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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별 설교

[김삼환목사]신앙 생활의 기본(눅 5:12-17)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4.04.10|조회수301 목록 댓글 0

신앙 생활의 기본(512-17)

성경본문: 누가복음 5:12-17

12-예수께서 한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나병 들린 사람이 있어 예수를 보고 엎드려 구하여 이르되 주여 원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 하니

13-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이르시되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하신대 나병이 곧 떠나니라

14-예수께서 그를 경고하시되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가 깨끗하게 됨으로 인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셨더니

15-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16-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17-하루는 가르치실 때에 갈릴리의 각 마을과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이 앉았는데 병을 고치는 주의 능력이 예수와 함께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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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는 여러분들과 함께 제 이야기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으로 결론내리기를 원합니다.

이야기는 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예요. 제가 5.16혁명을 당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5.16혁명을 제가 당했어요. 그러면 여러분이 생각하기를 아하, 장면 정권 밑에서 무슨 한 자리 했는가보다 할거예요. 제 생애 큰 획을 그었어요.

제가 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혁명을 당했어요. 자세히 들으셔야 합니다. 이거 상당히 중요한 이야기예요.

임택권 목사 개인만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에... 미국 갈 시에는 임택근 아나운서 때문에 제가 덕을 많이 봤고요. 언젠가 뉴욕서 설교를 했더니만 만나 가지고 인사하면서 임택권입니다. 그랬더니 '아 방송에서 늘 들었는데 여기서 만나니 반갑습니다'. 그러고요 요사이는 또 임권택감독 때문에 우리 학생들도 기도할 때 보면 '우리 총장님 임권택총장님' 합니다.

5.16혁명 당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본문을 보십시다. 누가복음 512절 예수님께서 문둥병 환자를 치료해 주셨습니다. 그랬더니 515절 예수님의 소문이 퍼졌어요. 많은 사람이 모였습니다. 모인 이유가 두 가지입니다.

515, 첫째는 뭐예요?

말씀 듣겠다, '설교 좀 더 해 주시오'. 그래서 사람들이 모였어요. 우리 세상 적으로 이야기하면 예수님의 생애에 아주 인기 절정에 도달했어요.

저는 목사가 되고 난 후에 목사가 제일 우선적으로 해야 될 일이 설교인 줄 알았어요.

저는 믿는 가정에 태어나서 형식상으로는 교회밖에 나가 본 일이 없습니다마는 그러나 20대 초는 한창막 철학 한다 그러면서 하나님 안 계시다고 전제하고 살아보려고도 했지만 결국은 믿는 사람이 안 믿는 것이 안 믿는 사람이 믿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걸 저는 체험을 했는데 그런데 제가 목사가 되고 난 후에 설교가 목사한테는 제일 첫 번째로구나 그래서 뭐 눈에는 뭐 만 보인다고 가는 곳마다 설교 자료를 찾는 거예요.

그리고 죄송한 이야기지만 제 솔직한 고백인데 다른 목사님들의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저는 그랬어요. 얼마나 제가 참 부족한 사람인지, 다른 목사님들 설교를 들을 때 그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서 은혜를 받으려는 것보다는 어떻게 하면 저 목사님의 설교를 내 것처럼 살짝 이용해서 내 것처럼 써먹을까 그것이 제 관심사였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좋은 예화가 하나 생겨요. 신문에서 보던지 뭐 예화가 생기면 예화는 원래 설교를 할때 설교 내용을 자세히 설명하기 위해서 보충으로 쓰는 것인데 저는 어떻게 한 일이 있는가 하면 그 예화를 써먹기 위해서 예화에 맞는 성경 본문을 이곳 저곳을 찾았으니 이거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에요.

저는 그랬어요. 목사가 되고 난 후에. 저는 그랬어요. 그래서 이 설교가 우선 순위인 줄 알았어요.

그 다음에 보십시다

15, 많은 사람들이 주님 앞에 찾아 나왔는데 첫째로는 말씀도 듣고 두 번째로는 자기 '병 좀 고쳐주시오' '내 소원 좀 이루어 주시오' 그것 때문에 나왔어요.

저는 목회자로서 두 번째 할 일은 심방 하는 일, 남도와 주는 일 사역하는 게 제일 중요한 줄 알았어요. 그래서 제가 시카고에서도 꽤 오래 목회를 했는데 그 때 어느 해에는 일년에 한 5만 마일을 뛰었어요 자동차. 5만 마일이면 여기 8만 킬로 되나요? 일년에 그렇게 뛰었어요. 소 갈데 에 말 갈데 에, 아마 제 생애에 그렇게 열심히 최선을 다 해서 심방하고 교인들 돌본다 그러고 주님을 사랑한다 그러면서 목회를 열심히 한 적은 없을 겁니다.

그런데 16절 보십시다. 사람들이 말씀 듣고 싶어서 찾아 나오고 병 고쳐달라고 찾아 나왔습니다. 우리 성경에는 "모여 오되" 하고 문장이 계속되지만 원래는 "자기 병도 낮고자 하여 모여 왔다" 하고 끝나야 됩니다.

"그러나" 하고 여기 16절 첫 마디가 "그러나" 주님은 어떻게 하셨어요? 주님이 설교 하셨어요? 아니오. 병 고쳐 주셨어요? 아니오. "그러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저는 시카고에서 설교가 목사에게 제일 중요한 일인 줄 알았어요.

그리고 남 돌보는 일, 사역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애를 썼어요. 그러나 어쩐지 마음 한 구석에는 허공을 치는 것 같아요. 그러던 어느 날 저녁 저는 날자와 시간까지 기억이 됩니다마는 그날 저녁, 16절 말씀 글자 하나 하나가 정말 이거 체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겁니다. 큰 글자로 제 앞에 나타나는데 "그러나 예수께서는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사 기도하시니라".

주님도 설교 듣겠다고 찾아오고 병 고쳐 달라고 찾아 온 무리들 앞에 지금 나는 설교 할 때도 아니고 고쳐 줄 때도 아니라 하나님과 시간 보낼 때요 하고 산으로 물러가서 기도를 그의 사역에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고 하면 '나는 뭐냐?' 저는 이 16절 귀절에서 제가 거꾸러졌어요.

그래서 5.16이요. 516절이기 때문에. 무슨 정치적인 이야기를 기대하셨다면 실망시켜서미안합니다. 그러나 제 생애는 이 5.16이야말로 제 생애를 바꾸어 놓았고 정말 신앙생활의 기초가 무엇인가? 하나님과 시간 보내는 거예요. 기도예요 기도.

몇 가지 말씀을 찾아봅시다. 마가복음 313, 우리는 성경을 볼 때 어떤 때에는 현미경으로 보는 것같이 한자라도 놓치면 안 될 때가 있어요. 313절 첫마디가 뭐예요?

""라는 말은 무슨 뜻이예요? 지금까지 해 왔던 것이 계속 된다 그 말이에요.

"또 산에 오르사" 누가? 주님이. 또 산에 오르사 제자들을 부르셨어요. 열 두 제자를 뽑으셨어요. 그런데 열 두 제자의 자격이 뭐지요? 열 두 제자의 자격을 13절 중간에 기록해 놓았어요.

어떤 사람을 주님이 택했어요? 당신이 원하는 자들, 여러분 오해하지 마세요.

여러분과 제가 구원받고 이런 직책을 받게 된 것은 우리에게 어떤 자격이 있기 때문에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부르신 거예요. 주님이 원하셨기 때문에 열 두 제자를 택하신 거예요.

그러므로 택함 받고 구원받고 일군 된 우리들에게는 할 이야기는 한 마디 뿐이에요.

'고맙습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그가 기록한 열 세 서신에 보면 곳곳마다 바울이 제일 감격하는 것이 뭐냐 하면자기 같은 사람을 충성 되다고 여겨, 여긴다는 말은 그렇게 인정해 준다 라는 말이에요.

 

충성되지 못하지만 너는 충성되다 그렇게 믿고 이 직책을 맡기는 그 일이 감격해서 더 이상 그는 세상에서 무엇을 추구할 수가 없었어요. 열 두 제자의 자격은 내게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원하시는 것에 있어요.

그래서 14절에 "이에 열 둘을 세우셨으니 이는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저는 이 귀절을 깨닫기 전에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목사가 되고 난 후에도 이 귀절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꽤 갔는데 저는 주님께서 열 두 제자를 택하신 첫째 이유가 '나가서 일하라' 일 시키려고 택한 줄 알았어요.

그러나 314절에 보니까 열 두 제자를 택하신 첫째 이유는 너희들 나와 함께 있자

오늘날 주님과 함께 있는 게 뭐예요? 기도하는 거예요.

주님이 우리를 택하신 첫번째 이유는 너 나하고 시간 좀 갖자 그 말이에요.

그런데 저는 목회 할 때 그렇지를 않았거든요. 시카고에서 더 열심히 뛴다 그러다가 저녁 때 돌아옵니다. 그러면 이미 우리가 마음에 모시고 계신 이 성령 하나님께서 제게 말씀을 해요. '야 임목사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하게 다니나' 하고 속으로 해 주시는 말씀을 듣고 제가 뭐라고 그러냐 하면 짜증을 부리면서 '주님 모르십니까 제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걸 모르십니까'

얼마나 제가 부끄러운 사람이에요? 그때 제가 주님에게 '주님 주님은 2천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셔서 형편을 알지마는 이민 목회는 제가 베테랑입니다 제가 더 잘 압니다' 그러고 있었어요.

모시고 계신 성령님이 제게 말씀하실 때 '그럼 오늘 저녁 나하고 시간 좀 보낼까?' 그 말은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좀 생기는 거예요. 그러면 '주님 오늘은 제가 피곤한 거 아시지 않습니까 내일 저녁에 합시다' 그리고 또 그날 밤 자는 거예요.

주님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주님으로 하여금 나를 사역시키지 아니하고 내가 주인이 되어서 내가 주님을 위하는 것같이 하니 허공을 치는 거지요.

그러다가 저는 5.16혁명을 당하고 난 후에 아하 주님이 제일 기뻐하시는 것이 함께 있는 것이로구나. 기도예요.

 

제가 운동은 잘 못해요. 그러나 좋아하는데 테니스를 좀 배웠습니다. 필라델피아에 있을 때인데 저희 교회 집사님이 잘 아시는 분한테 제가 몇 달 동안 레슨을 받았어요. 그런데 도무지 늘지를 않아요. 열심히 하면서 땀을 흘리는데 어떻게 된 것인지 테니스가 야구가 되기도 하고 핑퐁이 되기도 하고, 몇 달 하다가 저도 눈치가 있는 사람이니까 아무래도 안되겠어요. 그래서 하루는 연습을 끝내고 집사님과 마주 앉아서 땀을 닦으면서 물었어요.

'집사님 제가 암만 해도 기술이 도무지 늘지를 않는데 뭐가 잘못된 것이 있는 모양인데 좀 얘기 해 주시오' 그러니까 우리 집사님이 '아 담임 목사님 앞에서 잘못 되었다고 얘기하겠어요?' 그러니까 '아 목사님 뭐 잘 하시는데요 뭐' '그러지 말고 일생 목회로 늙은 내가 늘은 것은 눈치 하나 밖에 없는데 그걸 모르겠오?' 그러지 말고 얘기 해 달라고 그랬더니 '아 뭐 잘하시는데요' 그러면서 뒤통수를 긁더니 '그런데 목사님은 열심히 하시지만 라켓을 잡는 기본동작이 잘못되어 있어서 아무리 땀을 흘리면서 볼을 쳐도 볼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를 않습니다'.

모든 매사에 기본이 있습니다. 기본 동작이 있어요. 우리 세상 살아가는데 특별히 신앙생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저희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것은 우리가 기도하는 거예요. 기도. 기도 생활 바로 하면 제대로 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누가복음 111절에 보면 주님께서 산에 올라가 기도하시고 내려 왔더니 제자 중 하나가 "선생님 세례 요한은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는데 선생님도 저희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옵소서" 그랬더니 주님은 "그러면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그게 뭐예요? 주기도문이지요.

그러므로 첫째, 기도는 배워야 됩니다.

기도는 배워야 됩니다. 배운다는 말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도 되고 그만큼 기도하는 것 같으나 정말 기도하기가 힘들다는 뜻도 있어요.

여러분, '선교하라' '전도하라' '찬양하라' '구제하라' 성경에 하라고 하는 말은 많지만 기도만 유별나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면서 우리에게 모델을 말씀해 주셨어요.

방법까지 가르쳐 주신 것은 기도뿐이에요. 기도, 기도는 배워야 합니다. 다시 말씀을 드립니다. 기도 열심히 하는 우리 명성교회에 이 설교가 저도 좀 이 설교 제목을 보내 놓고 과연 명성교회에 이 설교가 적합하겠는가 기도했지만 잘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다시 한번 '주마가편'이라고나 할까요? 달리는 말에 채찍을 가하듯이 좀더 기도생활, 신앙생활 잘하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립니다.

가장 기본적인 거예요. 그러나 기본을 잊어버리면 나머지는 아무리 해도 그냥 무너지고 맙니다.

기도는 배워야 돼요. 그런데 이 시간에 제가 주기도문을 다 할 수 없죠. 한 가지만 우리 상기하고 지나갑시다.

기도를 누구에게 하라고 했어요? 주님께서 주기도문을 저희에게 가르쳐 주셨는데 기도는 누구에게? 아버지에게, 아버지에게 기도하는 거예요. 그 아버지가 어디 계세요? 하늘에계세요.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벌써 그 기도 속에는 내 아버지가 하늘에 계시니 자식된 나는 세상의 나그네로 있다가 언젠가는 아버지 계신 곳으로 내가 갈 것입니다. 하는 모든 우리 신앙의 고백이 그 안에 다 들어가 있어요. 그리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사람의 마음 자세는 '나는 자식이야' '하나님은 내 아버지

제가 저번에도 말씀드렸지만 어떤 분들은, 제가 이 교회 와서는 그런 분을 못 봤습니다만, 제가 그전에 미국에서 다른 어떤 교회가 집회를 하면서 보니까 여러분 자식이 아버지에게 무슨 요청 사항이 있어서 가서 마주앉았어요.

용돈이 궁하든지 뭐 아버지한테 달라고 나간 아들이 아버지를 맞대놓고 '당신의 건강 요새 어떻습니까?' 그런 사람 있어요, 없어요?

우리 나라 풍습에 아버지하고 마주앉은 자식이 아버지를 향해 당신이라고 부르는 법이 없어요. 그래서 우리 성경에 우리 선배들이 번역을 할때 원래는 서양 사람들은 자기 아버지를 맞대놓고 당신이라고 해요, You라고 해요.

그러나 우리는 그걸 못해.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기도문 가운데 원래는 당신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며 당신의 나라, 2인칭 단수 소유격이 있어요. 그러나 우리 풍속에는 자식이 아버지를 맞대놓고 '당신 요새 건강이 어떠시요?' 그러질 않아. 그런데 요새 많은 분들이 보니까 기도를 하면서 '당신이' 그러는 거 보니까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몰라도 마땅치가 않아. 하나님 아버지 앞에 기도하는데 어떻게 자식이 당신이라는 말을 쓸 수 있겠는가. 그렇죠? 그래서 우리 성경에서 당신이라는 말을 뺐어요.

또 아버지 앞에 찾아 나가서 자식이 뭘 요청 할 때 평소의 자연스럽고 좋은 음성은 다 어디 가고 가령, “그간 기체우일향 만강하옵시며 가내 지절이 무고하송지로소이다

. 사랑하는, 경외하는 부친께옵서.. 그런 아들은 없거든.

그런데 왜 다른 때는 많은 분들이 자연스럽게 사람 앞에서는 얘기를 하다가 일단 기도하라 그러면 왜 자기 음성이 아닌 변성을 하는가 이 말이야.

그런 분들 혹시 보면 그건 벌써 생각에 기도를 아버지 앞에 드리는 자식의 심정이 아니라 기도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을 의식하는 거야.

기도는 하나님 앞에 드리는, 아버지 앞에 드리는 자식이에요.

우리는 기도 할 때 여러분들 때로는 여러분들도 그런 경험이 있지 않습니까?

고달픈 인생살이 어디 가서 도무지 도움을 청할 길이 없을 때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려고 엎드렸을 때 하나님을 향하여 아버지! 라고 부르고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이 눈물 흘리다 말 적이 있습니다. 이런 심정들이 이게 진정한 기도요.

이제 성경 한 구절 찾아볼까요. 시편 73. 이 시편은 특히 여러분들이 가까이 잘보시기 바랍니다.

시편 73편 우리 다같이 28절 말씀 한 목소리로 보십시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내가 주 여호와를 나의 피난처로 삼아 주의 모든 행사를 전파 하리이다"

하나님께 어떻게 함이 복이에요?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게 뭘까요? 기도요, 기도. 하나님 앞에 가까이 가는 게 기도예요. 하나님 아버지가 하늘에 계세요. 그렇기 때문에 소위 세상 말로 말하면 백(back)이 있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모르겠어요, 요새도 백이 많이 사용되는 지 모르지마는 제가 옛날에 한국에 있을 때에는 백만 있으면 음대 졸업하고도 그때 은행에 취직하더라고.

그렇게 백이 무서웠어요. 내가 백 얘기를 하나 할께. 죄송합니다, 미국 얘기 자꾸 해서.

그러나 예 들 게 별로 그것밖에 없어요. 그전에 한국에 있던 얘기하면 다 옛날 얘기이기 때문에 별로 여러분들이 깨닫지 못할 거예요. 제가 옛날 한국에 있을 때 얘길 들면 그때 이렇게 교회에 의자가 없었어요. 50년대 말, 60년대 초에, 기억하세요?

여러분들. 그냥 맨 마루에 앉았어요. 그때 우리 장로님들 혹시 그때 예배당에 올 때 성경, 찬송 말고 또 하나 들고 오는 게 있었는데 그게 뭔지 아십니까? 성경, 찬송 외에 또하나 들고 오는 게 있었어요. 뭐예요? 신주머니, 그래. 신주머니지. 그래서는 신주머니 속에다 신을 넣고 그 다음에는 들어와서 옆에 놓고 예배를 보다가 특별히 기도시간에는 꼭 움켜쥐어야 돼요. '눈 감으라 하더니 신발 훔쳐가더라 날 잡아 잡수'그러던 우리들이요. 제가 딸이 둘 있어요. 근데 저희 식구들이 짐승을 좋아해서 개하고 고양이하고 쥐하고 우리가 셋을 키웠어요. 쥐도 병원에서 실험용 쥐 있죠, 하얀 거. 참 눈이 아주 빨갛고 토끼처럼 예쁜데 꽁지가 좀 흉해. 요만하죠, . 근데 우리 집사람은 이 개를 좋아해. 우리 애들 이름이 다 한국이름으로 미 자를 돌렸어요. 미현이, 미선이인데 그래서 우리가 개 이름을 미견 이라고 했어. 개 견자, 그리고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인데 고양이는 나를 특별히 좋아해. 이 녀석은 낮에는 잠 실컷 자고 밤에만 되면 내 발가락 가지고 놀자고 자꾸 그러는 애예요. 아주 이쁜 고양이야.

그리고 우리 둘째 딸아이는 이 쥐를 키워요. 쥐를 좋아해. 그런데 둘째 딸아이가 이 쥐 이름을 불란서 여배우 이름을 붙였어. 리벨라 크리즈벨라라고 하는 아주 유명한 배우예요. 그런데 방안에 놓으면 요만한 놈이 어디 갔는지를 몰라. 구석에 가있어.

그러다가 자기 이름만 부르면 쏜살같이 달려와. 기가 막혀. 그런데 하루는 우리 작은 애가 자기 방에서 미친 애처럼 막 웃으면서 아빠! 빨리 들어와 보래요. 제가 들어갔더니 보세요, 이 빽이 얼마나 무서운가. 우리 둘째 딸 애가 있는 방에 쥐가 들어가,자는 집이 있는데 쥐를 나오게 하려고 우리 둘째 딸 애가 문을 열었더니 그 옆에 앉아 있던 고양이가 쥐가 나오는 게 무서워서 침대 밑에 숨었어. 이거 톰 앤드 제리 이야기가 아니에요. 쥐가 숨어야 되는데 쥐가 당당히 자기 집에서 나오니까 고양이 가숨으므로 얘가 죽겠다고 웃어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느끼는 게 있는데 그러면 너는 나가라 하고 우리 둘째 딸 애를 내보내고 다시 쥐를 그 집에 넣고 보았더니 이 쥐가 두려워서 나오지를 못해요. 그리고 고양이는 좋은 저녁거리 생겼다고 버티고 있어요. 내가 거기서 깨달은 것이 있어요. 이 쥐는 둘째 애가 자기 빽이에요. 짐승도 아마 이렇게 빽이 있으면 힘이 생기는 모양이에요.

그런데 하물며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이 계셔요.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저는 오늘날 와서 우리 한국 교인들을 향해서 제가 부르짖고 싶은 얘기 여러 가지가 있지만 딱 하나, 믿는 저희들이 긍지를 가지고 살자 그거예요.

가슴을 펴고, 우리 하나님은 교인들만 상대로 하는 하나님이 아니에요. 우주를 다 주관하는 만유의 주재 하나님이세요. 그 하나님이 여러분들의 아버지이고 내 아버지예요.

왜 그렇게 우리 믿는 사람들이 긍지를 잃어버리고 조그마한 돈만 생겨도 그만 불신자들과 다름없이 그 속에 우리가 들어가느냐 그말이에요.

여러분 창세기 14장 보세요. 아브라함이 그 조카가 포로로 잡힌 것을 건져 가지고 옵니다. 그러니까 소돔왕이 아브라함을 보니까 보통사람이 아니거든, 그래서 소돔왕에게 재산 다 가져가십시오, 당신은 전쟁을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적군의 사람을 잡아서 포로로 삼고 일군으로 삼고 또 이제 전리품, 물건을 빼앗아 오는 것이 전쟁의 큰 이유인데 이 소돔왕이 전리품을 다 가져가라고 그랬어요.

그 가운데는 귀한 것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 보세요. 멋있는 장면이에요.

여러분들도 집에 돌아가서 14장을 보세요. 아브람함이 소돔왕에게 뭐라고 합니까?

싫소, 나는 당신에게서 신 끈 하나 받지 않겠소. ? 하나님이 나를 책임져 주실터인데 다른 사람들이 후세에 말하기를 아브라함은 누구 때문에 잘 살게 되었다 는 말 듣기 싫소

멋있는 겁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긍지가 있어야 전도할 때에도 불신자들이 우리를 볼 거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의 빽이에요. 그 빽을 의지하는 연습이,이것이 기도예요.

기도는 누구에게 합니까? 아버지께, 아버지가 제일 원하시는 것이 뭐예요?

함께 있는 거예요.

여러분들도 다 추석 지내고 오셨죠? 아마 고향에 찾아갔을 때 부모님들이 반가워하는 것이 여러분들이 들고 간 선물입니까? 아니에요. 선물이 아니에요.

이제 고향에 갔다가 떠나오려고 하면 아버지, 어머니는 다른 것을 아쉬워하지 않을 겁니다. '얘 너 하루 더 있다가 가면 안되냐?'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원하는 것은 함께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열 두 제자를 택한 첫째 이유가 "자기와 함께 있게 하시고" 하나님 기쁘게 해 드리는 것 간단합니다. 하나님과 시간 많이 보내는 거예요. 여럿이 모여서 기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나와 하나님만이 앉아서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 저 여기 있습니다' 모든 인생의 가치관이 그 순간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혼자 있는 그 시간, 그 순간이 진정한 내 모습이고 거기서부터 내 삶이 시작이 되는 거예요. 함께 있는 거예요.

 

우리 첫째 딸아이가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은 대게 고등학교까지는 같이 있다가 일단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을 가면 거의 부모 품안에서 떠나는 겁니다.

대학을 가서 졸업을 하고 제가 살고 있는 도시로 취직을 해서 왔어요.

그런데 뭐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해 봤자 아파트비 물고 아마 힘든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종종 저한테 전화를 해요. 자기 엄마한테도 전화를 해요.

전화를 하고서는 끝날 때쯤에도 끊어야 되는데 끊지를 않고 뭐, , 하는 것을 보면 눈치 빠른 애비가 그걸 모르겠어요?

'그래 그러면 얼마 부족하냐?' 그리고는 온라인으로 넣어 주곤 해요. 또 집에를 옵니다. 집에를 와도 아주 친절하게 잘 하고 '아이 러브 유 대디, 아이 러브 유 마미' 그러고는 집에서 나갈 때쯤 되면 문을 열고 나가려다 가는 꼭 돌아서서 안나가고 있어요.

그러면 또 애비가 알지. 무슨 뜻인지, 그러면 또 주지. 그래서 꼭 그 애한테서 전화가 오든지 집에 오면 나는 벌써 준비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러기를 몇 년 지났는데 어느날 제 딸아이가 집에 왔어요. 주말에 왔습디다. 같이 지냈어요. 토요일 날 같이 지내고 주일 날 자기 영어 회중 예배 갔다 오고 또 자기 엄마하고 한국어 회중 예배 참여하고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서 점심을 같이 했어요.

점심을 먹고는 자기가 다음 날 바쁜 일이 있어서 좀 빨리 집에 가겠노라고, 가라고, 자기 짐을 챙기고 문 가로 나갑니다.

열고 나가려고 그래요. 다른 때 같으면 꼭 하나 있는 행사가 있는데 그 날은 없어요.

그냥 나가려고 해요. 그래서 내가 참 나도 과히 좋지 않은 아버지지, '너 왜 왔니?' 그랬어요. 그 순간에 문을 열고 나가려던 우리 큰 딸아이가 돌아섭니다.

제 눈하고 마주칩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제 큰 딸아이가 제 품안에 안깁니다.

저도 우리 딸을 안았습니다. 그리고는 안긴 채 저에게 하는 말이 '그냥 아빠, 엄마가 보고 싶어서 왔어요' 저는 속으로 너도 이제 철이 들어가는구나. 그냥 아빠, 엄마가 보고 싶어서 왔어요. 저는 이것이 기도의 가장 중심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냥 주님이 좋고,하나님의 사랑이 좋고, 오늘날까지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좋아서 그저 여부사항은 아뢰지만 여부사항은 다 아시고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것으로, 원하는 것 보다 좋은 것으로 풍성히 주실 분인데 하나님, 하나님이 좋아서 왔습니다.

사랑하는 우리 명성 교회 식구 여러분,

무슨 일이든지 기도보다 앞서지 맙시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말장난이 아니올시다. 자기 과시가 아니올시다.

하나님 앞에 있는 모습 그대로, 마치 자식이, 찢기고 상한 탕자가 아버지 앞에 돌아 올 때 모습 그대로, 여러분 누가복음 15장 보세요. 탕자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뭐라고 기록했습니까?

상하고 찢긴 아들이 돌아왔습니다. 이것이 기도예요. 고생 고생하다가 이 동생이 돌아왔습니다. 그랬더니 맏아들이 소식을 듣고 밭에서 옵니다.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종을 불러서 이 무슨 일인가 묻습니다. 27절에 그 종이 대답하기를 "당신의 동생이 돌아왔으매 당신의 아버지가"

그 다음에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어떤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되었다고요? 당신의 동생의 건강한 몸을 다시 맞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병들었을 겁니다. 사실은 누추할 겁니다. 그러나 아버지 앞에 돌아온 이 탕자는 원칙으로 말하면 그 아들이 건강한 아들이에요. 그래서 종이 "당신의 동생이 건강한 몸으로 돌아온 것을 보고 기뻐하나이다"

하나님 앞에 기도 생활하지 않는 영혼은, 하나님과 멀어진 영혼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건강할지 모르나 영혼은 병이 들었어요.

 

여러분, 금년 한 해도 이제 몇 달 남지 않았습니다. 저처럼 여러분들도 5.16혁명을 당했으면 좋겠어요. 이미 당하신 분은 그대로 사시고 힘 달라고 기도하시고 아직도 기도하는 척 하지만 솔직히 말씀을 드려서 기도에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예수 믿는 재미는 기도하는 재미거든요.

기도하는 시간, 주님과 시간 보내는 것이 너무 좋아서 한참 있다가 보니까 끼니를 굶게 되는 것, 그것이 정상적인 금식이에요.

습관이 되셔야 해요. 여러분들이 기쁜 일이 있으면 제일 먼저 '감사합니다' 하고 하나님께 먼저 아뢰는 습관 되시기를 바랍니다.

걱정되는 일이 있으면 이렇게 저렇게 인간적인 생각하기 전에 제일 먼저 '하나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이게 습관이에요.

그러는 가운데 우리 영혼은 기본 동작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그대로 갑니다. 아빠 엄마가 보고 싶어서 왔소. 요구 사항만이 아니라 그냥 보고 싶은, 이런 성숙한 우리 명성 식구들이 되시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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