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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정준모 목사]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수 5:13-15)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09.29|조회수3,157 목록 댓글 0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513-15)

성경본문: 여호수아 5:13-15

13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14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15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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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투인 여리고성 전투를 앞두고, 여호수아도 사람인지라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책임자의 어깨는 항상 무거운 법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요단 강을 마른 땅을 밟고 건넌 후, 길갈에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열두 지파를 상징하는 돌 열두 개를 요단 강에서 가져다가 길갈에 세워서 오고 오는 세대 사람들에게 하니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을 잊지 않게 하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애굽의 수치를 굴러가게 하시기 위해 할례를 행했습니다.

큰 전쟁을 앞둔 상황에서 결코 순종하기 쉽지 않은 명령이었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리고 첫째달 십사일에 유월절 명절을 지켰고, 가나안 땅에서 나는 소산물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광야 생활할 때 하나님께서 40년간 내려주셨던 만나가 그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되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요단강을 건넜으며, 이미 가나안 땅에 들어왔습니다. 앞을 향해 전진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앞에 여리고 성이 있었습니다.

진짜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여리고 성은 가나안의 모든 성 중에서 가장 견고한 성으로 알려졌습니다. 도저히 이스라엘 사람들의 능력만으로는 싸워 이길 수 없는 성이 앞에 가로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두렵고 걱정도 되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런 고민을 하면서 여리고성 쪽으로 가까이 가 보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눈을 들어 보니, 앞에 칼을 찬 한 사람이 길을 막고 서 있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물었습니다. 당신은 우리 편이요, 아니면 적군 편이요?”

수5:13절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눈을 들어 본즉 한 사람이 칼을 빼어 손에 들고 마주 서 있는지라. 여호수아가 나아가서 그에게 묻되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적들을 위하느냐 하니

군대 장관이었던 여호수아는 머리 속에 온통 전쟁에 관한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칼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을 보자마자 당신 누구 편이요?”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의 질문에 그 사람은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아군 편도 아니고,적군 편도 아니다’,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땅에 엎드릴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라고 질문했습니다.

본문 수5:14절입니다. 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이르되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지금 왔느니라 하는지라. 여호수아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절하고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종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

 

이 여호수아의 질문에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하나님께서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과 똑 같은 말씀을 주셨습니다.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출애굽기3장에 보면, 모세가 미디안 땅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을 칠 때에, 하루는 양 떼를 이끌고 호렙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떨기나무에 불이 붙었습니다. 불이 붙으면 타 없어져야 하는데, 왠지 불이 붙어 있는데도 타지 않았습니다.

너무 이상해서 자세히 보려고 가까이 가는데,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온 것입니다.

출3:4-5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돌이켜 보려고 오는 것을 보신지라. 하나님이 떨기나무 가운데서 그를 불러 이르시되 모세야 모세야 하시매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을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똑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수5:15절,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여러분,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하셨을까요?

신이 더러워서 벗으라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신을 벗으면 더 냄새가 날 수 있습니다.

 

신을 벗은 것은 상징적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만났을 때,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요구하신 데는 두 가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거룩하지 않은 인간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인간은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고, 인간은 죄인입니다.

신학적으로 말하면,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은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추한 모습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세상의 더러움과 거짓의 신발을 벗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어야 하며, 진실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 어떤 가면도 통하지 않습니다.

오직 진실한 모습만이 통합니다.

 

둘째로, 신을 벗는 것은 유대인들의 풍습에 의하면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룻기4장에 보면, 보아스의 친척 중 보아스보다 우선적으로 룻에 대한 책임과 권리를 가진 친척이 한 사람 등장합니다.

보아스가 엘리멜렉 가문과 룻에 대한 책임을 지고 싶어도 우선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성문에서 장로들을 모아 놓고 그 친척에게 의향을 물었습니다.

 

그 친척은 처음엔 책임은 생각하지 않고 땅에 대한 권리만 생각하여, 자신이 기업을 무르겠다고 하였다가, 생각해 본 후에 마음을 바꿉니다. 손해가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보아스에게 권리를 이양한다는 의미로서 신발을 벗는 행위를 합니다.

룻4:7-8절입니다. 옛적 이스라엘 중에는 모든 것을 무르거나 교환하는 것을 확정하기 위하여 사람이 그의 신을 벗어 그의 이웃에게 주더니 이것이 이스라엘 중에 증명하는 전례가 된지라. 이에 그 기업 무를 자가 보아스에게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사라 하고 그의 신을 벗는지라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따르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것입니다.

더 이상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이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이 말로는 쉽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기는 너무나 어렵습니다.

 

· 모세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고 했을 때, 즉시 벗었는지 안 벗었는지 성경에 나와 있지는 않습니다.

그 자리에서 신을 벗었을 수는 있지만, 모세가 하나님의 주권을 완전히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 까지는 어느 정도 시간이 걸렸습니다.

 

출애굽기를 자세히 보면, 모세가 거의 일곱 번 정도를 하나님의 부르심에 토를 달면서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모세야, 이집트로 가서 신음하는 내 백성을 이끌어 내라

모세는 예스라고 하고 이집트로 가지 않았습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었습니다.

(1) 내가 누구이기에 바로에게 가며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건져내겠습니까?(출3:11) 내가 함께 하겠다.”

(2) 하나님께서 나를 보내셨다고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로 물을텐데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할까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름을 가르쳐 주십니다.

(3)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길,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않니하셨다라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의 지팡이를 뱀이 되게 하는 기적과 품 속에 손을 넣었을 때, 나병이 걸렸다가 다시 넣었을 때 낫게 하는 기적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4) “오 주여, 나는 본래 말을 잘 하지 못하는 자입니다. 나는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자이니이다.”

(5)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그래서 하나님은 형 아론을 붙여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6) 장인 이드로에게 가서 이집트에 갔다 오겠다고 보고할 때, 호렙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야기를 쏙 빼고 이야기합니다. (이집트에 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아직 살아 있는지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7)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목숨을 노리던 자들을 없애시고 모세가 편안한 이집트에 가실 수 있도록까지 하셨습니다.(출4:19)

모세는 그제야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이집트로 향했습니다.

출4:20,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모세는 하나님과 오랜 씨름 후에 마침내 신을 벗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신을 벗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발에서 신을 벗는 것의 의미는 하나님의 주권에 대해 머리로 아는 것 정도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에 머무르지도 않습니다.

들었다면,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고, 하나님의 주권을 입술로 인정하는데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당신의 종들에게 우선적으로 신을 벗으라고 하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자신의 권리를 내려 놓으라고 요구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본심은 권리를 빼앗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축복을 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손에 있는 것을 내려 놓으라고 하실 때에는 손에 무엇인가를 들려주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모세 – 어떻게 모세의 능력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낼 수 있겠습니까? 오직 하나님을 의지할 때,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신을 벗으라는 것은 모세 혼자 할 수 없는 것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도와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 -여호수아가 어떻게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있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자기 자신을 의지하기 보다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승리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군대 장관이지만, 진정한 의미의 총책임자는 하나님 자신임을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의 총 책임자는 여호수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군대 장관이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철저히 믿고 따라 오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러니까 신을 벗으라는 이야기는 권리를 포기하라는 뜻이면서 동시에 이제부터 도와주겠다는 의미도 있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으로부터3천 500년 전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만, 주님이시고, 오늘날 우리 시대에는 주님이 아니신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영원히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1)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전에 제가 얘기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11년 전에 제가 이 교회에 부임해 올 때, 버밈햄에서 65번 고속도로를 타고 몽고메리 쪽으로 오는데, 제 가족이 타고 오던 미니 밴이 고장났습니다. 길에 섰습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레카 차(Wrecker, 견인차)에 실려서 오게 되었습니다.

어렵게 밤 늦게 어번에 도착했습니다.

그 때 토잉 차에 끌려 오면서, 깨달았습니다.

내가 교회를 이끄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이끄시는 분이시구나!”

 

또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제가 어번 오펠라이카 교회에서 담임목사라고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주님께서 담임목사이시고, 저는 부목사처럼 주님의 교회의 머리되심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인도해주소서!

여러분, 이 교회가 부흥했다면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교회의 주인이시며, 인도자이신 것입니다.

 

(2) 교회뿐 아닙니다.

여러분의 가정의 주인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보다 가정을 잘 인도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정의 주인되심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정의 문제가 무엇이든 그 문제도 주님께 맡겨 드리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비즈니스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여러분의 분야를 잘 모르지만,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보다 여러분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도 더 잘 아시는 주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맡긴다는 말의 의미는 기도로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잘못된 기도는 자기 뜻과 계획을 세우고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요청하는 것입니다.

바른 기도는 하나님의 뜻을 묻고 그 뜻대로 구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러나 앞에서도 모세의 예에서 말씀드렸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신고 있던 신을 벗는 것이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말로 인정하는 것까지는 쉬울지 몰라도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마태복음16장에 보면, 베드로의 멋진 신앙 고백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렀을 때에, 제자들에게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이제 예수님은 질문을 바꾸어서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잘 대답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너무나 훌륭한 신앙 고백입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해 주셨습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그러면서 예수님은 교회에 관한 비전을 나누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의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베드로의 신앙 고백만 보면, 흠잡을 데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고백하고,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였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예수님과 베드로의 대화를 보게 되면 아직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입술로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했지만 진심으로 인정하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 후에 이 때로부터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당하실 고난과 죽음에 대해 비로소 말씀하십니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리라라고 까지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의 본심이 드러났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였습니다.

다른 번역에서는 예수님을 꾸짖었다고 되어 있습니다.

주여, 그리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주님을 위해 간언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막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나요?

예수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아니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마16:13-13)

 

여러분,베드로는 입술로는 예수님을 주요, 그리스도시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멋지게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했습니다.

주님의 뜻에 따르지 않으려 함으로써,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예수님의 책망을 들어야 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되기가 쉽습니다.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자주 고백하면서도 삶으로는 주님을 따르지 않고 자기 맘대로 살 때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은 옛날 노예 문화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주인에게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불순종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가장 잘 본으로 보여주신 분이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지만,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낮아 지셨습니다.

예수님은 가장 감당하기 어려운 십자가의 잔까지 받으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어떻게 기도하셨나요?

아버지,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되게 하지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뜻은 십자가 죽음을 받아 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영광을 버리시고, 마치 흉악한 범죄자라도 된 듯이, 가장 고통스런 십자가 죽음까지도 순종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순종을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외에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고, 자신의 권리들을 다 포기하며 산 사도가 성경에 나옵니다. 그 사람은 바울이었습니다.

바울 사도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에 복음을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희생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사도들에 비해 더 많은 희생을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9:5-7절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바울의 사도권을 인정하지 않고 비판할 때 말한 내용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인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해 자신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까지도 다 포기하면서 복음을 전하고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주여 라고 부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입으로 주님이라고 부르고 있다면,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군인처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면 가고, 오라고 하면 와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의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면,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수5:15절을 다시 보세요.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하니 여호수아가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무엇인가 행하려 하는 것보다 우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의 주권을 온전히 인정하길 원하십니다.

신을 벗을 때, 가장 기뻐하십니다.

사무엘하 7장에서, 다윗이 왕으로서,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드리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No라고 말씀하신 이야기에서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는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다윗이 하나님을 위해 집을 지어드리고 싶다고 했을 때,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참 좋은 생각이니, 왕의 마음에 있는대로 행하세요 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밤에 하나님께서 나단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다윗의 마음은 고맙지만, 성전 건축 계획을 취소시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하셨습니다.

다윗이 지금 왕이지만, 양떼를 치는 자였던 그를 왕으로 삼아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전해 주라고 했습니다.

또한 네가 나를 위해 집을 지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네게 집을 지어 줄 것이라는 말씀을 전해 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지어주시겠다는 집은 다윗 왕조(자손들이 계속 왕이 되는 가문)를 의미하였습니다.

왕이라고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 진짜 왕은 다윗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을 말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은 다윗의 반응입니다.

다윗의 계획을 하나님께서 무산시키실 때, 다윗이 어떤 반응을 보였느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꿇어 앉아서 하나님의 뜻에 따르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유진 피터슨 목사는 다윗의 이 장면이 다윗이 지금까지 한 행동 중에 가장 중대한 행동이었다고 말합니다.

행동하지 않기로 한 행동, 이것이 골리앗을 죽인 것보다도, 기름 부음 받은 사울 왕을 해하지 않기로 한 것보다도,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온 것보다도 더 중대한 행동이었다.

왜냐하면 그가 지금껏 기름 부음과 훈련과 보호와 권능을 받으며 준비한 왕업에 대한 자격 여부가 바로 지금 그가 나단의 선지자적 권고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p.192.)

 

여러분, 왕은 무엇을 하는 것보다 하려고 했던 것을 하지 않기가 훨씬 더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왕의 권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위대함은 하나님을 위해 뭔가 많이 행한데 있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종으로 살아낸 것입니다.

자기가 생각할 때 하나님을 위한 좋은 계획이라고 해도 주님께서 아니라고 했을 때 순종할 수 있었던 믿음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왕이 아니라 한낱 종에 불과함을 실천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른 말로 하면, 자신의 주권을 포기하고 예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크리스천)이라는 말의 의미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에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발에서 신을 벗은 사람들이 크리스천입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을 보세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러나 우리는 종종 이 사실을 잊을 때가 있습니다. 인정하지 않으려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분명한 것은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이미 그와 함께 장사지낸 바 되었습니다.(롬6:4)

내 안에 더 이상 내가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인으로 사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주되심을 철저히 인정하시고, 이제는 내가 주인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사시는 삶, 주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삶을 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주님께서 교회의 주인이 되십니다.

주님께서 가정의 주인이 되십니다.

주님께서 일터의 주인이 되십니다.

 

여러분,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삶이 내가 스스로 주인 되어서 내 맘대로 사는 삶보다 휠씬 복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었을 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이기기 시작했음 기억하시고, 하나님 앞에서 신을 벗고 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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