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는 부요하시도다(롬10장 9-12)
성경본문: 로마서10: 9-12
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10-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11-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12-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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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인간의 삶이 천차만별의 삶입니다. 사람이 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다르게 살아가는 지 모릅니다. 어떤 사람은 옷이 너무 많아서 어느 옷을 입어야 될지 모를 정도로 옷을 골라서 입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평생동안 옷도 한 벌 변변한 걸 못 입고 사는 그런 사람들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영양이 너무 많아서 병이 드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영양이 너무 없어서 병이 드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음식을 골라 먹고 남는 건 다 버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 하면 지금 북한 땅에서는 밥풀 하나 땅에 떨어진, 길거리에 떨어진 것까지 주워 먹는 그런 사람들을 또 보게 됩니다.
북한에 있는 많은 여성들은 남편이 있고 자식이 있는데도 자식을 하나라도 살리려고 어머니가 대신 팔려갑니다. 중년 여성, 건강하고 인물이 예쁜 여성은 50만원에 중국에 있는 사람들 둘째, 셋째, 넷째 부인으로 팔려 가는 겁니다. 그래서 50만원 가지고 어떻게 해서라도 생명을 살려보려고 하는 이런 사람의 삶은 정말 너무 너무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쩌면 이렇게 차이가 많습니까?
저는 저에게 기도하러 오는 분 가운데도 우리 나라 최고의 대학에 다니면서 공부하다가 정신이 돌아 가지고 온 사람을 여러 번 만나서 기도해 드린 일이 있습니다. 같은 서울대학에 다니는데 어떤 사람은 머리가 도는 거예요. 평생을 불행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미국의 농구 황제 '조던'이라는 분이 지난주에 은퇴를 발표하면서 전 세계가 이 사람의 은퇴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분은 얼마나 농구를 잘하는지요. 이 사람의 몸값이 하루에 1억 3천 만원이에요. 뛰는 날이나 안 뛰는 날이나 일년내내 놀든지 뛰든지 무엇을 하든지 매일 평균 1억 3천 만원씩 버는 거예요. 이 사람은 자기만 잘되는 게 아니예요. 이 사람이 광고를 내 주면 그 회사가 살아요. 이 사람이 TV에 나가면 그 채널로 사람이 다 몰리는 거예요. 다른 데서는 안되는 거예요.
이 사람이 어디로 움직이느냐에 따라서 도시가 달라지고 회사가 달라집니다.
그래서 NBA라고 하는 미국의 프로 농구를 전 세계 많은 스포츠 분야에서 제일 인기 있는 분야로 만들어 놓은 사람이 이 조던이라고 하는 한 사람이 만든 거예요. 이 사람은 자기 몸값만 오른 게 아니예요. 미국에 농구하는 다른 사람들도 조던 덕을 봐서 전부 다 몸값이 올라가는 거예요.
운동을 해도 어떤 사람은 밥도 못 먹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간이 다같이 잘 되기를 원하시고 풍성하고, 형통하고,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분이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어요. 이 말은,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다'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이다' 라는 말이예요. 자식이 잘되고 걱정 없고 건강하고 자식만은 부족함이 없이 살기를 원하는 마음이 모든 부모에게 있는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예요. 또 우리 육적인 부모는 한계가 있으므로 자식이 원해도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능력이있는 부모예요.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다 하나님의 품안에서 잘되고 형통하게 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부요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부요하심에 눈을 떠야되고 부요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우리 마을이 워낙 깊은 산골이어서 늘 물고기를 잡으러 가보면 고기가 작고 큰고기가 없어요. 우리 마을에는 커야 손가락 정도, 그저 작은 것은 손가락 3분의 일 정도 되는데 그저 그것도 종일 잡아도 얼마 못 잡아요. 그러나 우리 마을에서 냇가를 따라 주욱 내려가면 갈수록 고기가 커요. 또 그 아래 강으로 내려오면 고기가 얼마나 큰 지 강물만큼 고기가 커지고 물이 많은 것만큼 물고기가 큰 거예요.
오늘 하나님에 대해서도 그래요. 내가 여기만 제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의 세계가, 하나님의 나라가 큰 것을,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가 봐야해요.
하나님의 세계를 경험해야해요. 그래야 고기 잡으러 강으로 가는 거예요.
지난 주에는 어떤 다른 교회 장로님 부자 분이 저에게 고기를 한 마리 잡아왔어요. '메기'라고 하는 고기인데 나는 전 세계에 다니면서 보아도, 어느 수족관에 가봐도 이런 메기를 본 일이없어요. 메기가 사람 만해요. 겁이 나더라고요. 한 4-5Kg 정도 되는 고기인데요.
세상에 어느 강에 이런 메기가 살 수 있었나 할 정도로, 무서울 정도로 메기가 큰거예요. 이 장로님은 학교 교장선생님으로 계시던 분이신 데 두 부자가 저에게 큰 메기를 한번 잡아 주려고 아들이 이걸 잡으려고 일년을 연구했대요.
이걸 좀처럼 못 잡는데요. 낚시가 이기지를 못해서 다 부러지므로 잡아낼 수가 없대요.
여기에 큰 고기가 강에 있는 것을 알고 이 아들이 연구를 했대요. 그래서 낚싯대를 몇 번 잃어버리고 하면서 따로 연구를 해 가지고, 여기에는 1미터20센티나 되는 큰 고기도 있다는데 그것은 못 잡고 메기를 잡아서 내게로 가져왔어요.
거기는 강이 깊어 수십 미터나 되니까 이런 큰 고기가 있는 거예요.
오늘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세계, 하나님의 나라는 큰 세계가 있는 것을 알아야해요. 그래서 옛날에도 "사람이 크면 한양으로 보내고 말은 제주도로 보낸다"는 말이 있어요. 우리 마을에서 크면 그 마을 사람 밖에 안되는 거예요. 큰 도시를 경험하고 큰 세계를 보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아 이런 세계가 있구나' '기차도 다니고 비행기도 다니고 미국 같은 이런 큰 세계가 있구나' 경험할 필요가 있어요.
오늘 신앙에도 하나님이 계심을,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이 있는 것에 눈을 뜨는 것,이것이 중요해요. 교회가 큰 교회냐, 작은 교회냐, 이것이 중요한 게 아니예요. 교회 큰 것은 의미가 없어요.
이 교회가 하나님의 큰 것을 가르쳐 주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경험하게 해 주는 교회가 큰 교회예요.
어떤 부모님이 훌륭한 부모님이냐 하면 나를 낳은 내 부모보다도 위대한 하늘 부모를 알려주는 그 부모가 훌륭한 분 이예요.
어떤 예술이 훌륭한 예술입니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알려주는 예술이 가장 위대한 예술 이예요. 세계적인 문학가나 음악가나 영화 가운데도 <벤허>나 <십계>,이런 영화를 보면 하나님의 위대하심으로 그 영화는 안내해주는 것이지요. 하나님이 위대하시다라는 거예요.
국가가 하나님의 위대함을 알려주기도 하고 어떤 지식이나 어떤 친구를 통해서도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우리에게 경험할 수 있도록 알려주는 일이 개인적으로는 놀라운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어떤 것을 가져도 인간은 인간인 것입니다. 아무리 많이 배워도 인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에 대해 눈을 뜨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자요, 하나님이 함께 하는 자로 위대한 큰 일을 할 수 있는 놀라운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인간 위에 온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역사 하시고, 섭리하시고,능치 못하심이 없는 창조자, 전능하신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믿습니다.
1969년 7월 16일 '아폴로 11호' 가 '닐 암스트롱'과 '올드윈 콜린즈'를 태우고 달나라로 갔습니다. 바로 며칠 지나서 7월 21일 오전 11시 56분 20초에 드디어 달나라에 사람이 첫발을 내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 가장 감격적인 놀라운 사건입니다.
땅위를 밟던 우리 인간이 달나라에 발을 올려놓는 거예요. 그 해 '아폴로 12호'가 다시 발사되고 그 다음 해 1970년 4월 11일부터 17일까지 '아폴로 13호'가 다시 발사되었습니다. 그 때에 그 아폴로에 올라탄 분은 '로벨' 2세,'헤이즈' 2세, 그리고 '수어거트' 2세 이 세 분이 '아폴로 13호'에 올라탔습니다. 그러나 이 '아폴로 13호'는 가다가 달나라에 내리지 못하고 연료 탱크 산소 탱크에 고장이 나서 다시 귀환하는데 궤도를 벗어나게 되었습니다.
나사(NASA)국에서 조정해도 안되고 그 안에서 조정해도 안되고 고장이 나서 궤도를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점점 벗어나서 얼마 있지 아니하면 우주의 미아로 영원히 다른 세계로 떨어지는 이 위기에 와 있었습니다. 그때는 미국과 소련이 우주의 경쟁으로 양 나라가 여기에 엄청난 돈을 투자해서 국가의 명예와, 권위와, 권력을 거기에다 다 집중시켜서 개발하던 때였습니다. 만약에 잃어버린다면 미국의 권위와 신용이 말이 아닙니다.
그때에 미국 대통령은 온 나라에 하나님 앞에 기도할 것을 선포했습니다. 대통령이 반기를 꽂고 백악관이 모두 기도를 하고 국회 상하의원이 반기를 꽂고 기도하고 모든 공무원과 중·고등학교 대학교가 다 반기를 꽂고 기도하고 미국 육, 해, 공군, 온 세계에 있는 군인들이 반기를 꽂고 기도했습니다. 온 세계에 선포했습니다.
우리 나라 방송 신문에도 대서특필했습니다. 내용은 그렇습니다.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할 수 있다" 는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샤머니즘이고 정신 나간 이야기고 기계를 무슨 하나님이 고치냐, 달나라에 가 있는 아폴로를 하나님은 그런 것을 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 이해를 안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빌 때 그저 자식이나 주시는 하나님으로, 남편이나 건강하게 하고 애들이나 대학에 들어가게 하는 이런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하나님이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으로 이해하지를 못합니다.
저와 같이 우리 마을에서 고기 잡는 그 경험만 갖고 있지 하나님의 세계에 대한 경험을 하지 못한 민족입니다.
그러나 미국이나 유럽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믿어온 그 하나님, 언제나 함께 하신 하나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는 전능하신 하나님이기 때문에 사람이든,기계든, 나라든 인간에 관한 우주에 관한 모든 문제는 하나님이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비도 오게 할 수 있고 안 오게 할 수도 있고 풍년을 줄 수도 있고 흉년을 줄 수도 있고 대통령을 만들 수도 있고 거지를 만들 수도 있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역대상 29장에 있는 대로 사람을 높이기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시고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고 있게도 하시고 없게도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 부요하신 하나님 권능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온 나라가 또 그렇게 하기도 어렵잖아요. 대통령이야 그럴 수 있다 할지라도 학교도 공부 안하고 국회도 다 그렇게 하는 나라, 미국의 대통령과 온 국민들은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의지하였습니다. 이것은 옛날이나 오늘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올 때 홍해도 건너게 하시는 하나님, 광야에서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고 반석에서도 샘을 주시는 우리 하나님, 하나님이 못하실 일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인간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인간의 지식과 인간의 힘과 능력은 한계가 있습니다. 많이 배우면 많이 아는 것입니까? 많이 배워도 인간은 역시 무지한 것입니다. 백년을 배워도, 오 천년을 배워도 이 우주에 대해서 1억 분의 일도 우리가 모르는 것입니다. 그처럼 무지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면 얼마나 가질 수 있고 우리가 알면 얼마나 많이 알 수 있습니까?
우리는 부요 하신 하나님, 지혜에 부요 하신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에게로 나아가는 것이 귀한 것입니다.
'아폴로 13호'가 대서양 바다에 내려왔을 때에 먼저 목사님이 들어가서 그 세 사람과 같이 기도하고 나왔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하나님과 연결을 시킬 때 힘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계에다 발전소에서 보내는 전력을 연결을 시키면 어마어마한 힘을 내듯이 내 의지와 내 양심과 내 지성과 내 인격, 내 자유에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연결지을 때에 내 건강도 귀하고 내 삶도 귀하게 됩니다. 내 사업도 내 행복도 내 모든 생활도 가정도 하나님과 연결 될 때만이 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뚝 떨어져 있는, 하나님이 없는 지식은 아무 힘이 없는 것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나이아가라' 폭포가 있는 '버팔로'에 집회를 갔는데 마침 거기는 미국의 유명한 의과대학이 있었고 거기에는 우리 한국에서 가신 의대 교수가 많더라고요. 교인이 수 백 명이 되는데 의사가 반이 넘어요. 난 또 그런 교회는 처음 봤어요. 전부가 의사들이고 교수들이에요. 또 그 지역이 전부 대학촌이니까요. 그래서 집회를 하는데 나는 또 그런 분들이 설교를 잘 안 들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했는데 어떻게 은혜를 받는지요. 말씀을 그렇게 잘 들을 수가 없어요. 어느 장로님이 식사대접을 해서 따라 갔는데 아주 잘 사는 장로님이었어요. 이 장로님은 전세계에 유방암 전문가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훌륭한 분이었어요. 그 장로님이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셔요. 온 인류가 몇 년동안 힘을 모아서 새로운 것 하나를 발견하면 사람은 감탄해 하고 세계의 뉴스가 그걸 확대해서 어마어마한 것으로 발표를 하지만 본인이 어떤 세계를 들어 가 보면 그렇대요.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보면 우주에 넘치는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을 알게 되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요 하심 앞에, 하나님의 지혜 앞에, 하나님의 능력 앞에 살아갈 때에 사람답게 살 수 있습니다. 인간의 권위와 능력과 힘을 하나님 앞에서 회복해야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고 모든 만물을 다스리고 점령하고 관리하고 책임지고 통치하도록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였지만 인간이 하나님을 떠나고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을 배반하므로 말미암아 지혜도 떠나가고 눈은 흐리게 되고 힘은 없게 되고 연약하게 되어서 앞만 바라보고 땅만 바라보고 자기만 의지하고 인간만 의지하는 연약한 인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내 모든염려 주께 맡겨라♪
교회는 왜 나오는 것입니까? 주님 보려고 나오는 거예요.
소련의 유명한 문학가 가운데 '알렉산더 솔제니친'이라고 하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은 반체제 운동을 하다가 강제 노동 소에 붙들려 들어가서 춥고 배고프고 떨면서 강제 노동을 하고 많은 매를 맞고 시달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가족들은 산산조각 흩어져 버리고 자기는 몇 년 지나서 암에 걸려서 시한부 인생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연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소련이라고 하는 이 어마어마한 체제를 자기 힘으로는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연약한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제는 병이 들었습니다. 더 이상 소망이 없습니다.
하루는 뒤에서 감독이 일을 시키는데도 너무 낙심이 되어 몸은 약해지고 견딜 수 없어서 그냥 그대로 주저앉아 흐느끼면서 머리를 감싸안고 주저앉아 있었습니다.
가만히 있는 어느 순간에 몸에 어떤 부딪힘이 왔습니다. 누군가 느낌이 왔어요. 누군가 옆에 있다는 걸 느꼈어요. "이상하다" 그래서 손을 잡고 옆을 보니까 흰 옷 입은 어떤 노인이 서 있었어요. 그 노인은 솔제니친을 보더니 평화로운 웃음을 띠면서 앞에 십자가의 금을 그었습니다. 모래 위에다 십자가를 그었어요. 솔제니친은 그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힘을 얻었어요.
너무 놀라운 힘이 그 십자가에서 자기에게 주어진 거예요.
십자가는 그에게 새 힘을 주었습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극복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일어설 수 있는 새 힘이 십자가로 말미암아 주어지게 된 거예요. 그 이후로 일 년만에 솔제니친은 미국으로 망명하게 되어서 신앙인이 되어서 좋은 믿음의 길들을 내고 소련을 무너뜨리는데 가장 큰 공로를 하는 분이 솔제니친이 되지 않습니까.
그렇습니다. 나만 바라보면 힘이 없고 인간은 한계가 있습니다.
몸이 아프고 가족이 이렇게 되면 더 이상 소망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절망 중에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주님만 바라보면, 주님만 의지하면 일어날 수 있고 살아날 수 있고 감당할 수 있고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에게는 실패가 없습니다. 주님에게는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그에게는 낭패와 멸망이 없습니다.
어느 것은 하고 어느 것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주 앞에 나아가면, 주님을 바라보면 우리 인간의 모든 장애물은 넘어설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연약함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다원주의가 아닙니다. 이원론도 물론 아닙니다. 이것도 있고 저것도 있고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여기도 길이 있고 저기도 길이 있는 것이 아니예요.
기독교는 한 분이 우리를 도우시면, 한 분만 믿으면 저로 말미암아 다 부족해도 다 없어도 우리 주님만 믿으면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부요 함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은혜의 바다에, 큰 은혜의 바다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내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저 큰 바다 보다 깊다♪
우리가 바다로 가지 못하는 것은 옛사람의 언덕에 매여 있기 때문입니다.
죄악의 언덕에 매여 있고, 자아의 교만한 언덕에 매여 있고, 고집에 매여 있고 옛습관에 매여 있고 여러 가지 인간적인 이런 생각에 매여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은혜를 못 받는 것입니다.
이 언덕을 떠나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보겠습니다. 로마서 10장 9절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예, 뭐라고 그랬어요? 입으로 시인하래요.
여러분, 입으로 늘 할 일이 있습니다. 주는 높으십니다. 주는 나와 함께 하십니다. 주는 넉넉히 하십니다. 나는 부족하지만 주님은 나를 사랑하심을 믿습니다.
입으로 할 일이 뭡니까? 늘 시인하는 일입니다.
입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입으로 여러분을 하나님이 사랑하심을 시인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십니다. 나와 함께 하십니다. 나를 도와주십니다. 나는 승리할 것입니다. 나는 분명히 잘 될 것입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심으로 나는 분명히 일어설 줄로 믿는다고 입으로 늘 시인하기를 바랍니다.
저는 찬양을 들을 때에 입으로 늘 시인합니다.
성가대에 내가 올라가지는 못해도 내가 여기서 "하나님 맞아요. 저 찬양이 참으로 맞아요. 하나님 아버지 저는 저렇게 되리라고 믿어요"
저는 찬양을 들으면서 늘 혼자 중얼거립니다. 입으로 시인합니다. 길을 걸어갈 때에도 시인합니다. 차안에서도 시인합니다. 내 모든 환경을 바꾸는 길이 입으로 시인하는 길이에요. 하나님을 시인하십시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땅의 것을 시인하지만 땅의 것은 믿을 것이 없습니다.
두 번째는 11절,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는다" 그랬어요.
우리가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우리는 언제나 미래에 대한 준비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부끄러움이 옵니다.
자녀로 인한 부끄러움, 물질로 인한 부끄러움, 가정 때문에 오는 부끄러움 우리는 명예에 치명타를 입고 우리의 삶에 부끄러움을 맞이할 때가 많습니다.
나이가 많아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시인하면 내 머리가 백수가 될 때에라도, 아무에게라도 멸시천대 받지 않도록 하나님이 끝까지 명예를 주시고 존귀함을 주시고 건강을 주시고 영광을 주시고 복됨을 주셔서 부족함이 없게 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 잘 믿는 길이 가장 좋은 노후를 대비하는 길이요.
가장 좋은 생명보험은 하나님을 잘 믿는 길입니다.
입으로 저를 시인하고 저를 믿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습니다.
그 다음 세 번째는 12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하나님은 부요 하십니다. 하나님의 부요하심은 땅에 있는 것으로 말하면 바다와 같습니다. 그래서 찬송가에도 그런 찬송가가 많고요. 또 성경에도 많습니다.
주님은 "목마른 자들아 내게로 오라" 샘으로 말씀하고 “물가로 오라, 물로오라” 이런 말씀이 많습니다.
주님이 없는 삶은 목마른 삶이니까요.
또 모든 부요함이 주님에게 있으니까요.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는 무한합니다. 은혜를 못 받는 것은 내가 주님에게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 이예요.
나아가는 것은 믿음으로 나아가야 돼요.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가도 우리가 은혜를 많이 못 받는 것은 바닷물은 너무너무 많은데 내 그릇이 작아서 그래요. 그래서 물가에 가서 물을 길어 오는 것은 자기 그릇만큼 가져오는 거예요. 여러분의 마음그릇이 크고 여러분의 소망의 그릇이 크고 여러분의 비전이 크고 여러분이 인류를 향하여 세계를 향하여 큰 꿈을 가지면 가질수록 하나님은 그만큼 채워주실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은 축나지 않아요. 나는 우리 교인 가운데도 세계를 향하여 큰 일 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하십니다. 여러분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하나님이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마을에 부모가 한 분이 열 두 남매를 낳은 분이 있었습니다. 열 두 자녀가 다 살아 있어요. 가난하니까 공부하기는 어려웠어요. 그리고 그 어른은 일찍이 돌아가셨어요. 그 자식들이 하나님 앞으로 나왔어요. 그 가난한 자식들이 다 모두 부요하신 하나님 품안으로 나온 거예요.
사람 편에서 보면 길이 없어요. 소망이 없어요. 누가 도와줄 이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고 깊은 산골이고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가 있는 거예요.
우리 군에서 제일 축복 받은 분은 그 12남매예요. 다 복 받은 거예요. 다 부요함을 얻었어요. 누구로 말미암아? 부요 하신 하나님을 찾으므로, 우리 마을에 부자였던 분들은 지금 가난해요.
왜? 저 부요한 분을 안 찾았기 때문에, 땅의 부요함은 오래 갈 수도 없고 인간의 부요함은 잠깐 이예요.
그러나 이12남매는 다 부요한 자가 되었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저같이 가난하고 저같이 불쌍한 사람이 없었지만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의지하고, 입으로 주님을 시인하고, 주님께 많이 기도하고, 주님을 향하여 끝없는 소원을 가지므로 주님은 저에게 부요 함을 주셨습니다. 모든 일에 부요함을 주셨어요.
저를 오라고 하는 곳도 많고요. 만나자고 하는 사람도 많아요.
하나님이 저를 부요하게 하셨어요. 모든 일에 부요하게 하셨어요.
그래요. 부요하신 분은 우리 하나님이예요.
인간으로 태어나서 인간답게 살지 못하는 비참한 삶이 얼마나 많습니까?
요한복음 8장 12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내 안에 있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다고 말씀했습니다. 주님은 포도나무라고 말씀했습니다. 누구든지 내게 붙어있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레미야 17장 11절에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필경은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주님을 떠난 축복은 축복이 아니예요. 불의예요. 불의.
주님을 떠난 성공은 불의의 성공, 불의의 행복은 자고새가 낳지 않은 알을 품음 같아서 중년에 떠나가요. 잠깐 지나고 떠나가는 거예요.
여러분 혹시 닭을 길러보신 분들은 닭이 알을 안 낳아도, 알이 없어도 품을 때가 있어요. 알이 없는 것도 모르고 그냥 품는 거예요. 멍청하게 20여일 동안, 그래서 털이 바짝 마르고 불쌍할 정도로 고생을 하는 거예요.
성경은 하나님이 없는 인간을 그렇게 보는 거예요.
하나님이 없는 성공은 헛된 것을 낳는 거예요. 날아가는 거예요. \불의는 오래 못 갑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은 어떤 것이든지 성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줄리어스 시저'가 숙적인 '폼페이'의 군대를 격파하고 '로마'로 개선할 때에 그를 시기한 '케시어스'라고 하는 사람이 동지를 규합해서 시저를 살해하려고 모의를 하게 됩니다.
그때에 누구를 포섭하느냐하면 시저의 친구고 둘도 없는 충신이었던 '부르터즈'라고 하는 사람을 포섭하게 됩니다. 그 다음날 시의회 앞에서 여러 사람과 둘러서서 시저가 들어올 때 전부 칼을 가지고 찔러서 시저를 죽일 때, 마지막에 이 부르터즈 라고 하는 신하가 칼을 가지고 자기를 가장 믿는 이 시저를 향하여 칼을 찌릅니다. 그때까지도 살아 있던 시저가 부르터즈를 보고 "부르터즈야 너 까지도 그러느냐?" 마지막 그 말을 하고 시저가 죽습니다. 부르터즈는 시저시저를 죽인 다음에 온 로마 사람들에게 영웅이 됩니다.
"나는 시저가 미워서 죽인 것이 아니라 로마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랬다"해서 온 로마 사람들에게 열광적인 시저 같은 사랑을 받습니다.
그러나 부르터즈의 영광도 잠깐인 것입니다. 자기도 얼마 있지 않아서 또 그렇게 죽고야 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누구를 해치고 올라서고 하는 생존경쟁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생존경쟁이 아닙니다. 누구하고 싸워 이겨서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잘 믿어 내가 사는 것이고 누구를 누르고 내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올라가고, 하나님의 은혜로 성공하는 것이 기독교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워할 사람이 아무도 없고 경쟁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너도 부요 하신 하나님으로 잘 될 수 있고 나도 부요 하신 하나님으로 잘 될 수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부요 하십니다. 만명이 바다 속에 들어가도 바닷물이 모자라지 않습니다. 온 인류가 바다 속으로 다 들어간다 할지라도 바닷물이 영향을 받지 않습니다.
온 인류를 먹이고도, 온 인류를 행복하게도, 온 인류를 구원하고도 남음이 있는 주님에게 우리는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가고 그 한 분으로 말미암아 승리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사람이 계속하여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나는 은혜를 하나님 앞에 받아들이지 않는 것입니다. 소나기같은 하나님 은혜를 내려 주시는데 소나기를 받을 생각을 안하고 하나님 앞에 그릇을 엎어놓는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 앞에 은혜를 받을 수 없어요.
또 조금 받은 다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한국 사람은 받는 것도 빨리, 급하게 받고 쏟는 것도 빨리 쏟고, 그래서 이런 신앙을 냄비 신앙이라고 그래요.
냄비는 불 위에 올려놓으면 끓을 때도 뽀르륵 끓고 줄어들 때도 금방 폭 식어집니다.
몇 천년 믿어도 변함이 없는 믿음으로 영원히 부요한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