다. 자비심이 강하고 선한 일을 즐겨합니다. 진심이 들어 있고 솔직하며 성실합니다.”(약 3:16, 17 현대어성경)

 

온유함이란 통제된 힘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부드러운 거인을 상상해 보십시오.

논쟁적인 태도에는 자아의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상대방에게 굴복하지 않고도 자기 길을 갈 수 있는 사람입니다. 반대자들과도 합의점을 도출합니다.

 

눈과 눈을 마주보지 않고도 손과 손은 서로 잡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꼭 같은 두 의견보다, 서로 다른 의견이 삶을 풍성하게 합니다.

숟가락 두 개로 밥을 먹는 것보다 숟가락 한 개와 젓가락으로 밥을 먹으면 더 쉽습니다.

 

언제나 의견일치를 보지 않아도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서로 의견이 다를 때, 그냥 따라가기만 하거나, 악을 쓰고 거품을 물고 싸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으로 반응하고 부드러운 말도 답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유함은 지도자의 필수적인 자격입니다.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으며 거역하는 자를 온유함으로 훈계할지니(딤후 2:24,2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이 그 사람을 바꿀 것을 믿으며 온유함으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입에 거품을 물고 싸운다고 사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기독교에근본적인 것에는 일치를, 그렇지 않은 것에는 다양성을, 모든 일에는 사랑을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다양성을 추구하십시오.

울긋불긋 단풍이 아름답고, 온갖 꽃들이 서로 달라도 아름답듯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하나 되면 의견이 서로 달라도 받아드릴 수 있습니다.

 

4.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바로 잡아줄 때 귀를 막지 않고 받아드립니다.

온유함이란 가르침을 잘 받아드리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배우려는 열정을 가진 사람입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다 하는 척 하지 않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안다고도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하려고 들지도 않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1)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2)말하기는 더디 하며 3)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

꼭 기억해야 할 구절입니다.

어떻게 우리의 성질을 통제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줍니다.

처음 두 가지를 하면 세 번째는 자동적으로 따라옵니다.

 

듣기를 속히 하고 말하기를 더디 하면 급히 화를 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듣기를 더디 하고 말하기를 빨리하면 화내는 것도 빨리하게 됩니다.

잘 들으십시오.

두 개의 귀를 잘 활용하십시오.

그러면 가르칠 방법이 없는 대책 없는 사람이 아니라, 가르침을 잘 받아드리는 유순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배우자가 건설적인 제안을 할 때 평소 여러분의 반응은 어떠합니까?

화를 내고 반박할 말을 찾습니까?

온유한 사람은 모든 대답을 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모든 답을 하려고 들면 피곤해집니다.

모든 대답을 하려는 사람들은 무서운 사람입니다. 위험한 사람입니다.

 

여러분은 새로운 생각에 열려있는 사람입니까? 닫혀있는 사람입니까?

변화에 꽉 막혀 있습니까? 변화에 열려있는 사람입니까?

우린 늘 이렇게 해왔어!”라고 말하는 사람은 막힌 사람입니다.

고쳐주려고 할 때 수용하는 사람은 온유한 사람입니다.

고집하지 말고 변화를 수용하십시오.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려는 열정이 특별한 사람입니다.

가르침을 잘 받아드리는 사람입니다.

우린 모든 사람으로부터 배울 것이 있습니다. 우린 서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우린 서로 다른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모르는 점은 있습니다. 우린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올바른 질문을 하기만 하면 서로를 통해서 배울 수 있습니다.

잠언은 말합니다.

사람의 생각은 깊은 물과 같지만, 슬기로운 사람은 그것을 길어낸다.”(잠 20:5, 표준새번역)

질문을 던지십시오. 그것은 지혜를 얻는 지름길입니다.

깊은 우물물 같은 심오한 지혜를 길어 올리는 법을 배우십시오.

 

사람을 만나면 어떤 질문을 통해서 배울 수 있을까요?

저와 같은 목회자라면 다른 목회자를 만나 이렇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목회를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결정은 무엇이었습니까?

삶을 바꾼 다섯 권의 책을 알려주십시오.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십니까? 건강관리는 요?

 

항상 배우는 사람은 항상 성장하는 사람입니다. 아이들로부터도 배울 수가 있습니다. 처갓집 식구들이나 시월드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습니다.

반대자들로부터도 배울 수가 있습니다.

극렬한 반대자가 여러분을 가장 잘 다듬어줄 수 있습니다.

그들의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를 도와주기도 합니다.

 

물론 반대자들은 상처를 주려고 한 것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상급을 주려는 데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들이 잘못된 동기로 한 일도, 어떤 면에서 여러분을 더 슬기롭게 빚기도 합니다. 온유함을 항상 배우는 자세입니다.

 

5. 온유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줄 때 반사적인 행동을 하지 않고 올바른 행동을 합니다.

온유한 사람은 언제나 주도적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 12:17)

 

살다보면 상처를 받는 일은 없을 수 없습니다.

걸음마를 하고 나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상처 없이 살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온유함이란 거기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입니다.

팔복의 처음 두 가지는 자기 자신에 대한 자세입니다만 여기서부터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다룹니다.

 

일부러 여러분을 괴롭힐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합니까?

보복하고 갚아주려고 합니까?

그럴 때는 우리 머리가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 모릅니다.

상처를 준 사람에게 갚아주는데 있어서는 정말 창조적 사고를 합니다.

아이큐와 상관없이 머리가 팽팽 돌아갑니다. 복수를 위한 창조적 전략은 본능적입니다.

 

그러나 보복하는 것은 반사행동입니다.

전부가 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따라서 반응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용서하는 것은 반사행동이 아니라 바른 행동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창조적인 행동이요 주도적인 행동입니다.

 

아침 일찍 볼일이 있어서 가게에 들렀습니다. 그런데 아주 불친절한 주인을 만났습니다. 예의도 없고 막나가는 사람입니다. 그래도 가게를 나오면서 좋은 하루 되세요라고 웃으며 인사할 수 있습니다.

나쁜 기분으로 하루를 보내지 않으려면 그 사람의 불친절한 분위기에 말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다보면 피해갈 수 없는 무례하고 막나가는 사람들을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분의 하루 기분을 좌우하도록 맡겨서는 안 됩니다.

그를 미워함으로 그 사람이 나의 인생을 통제하고 망치게 하도록 결코 허용하지 마십시오.

 

정말 미치게 만드네라고 씩씩거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분의 감정을 지배하도록 맡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분의 감정을 통제할 능력을 갖게 하는 것입니다.

보복하려는 순간 인생의 통제권을 양도하는 것입니다.

갚아주려고 생각하는 순간 여러분은 더 이상 여러분의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반사작용을 하지 마시고 주도적인 바른 행동을 하십시오.

온유한 사람은 그럴 때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줄 아는 사람입니다.

온유함은 보복하지 않고 상처를 다룰 줄 아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함을 가장 잘 정의한 구절은 잠언에 나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무엇이 여러분의 감정을 다스립니까?

여러분 자신입니까?

누군가 다른 사람입니까?

정말 미치게 만드네.”라고 중얼거리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감정을 지배한 것이 주변 상황입니까? 여러분의 성품입니까?

그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스스로 보복하려고 들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게 드립니다.

특히 억울하게 고난을 당할 때 우리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기억해야 합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롬 12:19)

 

정말 뚜껑 열리게 하네.”라고 중얼거리지 마십시오.

그런 상황에서 바른 선택을 하십시오.

그런 때는 행복을 선택하든지 침울을 선택하든지 해야 합니다.

행복은 선택입니다.

여러분의 감정은 상황이 결정하거나 선택이 결정하거나 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스스로 통제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할 것인지를 선택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이제 그런 온유한 사람에게 약속되는 축복을 살펴봅시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무슨 뜻입니까? 예, 여러분이 상황을 통제하신다면 세상 모두는 이미 여러분의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항상 만족하는 사람입니다.

 

이미 만족한 사람은 아무 것도 갖지 못해도 모든 것을 이미 가진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합니다.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바울은 가르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며 고백한 사람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보내준 연보를 받으면서 말합니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 4:11,12)

 

동일한 말을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는 고린도 성도들에게도 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고후 3:21)

예, 성도들은 여기 땅 위에서 이미 만물을, 땅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입니다.

 

나치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던 유명한 심리학자 빅터 플랭클은 말합니다.

그들은 나의 옷가지를, 나의 아내를, 나의 자녀들을, 나의 결혼반지를 빼앗아갔습니다. 나는 나치 군인 앞에 발가벗은 채로 서 있었습니다. 그들은 나의 모든 것을 빼앗아갔지만 그들에게 어떻게 반응할지를 선택하는 나의 자유를 빼앗지는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자유는 여러분이 항상 가질 수 있는 자유입니다.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는 나치도 빼앗지 못한 자유입니다.

여러분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 하는 것은 여러분의 선택입니다.

 

성도는 더 이상 상처 입은 자, 희생자들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기쁨 기도 감사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고백하는 동시에 내 잔이 넘치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자들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지금 여기서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더 영광스런 기업을 그 때 거기서 상속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는 선언에는 현세의 약속만 아니라 내세의 약속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6:2)

장차 여러분들은 세상을 심판할 것입니다. 천사들까지 심판할 것입니다.

그 때 여러분을 땅을 기업으로 상속받을 것입니다.

 

로마서 8장에는 말합니다.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롬 8:17)

그 때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땅을 유업으로 받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롬 8:17)

 

예수께서 직접 약속하십니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눅 14:11)

온유함으로 자기를 낮추는 자는 그날 영광스런 기업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축복은 온유함으로 자기를 다스리는 자들에게 주어집니다.

마음대로 되면 누가 그렇게 하지 않겠어요.’라고 혹 질문할지 모릅니다.

화가 나서 뚜껑이 열릴 때는 내 자신도 감당이 되지 않거든요.’라고 고백할지 모릅니다. 그렇습니까?

그렇다면 모든 상황을 여러분의 통제 아래 다스릴 힘을 주시는 분을 만나셔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한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딤후 1:7)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의 영을 너 안에 넣어주면 너는 나약하고 비겁한 사람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결과는 세 가지로 나타납니다.

능력과 사랑과 절제입니다.

여러분의 반응을 통제하는 비결은 하나님의 영이 순간순간 여러분의 삶에 가득해 지는 것입니다.

그는 우리의 모든 나쁜 습관의 사슬을 끊으실 것입니다.

조금만 기분이 상해도 자기 통제가 되지 않는 습성을 정리하실 것입니다.

 

부정적이고, 방어적이고, 두려움과 조소적인 가운데 성질을 부리는 옛 습성을 처리해 주실 것입니다.

이 모든 더러운 옛 습관을 단절하고 이제부터 여러분의 삶은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성령으로 지배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온유함입니다. 사랑으로 통제되는 능력입니다.

 

이런 삶을 잘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한 방에 원수들을 다 날릴 수 있었지만, 열두 군단이 더 되는 천사를 호령하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죽음은 맛보셨습니다.

온 세상을 순식간에 끝장을 내실 수 있는 분이셨지만 사랑으로 그 능력을 유보하셨습니다.

 

예, 상황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지만 반응은 우리가 통제할 수 있습니다.

상황이 어렵습니까?

관계가 힘듭니까?

그 무엇보다 여러분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온유함을 개발시키십시오.

그러기 위해서 모든 고통의 원인인 자아와의 거래를 단절하십시오.

이제부터는 성령에 의해서 여러분의 행동이 지배되게 하십시오.

주님이 여러분의 삶에 들어오시면능력과 사랑과 절제가 가능하게 하십니다.

이제 다 함께 기도로 나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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