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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용수 목사

[정준모 목사]하나님과의 동행(창 5:21-32)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2.10.06|조회수921 목록 댓글 0

하나님과의 동행(521-32)

성경본문: 창세기 5:21-32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31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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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에 부흥 사경회 때에 대부분의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의 맛을 새롭게 체험했습니다.

시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꿀 송이처럼 달다고 표현되어 있는데, 많은 분들이 그런 체험을 한 줄로 믿습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시119:103)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이자 영적 무기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고 건강한 신앙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되지 않으면, 혼탁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신학교 은사님 가운데 성종현 박사님이 계십니다. 텔런트 성유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성 박사님이 신약 개론 시간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한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합니다.

성경은 연애 편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해서 주신 사랑의 편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대할 때에, 연애 편지 읽듯이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여러분, 군대에 있을 때 애인으로부터 연애 편지를 받으면 어떻게 하는지 아세요. 소중하게 간직하면서 읽고 또 읽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내용을 너덜너덜할 때까지 읽고 또 읽을 것입니다.

성경을 연애편지처럼 사랑하고, 많이 읽고 묵상하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늘 체험하며 사실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성경에 하늘로 승천한 사람이 세 명이 등장합니다.

구약에서 에녹과 엘리야 선지자이고, 신약에서 우리 주님 예수님이십니다.

에녹은 아담의 칠대 손으로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365세에 하나님께서 불러가심으로 죽음을 보지 않았던 사람입니다.

창세기 4- 5장 사이에 두 개의 족보가 나옵니다.

하나의 족보는 가인의 족보이고, 다른 하나는 가인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벨 대신이 하나님께서 새로 주신 아들인 셋의 족보입니다.

성경에서는 가인의 족보보다 아담-셋으로 이어지는 족보에 더 관심을 갖습니다.

왜냐하면, 이 족보가 아브라함과 다윗이 속한 족보요,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이기 때문입니다.

 

에녹 시대의 특징

창세기 5장에 나오는 족보에 담긴 특징 중에 하나는 사람들이 오래 오래 살면서 자녀들을 많이 낳았다는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누구를 낳은 후 몇 백 년 동안 자녀들을 낳았다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많이 나았을까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은 인간이 해야 할 아주 중요한 일 중에 하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시고 어떻게 말씀하였나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명령에 잘 순종하는 교회입니다.

해마다 최소한 10명 이상의 아이를 낳고 있습니다. 현재 아이를 가진 분들이 8-9명이 됩니다. 이 숫자는 계속 늘어갈 것입니다.

 

창세기 5장의 족보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특징 중에 다른 하나는 참 오래 살긴 살았지만, 다 죽음으로 끝났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930세까지 살았습니다. 셋은 920세에 죽었습니다. 셋의 아들인 에노스는 905세까지 살았습니다.

그 시대에 제일 오래 산 사람은 에녹의 아들인 므두셀라인데 969세까지 살았습니다.

오래 살긴 살았지만, 다 죽었습니다.

에녹만 예외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외 없이 모든 인간은 죄의 삯으로 죽음을 당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장에서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하는 말씀이 문자적으로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자, 우선 영적인 죽음이 찾아왔고, 이어서 인격적인 죽음, 마지막으로 육체적인 죽음이 찾아 온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이 사실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5:12)

죄는 전염병처럼 신속하게 번지는 속성이 있습니다.

에녹이 살던 시대, 그의 증손자인 노아가 살던 시대는 참으로 악한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소돔과 고모라 성에 살던 사람들과 비슷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후회하실 정도였습니다.

창6:5-6절을 보세요.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신약 성경에서 에녹에 대해 언급하는 곳은 두 군데입니다.

한 곳은 히브리서 11장이고, 다른 한 곳은 유다서1장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에녹이 믿음으로 살았으며,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였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세상 사람들과 달리 에녹은 하나님과 특별한 친밀함을 누렸으며, 그 결과 죄의 삯인 사망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겨지게 되는 축복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히브리서11:5절,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유다서에 보면 에녹이 불경건한 시대에 어떤 삶을 살았는지 간단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유다서1:14-15절을 보세요.

아담의 칠대 손 에녹이 이 사람들에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하지 않은 자가 경건하지 않게 행한 모든 경건하지 않은 일과 또 경건하지 않은 죄인들이 주를 거슬러 한 모든 완악한 말로 말미암아 그들을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이 구절에 의하면 에녹은 예언자였습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그 말씀의 내용은 불경건한 자들에 대한 심판의 말씀이었습니다.

이 두 구절 속에 불경건한이란 형용사가 무려 4번 반복해서 나옵니다.

그 시대가 얼마나 불경건한 시대인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어로 불경건하다는 말은 “Ungodly”입니다.

 

즉 하나님의 부재,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담의 7대 손에 이르러서 가인의 후손들은 말할 것도 없이 셋의 후손들도 대부분 불경건하게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불경건은 모든 죄의 뿌리와 같습니다.

 

도덕적인 타락의 원인을 살펴보면 마음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마음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면서 온갖 더러운 죄악들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과 같은 죄들이 불경건에서 나온 죄의 열매들인 것입니다.

롬1:28을 보세요.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불경건한 시대에 경건하게 사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이 다 경건하게 살 때, 함께 경건하게 사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불경건하게 사는데, 혼자 경건하게 사는 것은, 밀려오는 파도에 맞서서 헤엄치는 것처럼 쉽지 않은 것입니다. 외롭습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왕따당하기 일쑤입니다.

 

에녹은 어떤 계기로 언제부터 경건하게 살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본문에는 자세히 말하고 있지 않지만, 아들 므두셀라를 낳기 전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므두셀라의 뜻 창의 사람”, “창을 던지는 사람이란 뜻이 있는데, 다른 의미로는 심판과 멸망이란 뜻도 있습니다.

부족 시대에 창의 사람이 죽으면 곧 전쟁에서 패배요, 패배는 곧 심판과 멸망을 의미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에녹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므두셀라라고 지었는데, 그 이름을 붙인 것은 므두셀라가 죽을 때에 세상에 심판과 멸망이 있을 것에 대한 계시를 받았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창세기 5장의 족보를 가지고 계산해 보면, 정확히 므두셀라가 죽던 해에 홍수 심판이 있었습니다.

창7: 11절에 의하면, 노아가 600세 되던 해에 홍수 심판이 있었습니다. 노아(므두셀라의 손자)가 태어난 해는 므두셀라의 나이로 계산하면, 969-600=369세 때입니다.

므두셀라가 라멕을 낳을 때가 언제이죠? 187때입니다.

라멕이 노아를 낳은 때가 언제이죠? 182세때입니다.

그러면 이 둘을 합치면 노아가 태어난 해는 므두셀라가 몇 세 때인가요? 덧셈을 하면 됩니다.

산수입니다. 369가 나옵니다.

정확히 369세 때에 노아가 태어났고, 노아의 나이 600세 때에 므두셀라는 969세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녹은 아들 므두셀라를 낳고 이름을 창의 사람이라고 지을 때, 벌써 세상의 심판이 있을 것과 세상의 멸망이 있을 것을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한부 인생이란 말이 있습니다.

불치병에 걸렸을 때, 의사가 당신은 이제 몇 달 밖에 못살아라는 말을 들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모든 인간이 시한부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끔 이 진단이 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서울의 어떤 여자 집사님은 아파서 병원에 가서 입원했는데, 병실 밖에서 의사들이 얘기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암이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었던 분이기에, 삶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빚도 갚고, 많이 베풀며, 해야 할 일을 정리하며 몇 달을 지냈는데, 몸이 더 나빠지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른 병원에 가서 진찰해 보니, 암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주변에서 죽는 줄 알고 돈도 많이 쓰고, 빚도 갚고, 인심도 많이 썼는데, 억울하지 않냐고 했더니,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인생에서 아주 귀중한 교훈을 얻었다는 것입니다.

지난 몇 달 동안 참으로 진지하게 살았습니다. 앞으로도 인생을 진지하게 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인생을 진지하지 않게 살고, 경건하지 않게 사는 이유 중에 하나는,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죽은 후의 심판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인 것입니다.

성경은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죽음을 생각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죽음과 심판, 주의 재림에 대해 잊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에녹을 묘사하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은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믿음의 사람을 칭찬할 때, 이보다 더 아름다운 표현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히11:5-6절을 보세요.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일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그가 계신 것을 믿고, 항상 그를 찾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계신 것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 그 이상입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범사에 인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그냥 계신 것이 아니라 항상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믿고 그분을 의지하는 삶은 살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셉을 예로 들어보면, 요셉은 하나님이 항상 그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아내가 아무도 없는 방에서 유혹했을 때에, 하나님 앞에서 -<코람 데오>- “어떻게 득죄하리이까?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요셉은 억울한 옥살이 할 때도, 하나님께서 거기서도 함께 하심을 믿고 좌절하지 않고 2년 이상 지하 감옥에서 맡겨진 작은 일들을 성실하게 감당하였던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에녹은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아주 간략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이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던 것입니다.

여기 동행은 영어로 “Walked with God”을 번역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최소한 둘이 함께 걸으려면 세 가지가 맞아야 합니다.

첫째로,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한 사람은 서쪽으로 가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동쪽으로 가려고 한다면 결코 동행할 수 없습니다. 제 아내는 평생 저와 동행했습니다. 결혼하고 군목에서 제대하고, 어디에서 목회를 할 것인가?를 정해야 했습니다. 제가 이슬람권 선교사로 가겠다고 했을 때, 두말하지 않고 동행을 결심했습니다.

 

얼마나 고마운지요? 어떤 목사는 사모님이 반대해서 서울을 떠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보, 선교지로 갑시다.” 하면, “당신이나 가세요”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선교사가 될 수 있겠습니까? 선교사는 둘째치고 서울도 못 벗어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 칭찬을 하는데, 사라의 믿음도 칭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 “우리 가나안 땅으로 갑시다”라고 했을 때, 사라가 “당신이나 가세요. 나는 여기가 좋아요”라고 했다면, 어떻게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가나안 땅으로 향할 수 있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과의 동행을 위해서, 방향이 같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방향이 주님의 방향에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방향도 주님의 뜻에 맞추어야 합니다. 비전이라고 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아닙니다. 비전이 아니라 허황된 꿈인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이 아니라면 아무리 비전이 크고 그럴 듯해 보여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과연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내가 바라는 것이 주님의 뜻에 맞는지” 분별하고, 그 방향이 잘못되었으면 더 늦기 전에 방향을 재조정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방향에 맞출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방향에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동행하려면 둘이 친밀해야 합니다.

친하지 않은데 함께 가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저는 중앙 아시아에서 선교할 때에, 기차 여행을 자주 해야 했습니다. 여름에는 냄새하고 싸우고 겨울에는 추위와 싸워야 했습니다. 보통이 며칠씩 기차에서 잠을 자면서 여행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낯선 사람과 함께 같은 방에서 자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기차 여행 때에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함께 방을 사용하면 참 좋겠지만, 낯선 사람과 함께 오래 동행하는 것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화장실에 갈 때도, 걱정이 되었습니다. 지갑이나 귀중품들을 챙겨가지고 가야 했습니다.

 

상대방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나를 믿을 수 없어서 많이 경계하면서 여행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행에서 중요한 것은 서로 신뢰하는 것이요, 친밀한 관계를 갖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과 동행한다고 하면서, 주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편하겠습니까?

 

셋째로, 둘이 친하게 동행하려면 서로 간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대화를 즐겨야 합니다. 이때의 침묵은 금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주님과 동행하려면 “주님과의 대화를 즐겨야 합니다.” 동행을 다른 말로 하면 데이트입니다.

 

연인과 데이트 할 때, 과묵한 사람이라고 해도 대화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과묵한 사람이 연애할 때엔 말이 많아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님과의 대화를 우리는 기도라고 말합니다. 기도는 다른 것이 아니라 주님과의 대화입니다. 꼭 말로 하지 않는다고 해도, 주님께 말하고, 주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대화가 기도인 것입니다.

 

 

<두란노>에서 나오는 큐티 자료인 <생명의 삶>에 매달 기도문이 하나 씩 실리는데, 2월호에는 헬렌 프라츠의 기도문이 실려 있습니다. 이렇게 시작됩니다.

 

삶에 지정된 일들을 급히 서두르기 전에

하나님과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갖게 하소서.

우리의 모든 의심, 걱정을 가져다

기도 중에 그 모든 것을

주님께 이야기 하게 하소서

 

 

하나님과 대화할 시간을 갖게 하소서

불확실한 오늘 삶의 부분들을

그냥 밀어붙이지 않게 하시고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게 하소서

우리가 아무리 노력해도

 

주님과 나누는 작은 말 한마디만큼

행할 수 없음을 알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님은 날마다 새벽 미명에 일어나서 하나님과의 대화의 본을 보이셨습니다.(막1:35)

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에녹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요인을 하나 더 찾는다면, 에녹은 불경건한 시대에 경건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씀 드렸지만 에녹이 살던 시대는 신앙 생활하기에 녹녹한 시대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살았으며 점점 더 악해졌던 시대입니다.

정신차리지 않으면 믿음을 잃어버리기 쉬운 시대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신앙 생활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은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박해요, 다른 하나는 세속주의입니다.

박해는 초대교회 사도들이 경험한 것처럼, 신앙 때문에 감옥에도 가고, 순교도 당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도 회교권이나 북한 같은 나라에서는 이런 박해가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리스도인들은, 박해는 없지만 또 다른 적인 세속주의의 공격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속주의는 하나님 없이도 인간의 노력만으로도 충분히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삶 속에서, 문화 속에서 하나님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럽이나 한국이나 미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세속주의의 공격이 너무나 거세게 몰아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습니다.

선교지보다 전도하기가 더 어려워졌습니다.

 

학교에서도 어렵고, 전도부의 보고에 의하면, 시장(월마트)에서도 전도를 금하고 있다고 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않으면, 깨닫지도 못하는 사이에, 멸망으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어렵게 하는 것은 핍박이나 박해가 아니라, 오히려 세속주의의 따뜻함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정하는 경건은 최소한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야고보서 1:27,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서 돌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그것이니라

 

하나는 이웃 사랑이요, 다른 하나는 자신을 세속에 물들지 않게 하는 순결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고 경건하게 살았다고 하는데, 이것이 세상에서 살지 않고 산속의 기도원이나 수도원으로 들어갔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삶의 현장에서 사랑을 실천하였으며, 세속주의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거슬러 나아갔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환경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으로 담대해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이 세상이나 저 세상이나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마음을 높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받습니다. 뿐만 아니라 항상 시선이 낮은 데로 향하고, 가진 것을 기꺼이 나누고 베풉니다.

 

클레이튼 커쇼-<LA 다저스의 투수> 이 시대의 최고의 투수입니다.

7년 연봉이 2억 1천 500만달어입니다.

그런 그가 잠비아에 고아원을 세우고 돕고 있습니다.

엘런 멜슨과 신혼 여행을 잠지아로 간 이후, 고아원을 세워 해마다 겨울에 잠비아로 날아가서 어린 아이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모기도 많고 질병에 걸릴 위험도 많은 아프리카를 매년 방문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삼진을 잡을 때마다 500불을 선교 헌금으로 적립하고 있으며, 많은 후원자들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왜 그가 낮은 데로 향했을까요? 사랑 때문이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사랑의 실천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합니다.

 

김양재 목사 이야기

여자 목사 중에 김양재 목사라는 분이 있습니다. 강남에서 여자 목사로서 아주 큰 교회를 이룬 분입니다. 여자로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매일 큐티하는 여자>라는 책도 썼습니다.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분입니다.

목사가 되기 전에 크리스천 집안에 믿지 않는 남편과 만나서 결혼하였습니다.

남편은 장로님 아들이며 의사였습니다.

남들은 시집을 잘 갔다고 부러워할 지 모르지만, 본인은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아주 강한 기도를 드렸습니다.

남편의 영혼이 너무 안타까워서 제 생명을 거둬서라도 남편을 구원시켜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급성 간염으로 남편이 생명이 위급하게 되었고, 그 사이에 회개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천국으로 갔습니다.

 

아내의 기도 때문에 죽은 것은 아니고, 기도로 인해 죽기 전에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이후 김양재 집사는 신학을 공부하여 목사가 되어, 지금은 많은 사람들을 주님께로 인도하는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김양재 목사님의 힘은 큐티를 통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간 사람입니다. 죽음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의 문제를 극복하고 부활의 소망 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대의 에녹입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전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하나님 안에 살면 이미 하나님 나라에 사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산다면 삶도 죽음도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이 시대에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저와 여러분이 다 되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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