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그 위대한 선물(합 1장13)
성경본문: 하박국 1:13
13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
복음전도는 성도의 제일 큰 의무요 신앙생활의 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라는 말씀은 우리 주님의 지상명령, 최고의 명령입니다. 신앙생활은 영적 전투인데 전쟁 때 아전사령관의 명령은 절대적입니다. 전진하라는데 후퇴하다가는 사살될 수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엄숙히 명령하십니다.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의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1-2).
월남전에서 소대장이 공격하라고 하면 소대원들은 공격하는 시늉만 하고, 이 기회만 모면하면 살아서 귀국한다고 몸을 조심합니다.
그러면 소대장이 뒤에서 총을 쏘는데 몸에는 안 쏘고 군화에다 쏩니다. 그러면 어떤 때는 발가락이 날아가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들도 그래요.
이 세상만 그럭저럭 지내면 천국 가는데 꼭 전도하고 살게 뭐있노? 그냥 지나가렵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총을 쏘십니다.
사랑하는 자식이기 때문에 죽이시지는 못하고 애물단지지요.
그러나 우리 몸과 삶 가운데 분명히 주님께서 쏘신 파편이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기쁨도 없고, 문제가 발생하고, 기도의 응답도 없습니다. 적막강산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복음전도 중심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기쁨을 주시고 문제도 해결되고 파편도 사라집니다.
산상보훈에서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말씀하셨지만 제일 중요한 결론이 무엇입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가장 원하시는 것, 예수님의 최고 위임명령을 순종하면서 구하면 이 모든 것, 먼저 파편과 저주가 제거되고 다음에 온갖 축복과 행복을 다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증거할 때는 “너희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안에 계신 성령께서 함께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를 넘겨 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그 때에 너희에게 할 말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이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19-20).
전도는 삼자회동입니다.
전도자와 전도대상자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가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 너무 부담을 느끼지 마십시오.
나 혼자 설득해야 한다고 너무 긴장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과 함께한다는 담담한 마음을 가지고 담대하면서도 온유하게 말하기 시작하십시오.
그리고 전도대상자의 침묵을 두려워 마십시오.
침묵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십시오.
하나님의 성령께서 그 전도의 내용과 형식 가운데 임재하셔서 분위기를 주장하시고 전도대상자의 마음을 여실 것입니다.
전도의 주체는 언제나 성령이시고 우리는 다만 겸손한 증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 전도사랑방은 전도방법 가운데 가장 쉽고 효과적인 방법 중에 하나입니다.
가정이란 비공식적인 분위기 속에서 친교하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복음을 제시합니다. 일 년에 봄과 가을 두 차례, 6주간씩 석 달을 모이면 제일 좋습니다.
삼하 6:11-12의 말씀은 우리 교회 전도사랑방의 대표 성구입니다.
“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하나님과 교회와 이웃 앞에서 “나는 복음을 증거하며 산다, 전도중심으로 산다”는 이 신앙양심의 선언이 우리로 하여금 당당하게 만들어 줍니다.
전도사랑방을 중심으로 열심히 전도합시다.
순장과 부순장은 환경을 정돈하고, 순원들은 초청된 낙심자 또는 VIP와 더불어 교제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줍시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는 일은 얼마나 귀합니까?
다시금 복음제시 요령으로 돌아갑시다.
☞복음제시의 제일 단계는 은혜입니다.
천국은 거져 주시는 선물입니다.
천국은 노력해서 얻을 수 있는 곳도, 공로를 세워 갈 수 있는 곳도 아닙니다.
이것은 인간에 관한 성경 말씀을 이해할 때 더 분명하여집니다.
☞복음제시의 제이 단계는 인간입니다.
인간은 죄인이며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심령은 여기서 깨어집니다. 그래도 스스로 부요하고 잘났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말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성경말씀을 이해할 때 더 분명해집니다.
이렇게 연결하여 하나님께 대한 성경의 진리를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첫째,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벌하시는 것을 원치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서 가장 놀랍고 이해하기 어려운 면의 하나는 우리가 이처럼 죄악된 상태에 처하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가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은 우리 자신 때문이 아니라 그의 본성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은 사랑이라”(요1서 4:8)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이 사랑은 더욱더 이해하기가 어려워집니다.
찬 143장 “웬 말인가 날 위하여”를 다 같이 불러봅시다.
여기에 쓰인 가사를 명상해 보세요.
이 얼마나 엄청난 사랑입니까?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이 사랑은 얼마나 무한한 사랑입니까?
둘째, 그러나 성경은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신 이 하나님이 또한 공평하시고 의로우시므로 우리 죄를 벌하셔야만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겔 18:4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모든 영혼이 다 내게 속한지라. 아버지의 영혼이 내게 속함 같이 그의 아들의 영혼도 내게 속하였나니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지금 하나님의 확대경을 통하여 인간의 문제들을 살펴보십시오.
절대적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이시므로 인간의 문제를 샅샅이 살피시고 매우 분노하고 계십니다.
시 7:11에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고 했고, 오늘 본문에는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로우신 심판자이시기 때문에 우리의 죄를 심판해야만 합니다.
그의 율법은 우리가 우리의 죄에 대하여 심판을 받아야만 한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출 34:7의 말씀입니다.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불의에 대하여 막대기와 채찍으로 다스리겠다고 엄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반드시 벌하시리라는 데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을 수 없습니다.
만일 어떤 재판관이 흉악한 범죄 사실이 있는 친구를 법에 따라 엄벌하는 대신에 가벼운 훈계만으로 풀어주었다고 합시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일어나 지나친 관용을 베푸는 재판관에 대해서 항의할 것입니다.
“그를 법대로 처벌하시오. 공평하게 재판하시오”
하나님께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 하나님께 아룁니다.
“주께서 이같이 하사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이심은 부당하오며 의인과 악인을 같이 하심도 부당하니이다 세상을 삼판하시는 이가 정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
하나님의 형상된 인간의 마음에도 의로운 법정이 있는데 하물며 하나님이시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해서 크게 오해하고 있습니다.
불신자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하나님은 단순한 힘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니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신자도 하나님의 본성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Christian Science>라는 이단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신데 인간이 죄인이면 어떻단 말인가? 하나님이 그 아들을 죽일 수 있는가? 하나님은 사랑이신 만큼 어쨌든 모든 인간이 다 구원을 받을 터인데 누가 그리스도를 믿든지, 말든지 염려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결국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은 시간문제이지 결국에는 만민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폅니다.
한 번은 케네디 목사님이 어떤 부인에게 하나님께서 죄인을 심판하실 일에 대해서 말씀하신 내용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 부인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니, 나의 하나님이 그리하실 리 없어요. 설마 나의 하나님이 그러시라고요”
케네디 목사님이 그 부인을 설득하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다한 마음에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말이 옳아요. 아주머니의 하나님은 결코 그러실 리가 없어요. 그런데 문제는 아주머니의 하나님은 아주머니의 마음 속에만 계신다는 데 있습니다. 아주머니는 아주머니 자신의 형상대로 하나님을 만들어 놓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있어요.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라”
이것이 우리 시대의 가장 흔한 죄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그러실 리 없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오 좋은 하나님이신데”
그러나 묻고 싶은 질문은 “그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시냐?”는 것입니다.
“어떤 하나님이 그러실 리가 없단 말입니까? 당신의 하나님이십니까? 아브라함과 이스라엘과 야곱과 바울의 하나님이십니까?”
사람들은 그저 새긴 우상을 만들어 절하지 않으면 우상숭배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만든, 자기가 좋아하는 자기 기호에 맞는 하나님을 자기가 만들어 숭배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분명히 어떤 분이십니까?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신 동시에 거룩하셔서 죄를 조금도 용납하실 수 없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동시에 사랑이 많으십니다.
시 97:2에 “구름과 흑암이 그를 둘렀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의의 보좌입니다.
의가 없으면 하나님의 보좌가 무너집니다.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시라면 그 하나님은 의의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강 선생, 당신과 나를 만드신 하나님은 맹목적인 세력이 아닙니다. 사랑만 많으신 인자하신 할아버지가 아니십니다. 당신과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절대적으로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단지 의롭기만한 분이시라면 우리는 다 정죄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죄를 반드시 벌하셔야 하지만 우리를 사랑하는 관계로 우리를 벌하시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만일 하나님이 단지 자비롭기만 하시고 인자하신 할아버지 같은 분이시라면 우리 모두 천국에 들어갈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셔야 할 것입니다.
“누구든지 오너라. 내가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고 말한 것은 본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느니라”(렘 31:30)
하나님은 결코 그러실 수가 없습니다.
무릇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는 반드시 그분의 공의와도 일치되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에 대한 전체 개념에 의미를 부여해 주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본성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본성을 거스릴 수 없습니다.
성경에 하나님이 자기 자신에 대해서 강조하고 계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그가 거룩하시고 의로우시므로 반드시 우리 죄를 벌하셔야 하지만 그는 또한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로우시므로 우리를 벌하시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이 진리는 해결하지 않으면 안될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딜레마, 곤경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결하셨습니다.
죄에 대한 모든 진노를 예수 그리스도 위에 폭발시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강 선생,
우리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실 뿐 아니라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이신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렇지 않다면 기독교는 상대주의에 빠지고 말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본성이 기독교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을 좋은 하나님으로만 만들지 마세요. 우리가 하나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만드셨고, 그가 또한 당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과 천국을 만드신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복음, 그 위대한 선물 - 하나님에 대한 메시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