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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준태목사

[주준태목사]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의 복(시144: 1-15)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3.03.07|조회수37 목록 댓글 0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의 복(1441-15)

성경본문; 시편144: 1-15

1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

2 여호와는 나의 사랑이시요 나의 요새이시요 나의 산성이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방패이시니 내가 그에게 피하였고 그가 내 백성을 내게 복종하게 하셨나이다

3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알아 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기에 그를 생각하시나이까

4 사람은 헛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

5 여호와여 주의 하늘을 드리우고 강림하시며 산들에 접촉하사 연기를 내게 하소서

6 번개를 번쩍이사 원수들을 흩으시며 주의 화살을 쏘아 그들을 무찌르소서

7 위에서부터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 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

8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의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9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새 노래로 노래하며 열 줄 비파로 주를 찬양하리이다

10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자시요 그의 종 다윗을 그 해하려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시니이다

11 이방인의 손에서 나를 구하여 건지소서. 그들의 입은 거짓을 말하며 그 오른손은 거짓의 오른손이니이다

12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들과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양식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잇돌들과 같으며

13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

14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노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진대

15 이러한 백성은 복이 있나니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은 복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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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나라가 시끌시끌했던 대선정국이 지나고 윤석열 대통령정부가 들어섰습니다.

올해는 먼저,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대로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했으면 합니다.

 

올 한해는 특별히 우리나라의 안정과 발전을 위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고 하나님의 통치를 간절히 사모합시다. 다음에, 지금까지 미루어졌던 어려운 문제들이 해결되고,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은혜와 능력을 받고, 아름다운 세상이 우리 개인과 우리 교회와 우리나라에 열리기를 기도합시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거룩하시고 공의를 실천하시며 참되고 영원하신 분입니다.

오늘 본문 15절은 그런 하나님을 자기 하나님으로 삼는 백성이 복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에게 복이 있는 까닭을 살펴봅시다.

첫째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리 삶의 기초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연세대학교> 김현원 교수는 한때 과학자답게 하나님을 불신하고 기독교에 흥미를 갖지 못했습니다.

막연히 <진화론>을 인정하고 살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말할 수 없는 허무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진화론>을 믿는다면 자기의 존재 이유나 가치가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나 지나가는 개보다 나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김 교수는 아무래도 인간의 조상이 돌멩이나 원숭이라는 이론을 받아드릴 수 없었습니다.

<진화론>은 한 번도 과학적 검증을 받아본 일이 없는 가설이기 때문에 과학자의 양심으로도 그냥 따라갈 수 없었습니다.

그가 자신의 존재와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던 중에 하루는 창 1장을 읽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셨다는 말씀이 눈과 마음에 들어왔고 비로소 자신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

일단 하나님이 나를 창조하셨다는 확신이 생기자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이 다 믿어졌습니다.

 

오늘 본문 1절을 봅시다. “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달리 해석하면 나의 삶의 기초석이요 구심점인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 놀림을 주장하시고 손가락 하나하나의 움직임도 주장하신다는 것을 내가 깨달았도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내 삶의 기초석이 된다고 믿는 사람은 여간 어려움이 닥쳐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만사를 하나님께 맡깁니다.

2절에 여호와는 나의 인자시요라고 했는데, 원문의 뜻은 여호와는 나를 아껴주시는 분이시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도무지 빠져나올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처하면 자포자기 하거나 자살을 시도하기조차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나의 창조주시오, 나의 삶의 기초가 되심을 믿는 사람은 마치 견고한 기초석 위에 세운 든든한 건물처럼 환란의 태풍이 몰아치고, 역경의 지진이 일어나도 끄떡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최악의 경우에서 하나님을 만나뵙는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김현원 교수가 영국 <Oxford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미국 피츠버그 카네기 멜론대학의 교수로 부임하였을 때 7살난 딸의 머리에 종양이 생겨 12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아이를 위하여 온 교인들과 함께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이상하게도 감사기도가 나오고, 그동안 머릿 속에만 존재하던 하나님이 구체적인 믿음의 대상으로 나타나고, 하나님은 이 세상의 어떤 일을 통해서도 영광 받으실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통은 죄의 결과로 온 것이지만 그렇다고 고통이 곧 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고통이 사람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허락하십니다.

고통은 사람을 위험이나 파괴로부터 지켜줍니다.

고통이 없다면 아이가 불장난하다가 손을 태워버리고 말 것입니다.

고통은 우리 몸과 인격 어디엔가에 고장이 났다는 신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그 조상들에게 언약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아름다운 땅에 들어가기까지 먼저 어려운 시련을 겪었습니다.

앞으로 아름답고 풍요로운 세상을 알게 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인 줄 깨닫지 못하고 제가 잘나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교만할까 봐서 고난과 시련을 주셨다는 것입니다(8:1416).

그러므로 21C를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도 험악한 세월이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하심이라고 말씀했는데 광야란 사막, 황무지, 거친 들이란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일부러 광야 길을 걷게 하십니다.

우리를 낮추시며 시험하사 우리 마음이 어떠한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지 안 하는지 알려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광야 길을 허용하신 것은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3절에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사실 우리가 배고픈 시절에 우리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소망을 준 것은 보리밥이나 옥수수 가루죽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음식이란 먹고 서너 시간만 지나면 또 먹어야 합니다.

사람은 안 죽고 살려고 끼니마다 찾아 먹지만 먹다가 죽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6:27)고 말씀하셨습니다.

후일 이 말씀의 진리를 깨달은 사도 베드로는 믿음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떠나갈 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6:68).

4절에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내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했는데 발이 부르트지 않았다는 것은 사람이 먼 길을 빨리 걸으면 발바닥에 물집이 생겨 부르트지만 사십 년간 긴 세월을 매우 천천히 걷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 동안에 가나안 일곱 족속의 죄악이 관녕하여 하나님이 심판해도 후회가 없도록 시간을 끄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적당한 고난과 시련을 주신 목적은 5,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신 것을 마음에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징계는 형벌과 다릅니다.

형벌은 매 맞고 망하라고 내리는 것이지만 징계는 사랑하는 자식이 잘되라고 주시는 사랑의 채찍입니다.

12:56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깨달음이 있고, 마음의 그릇이 준비된 다음에야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고 은혜를 누리게 하시는 것입니다.

 

독일 철학자 Karl Jaspers는 고통을 최종적 포괄자를 위한 암호라고 말했는데 이 말의 뜻은 사람이 겪는 어려움은 최종적 포괄자인 하나님을 찾는 구실이 된다는 것입니다.

Paul Tillich는 사람이 겪는 모든 현상의 심연에는 하나님이 계신다고 말했습니다.

영국의 신학자 C. S. Lewis사람은 고통스런 일이 생기기 전에는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지 않는 습성이 있다. 그러므로 고통은 귀가 잘 안들리는 이에게 알아 듣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확성기이다라고 말했습니다.

119: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어떠한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이 삶의 기초가 되심을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삶의 기초가 되어 주신다는 약속의 말씀에 흔들림 없이 굳세게 섭니다.

주께로 받은 큰 복을 언제나 헤아리며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고 말씀했는데 어떤 신학자는 빌립보서를 하나님께 받은 은혜의 영수증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어느 대학생이 겨울 방학 때 집에 가서 아버지께 자동차 한 대를 사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아버지는 학교로 돌아가는 아들에게 새 가죽 성경 한 권을 주면서 빌 4:19을 읽어보라고 권했습니다. 아들은 섭섭히 여기고 학교 기숙사에 가서 성경을 책꽂이에 꽂아 두고는 읽지 않았을 뿐 아니라 하루는 아버지가 원망스럽다는 전화를 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아 그 성경구절을 읽어보았느냐 안 읽었거든 성경을 펴서 읽어보아라고 다시 권면했습니다.

아들이 성경을 펼쳐보니 말씀도 은혜로왔지만 그곳에 수표 한 장이 끼어 있었는데 사고 싶은 새 자동차를 사고도 남는 돈이었습니다.

 

둘째로, 인생의 나약함을 아시고 구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본문 34절을 보세요. 여호와여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알아주시며 인생이 무엇이관대 저를 생각하시나이까 사람은 헛것, 숨 쉬는 것 같고 그의 날은 지나가는 그림자 같으니이다고 했는데 하나님은 자기 백성인 인생의 나약함을 이해하시기 때문에 믿음을 가진 자를 구원해 주신다는 약속을 노래한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종교들은 수행을 하고, 고행을 하고, 적선을 하고, 공력을 쌓아서 하나님께로 나아가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기독교 복음은 아주 가깝고 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펴주시는 손길을 잡기만 하면 하나님이 친히 이끌어 올려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예수라는 옷을 입기만 하면 그 속에 아직 더러운 것이 있어도 덮어 주시고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십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찾아오시고 강한 손과 펴신 팔로 건져내어 구원해 주시는 이신득의, 이신득구 오직 믿어서 의롭게 되고, 오직 믿어서 구원받는 생명의 도입니다.

 

그래서 다윗 왕은 본문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의 손을 펴사 나를 큰 물과 이방인의 손에서 구하여 건지소서(7) 주는 왕들에게 구원을 베푸는 자시오 종 다윗을 그 해하는 칼에서 구하시는 자시니이다10)” 할렐루야!

 

우리나라의 형편은 언제나 어려웠습니다.

지금도 그 누가 나서도 쉽게 해결할 수 없는 한계 상황에 봉착해 있습니다.

북핵 문제, 부정부패 문제, 20조가 넘는 사교육비, 청소년 탈선, 30만이 넘는 외국인 노동자, 300만이 넘는 절대 빈곤층의 생계문제, 거짓과 궤계로 자국의 유익을 추구하는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우리나라가 우리가 가진 자원과 수단 방법과 정책을 가지고 잘 헤쳐나갈 수 있을까요?

한 마디로 힘듭니다. 쉽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의 사정을 깊이 이해하시고 이껴주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손을 펴사 건져주시는 길 밖에 소망이 없습니다.

어려울 때일수록 우리는 대한민국 백성이기 전에 여호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하나님의 친 백성임을 기억합시다.

자기 백성의 믿음을 보시고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온전한 감사와 기도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모셔드립시다.

우리나라에 모셔드리고, 우리 교회와 우리 가정에 모셔드립시다.

 

셋째로, 하나님이 우리가 꿈꾸는 복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1214절의 본문은 우리나라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선진국형 사회의 청사진을 보여줍니다. 우리 아들들은 어리다가 장성한 나무 같으며 우리 딸들은 궁전의 식양대로 아름답게 다듬은 모퉁이돌과 같으며”(12).

해산한다고 신고를 겪고, 유아세례를 받고,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학부형이 되었다고 기뻐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아들들은 장정이 되어 큰 나무를 대하는 느낌이고, 딸들은 어느새 자라서 모양을 내고 성숙한 숙녀가 되어 결혼한다고 청첩장을 돌리는 것을 보고 대견스러워 놀란다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곳간에는 백곡이 가득하며 우리의 양은 들에서 천천과 만만으로 번성하며”(13). 우리나라는 이제 부가가치가 높은 IT와 전자, 조선 등 공산품 생산국가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복을 이미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다.

본문의 천천만만의 양은 자동차나 선박이나 전자제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수소는 무겁게 실었으며 또 우리를 침로하는 일이나 우리가 나아가 막는 일이 없으며 우리 거리에는 슬피 부르짖음이 없을찐대라고 말씀했는데 하나님의 말씀은 모두 상징적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수소가 무겁게 실었다는 것은 산업이 발전함으로 물동량이 많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고속도로나 해안 부두가에 나가보세요.

짐들을 가득 실은 Container들이 줄을 이어 달리고, 산더미 같은 수출입 물품을 실은 배들이 항구에 정박해 있지 않습니까?

이런 현상들은 모두 국력을 상징합니다.

어려운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계속 성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이 나라를 침범하는 외세의 세력 때문에 막중한 군비를 안고 방어하는 일에 급급하는 전시 상태가 다시 오지 않을 것입니다.

거리에서는 못살겠다고 화염병을 던지고 쇠막대기를 휘두르며 아우성치고 울부짖는 데모대의 소리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런 날을 꿈꾸시고 인내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끊임없이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지나갑니다.

이 광야 같은 세상을 잠깐 지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영원히 아름다운 땅에서 사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인 소망이지만 또한 우리는 이 땅 위에 사는 인생인지라 송년주일에 올 한 해와 앞으로의 남은 삶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름다운 세상이 열리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아름답고 풍성한 세상이 멀지 않습니다.

이 고난의 세월을 믿음과 순종과 소망으로 극복하고 하나님과 이웃을 향한 순수한 사랑이 변치 않는다면 신 8:10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는 말씀대로 될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에는 분명한 세 가지 메시지가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고, 언약에 충실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자기 백성을 영육간에 구원하시는 이상적인 세계에서 살게 해 주신다는 약속이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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