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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정준모 목사]언약 백성의 특권과 책임(출19: 1-13)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10.03|조회수572 목록 댓글 0

언약 백성의 특권과 책임(191-13)

성경본문: 출애굽기19: 1-13

1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을 떠난 지 삼 개월이 되던 날 그들이 시내 광야에 이르니라

2 그들이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에 이르러 그 광야에 장막을 치되 이스라엘이 거기 산 앞에 장막을 치니라

3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라

4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5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7 모세가 내려와서 백성의 장로들을 불러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령하신 그 모든 말씀을 그들 앞에 진술하니

8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전하매

9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들이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 모세가 백성의 말을 여호와께 아뢰었으므로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하게 하며 그들에게 옷을 빨게 하고

11 준비하게 하여 셋째 날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셋째 날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서 시내 산에 강림할 것임이니

12 너는 백성을 위하여 주위에 경계를 정하고 이르기를 너희는 삼가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지 말지니 산을 침범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할 것이라

13 그런 자에게는 손을 대지 말고 돌로 쳐죽이거나 화살로 쏘아 죽여야 하리니 짐승이나 사람을 막론하고 살아남지 못하리라 하고 나팔을 길게 불거든 산 앞에 이를 것이니라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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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단어 중에 “Identity”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심리학(또는 사회학)에서 처음 나온 말인데 이제 누구나 사용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우리 말로 번역할 때 어려움을 겪는 단어입니다. 동질성, 또는 정체성이란 말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아이덴티티란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 분명히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불안해하지 않는 것입니다.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이덴티티가 확실하고 분명합니다.

그러나 개중에는 아이덴티티 혼란을 겪는 분들이 있습니다.

아이덴티티가 확실하지 않거나 잘못되면 삶이 불안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에 무엇을 해야할 지도 잘 모르는 것입니다.

 

언제 또는 누가 아이덴티티 문제로 혼란을 겪는가?

신분 상의 변화가 있을 때, 정체성 혼란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령, 1.5세, 혼혈 아이들, 입양되신 분들 가운데 혼란을 겪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리 자녀들 가운데도 정체성의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사업가이자, 인기 방송인 중에( ‘the Profit’이란 프로그램 진행자) 마커스 레모니스(Marcus Lemonis)라는 분이 있는데, 어렸을 때 레바논에서 미국 가정에 입되어 왔습니다. 플로리다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어렸을 때 정체성 혼란 때문에 여러 번 자살할 생각까지도 했다는 것입니다.

 

친구들과 다른 점 때문에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의 부모에 비해 자신의 부모가 나이가 너무 많은 점, 입양되어 왔기 때문에, 미국 가정에서 자랐지만 미국인이 아닌 것처럼 생각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결국에는 정체성 혼란을 극복하고 지금은 오히려 불우한 청소년, 사회의 그늘진 사람들을 돕는 입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 청소년기에 아이덴티티 문제로 굉장한 어려움을 겪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Koeran American”이란 정체성 외에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도 있습니다.

이 정체성이 분명해야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정체성이 혼란스러우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혼란을 겪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출애굽기에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이스라엘 사람들의 정체성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시내산에서 주신 말씀인데, 출3장에서 하나님께서 처음 모세를 불러서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고 있을 때, 여러분이 아시는 것처럼, 불타는 떨기나무 가운데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모세야, 모세야

, 제가 여기 있습니다. 누구십니까?”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내가 너를 이집트에서 고통을 겪는 내 백성들에게 보내노니, 가라, 내가 너와 반드시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3장)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이루어져서, 모세가 기적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시내 광야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뵈옵게 된 것입니다.

 

(언제?) 본문 1절에 보니,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를 떠난 지 3개월이 되던 날에 시내 광야에 도착하였다고 했습니다.

셋째 달 1일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날짜로 계산하면 이집트를 출발한 지 약 45일 후에 도착한 것입니다.

첫째 달 15일에 출발했습니다. 둘째 달에 이어 셋째 달 첫 날에 시내산에 도착한 것입니다.

 

(어디에?) 2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지 밝히고 있습니다.

르비딤을 떠나 시내 광야로 와서 시내 산 앞에 장막을 쳤다고 되어 있습니다.

 

(누구에게?) 3절에서는 오늘 본문의 중요한 이 말씀이 누구에게 전해야 할 말씀인지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말씀하시되 너는 이같이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라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말씀을 주시면서, 야곱의 집에 말하고, 이스라엘의 자손에게 말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야곱의 집,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하셨을까요?

그냥 야곱의 집이라고 하시든지, 아니면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해도 되는데, 왜 야곱이라는 이름과 이스라엘이란 이름을 같이 언급하고 있을까요?

단순히 강조하기 위해 반복하고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야곱이란 이름과 이스라엘 이란 이름을 같이 언급하시는 것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으로 인해 이제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처럼, 새로운 백성으로 태어날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라고 믿습니다.

새로운 정체성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야곱은 이삭의 아들로서, 장자 에서의 축복을 빼앗기 위해 교활한 행동을 했던 사람입니다.

팥죽을 이용하여 에서의 장자권을 빼앗고, 나중엔 어머니 리브가와 공모하여 형이 받을 아버지의 축복마저 빼앗았습니다.

그 이후에 형의 보복이 두려워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쳐서 약 20년간 그곳에 살다가 하나님의 지시로 형 에서와 화해하기 위해 가나안 땅을 돌아오게 된 것입니다.

 

20년 만에 고향으로 두 아내와 여러 자식들, 종들과 양떼 소떼 등 많은 재산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얍복강가에서 잠이 올 리가 없었습니다. 종들과 식구들을 먼저 보내고 강가에서 기도하가다 하나님의 천사를 만나서 씨름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사가 끈질긴 야곱에게 이길 수 없자 새벽 녘에 야곱의 엉덩뼈를 쳤습니다. 그러면서 나로 가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절면서도 안됩니다. 축복해 주시기 전에는 놓아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자 천사는 네 이름이 뭐냐?’라고 묻으셨습니다. 몰라서 물은 것은 아닙니다.

제 이름은 야곱입니다.’ ‘그래, 이제부터 네 이름을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다. 왜냐하면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라

 

그 때부터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그날 개인적으로 야곱은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새 이름을 받은 것은 새 사람이 되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민족적으로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나와서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통해 새로운 민족으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19장의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에겐 너무나 귀중한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본문에 언약(covenant)”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나오는데 이 말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성경에 자주 나오는 말입니다.

히브리어로 <베리트(계약)>라고 합니다.

신약 성경, 구약 성경이라는 말 속에서 언약이란 말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에서 언약을 크게 둘로 나누면 구약과 신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다시 구약 성경에서 나오는 언약, 하나님과의 언약은 크게 둘로 나누면 출애굽기 19장 이전의 언약과 이후의 언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시내산 언약 이전의 언약은 쌍방간의 언약이 아니라 일방적인 언약이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으로 주신 언약이었습니다.

출애굽기 이전의 대표적인 언약은 노아와의 언약, 아브라함과의 언약 등이 있습니다.

 

방주에서 나온 노아와 맺은 언약은 무지개 언약으로 알려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시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지 않으시겠다는 언약이었습니다.

창9:11-13절, 내가 너희와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모든 생물을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 땅을 멸할 홍수가 다시 있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나와 너희와 및 너희와 함께 있는 모든 생물 사이에 대대로 영원히 세우는 언약의 증거는 이것이니라. 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둘째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도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이었습니다.

어떤 조건도 없습니다.

창12:1-3절을 보세요. 여호와께서 아르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희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게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르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밈아아 복을 얻을 것이라

 

창15장에 보면,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과 함께 가나안 땅을 그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집트에서 약 400년 나그네로 살 것까지 말씀하시고, 그 후에 아브라함의 후손이 큰 재물을 가지고 나올 것까지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언약을 맺으시는데, 쪼갠 고기 사이로 하나님을 상징하는 횃불이 지나갔습니다.

원래 중동 지역에서 쌍방 언약이라면 계약 당사자 둘이 자나가야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아브라함과의 언약은 하나님의 일방적인 언약이기 때문에 하나님 혼자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난 것입니다. (창15장)

 

그런데 여러분, 오늘 본문에 기록된 하나님과 출애굽한 민족의 언약은 일방적인 언약이 아니라 쌍방적인 언약이이었습니다.

즉 이제는 언약이 성립되기 위해서 이스라엘 민족의 책임이 뒤따라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이 언약을 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출19:5-6절을 보세요.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물론 하나님과 이스라엘 민족과 맺은 언약은 동등한 쌍방 언약은 아니었습니다.

주종계약이었습니다.(왕과 신하 사이의 언약)

위대하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이고, 이스라엘의 의무와 책임이 뒤따는 방식의 언약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5,6절의 언약을 말씀하시기 전에 4절의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운 행동을 언급하신 것입니다.

출19:4절,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여러분, 하나님이 애굽에 행하신 일은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열 가지 재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다라는 말씀은 무슨 말씀일까요?

 

독수리 날개는 가장 강력한 날개, 힘이 있고 빠르게 나는 날개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내가 어떻게 너희를 제트기로 실어왔음을 너희가 보았다라고 하셨을 것입니다.

 

출애굽과 홍해 바다 사건,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반석에서 나는 물로 마시게 한 사건들을 언급하고 계신 것입니다.

독수리 날개와 같은 능력으로 이스라엘을 인도해 오셨습니다.

4절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한 단어로 요약하면 은혜이고, 두 단어로 요약하면 은혜로 구원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데 여러분, 이스라엘 민족만이 은혜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구약의 이스라엘보다 수백 배, 수천 배 더 은혜를 받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은혜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습니다.

엡2:8-9절,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여러분, 이 시내산 언약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얼마나 중요했나요?

이스라엘이 진정으로 이스라엘로 새로 태어난 곳이 시내산이었습니다.

시내산은 이스라엘 민족의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서 시내산으로 인도하신 것을 4절에서는 내게로 인도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과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된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결혼한 것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 관계를 맺은 것입니다.

 

이제부터 언약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은 크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한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할 정체성입니다.

이 정체성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기도 합니다.

첫째로,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보물)로서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표준 새번역이 더 잘 번역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소유를 보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출19:5a, “이제 너희가 정말로 나의 말을 듣고, 내가 세워 준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가운데서 나의 보물이 될 것이다.”

보물은 소유 중에서 특별히 소중한 것, 가치있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세상에서 가장 가치있는 존재로 만드셨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의 보물이 된 것은 그들이 숫자가 많아서나, 다른 민족보다 의로와서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에 의해 된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만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아버지의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영원한 소유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보물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에베소서2:10절에서는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하였습니다.

엡2:10절(새번역)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하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미리 준비하신 것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며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작품은 작가의 혼이 담겨져 있습니다.

세상에 똑 같은 작품은 없습니다.

작가는 한 작품, 한 작품을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존재는 없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빚어진 작품입니다. 선한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만드셨습니다.

한 사람 그리스도인이 얼마나 가치있을까?

어떤 분이 계산하길,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죽으실 정도로 가치가 있다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걸작품으로 지어진 새로운 피조물임을 기억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 모두 하나님의 보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둘째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제사장 나라로서의 정체성이 있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죄인된 인간의 사이에서 중보자 역할을 하던 직책이었습니다.

아론과 그 후손이 제사장의 특권을 누렸습니다. 아무나 될 수 없었습니다.

제사장은 성소 안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대제사장은 1년에 1회 지성소에도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일반 사람들에 비해 구약 시대의 제사장은 대단한 특권을 누렸던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 특권에는 책임이 뒤따랐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사장은 제사장 자신을 위해 존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해 존재하였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가 되었다라는 것은 이스라엘의 특권을 말하면서도 동시에 사실은 이스라엘의 책임을 강조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의 이방 민족들 중에서 이스라엘이 제사장 나라로서의 책임을 다하길 원하셨습니다.

세상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을 섬기는 민족으로서 본을 보이길 원하셨습니다.

우상이 신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심을 증거하길 원하셨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의 제사장 나라의 책임은 그대로 신약 시대의 교회가 이어받았습니다. 교회가 이제 세상에서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증거할 책임을 갖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에클레시아라는 헬라말을 번역한 단어인데, 에클레시아는 세상으로부터 부름받은 공동체라는 의미와 함께 세상으로 보냄받은 제자 공동체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유명한 구절이죠.

벧전2:9절에서 베드로는 출애굽기 19장 본문을 신약 시대의 교회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려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 말씀을 잘 보세요.

신약 시대의 교회는 세상에서 택하심을 받았고, 왕 같은 제사장들이 되었습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성도를 택하여 구별하셨나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신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 복음을 선포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가 왕 같은 제사장들로서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교회의 존재 목적을 잊어버린 것이죠.

 

사도 바울은 복음의 제사장이란 말을 사용했습니다.

제사장이란 용어를 가장 잘 적용한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롬15:16절입니다.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은혜라는 단어를 빼고는 바울의 삶과 사역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은혜 때문에 전 생애를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에 걸었습니다. 다 바쳤습니다.

 

바울만 은혜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모든 시대의 모든 성도들은 은혜로 구원받았고,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받게 된 것입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기쁨으로 헌신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불러 3년간 훈련하셨습니까?

제자들을 보내서 모든 민족을 제자 삼기 위함이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예수의 증인이 되게 하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마28:19-20, 행1:8)

 

셋째로, 출애굽한 이스라엘의 정체성은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되었다라는 것입니다.(출19:6b)

거룩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카도쉬>인데, 구별된다는 의미입니다.

언약을 통해 하나님께서 야곱과 같았던 존재를 은혜로 구원하여 이스라엘로 구별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이 된 것은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어떤 행위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은혜로 하나님이 구원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거룩한 백성이라고 불러주시는 것은 이제 구원받았으니, 거룩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에게 거룩하라고 명령하시기 시작한 것은 이 시내산 언약 이후라는 사실에 우리가 주목해야 하겠습니다.

유월절 때엔 거룩에 대해 명령하지 않으셨습니다.

마침내 시내산에서 거룩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즉 거룩에 대한 명령은 구원을 위한 조건이라기보다는 구원받은 백성의 의무라는 것입니다.

 

구원받은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가장 자주 명령하시는 말씀이 거룩하라는 말씀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의 뒷부분에서 강조되는 말씀도 거룩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강림하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단 한 가지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결)10- 11절 말씀은 제 3일에 하나님이 강림할 것인데, 오늘과 내일 이틀동안 백성들을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아서 거룩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결코 쉬운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물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광야에서 몸을 씻고 옷을 빠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깨끗하게 해야 했습니다.

 

(금지)12-13절에서는? 하나님이 임하실 거룩한 산에 함부로 올라와서는 안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계를 정해놓고 아무도 모세 이외의 아무도 산에 오르거나 그 경계를 침범하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 규례를 어기는 사람은 가차없이 죽여야 한다는 무서운 명령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사랑의 하나님께서 이런 무시무시한 명령을 주셨을까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레위기 19:1-2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말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여러분, 거룩에 대한 명령은 신약 성경에서도 동일하게 강조되고 있습니다.

벧전1:14-16절에서 베드로사도는 말했습니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전에 알지 못할 때에 따르던 너희 사욕을 본받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되었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사도 바울도 거룩에 대해 많이 말씀했습니다.

고전3:16-17,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바울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성령이 거하는 성전에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비전 중에 하나는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깨끗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거룩을 이야기할 때, 최우선적으로 거룩(깨끗)해져야 할 곳은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마음으로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고, 마음으로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이 정결해 져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 눈이 정결해 져야 하고 귀가 정결해 져야 하고 입이 정결해 져야 합니다.

사람은 보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에 의해 절대적으로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손도 거룩해져야 합니다.

손을 피흘리는데 사용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에서는 손에 피가 있으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고 해습니다.

손은 선한 일을 하는데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손을 들고 기도하고 손으로 봉사하고 섬기는데 써야 하는 것입니다.

온 몸이 거룩해 져야 합니다.

바울이 강조한 처럼, 그리스도인의 몸은 성령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성전된 몸으로 범죄할 때 성령께서 근심하시고 탄식하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혼만 거룩하게 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는 몸도 거룩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몸도 성령이 거하는 거룩한 성전이기 때문입니다.

 

성 어거스틴이 말한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두 왕국에 속해 있습니다.

세상 나라의 시민권과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민권이 더 본질적이고 영원할까요?

하늘의 시민권이 더 영원합니다.

빌3:20절을 같이 읽어봅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 복음의 제사장, 거룩한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한 순간도 흔들리지 않기를 축원합니다.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여 언약 백성으로서의 책임을 다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상에서 용기를 가지시고, 빛으로서 어둠을 밝히시고, 생각과 말과 행실 등 모든 면에서 거룩한 자들이 다 되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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