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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정준모 목사]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입니다(출 1: 1-22)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09.30|조회수178 목록 댓글 0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입니다(11-22)

성경본문: 출애굽기 1: 1-22

1 야곱과 함께 각각 자기 가족을 데리고 애굽에 이른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은 이러하니

2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3 잇사갈과 스불론과 베냐민과

4 단과 납달리와 갓과 아셀이요

5 야곱의 허리에서 나온 사람이 모두 칠십이요 요셉은 애굽에 있었더라

6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백성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에게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12 그러나 학대를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나가니 애굽 사람이 이스라엘 자손으로 말미암아 근심하여

13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을 엄하게 시켜

14 어려운 노동으로 그들의 생활을 괴롭게 하니 곧 흙 이기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이라 그 시키는 일이 모두 엄하였더라

15 애굽 왕이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사람과 부아라 하는 사람에게 말하여

16 이르되 너희는 히브리 여인을 위하여 해산을 도울 때에 그 자리를 살펴서 아들이거든 그를 죽이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17 그러나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린지라

18 애굽 왕이 산파를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같이 남자 아기들을 살렸느냐

19 산파가 바로에게 대답하되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더이다 하매

20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21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

22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든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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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우리가 한국인으로서 조국이 걱정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또한 미국에 살면서 미국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고, 북한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기도하면서 제 생각이 좀 바뀌었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정치에 대한 걱정이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들이 걱정이나 염려보다 기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사도 바울도 빌립보서에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4:6)고 권면했습니다.

 

또한 우리가 북한과 같은 핍박 받는 국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걱정하는데 과연 걱정할 일인가?

오히려 그들이 우리를 걱정하지 않을까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자유와 풍요를 누리는 우리가 오히려 영적으로 나태해지는 것이 염려할 일이 아닐까요?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고 섭리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 속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 즉 누가 역사를 이끌고 가시는지를 분명하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지난 1년 이상을 마태복음 강해를 했는데, 오늘부터 출애굽기(Exodus)를 중심으로 주일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집에서 미리 읽어보고 오시길 바랍니다.

출애굽기는 그 제목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민족의 이집트 탈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모세 오경 중에서 두 번째 책입니다.

창세기 다음에 나오는 책입니다.

제목만 보면, 이집트 탈출 이야기만 나올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출애굽기에는 이집트 탈출 후에 광야 생활, 그리고 시내산에서의 언약, 특히 성막에 관한 내용이 길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출애굽기 1장은 창세기와 출애굽 이야기의 중간 역사를 간략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즉 요셉이 죽은 후에 이스라엘 민족이 약 400년 간 이집트에서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간략하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1) 출1:1-7절

요셉이 이집트 총리로 있을 때, 처음에 이집트로 이주한 야곱의 아들들과 가족은 약 70명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과 그의 형제들이 죽은 후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계속 생육하고 번성하여 숫적으로 엄청나게 불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출1:6-7절 보세요.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의 사람은 다 죽었고 이스라엘 사람은 생육하고 불어나 번성하고 매우 강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누가 이스라엘을 계속 번성하게 하셨는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신 것입니다.

 

2) 출1:8-14절

그런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이스라엘은 요셉 때에 받았던 보호와 특혜를 잃어버리고 오히려 말할 수 없는 견제와 학대를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불어나는 것을 보고 두려움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바로는 그들의 숫자가 계속 늘어나면, 전쟁이 일어났을 때, 심각한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대적과 합하여 싸울 뿐 아니라 이집트에서 도망칠 수도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워서 특별 감시하면서,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고 더 나아가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였습니다.

힘들게 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약화시키려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스라엘 백성은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여 퍼져 나갔습니다.

그래서 바로왕은 더욱 험한 일, 중노동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즉 흙이기와 벽돌 굽기와 농사의 여러 가지 일로 힘들게 하였다는 것입니다.(12절)

바로와 이집트인의 학대가 이스라엘의 번성을 막을 수 있었을까요?

그들의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막을 수 없습니다.

더 늘었고 더 강해졌습니다.

 

3) 본문 출1:15-22절

바로는 최후의 수단으로 더욱 잔인한 방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우선 히브리 산파 십브라라 하는 여인과 부아라 하는 여인에게 명하여, 히브리 여인들이 아기를 낳을 때, 여자 아이면 살려두고, 남자 아이는 죽이라고 명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두 여인은 바로의 명령대로 하지 않고, 사내 아이들도 살려 주었던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였느냐 추궁을 받자, 기지를 발휘해서 위기를 모면하였습니다.

히브리 여인은 애굽 여인과 같지 아니하고 건장하여 산파가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 해산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제 악한 사탄의 하수인이 된 바로의 본심이 드러났습니다.

바로는 모든 백성에게 명하여 모든 사내 아이를 나일 강에 던져 죽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출1:22절, 그러므로 바로가 그의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아들이 태어나거는 너희는 그를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 하였더라

역사상 가장 잔인한 명령이었을 것입니다.

모세가 세상에 태어날 당시의 이집트에서의 이스라엘 민족의 상황이 이와 같았습니다.

 

여러분 누가 역사를 이끌고 가는가?

어떤 사람은, 역사는 어떤 방향성도 없고, 모든 역사는 우연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세상에 어떤 일이 우연이 생겨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역사가 우연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의 출생도 우연히 이뤄지지 않습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우연이 존재하게 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마리에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시는 분 있으신지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우연히 죽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역사는 힘 있는 권력자들이 만들어 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역사를 왕들 중심으로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것도 진실이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의 바로왕만해도 이스라엘 민족을 학대하고 없애보려고 하였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학대받을수록 이스라엘 자손들을 더 급격하게 불어났습니다.

이스라엘을 약화시키려고 갖은 노력을 했지만 안되었습니다.

더욱 불어났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역사는 민중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또는 민중들이 이끌고 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민중 혁명을 꿈꿉니다.

(한국에서 촛불집회가 성황을 이루는 것도 이런 생각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도 진리는 아닙니다.

역사가 민중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역사를 움직이고 이끌고 갈까요?

겉으로 보면, 모든 역사는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것 같이 보이지만(물론 인간이 역사를 만들어 가는 측면도 있습니다.) 실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섭리하시고 이끌고 가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이야기를 보세요.

하나님께서 먼저 요셉을 이집트에 보내시고, 그의 형제들이 이주해 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약 400년간 이집트에서 민족의 숫자가 불어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시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모든 역사를 섭리하시고 인도하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왜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400간 노예 생활을 해야 했을까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왜 바로 주시지 않고 400년을 기다리게 하셨을까요?

 

중요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을 정도의 민족의 숫자가 늘어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직 숫자가 적으면, 가나안 땅을 주셔도 차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집트에서 숫자가 늘어나도록 기다리신 것입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는, 가나안 사람들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직 그들의 죄악이 가득차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이유에 대해 미리 아브라함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창15: 12-17절 보세요.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12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14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여기에 보면 하나님의 섭리 속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나그네로 있게 될 것, 400년간 노예 생활을 할 것과 이후에 이집트에서 나올 것에 대해 말씀해 주셨습니다.

 

다니엘서에서 하나님은 느브갓네살의 꿈과 다니엘의 꿈과 환상을 통해 앞으로 일어날 제국들에 대해 보여 주셨습니다.

바벨론에 이어서 페르시아, 헬라, 로마 제국이 일어날 것과 나뉠 것에 대해서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역사를 누가 섭리하시는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역사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역사는 크게 두 종류의 역사가 있습니다.

★ 하나는, 세속의 역사입니다. 인간 역사요, 일반 역사입니다. 세계의 역사입니다.

★ 다른 하나는, 구원의 역사입니다.

교회의 역사요, 하나님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역사의 중심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여러분은 이 두 역사 중에 어느 역사가 더 중요하고, 어느 역사가 더 중심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세상의 역사만 보이고, 하나님의 역사, 구원의 역사는 보이지도 않고 힘없는 역사로 비쳐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보면, 구원의 역사가 훨씬 더 중요하며, 강력합니다.

구원의 역사가 주 역사이고, 세상의 역사는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 예수님의 탄생 때에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가 천하로 호적하라 칙령을 내렸습니다. 로마 황제가 제국의 위대함을 드러내기 위해 그런 명을 내렸는지 모르지만, 그 칙령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가 나사렛이 아닌 성경의 예언대로 베들레헴에서 나게 섭리하였습니다.

누가 누구를 위해 존재했나요?

로마 황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존재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실 때, 헤롯 대왕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아기 예수를 없애려고 하였습니다.

그의 계획이 성공했나요? 아닙니다.

실패했을 뿐 아니라, 헤롯 자신이 죽었으며, 이집트로 피신 갔던 예수는 부모와 함께 갈릴리 나사렛으로 돌아와서 자랐습니다. (마2장)

 

근대 역사도 살펴보면, 세속 역사가 구원의 역사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지리상의 발견, 항해 기술의 발달, 인쇄술의 발달, 교통의 발달은 다 선교사들을 더 멀리 갈 수 있게 했으며, 복음 전파의 좋은 수단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공산화도 국가의 독립, 미신이나 전통 종교를 깨뜨리는데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혁명이나 전쟁도 다 선교의 도구들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모든 기술 문명도 결과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멀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더 깊숙히 전달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상의 역사보다 구원의 역사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누가 정권을 잡고, 어떤 기술이 생겨나고, 어느 나라가 부강해질 것인가 보다는 천국 복음이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민족들에게 전해질 것인가 더 중요한 이슈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24:14절을 보세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지난 주에 눈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눈 중(육안, 지안, 영안 등)에는 역사를 보는 눈도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를 세속주의적인 관점으로만 보아서는 안됩니다.

구원사적인 관점에서,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고 해석할 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역사의 주인공은 결코 권력자가 아닙니다.

바로나 로마 황제나, 헤롯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주인공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미국의 정치를 보면서 염려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존 바이든 대통령이 어떻게 할지에 대해 염려가 많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권위를 존중하고, 위정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만, 모든 역사가 권력자들에 의해, 그들의 뜻대로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신앙입니다.

역사를 이끄시는 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은 인간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가 얼마나 다른 지, 인간의 지혜가 얼마나 어리석은 지에 대해서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지혜, 꾀는 너무 얇습니다. 속이 다 보입니다.

요셉을 모르던 이집트 왕이 생각해 낸 지혜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자손이 많고 강해지고 있느니, 그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억압해서 그 숫자를 불어나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더 중노동에 시달리게 해서 다른 생각를 품지 못하게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이 위험하니 국경을 튼튼하게 하자, 비자나 영주권을 까다롭게 하자, 출입국 심사를 까다롭게 하자굉장히 지혜로운 방법, 지혜로운 정책인 것 같지만, 실상은 별로 도움이 안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독재자들이 왜 권력을 남용하고, 약자들을 억압하는지 아십니까?

실상은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입니다.

내면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겉으로 강한 척 하는 것입니다.

출1:10절을 보세요. ,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나갈까 하노라

바로왕이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을 더 억압하고 못살게 굴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대신 다른 무엇을 두려워하면 죄에 빠지기 쉽습니다.

여러분, 사울 왕이 언제부터 죄에 빠지기 시작했습니까?

블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블레셋의 병력이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병거가 3만, 마병이 6천, 백성은 해변의 모래같이 많았다고 했습니다.

게다가 길갈에서 사무엘이 오면 함께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기로 했는데, 사무엘은 정한 시간에 오지 않고 백성들은 흩어지는 상황이 되자, 자신이 해서는 안될 일을 했습니다. 직접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일을 했습니다.(삼상13장)

즉 사울 왕은 전쟁에 대한 두려움, 백성들이 흩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 다시 말하면 권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생겼을 때,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지도자들이 언제부터 잘못되기 시작하는가?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권위나 권력, 명예를 스스로 지킬려고 할 때 잘못되기 시작합니다.

권위는 부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신데, 하나님이 세우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권위를 세우려고 할 때 타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솔로몬 사후에 북 이스라엘에 새로 임금이 된 사람이 여로보암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범죄로 인해 나라를 둘로 나누셔서, 열 지파를 여로보암에게 맡겨주셨습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여로보암이 겸손히 나라를 섬겼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런데 여로보암도 사울왕처럼 스스로 권력를 지키려고 애쓰다가 우상숭배에 빠지고 결국 실패한 왕이 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이 두려워했던 것은,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절기 때마다 남유다 예루살렘 의성전에 가서 예배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자기) 백성들이 자기를 버리지나 않을까,그들의 마음이 남유다 르호보암에게 가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자기 백성들을 남쪽 유다로 가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가지 않아도 되도록 조치를 취한 것입니다.

 

그래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베델과 단에 설치하고, 레위 사람이 아닌 일반 사람들을 자기 맘대로 제사장으로 임명하여 제사를 주관하게 한 것입니다.

여로보암은 결국 스스로 권력을 지키려 하였다가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실패한 대표적인 왕이 되었습니다.(왕상12장)

 

세상에 강한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결국 다른 무엇인가를 두려워하여 스스로를 지키려고 무리수를 두다가 멸망받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독재자들은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무리수를 두다가 한결같이 패망의 길로 가는 것입니다.

 

본문의 바로왕도 우려움 때문에 권력의 지키기 위해 히브리인들을 억압하고 괴롭혔을 뿐 아니라 유아 살해까지 시도하였지만 결국 실패하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만히 계시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힘없고 약한 사람들에 대해 큰 소리치고 억압하려는 태도를 갖는 사람은 진정으로 강한 사람이 아닙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임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 중에는 없겠지만, 남편들이 집에서 아내나 자녀들에게 큰 소리치는 분, 회사에서 아래 사람들에게 큰 소리치는 사람은 무엇인가 두려움 때문에 나오는 행동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혜있는 사람도 아니요, 강한 사람도 아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내적 두려움에서 해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려움, 불안, 초조로부터 해방되려면, 하나님 아버지를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는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할 때 다른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유심히 살펴봐야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입니다. 이들은 바로왕에 비해 참으로 연약한 사람들있습니다. 여인들이었습니다. 아무 힘이 없었던 사람들이죠.

그러나 그들은 바로와의 명령에도 불구하고 진리를 택했습니다.

잘못되면 죽을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기지와 용기를 발휘하였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성경 본문 출1:17절과 21절에서 그 단서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산파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그들이라고 왜 권력자 바로왕이 두렵지 않았겠어요?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을 진정한 왕이시며, 모든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왕의 유아 살해 명령을 어길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무엇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빠지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참 지혜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지혜의 눈이 열립니다.

해야 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잠1:7)

 

사도행전을 보세요.

사도들은 세상에 두려운 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전에 비겁하여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번 씩이나 부인했던 베드로가 백성의 관리들, 권력자들 앞에서 다시는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명령을 받았을 때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행4:19-20절,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이르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예전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이런 용기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예수님의 부활을 체험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은 후에, 세상에 하나님 외에 그 무엇도, 그 누구도 두려워할 존재는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죽음까지도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핍박을 예고하면서,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12:4-5절입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은 권세가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할 분은 오직 하나님 밖에 없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경 기자는 의도적으로 바로왕이 누군지 그 이름을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했던 히브리 산파의 이름은 정확하게 밝히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셨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그 백성은 번성하고 매우 강해지니라. 그 산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였으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집안을 흥왕하게 하신지라(출1:20-21)

 

하나님의 관점이 얼마나 세상 사람들의 관점과 다른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어떤 명예나 권력을 가지지 않았다고 해도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순종하면 하나님 나라에서는 큰 자로 기록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큰 권력을 누렸다고 해도 하나님을 경외함 없이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억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무의미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스로 자리나, 권력, 명예를 지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섬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고 지켜주셔야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높아지려고 하지 마시고, 하나님께서 높여주시는 인생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지금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위협적인 환경에 처하신 분들,걱정하지 말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십시오.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로 인해 너무 마음 상하지 마십시오.

모든 역사를 이끄시고 섭리하시는 분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혼란 속에서도 하나님은 질서를 잡으실 수 있습니다. 악도 선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일하실 것입니다. 약속을 성취하실 것입니다.

역사를 이끄시는 분은 세상의 권력자가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심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하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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