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부터 배워야 할 교훈(수 7장 1-15)
성경본문: 여호수아 7: 1-15
1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2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3 여호수아에게로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4 백성 중 삼천 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5 아이 사람이 그들을 삼십육 명쯤 쳐죽이고 성문 앞에서부터 스바림까지 쫓아가 내려가는 비탈에서 쳤으므로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6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쓰고 저물도록 있다가
7 이르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어찌하여 이 백성을 인도하여 요단을 건너게 하시고 우리를 아모리 사람의 손에 넘겨 멸망시키려 하셨나이까 우리가 요단 저쪽을 만족하게 여겨 거주하였더면 좋을 뻔하였나이다
8 주여 이스라엘이 그의 원수들 앞에서 돌아섰으니 내가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9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 하니
10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11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나의 언약을 어겼으며 또한 그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져가고 도둑질하며 속이고 그것을 그들의 물건들 가운데에 두었느니라
12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들의 원수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그들도 온전히 바친 것이 됨이라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3 너는 일어나서 백성을 거룩하게 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내일을 위하여 스스로 거룩하게 하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이스라엘아 너희 가운데에 온전히 바친 물건이 있나니 너희가 그 온전히 바친 물건을 너희 가운데에서 제하기까지는 네 원수들 앞에 능히 맞서지 못하리라
14 너희는 아침에 너희의 지파대로 가까이 나아오라 여호와께 뽑히는 그 지파는 그 족속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족속은 그 가족대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요 여호와께 뽑히는 그 가족은 그 남자들이 가까이 나아올 것이며
15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진 자로 뽑힌 자를 불사르되 그와 그의 모든 소유를 그리하라 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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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살면서 실패나 패배를 당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넘어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실패로부터 배우는 뭔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실패로부터 아무 교훈도 배우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참으로 실패와 패배에 대한 역사 기록이 많습니다.
어떤 면에서 성공한 이야기보다 실패한 이야기가 더 많습니다.
왜 성경 기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성공 이야기보다 실패 이야기를 더 많이 더 자세히 기록해 놓았을까요?
목적은 하나입니다.
실패로부터 교훈을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본보기로 삼기 위한 것입니다.
고전10:10-12,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 역사 상 전쟁에서의 첫 패배를 담고 있습니다. 전쟁에서의 패배는 혹독한 대가를 치룹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적적으로 요단강을 건넜습니다.
기적적으로 가나안에서 가장 견고한 성이었던 여리고 성도 무너뜨렸습니다. 그 때까지만 해도 가나안 정복이 아주 쉬워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리고성보다도 작은 성이었던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했습니다.
3000명의 군사가 아이성을 정복하기 위하여 올라갔다가 패하고 말았습니다.
36명의 전사자를 냈습니다.
전쟁에서 36명이 죽은 것은 큰 희생이 아닌 것 같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여리고성을 정복할 때는 한 사람도 희생당하지 않았었습니다.
게다가 희생된 숫자보다 더 큰 문제는 아이성 전투에서 패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사기는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가나안 사람들의 사기는 올라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왜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성 전투에서 패했을까요?
성경에서는 그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아간이란 한 사람의 범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가 여리고성 전투 때에, 물질에 대한 욕심을 제어하지 못하고, 하나님께 바쳐진 물건들에 손을 댄 것입니다.
옷과 은금을 훔쳐 장막 밑에 감추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아간의 이 죄는 곧 이스라엘 전체의 죄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수7:1절을 보세요. “이스라엘 자손들이 온전히 바친 물건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으니, 이는 유다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 아간이 온전히 바친 물건을 가졌음이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진노하시니라”
사람은 공동체에 속해서 살기 때문에, 개인의 죄는 개인의 죄로 끝나지 않고 곧 공동체의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모든 죄를 경계해야 하는 것은 항상 죄는 본인에게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며, 공동체 천제를 심각한 위기에 빠뜨리기 때문에 작은 죄라도 경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간은 전쟁 중에 이스라엘 전체에서 자기 한 사람 쯤이야 상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게다가 하나님께 바쳐진 수 많은 물건 중에서 옷 몇 벌, 은 이백 세겔과 금 한 덩이 정도 훔쳤다고 무슨 일이 있겠는가 라며 가볍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죄가 크든 작든, 죄는 죄이고, 그 죄는 항상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를 괴롭히는 것은 험난한 코스나 날씨와 같은 외적 요소만이 아닙니다.
오히려 운동화 속의 작은 모래가 선수를 더 괴롭힐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 속에 숨겨져 있는 작은 죄라고 해도, 그 죄를 처리하지 않으면, 그 한 사람, 그의 가족, 더 나아가서 공동체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아이성 전투에서 패배한 원인을 아간의 도둑질 사건 외에도 우리는 몇 가지 더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사람들의 자만심이 패배의 원인을 제공하였습니다.
자신감과 자만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신감-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왔을 때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능히 이길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자신감입니다.
신앙인의 자신감의 근거는 자신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신뢰에 있습니다.
그러나 자만은 상대방을 얕잡아보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는 것입니다.
자만은 위험하고, 패배의 원인이 됩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대결에서 다윗은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자신감을 가진 것입니다.
수7:2-3절을 보세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아이성을 얕잡아보았는지 모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서 사람을 벧엘 동쪽 벧아웬 곁에 있는 아이로 보내며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올라가서 그 땅을 정탐하라 하매 그 사람들이 올라가서 아이를 정탐하고 여호수아에게 돌아와 그에게 이르되 백성을 다 올라가게 하지 말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치게 하소서 그들은 소수이니 모든 백성을 그리로 보내어 수고롭게 하지 마소서 하므로”
스포츠에서도 그렇고 전쟁도 그렇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승리 후에 가장 조심해야 합니다.
사람은 천성적으로 교만하여서, 승리 후엔 방심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전에 대승을 거두었으니, 다음에도 당연히 승리할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방심은 금물입니다.
아이성을 다녀온 정탐군들은 40년 전 가데스바네아에서 40일간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군들 중에서 열명의 정탐꾼들과 비슷한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다른 것 같지만, 실상 같은 실수를 저지른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같은 실수를 한 것입니다.
모세가 보냈던 정탐꾼들 중에 여호수아와 갈렙을 뺀 열 명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자기들은 도저히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보고한 것입니다.
그들에 비하면 자기들은 메뚜기와 같다라고 까지 말했습니다.
차라리 이집트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다라고 까지 했습니다.
항상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코 성격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본문의 아이성에 보내졌던 정탐꾼들은 반대로 지나친 낙관주의에 빠져 있었습니다. 아이성은 작은 성이기 때문에 그 성을 빼앗는 것은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것도 불신의 결과이지만, 지나친 낙관주의나 자만도 하나님에 대한 불신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인생을 살면서 가장 조심해야 할 때는 성공 뒤입니다. 승리 뒤에 자만심 때문에 큰 위기가 찾아올 수 있습니다.
(예) 하나님의 마음에 합했던 다윗왕조차도 나라가 안정되고, 평안했을 때 그의 인생의 최대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목동 시절- 들에서 냄새나는 양떼를 인도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사울왕에게 쫓겨 이리저리 광야를 전전할 때도 아니었습니다.
다윗 왕에게 최대의 위기는 나라의 기틀이 잡히고, 백향목 궁에 거하며 전쟁터에 직접 나가지 않아도 될 정도로 국방도 튼튼할 때, 방심하는 순간에 위기가 찾아왔던 것입니다.
다윗왕이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범하게 될 때의 상황에 대해, 사무엘하 11:1절에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성경 기자는 다윗의 행동을 묘사하면서 “보냈다”라는 동사와 “그대로 있더라”라는 동사를 사용했습니다.
보내는 행위는 권력자의 전형적인 행위입니다.
권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은 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하라고 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윗이 지금 그런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힘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은 위험한 곳에 보내면서 자신은 안전한 곳에 그냥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윗이 지금 그렇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하들과 병사들은 전쟁터에 보내고 자신은 안전한 왕궁에 머무르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의 실패는 바로 그 때 벌어졌습니다. 방심과 안일, 자만이 패배를 초래한 것입니다.
여러분, 좋은 대학에 들어간 것이 끝이 아닙니다.
그 후에 위기가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졸업 후에 취직이 끝이 아닙니다.
졸업 후에 위기가 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연애 끝에 결혼이 끝이 아닙니다.
위기는 그 다음에 찾아 올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성공 뒤에 위기가 찾아 올 수 있음을 기억하세요.
여호수아 장군은 정탐군들의 자만 섞인 보고를 듣고, 하나님께 묻지 않고, 군사 3000명을 보내서 아이성을 점령하게 하려 하였지만, 점령은 커녕 그들 앞에서 패하여 쫓겨가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쫓기다가 이스라엘 군사들 36명이 아이성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2) 이스라엘이 아이성 전투에서 패한 또 하나의 이유를 찾는다면, 하나님께 묻지 않고 전쟁에 임한 것입니다.
만약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서 물었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자만심을 지적하시면서 ‘이이성을 얕보아서는 안된다’고 가르쳐 주셨을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는 무엇을 구할 것이 있을 때 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기도 자체가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릴 때 하나님께 기도로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인은 다윗이었을 것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훌륭하고 용맹스런 군인이었는가?
청소년기에 골리앗과의 1대 1 싸움을 승리로 이끈 사람이었습니다.
아직 체구가 작아서 사울 왕이 준 군복과 칼이 몸에 맞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해서 나가서 물매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
다윗은 전쟁에 나가기만 하면 승리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여인들은 이런 노래를 지어 불렀습니다.
“사울은 천천, 다윗은 만만” – 다윗은 만만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울이 블레셋 사람을 천명 정도 죽였다면 다윗은 만명 정도 죽였다는 것입니다. 다윗보다 더 위대한 용사는 없다는 노래입니다.
어떻게 다윗은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을까요?
성경에서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 하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다윗은 전쟁할 때마다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기도로써 물으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많은 성경 구절 중에 하나만 찾아 보고 싶습니다.
삼상30:8절입니다. 다윗과 그의 군대가 잠시 마을을 비운 사이에 아말렉 군대가 다윗의 마을, 시글락에 쳐들어와서 노략하고 아이들, 노인들, 부녀자들을 사로잡아 갔을 때, 그 위급한 순간에 다윗이 어떻게 했는지 설명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다윗은 위급한 순간에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에서 만나는 진짜 위기는 위기 자체가 아닙니다.
그 다음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큰 문제이든, 작은 문제이든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묻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위기를 마침내 극복하게 되고, 위기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경험하는 은혜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만심에 빠져 하나님께 묻지 않고 나가면 패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거나, 위기 때에 기도로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을 본받아서, 저와 여러분도 항상 기도로써 하나님과 교제하며 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만난 위기의 원인은 그들이 아이성과의 전투를 앞두고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고, 자만심을 품고 나간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물리치기 어려운 죄가 물질에 대한 탐심이라는 것을 오늘 본문에서 또한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아간은 여리고성 전투에서 꼭 지켜야 할 명령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여호수아는 군사들에게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 그 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께 바쳐진 것이기 때문에 그 어느 것에도 손을 대서는 안된다, 즉 욕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간은 이 명령을 무시하였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아간은 탐심에 굴복당한 것입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욕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욕심을 제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간은 물질적 욕망을 이겨내지 못한 것입니다. 욕망에 굴복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경고 –
예수님은 어떤 청년에게 “삼가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눅12:15)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물질에 대한 욕심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욕심을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마귀의 유혹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마4:4)
사도 바울의 경고 –
바울은 소아시아의 골로새 교회에 쓴 편지에서 “탐심은 우상숭배다.”(골3:5)라고 썼습니다. 현대인들이 섬기기 쉬운 대표적인 우상이 바로 맘몬(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패배 후에 여호수아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너무 슬펐습니다.
아직까지 패배의 근본적 원인을 모르는 상태에서 걱정과 두려움도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보니, 여호수아가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장로들과 함께 여호와의 궤 앞에서 땅에 엎드려 온 종일 머리에 티끌을 뒤집어 쓰고 있었고, 슬픔을 토로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직 원인을 몰랐기 때문에, “ 하나님, 어찌하여 요단강까지 건너게 하신 후에 아모리 사람들의 손에 넘겨 주셔서 멸망 당하게 하십니까, 차라리 요단강 동쪽에서 자리잡고 살았으면 좋을 뻔 하였나이다”라고 하며 말했습니다.
또한 여호수아는 가나안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이름의 명예도 손상될 것에 대해 걱정하였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려 있느냐?”라고 하시며, 이스라엘이 아이 사람들에게 패배한 이유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그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원수를 이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정복을 이룰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죄를 제거하는 방법으로써, 제비 뽑기 방법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각 지파 중에서 한 지파를 뽑으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그 지파의 족속(가문)대로 나오게 해서 제비 뽑기로 한 족속을 뽑으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그 족속에 속한 각 가족들을 나오게 해서 한 가족을 뽑고, 그 다음엔 그 집안 남자들을 다 나오게 해서, 제비 뽑기로 한 사람을 뽑으라는 것이다.
그가 하나님께 온전히 바친 물건에 손을 댄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서 여호수아는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대로 범인을 잡게 되는데, 그러게 해서 잡힌 사람이 바로 유다 지파 세라의 증손, 삽디의 손자, 갈미의 아들인 아간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께서는 단번에 누가 이스라엘을 패배케 한 장본인인지 가르쳐 주시지 않고,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찾아내게 하셨을까요?
(1) 사람들로 하여금 이 과정을 살펴 보면서 죄의 심각성을 깨닫게 하고 죄에 대해 숨길 수 없음을 깨닫게 하려는 뜻이 있다고 믿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범인을 색출하는 의식을 통해서 아무리 작은 죄도 숨길 수 없고, 하나님 앞에서 반드시 드러나게 됨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죄는 똥과 같아서 그 냄새를 결코 숨길 수 없습니다.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화: 어린 아이가 바지에 똥을 쌌다든지, 아이가 밖에서 똥을 밟고 집에 들어왔을 때에는 숨겨질 수 없을 것입니다. 냄새 때문에 밝혀지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죄를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순진한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2) 이 복잡한 과정을 거치면서 범인을 좁혀 가게 하신 또 다른 이유는 아간으로 하여금 늦지 않은 시간에 회개하게 하려는 뜻도 있었다고 믿습니다.
처음 유다 지파가 뽑혔을 때, 또는 유다 지판 중에 세라 족속이 뽑혔을 때, 회개하였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만약에 아간이 더 일찍 여호수아에게 와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했으면, 그와 그의 가족, 심지어 그에게 속한 짐승들까지 아골 골짜기에서 돌에 맞아 죽고 불살라지지는 않았을 수 있습니다.
아간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신의 죄를 숨기다가, 결국 좁혀지다가 마지막에 갈미의 손자, 삽디의 아들 아간이 최종적으로 뽑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아이성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한 원인에 대해 살펴보면서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었으면 합니다.
(1) 자만은 금물이라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경고를 잊지 마세요.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10:12) 언제가 가장 위험할까요?
성공 후에 위험하고, 일이 잘 풀릴 때도 자만에 빠지기 쉽습니다.
(2) 중요한 결정을 할 때, 하나님께 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다윗은 위기의 순간에도 기도로써, 지혜를 얻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고보서에서 기도하는 자에게 지혜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약1:5)
(3) 아무리 작은 죄라도 치명적입니다.
죄는 전염성이 있습니다. 죄는 공동체 전체에 악영향을 끼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5:6-8절에서 이 주제에 대해 잘 설명하였습니다.
“너희가 자랑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도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너희는 누룩이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명절을 지키되 묵은 누룩으로도 말고 악의에 찬 누룩으로도 말고 누룩이 없이 오직 순전함과 진실함의 떡으로 하자.”
이 말씀은 고린도 교회 공동체 안에 심각한 죄(음행)이 들어왔는데도, 제거하려하지 않은 것에 대해 책망하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듯이, 죄는 작은 죄든, 한 사람의 죄든 공동체 전체에 나쁜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묵은 누룩을 제거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죄에 대해 굉장히 엄격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은혜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죄에 관용적일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예수님보다 더 죄에 대해 경계하신 분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인에 대해서는 사랑으로 대하셨지만, 죄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엄격하셨습니다.
제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에 대해 해석하실 때에는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도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욕하는 자는 지옥불에 던져 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해 말씀을 하실 때에는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을 하였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만일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 버리라, 네 백체 죽에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낫다’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에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의 본질은 죄를 범할 때마다 신체의 일부를 하나씩 잘라내라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죄를 멀리하라는 뜻인 것입니다.
그만큼 죄에 대해 민감하라는 것입니다.
오른 눈을 뽑아내고 오른 손을 잘라내는 심정으로 죄를 뽑아내고 죄를 잘라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는 본인 뿐 아니라 공동체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4) 우리가 특히 경계해야 할 죄는 탐심의 죄입니다.
아간은 마음 속에 일어나는 물질에 대한 탐심을 물리치지 못하여 옷 몇 벌과 은 이백 세겔, 금 한덩어리를 감추었다가 가족과 함께 멸망을 받았습니다.
바울 사도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였으며, 탐심은 곧 우상 숭배라고도 표현했습니다.
(5)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은 죄에 대한 회개는 기회가 있을 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회를 잃어버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비 뽑기라는 방식으로 범인을 색출하게 하심으로써, 아간으로 하여금 회개할 기회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간은 기회를 놓쳤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때까지 회개할 기회를 놓치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숨길 수 없습니다.
영적 전쟁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교만, 탐심과 같은 죄입니다.
기회 있을 때, 회개하고 ‘누룩 없는 빵’으로서 깨끗한 삶으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깨끗한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큰 사람입니다.
죄를 멀리하고 거룩하고 깨끗할 때,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써 승리하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