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기념비(수 4장 1- 9 4장19-24)
성경본문: 여호수아 4: 1 9 19 24
1-9
1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가기를 마치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백성의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열두 사람을 택하고
3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기를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의 발이 굳게 선 그 곳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그것을 가져다가 오늘밤 너희가 유숙할 그 곳에 두게 하라 하시니라
4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6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7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8 이스라엘 자손들이 여호수아가 명령한 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의 수를 따라 요단 가운데에서 돌 열둘을 택하여 자기들이 유숙할 곳으로 가져다가 거기에 두었더라
9 여호수아가 또 요단 가운데 곧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선 곳에 돌 열둘을 세웠더니 오늘까지 거기에 있더라
19-24
19 첫째 달 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 여리고 동쪽 경계 길갈에 진 치매
20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2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22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23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24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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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이 드디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발로 밟게 되었을 때에, 기념으로 요단강에서 돌 열두 개를 가져다고 길갈에 기념비를 세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보통 옛날 역사에서 보면, 왕들이 전쟁에서 승리했을 때, 승리를 기념해서 전승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또는 땅을 정복하고, 통치 영역을 표시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그 왕이나 왕국의 위엄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었습니다.
한국 역사에서는 만주 지방에 세워진 광개토왕 기념비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구려 땅이 얼마나 넓은지, 광개토왕이 얼마나 강력한 왕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이 길갈에 세운 기념비는 어떤 인간 왕이나 권력자를 기리기 위한 기념비가 결코 아니었습니다.
우리 주 여호와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한 일을 기리기 위한 것이요, 하나님을 위한 기념비였습니다.
여러분, 요단강을 건넌 후에 열두 개의 돌로 기념비를 세우라고 명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깊은 뜻이 있어서 이 기념비를 세우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신앙적 의미의 기념비였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기념비를 세우라는 명령은 크게 세 단계로 하달되었습니다.
제1단계 –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수4:1-3절입니다.
“백성의 각 지파에서 한 사람 씩 대표를 뽑아서 열두 명이 제사장들이 서 있는 곳 요단강 중간에서 돌을 하나 씩 가져다가 오늘 밤에 유숙할 곳에 두게 하라.”
제2단계 –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서 백성들 중에서 지파별로 한 명씩 뽑아서 열둘을 모아 놓고 하나님께서 주신 명령을 전달했습니다. 수4:4-7절입니다.
“너희들은 요단 가운데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선 곳에 들어가서 돌을 하나 씩 택하여 어깨에 매고 나오라.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될 것이다. 먼 훗날에 너희 자손들이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라고 물으면, “요단강 물이 하나님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다.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제3단계 –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의 명령대로 행했습니다.
각 지파의 대표들이 요단강으로 가서 돌 열둘을 택하여 자기들이 유숙할 곳으로 옮겨 그곳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추가적으로, 여호수아는 요단 가운데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서 있있던 곳에도 돌 열두개를 기념으로 세웠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와 백성들은 요단강을 건넌 후에 두 개의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길갈에 돌 열두개로 기념비를 세우고, 요단강 가운데에도 돌 열두개로 기념비를 세운 것입니다.
그 날은 첫째 달 십일이었습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는 요단강을 건넌 후에 돌 열둘을 택하여 기념비를 세우도록 하셨을까요?
무슨 목적이 있었을까요?
이 기념비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기념비는 중요한 신앙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먼저 열두 개의 돌을 세운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계속해서 열두 지파가 흩어지지 않고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을 잘 섬기길 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한 민족이면서도 열두 지파가 연합되어서 한 민족을 이뤘습니다.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지파별로 갈등과 반목이 생길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열두 개의 돌로 기념비를 세움으로써, 영원히 열두 지파가 분열되지 말라는 뜻이 있는 것입니다.
요단강 동쪽에 사는 두 지파와 반지파도 요단강 서쪽에 사는 지파들과 함께 한 민족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열두개의 돌을 보면서 그들이 한 민족으로, 언제나 하나가 되어야 함을 확인하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역사 속에서 가끔 분열된 적은 있었지만 다시 하나가 되었습니다.
기념비를 세울 때, 특히 돌로 세우라고 하신 것은 오랫 동안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함인 것입니다.
돌은 쉽게 변치 않는 속성을 가진 물질입니다.
수천 년이 지나도 돌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속성에 대해 잘 알고 계셨습니다.
얼마나 은혜에 대해 쉽게 잊고, 불평은 얼마나 잘 하는지 아셨기 때문에 오래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게 하기 위해 돌로 기념비를 세우도록 하신 것입니다.
6절에서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분명히 후세에도 사람들이 이 돌들을 보게 될 것이고, 돌들을 보면서 이것이 무엇 뜻으로 세웠는지 묻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마른 땅을 밟고 건너게 하신 위대한 일을 말해 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념비는 후세대들에게 신앙 교육을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앙 교육 현장이 되길 원하셨습니다.
오늘날 같으면 아이들이 스쿨 버스를 타고 길갈의 돌 기념비를 견학하면서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설명해주는 기념비의 유래에 대해 배웠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돌들로 말하면, 요단강에서 직접 가져온 것들인데, 여호수아 시대에 우리 조상들이 마른 땅을 밟고 강을 건넜어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는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 강에 발을 들여 놓았을 때, 위에서 흐르던 물이 끊기게 되었어요.
어린이 여러분, 세상에 우리 하나님과 같이 위대하신 신은 없어요. 항상 하나님을 잘 섬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믿는 사람들은 당대에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녀들, 손자들, 후손들이 계속해서 신앙 생활을 잘 하도록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신앙이 당대에 끝나지 않고 후대에 전수되길 원하십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신앙적 유산을 물려주는데 실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는 자녀만 있지, 손자가 없다는 말씀을 들어 보셨죠?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의 손자라는 말씀이 없습니다.
부모의 신앙이 자동적으로 자녀에게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부모의 믿음으로 자녀가 자동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교육을 통해 전수되어야 하며, 자녀들도 각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며, 각각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떻습니까?
오늘날 교회마다 주일 학교 아이들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청소년 때까지 교회를 다니다가 대학에 들어가면 교회를 떠나는 청년들이 많습니다.
신앙적 유산이 물려지지 못하고 당대에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미국 이민 교회에서도 이민 1세는 신앙 생활을 잘 하는데, 1.5세, 2세들은 교회를 떠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민 교회의 심각한 문제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런 염려는 오늘날 만의 염려는 아닙니다.
3500년전 모세 시대에도 이런 염려가 있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도 이런 염려가 있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이집트에서 나온 후 40년간 광야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가나안 땅을 눈 앞에 두고, 백성들에게 한 설교에서 무엇을 강조하였을까요?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정착하고 살면서 하나님을 잊고 살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거듭거듭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풍부함 속에 산다고 해도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말라고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신명기8: 1-3절입니다.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하심이니라”
광야 40년 동안 훈련하신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풍족한 생활을 할 때에도 물질을 의지하기 보다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려 하심이었던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법을 알게 하려 하심이었던 것입니다.
신8:11-16절에서는 더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먹이셨나니 이는 너를 다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자마자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기념하기 위해’ 돌로써 기념비를 세우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오래 기억되길 원하셨습니다.
아무리 풍족하게 되어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게 되길 원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이 후손들에게 전수되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당대 뿐 아니라 후세대들도 하나님을 잘 섬기며 살길 원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자녀들에게 어떻게 신앙을 전수해 줄 수 있을까요?
자녀들도 어떻게 하면 부모 못지않게 뜨겁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요?
(1) 유대인들처럼 가정에서 신명기 6장의 쉐마 교육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교육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신앙 교육은 1차적으로 가정에서 부모가 담당해야 합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신6:4-9절을 ‘쉐마’라고 부릅니다. ‘쉐마’는 ‘들으라’는 뜻이 있는데, 4절이 원어로 ‘쉐마’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오늘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로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로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 문에 기록할지니라”
이 명령은 자녀에게 주시는 명령이 아니라 부모들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부모가 가정에서 자녀들에게 신앙 교육을 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부모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말씀을 가르치고, 암송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화 - 장애영씨가 쓴<엄마의 수준이 아이의 수준을 만든다>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들이 승호인데, ‘엄마는 승호가 어렸을 때에 신6장 쉐마의 말씀을 기록해서 문자 그대로 집 문설주와 문에 뭍였다’는 것입니다.
손목과 자기 이마에도 붙였습니다.
그리고 날마다 승호가 하나님의 말씀을 암송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암기력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유치원 때부터 ‘365일 말씀 카드’로 암송하게 하였습니다. 승호가 집을 나설 때마다 카드 하나를 외우고, 기도를 받고 집을 나섰다고 합니다.
이렇게 훈련하였는데, 그 아이가 어른이 되었다고 믿음을 버릴까요?
어머니의 간증에 의하면, 어렸을 때 승호가 성경을 암송하는 훈련을 많이 받은 것이 커서 사법 시험을 준비하는데도 도움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승호는 당당히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법조인이 되었습니다.
장애영씨는 지금도 어머니로서 ‘부모가 자녀와 함께 성경을 암송하는 좋은 전통’이 손자 손녀들에게도 이어지길 기도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생명의 삶, 2016.7. p.113)
부모가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습을 몸소 보여주면서 하나님 말씀으로 가르친다면, 그 아이는 커서도 하나님을 결코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이 되는 것입니다.
(2) 부모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전수되게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방법은 기도입니다.
자녀와 함께 기도하고, 자녀를 위해 많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자녀의 신앙에 영향을 미친 예는 수 없이 많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를 성경에서 찾으라면,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의 기도’를 들 수 있습니다. 사무엘은 태어날 때부터 어머니 한나의 기도의 응답으로 태어났습니다.
한나는 사무엘이 젖을 뗀 후에 하나님께 바치고 엘리 제사장에게 맡긴 후에도 계속해서 아들을 위해 중보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 결과, 사무엘은 당대에 브엘세바에서 단까지 온 나라 백성들의 존경을 받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의 위대함을 얘기할 때, ‘성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모니카는 아들이 청소년기에 방황하고, 방탕하고, 기독교 신앙을 떠나 마니교에 빠졌을 때에도 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결국 어머니의 기도로 어거스틴은 길거리에서 노는 아이들의 노랫 소리를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회심합니다. 어거스틴이 펴서 읽은 성경은 롬13:11-14절입니다.
“또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자.”
어거스틴은 이 말씀을 지금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하시는 명령으로 들었습니다.
그래서 눈물로 회개하고, 교회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목회자요 신학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어거스틴의 회심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많겠지만, 그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신앙의 유산을 물려 주는 것이요, 자녀를 위해 많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기도가 있는 자녀는 잠깐 방황하다가도 다시 주님 품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기억하고 잊지 말고 기념해야 할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건입니다. 예수님이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죽으시고,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이야기는 항상 기억하고 전해 주어야 할 복된 소식인 것입니다.
본문 수4:19-20절을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건넌 후에 길갈에 기념비를 세운 날이 첫째 달 십일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종교력으로 첫째 달 십일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첫째 달 십일은 유월절(Passover)이 시작되는 십사일의 나흘 전이요, 희생될 유월절 양을 준비해 놓던 날이었습니다.(출12:3)
즉 첫째 달 십일에 양을 준비해 놓았다가 열나흗날 저녁 때에 잡아서 피를 문인방과 좌우 설주에 발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은 죽음의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길갈에 기념비를 첫째 달 열흘날에 세우도록 한 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넌 것을 기념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더 나아가서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원히 기념하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십자가의 은혜를 기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유월절을 지키지는 않지만 예배 때에 성만찬을 통해 우리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기념하고 있습니다.
성찬식 때마다 떡과 잔을 통해 우리 주님의 십자가 희생에 대해 반복적으로 기념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만찬을 통해 ‘내 대신 피 흘려 죽으신 주님의 죽음’을 기념하며, 대속의 은혜를 회상하는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는 날마다 묵상하고 아무리 많이 묵상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요단강을 마른 땅을 밟고 건넌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기념비를 세운 것은 선교적인 목적도 있었습니다. 즉 세상의 모든 민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지를 나타내기 위함 목적도 있었습니다.
여호수가4:23-24절을 보세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서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여기서 하나님은 기념비를 세우게 하시면서 두 가지 목적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땅의 모든 민족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강하신지를 알게 하려는 것이었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선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성도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게 하려하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완악했던 이집트 바로왕 때문에 이집트에 열 가지 재앙을 내리실 때에도 여호와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증거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심으로써, 온 천하에 하나님과 같은 신은 없음을,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
마찬 가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마른 땅을 밟고 건너게 하신 후에 기념비를 세우게 하심은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게 하려는 뜻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 속에서 행하신 일들을 나누기 위해 간증을 합니다.
간증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고 높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나누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이고,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신 지를 나누는 것이 간증입니다.
그래서 올바른 간증은 항상 전도를 목적으로 합니다.
사도 바울의 간증은 사도행전에 세 번 나오는데, 한 번은 누가가 객관적으로 기술하였지만, 나머지 두 번은 바울이 직접 전도하는 중에 간증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한 번은 예루살렘에서 체포 당했을 때, 기독교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유대인들을 전도하기 위해서 층대에 서서 “부형들아 내 말을 들으시오”라고 하며 간증을 했고,(22장) 다른 한 번은 가이사랴에서 아그립바 왕 앞에서 모인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해 자기가 어떻게 예수님을 만나 회심하게 되었는지 나누었습니다.(26장)
그 자리에 있던 총독 베스도가 바울의 간증 섞인 전도를 듣다가 “ 바울아 네 많은 학문이 너를 미치게 한다”라고 하자, “각하, 내가 미친 것이 아니라 참되고 온전한 말을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이번엔 아그립바 왕이 “바울아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구나”라고 하자, “말이 적으나 많으나,당신 뿐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길 하나님께 원하나이다”라고 하면서 전도하였던 것입니다.(행26장)
바울처럼 우리도 전도를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간증을 통해 증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전도를 목적으로 간증을 사용할 때, 간증은 굉장히 힘이 있습니다. (powerful)
본문에서 또한 하나님께서 요단강은 건넌 후에 길갈에 기념비를 세우게 하심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항상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려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수4:24b,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구절에서 ‘항상’이라는 부사가 중요한 의미가 있고, 또한 ‘경외하다’는 동사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정착하며 살게 되면서 얼마나 쉽게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될지를 아셨습니다.
하나님을 항상 경외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주 자주 넘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시 시대 역사를 보세요.–
나라가 평안하고 풍요로울 때,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더 잘 섬겨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평안할 때, 안일한 마음을 갖고,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후에, 위기 때에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사사를 통해 구원하십니다.
그러면 그 때 뿐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이스라엘은 다시 하나님을 잊고 마음이 우상에게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위기가 찾아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긍휼의 하나님은 다시 사사를 통해 구원하십니다.
평안할 때 이스라엘은 또 하나님을 배반합니다.
이런 좋지 않은 패턴이 반복되는 것이 사사기의 반복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왕정시대 역사도 사사 시대의 역사와 별로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은 이스라엘은 솔로몬 이후에 둘로 쪼개지고, 나중에 북은 주전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 남 유다는 주전586년에 바벨론에 의해 멸망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이스라엘이 변함 없이 항상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게 되고, 하나님의 축복 속에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여호수아 당대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가 항상 하나님을 잘 섬기길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요단강을 건너자 마자 길갈에 돌로 기념비를 세우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 속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혹독한 대가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거울 삼아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과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사기의 악순환을 과감히 끊고, ‘가끔’이 아닌 ‘항상’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가 되었으면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신앙의 기념비를 세우고, 당대 뿐 아니라 오고 오는 세대, 자자 손손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자신 뿐 아니라 자녀들, 손자손녀들, 계속해서 하나님을 잘 섬기는 믿음의 가정을 이루시길 축원합니다.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다른 것은 못남겨도 신앙의 유산만은 꼭 남겨주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늘 기억하시고, 그 은혜에 감사하시며, 신앙을 후대에 전수하시고, 간증을 통해 복음을 전파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길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