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된 낙원(사51장 3)
성경본문: 이사야51:3
3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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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지상의 인간에게 주신 생존환경은 낙원입니다.
창 2:8~9에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고 했고, 계 2:7에는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창세기에서 우리에게 주신 낙원을 우리가 하나님께 불순종함으로 잃어버렸는데 요한계시록에서는 예수 믿는 성도들이 다시금 그 낙원을 회복합니다.
이렇게 구약성경은 실낙원의 역사를 기록함으로 시작되고, 신약성경은 복락원의 역사를 기록함으로 끝납니다.
낙원, paradise는 울타리로 보호되는 아름다운 정원이란 뜻으로 페르샤에서 온 말입니다.
기쁨과 평화가 충만하고 하나님의 완전한 축복을 누리는 곳, 그곳에는 언제나 완전한 조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낙원의 아버지시고 사람은 낙원의 아들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 조화할 때 사람은 자신과도 조화하고 이웃과도 조화하며 낙원의 환경과도 조화되었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피조물의 근본적인 도덕을 깨어버리고 스스로 자율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도전이요, 하나님 자신에 대한 반역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미리 선포하신 진리를 다시금 수호하시므로 당신이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셨습니다.
창 3:22~24에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마귀가 될까 하노라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 동산에서 그를 내보내어 그의 근원이 된 땅을 갈게 하시니라 이같이 하나님이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 에덴 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불 칼을 두어 생명 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의 담이 쌓여짐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근본적인 부조화가 오자 낙원은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사람의 내부에서 진리가 사라지자 스스로 하나님이 되었다가 동물이 되기도 하고, 스스로 초인이 되었다가 허무한 존재가 되기도 합니다.
공허하며 혼돈하여 불안정한 존재가 되었고, 따라서 이웃과도 정상적인 조화의 관계를 지속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지 못한 사람은 한없이 공격적이 되기도 하고, 교만하게 되기도 하고, 비겁하게 되기도 합니다.
우울하기도 하고, 미련하게 고집도 세고 그래서 서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미운 자요, 살인자요, 배반자가 되고 맙니다. 그런가 하면, 생존 환경도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게 되었습니다.
이런 것들을 우리는 불가피성의 선언이라고 부릅니다.
어떻게 악인과 죄인들이 사는 곳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면 점점 나빠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바로 이와 같은 세상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세계 속으로 의와 생명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은 잃어버린 낙원을 회복시키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 위에 무죄한 인간으로,무한하신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우리의 죄와 저주와 죽음을 그 몸에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고난받아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시므로 우리의 죄를 청산하시고 우리에게 영원 불변한 의와 생명을 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다시금 낙원에 살 수 있도록 해주셨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구원이요,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첫 번 낙원인 에덴 동산은 작고 가변적이었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다시 찾은 둘째 낙원은 크고 영원한, 훨씬 좋은 낙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 낙원을 광의적으로 새 예루살렘 성이라, 천국이라, 신천신지라 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희랍의 문화와 로마의 정치 사이에서 시달리며, 앗시리아와 바벨론에게 망하고 포로살이를 하는 동안 그들의 유일한 소망은 “낙원이 다시 회복되리라”는 선지자들의 예언이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미리 보는 고로 확정적으로 표현합니다.
“사람이 이르기를 이 땅이 황폐하더니 이제는 에덴 동산 같이 되었고 황량하고 적막하고 무너진 성읍들에 성벽과 주민이 있다 하리니 너희 사방에 남은 이방 사람이 나 여호와가 무너진 곳을 건축하며 황폐한 자리에 심은 줄을 알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이루리라”(겔 36:35~36).
본문에서 이사야도 예언합니다.
“나 여호와가 시온의 모든 황폐한 곳들을 위로하여 그 사막을 광야로 에덴 같게, 그 광야를 여호와의 동산 같게 하였나니 그 가운데에 기뻐함과 즐거워함과 감사함과 창화하는 소리가 있으리라”(사 51:3).
그러나 둘째 낙원, 또는 마지막 낙원의 가장 중심된 요소는 환경적인 것보다 영적인 것입니다.
롬 14:17에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곧 하나님과 사람과의 조화, 절대적인 화해에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낙원은 사람이 예수님의 구속을 통하여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올 때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낙원의 회복을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일어난 화해 사건과 연결시켜 말씀합니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엡 2:13~19).
완전한 화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지면 다른 모든 것과 자동적으로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심으로 에스겔 선지자와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낙원의 회복을 성취하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던 낙원을 마지막 사람 예수께서 다시 회복시켜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얻은 사람이요, 구원을 얻은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낙원의 주인공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되었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용서받아 다시금 영원한 낙원의 아들로 회복되고 영접되고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은 지금 낙원 안에 살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낙원 안에 살고 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내주하심으로 우리의 기도는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응답됩니다.
구원의 날까지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으니(고후 1:22, 엡 4:30) 어찌 낙원이 아니겠습니까? 다만 한 가지 우리 몸은 아직 낙원에 있지 않지만 이 몸이 중요한 것은 구원의 날까지 복음을 증거하는 수단이 되기 때문입니다.
신종 인플루엔자, 조류 인플루엔자, 중증급성 호흡기증후군 등 각종 질병과 사고에서 자유롭지 못한 우리 영혼의 조강지처인 이 몸도 부활의 날에는 주님과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입니다(요일 3:2).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 1:18~26에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할 줄 아는 고로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그러나 만일 육신으로 사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일진대 무엇을 택해야 할는지 나는 알지 못하노라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내가 살 것과 너희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너희 무리와 함께 거할 이것을 확실히 아노니 내가 다시 너희와 같이 있음으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자랑이 나로 말미암아 풍성하게 하려 함이라”
또 한 가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육체 가운데 사는 이유는 성화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사도 바울이 딛 3:4-7에 말씀합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그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그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상속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의 다시 나게 하는 씻음으로 우리가 새로이 나는 때에 받는 새로운 성질은 거룩한 것입니다.
안에서부터 외부로 우리의 모든 삶을 새롭게 해주시는 성령을 날마다 우리들의 마음에 풍성히 부어주심으로 나도 모르게 예수님을 닮아갑니다.
성화란 오직 예수 안의 삶, life in Jesus에 다름 아닙니다.
서울남포교회 박영선 목사가 <구원 그 이후>란 책을 썼는데 구원 받은 다음 성도가 왜 사는가? 가 주제인데 그 답은 성화를 이루고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곧 신앙생활의 성숙입니다.
☞첫째,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때 신분적 성화, 성결된 성도가 됩니다.
☞둘째, 이 세상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시련과 은총의 사건들 속에서 경험적 성화가 이루어집니다.
☞셋째, 성화의 마지막 단계인 영화의 순간에 성화가 완성됩니다.
인생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습니다. 한두 가지 신념이나 방법으로 다 해결되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미해결의 문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 7:14에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 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이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고 말씀했고, 전 9:10에는 “네 손이 일을 얻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네가 장차 들어갈 스올에는 일도 없고 계획도 없고 지식도 없고 지혜도 없음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회복된 낙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얻습니다.
그때부터 구원받은 성도는 예수 안에서 삽니다.
회복된 낙원에 사는 사람은 곧 예수 안에서 사는 사람이고, 그것이 곧 성화입니다.
성화 속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성숙합니다.
우리가 비록 죄 짓고 실수하고 넘어지고 도저히 거룩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내가 거룩해서 거룩한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있기 때문에, 회복된 낙원 속에서 하나님과 화해된 관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거룩한 것입니다.
스스로 성화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살기 때문에 성화됩니다.
불신자와 다른 점은 우리가 지금 예수 안에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나는 지금 예수님의 거룩하심 속에 살고 있다”
고전 1:30-31에 말씀합니다.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지금 낙원 속에, 성화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회복된 낙원이시고 우리의 거룩함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은 지금 회복된 낙원의 자녀로서 거룩함의 은총 아래 살고 있습니다.
회복된 낙원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일들 가운데서 날마다 주님의 온전한 형상으로 빚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의 구속의 날까지 하나님 아들의 영광스런 자유를 기다리며 선지자들이 예언하던 낙원, 회복된 낙원의 복음을 힘차게 증거하며 살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