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발 산에 쌓은 돌 제단(수 8장30-35)
성경본문: 여호수아 8:30 35
30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32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35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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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맥도날드목사는 영적 리더십의 고전으로 알려진 “내면 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이라는 책에서 사람들을 크게 두 종류로 나눕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뭔가에 쫓기는 사람’입니다.
다른 한 종류의 사람은 ‘부름 받은 사람’(사명자)입니다.
‘쫓겨 다니는 사람’은 내면 세계가 잘 정돈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반면에 ‘부름 받은 사람’은 질서 있는 내면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쫓겨 다니는 사람의 특징은 지나치게 분주하고, 일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입니다. 쉼을 허락할 줄 모르고, 항상 이기려고 성공하려고 유명해지려고 합니다.
그러나 난관에 부딪히면 쉽게 무너져 내리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사람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쫓겨 다니는 대표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왕이 된 후에 왕권을 스스로 지키기 위해 쫓겼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불안하고 신경질적이고 이유 없이 다윗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계속 시도하였습니다. 아마 악몽도 많이 꾸었을 것입니다.
부름 받은 사람은 규모 있게 행동하고 소유하려 들지 않습니다.
마음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압니다. 내면의 질서가 잘 잡혀 있습니다.
자신보다 하나님을 우선시합니다.
어떠한 환경에서도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자신을 과대평가 하지 않습니다. 안식을 즐길 줄 압니다.
부름 받은 사람의 대표자는 세례 요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습니다.
사람들이 혹시 네가 메시냐가 아니냐? 라고 물었을 때,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은 메시야가 아니라고 대답했습니다.
자신의 제자들이 예수님께로 옮겨간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엔 전혀 시기하지 않고 신랑과 신랑의 친구의 관계를 얘기하면서, 자신은 오히려 기뻐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요3:29-30,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으로 충만하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여러분, 무엇이 어떤 사람은 ‘쫓겨 다니는 사람’이 되게 하고, 어떤 사람은 내면의 질서가 잘 잡힌 부름 받은 사람으로 살게 할까요?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그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서울의 ‘새로운 교회’를 섬기는 한홍 목사는 본문의 사건을 이스라엘 사람들의 영적 half time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가나안 정복전쟁의 전반전이 끝나고 후반전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영적인 하프 타임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프 타임은 잠시 쉬는 시간이지만 쉬기만 하는 시간은 아닙니다.
재정비하고 재충전하고 새로운 마음으로 후반전을 준비하는 중요한 시간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여리고 성 전투와 아이 성 전투를 통해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지쳤을 것입니다.
계속 싸우기 위해 영적인 해프타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본문은 여호수아서 전체 중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부분입니다.
여호수아는 아직 전쟁이 다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모든 백성들을 이끌고 에발 산으로 향합니다.
에발산은 아이성으로부터 37Km 북쪽에 위치해 있는 산입니다.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은 세겜을 중심으로 남과 북에 위치해 있습니다. 북쪽에 에발 산이 있고, 남쪽에 그리심 산이 있습니다.
왜 여호수아는 전쟁 중에 백성들을 이끌고 에발산과 그리심 산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을까요?
여러분, 전쟁이든 경기이든 승기를 잡았을 때 밀어 붇혀야 승산이 있는 것인데, 갑자기 모든 이스라엘 사람들을 이끌고 에발산으로 간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서는 여호와의 종 모세의 명령에 따른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8:30-31절을 보세요.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데리고 에발 산으로 간 것은 모세의 명령에 따라서 그곳에 제단을 세우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영적 갱신을 위해 갔습니다.
신명기27장에 보면, 모세가 분명하게 명령을 내렸습니다.
‘요단 강을 건너 가거든 에발 산에 돌로 제단을 쌓아야 한다, 돌은 쇠 연장을 대지 않은 자연석이야 한다. 그리고 돌들에 석회를 바르고, 율법들을 새겨 넣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27:4-5절입니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여러분, 그래서 여호수와와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고 아이 성을 정복한 후에 에발 산으로 돌 제단을 쌓기 위해 간 것입니다.
우리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전쟁 중에 에발 산에서 단을 쌓은 사건을 통해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됩니다.
☞첫째로, 인생에서 예배보다 더 우선적인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전쟁과 같이 치열한 인생에서 예배 없이 계속 영적으로 건강하게 살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영적인 회복과 재충전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배 없이 살아간다면 그의 삶은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아 보여도 내면적으로는 황폐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예배를 우선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삶의 우선순위에 예배를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무리 바빠도 운전할 때, 기름을 채워야 하는 이치와 같습니다. 기름을 넣지 않고 계속 운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한 밤 중에 갑자기 길에서 차가 설 수도 있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서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창세기에 처음으로 제단을 쌓고 제물을 드린 사람은 아벨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셨지만, 아벨의 믿음의 제사를 받으셨습니다.
그 다음은 노아가 홍수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은 후에 감사의 의미로 제단을 쌓았습니다.
창8:20-22절 사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가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로 제단에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받으시고 그 중심에 이르시되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이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다시 멸하지 아니하리니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
아브라함도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왔을 때, 처음으로 한 행위가 예배였습니다. 제단을 쌓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른 것입니다.
창12:6-9절 사이에 아브라함은 두 번 제단을 쌓았습니다.
“아브람이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주하였더라.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을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
그런데 세월이 흘러, 여호수아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그 세겜땅으로 가서 제단을 쌓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한창 전쟁 중에, 그것도 아이 성 전투를 승리한 후에 전쟁의 승기를 잡은 상황에서 한동안 전쟁을 멈추고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에발산으로 올라가서 예배를 드렸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만큼 예배는 우리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전쟁과 같이 치열한 상황에서도 예배보다 중요한 것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너무 바빠서 정기적으로 예배 드릴 시간이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중에는 전쟁과 같은 상황은 만날지 모르지만, 실제로 전쟁을 치루는 중에 있는 분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실제 전쟁 상황에서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 앞에서 드리기 때문에 항상 정직한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제단을 쌓을 때 인공석을 쓰지 말고 자연석을 사용하라고 하셨습니다.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가나안의 이방종교에서는 제단을 만들 때, 울퉁불퉁한 자연석을 사용하지 않고, 철 연장으로 다듬은 네모 반듯한 돌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방 종교와 달리 아름답지 못하다할지라도 인공석이 아닌 자연석으로 제단을 쌓게 하신 것입니다.
멋이 없고 투박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올 때, 거짓과 가식된 모습으로 나와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솔직하고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시편에서 고백하기를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고 했습니다.(시51:17)
예수님의 기도에 대한 비유 –
가식된 바리새인과 솔직했던 세리 중에 기도 응답을 받고 집으로 돌아간 사람은 세리라고 하셨습니다.(녹18장)
바리새인은 자기 자랑을 늘어놓으며 기도했지만 세리는 가슴을 치며 상한 심령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우러러볼 엄두도 못 내고, 가슴을 치며, ‘아 하나님 이 죄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a) 여러분, 왜 여호수아는 축복의 산으로 알려진 그리심 산이 아니라 저주의 산인 에발 산에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을까요?
저주의 상징인 에발 산은 우리를 대신해서 저주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갈보리 십자가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에발 산에서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성령으로 충만케 되었던 것처럼, 우리 인간은 죄의 저주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는 갈보리의 십자가의 예수님께 나아가는 길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백합화처럼 순결하고 깨끗하신 분이시지만, 걸래처럼 더러운 인간을 대속하시기 위해 갈보리의 저주의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친히 인류를 위한 번제와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나오지 않고는 저주의 마법에서 풀릴 수 없는 것입니다.
예배는 무엇인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행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죄와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헤매는 영혼들을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초청하셨습니다.
마11:28-30절을 보세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여러분 중에 인생의 짐, 죄의 짐에 짓눌린 분들 있나요?
우리 대신 갈보리에서 저주의 짐을 지시고 죽으셔서, 우리에게 죄사함과 안식, 평화를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가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주님 안에서 참 평안과 쉼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오늘 본문에서 우리들에게 주시는 중요한 교훈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수8:32절 말씀을 보세요. 여호수아는 모세의 율법을 그 돌에 기록했다고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더 정확히 말하면, 제단을 쌓던 돌들에 회를 바르고, 그 위에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새겨 넣었던 것입니다.
돌에 말씀을 새기는 것은 힘들고 어렵지만, 한 번 기록하면 오래 갑니다.
유튜브에서 에발산에 관한 동영상을 봤는데, 김우현 감독이 직접 성지에 가서 드론까지 띄워 찍은 것이었습니다.
3500년 전에 세워졌던 돌 제단은 무너졌지만 그 흔적은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돌들 중에 석회가 발라져 있고, 그곳에 고대 히브리어로 글자가 쓰여진 것들이 여러 개 있었습니다.
정말 돌에 새겨진 것은 오래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돌에다 말씀을 새길 필요는 없지만,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심고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는 것은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구촌교회 원로목사님이신 이동원목사님이 하신 말씀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 교회에 나이가 많은 권사님이 계셨는데, 성경 공부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목사님, 제 머리는 돌머리입니다. 금방 잊어버립니다.’
그 때 목사님이 말씀했다고 합니다.
‘권사님, 돌 머리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돌에는 말씀을 새기기가 어려워서 그렇지 한 번 새기면 오래 갑니다.”
여러분, 여호수아는 에발산 돌 제단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넣었습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고 암송하며 마음에 새겨 넣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마음에 새겨진 말씀은 인생 길에서 빛이 되고 발의 등불이 됩니다.
시인은 시119:105절에서 고백했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성경 말씀이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없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은 육체 뿐 아니라 ‘영혼이 있는 존재로서,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존재, 인간은 죄인으로서, 구원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통해 구원의 길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혼의 양식이며, 인생 길의 빛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비춰주시지 않으면,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인간은 방황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하나님의 말씀)의 유익에 대해 가장 잘 말씀해 주었습니다.
딤후3:15-17,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성경은 구원의 지혜를 얻게 합니다. 예수 안에 구원이 있습니다.
성경은 교훈도 주고, 책망도 합니다.
성경은 바르게 고쳐주고, 의로 교육하고 연단시켜 줍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시켜서 모든 선한 일을 하게 합니다.
이 귀한 말씀을 사랑하시고, 읽고, 묵상하시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셋째로, 오늘 본문에서는 ‘말씀에 대한 순종은 축복으로 이끌지만 불순종은 저주를 받게 한다는 경고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크게 둘로 나눠서 언약궤를 중심으로 절반은 그리심 산 쪽에 서고, 나머지 절반은 에발 산 쪽에 서서, 여호수아가 읽어주는 율법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신명기 27장에 의하면, 그리심 산에는 ‘시므온, 레위, 유다, 잇사갈, 요셉과 베냐민지파’가 섰습니다.
그러나 에발 산에는 ‘르우벤, 갓, 아셀, 스불론, 단, 납달리 지파’가 섰습니다.(신27:11-13)
여호수아가 읽은 말씀은 크게 두 종류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축복의 말씀이고,다른 하나는 저주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날 여호수아가 낭독하지 아니한 말씀이 하나도 없었고, 그 말씀을 듣지 않아도 되었던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수8:34-35절을 보세요.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을 낭독하였으니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우리는 신명기에서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축복의 말씀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신명기28장에 보면, 앞 부분은 축복의 말씀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은 세계 모든 민족 중에 뛰어난 민족이 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네가 복을 받을 것인데,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고, 자녀가 복을 받고, 가축도 복을 받고 심지어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까지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해 주셨습니다.
”너희 대적은 한 길로 왔다고 일곱 길로 쫓겨갈 것에 대한 말씀”도 있습니다.
“너는 꾸어줄지라고 꾸이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 또한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해 주겠다’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신명기 말씀 중에는 저주의 말씀도 많이 있습니다.
신명기 28:1-19절까지는 축복에 관한 말씀이지만, 20- 68절까지는 저주의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1/3이 축복의 말씀이지만, 2/3가 저주의 말씀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저주의 말씀에 대해 더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령 이런 말씀들이 선포되었습니다.
각 말씀이 선포될 때마다 모든 백성들은 아멘 이라고 외쳤습니다.
“우상을 만들어 세우고, 우상을 섬기는 자들을 저주를 받을지어다”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왜 여호수아는 모세의 지시대로 백성들을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 세우고,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읽어주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을 결단하게 하려는 뜻이 있었다고 믿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말씀대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순종이냐 불순종이냐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서 계속 축복을 누리느냐,아니면 약속의 땅에서 다시 쫓겨나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저주가 아니라 축복을 받고 싶어하지만, 하나님의 축복은 오직 순종하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예수님만큼 순종을 잘 하신 분도 없었고, 순종에 대해 강조하신 분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씨 뿌리는 비유에서 네 종류의 땅 중에서 옥토에 떨어진 씨앗만이 잘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옥토에 떨어진 씨앗만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씨앗이 옥토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었을 때, 그대로 믿고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집 짓는 비유를 통해서도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치 않은 자는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사람과 같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은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사람과 같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마태복음7: 24-27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여러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한창 전쟁 중일 때,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이 있는 곳으로 갔습니다.
가서 제단을 쌓고, 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기고, 축복과 저주의 말씀을 들으면서 순종을 결단하였습니다.
이것은 전쟁과 같은 인생 여정에서 예배와 말씀보다 우선적인 것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쁘고, 아무리 위급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찾는 것,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우선시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바빠서 기도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여러분 바쁜 사람일수록 더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쁘다는 것은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기도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것이죠. 루터는 기도에 관해 유명한 말씀을 했습니다.
“나는 할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하루에 세 시간 씩 기도하지 않을 수 없다.”
세상에 예수님보다 더 바쁘셨던 분이 어디 있겠습니까?
복음서에 보면,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우리 주님은 “이른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에 가셔서 기도하셨다”(막1:35)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영적인 하프타임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전쟁에 지친 영혼들이 예배를 통해 힘과 지혜를 얻고 새로 출발하기 위해 모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왜 모였나요?
왜 주일마다, 또는 수요일 저녁에, 금요일 저녁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나요?
하나님을 예배하면서 새 힘을 얻기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시들시들 했던 영혼이 소성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무리 바빠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간, 하나님께 기도하는 시간을 뒤로 미루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 것들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령을 채우시고,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먼저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길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늘 순종을 결단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순종하면 축복이지만,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을 수 있다는 경고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마음 밭이 옥토가 되시고, 인생의 집을 순종을 통해 반석 위에 세우는 자들이 다 되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