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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별 설교

[김삼환목사]그리스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마15:2-28)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4.05.15|조회수22 목록 댓글 0

그리스도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152-28)

성경본문:마태복음15:2-28

2-당신의 제자들이 어찌하여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나이까? 떡 먹을 때에 손을 씻지 아니하나이다

3-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어찌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느냐?

4-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

5-너희는 이르되 누구든지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6-그 부모를 공경할 것이 없다 하여 너희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는도다

7-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8-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9-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10-무리를 불러 이르시되 듣고 깨달으라

11-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12-이에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

13-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14-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

15-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 비유를 우리에게 설명하여 주옵소서

16-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

17-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내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18-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19-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20-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

21-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23-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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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다같이 성공하고 잘 되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참 큰 축복이요 또한 하나님의 은혜이기도 합니다. 사람이 높은 권력을 가지고 또 돈을 많이 벌어서 물질의 부유함을 얻고 또 바라던 자기의 뜻이 이루어져서 인기를 얻고 영광을 누리는 것, 이것은 모든 인류의 소망이고 또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나 다같이 바라는 우리의 꿈입니다. 아무리 물질이 나쁘다고 해도 대개의 사람은 물질을 쫓아가기 마련입니다.

또 물질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권력이나 물질이나 인기를 잘 관리하면 얼마든지 좋은 색깔을 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우리는 이 나라에 살면서 부유한 사람들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국민에게 많은 실망을 주고 상처를 주는 모습을 봅니다. 또 이 가운데 교인들도 많이 있어서 교회에 대한 비판도 많고 또 좋지 않게 말하는 분들도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권력이나 물질을 우리가 어떻게 관리해야 합니까?

사람은 하나님께로부터 이러한 은혜를 받아 힘이 있을 때에 더욱 겸손해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힘있는 자의 편에 서서 더 힘을 얻으려고 하는 유혹과 욕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깨에 힘을 주고, 힘을 자랑하고, 힘을 과시하고, 힘을 유지하기 위해서 힘있는 자끼리 모여서 더 큰 힘을 만들려고 하는데 이러한 것들이 언제나 하나님 앞에 심판이 되고 하나님이 싫어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힘을 대항하는 자를 짓밟고, 힘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아니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성서적으로 보면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잘못 관리하는 것입니다. 소들도 힘있는 소들이 모이면 반드시 부딪치게 되어 있고 싸워 분열이 일어나게 되어 있고 문제가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물질의 힘이든지, 권력의 힘이든지, 또 다른 어떤 힘이든지 힘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잘 사용해야 합니다.

원자력 발전소나 핵무기와 같이 잘못 관리하다 보면 이것이 무서운 파멸로 이끄는 일이 참 많은 것처럼 개인에게도 그렇고 국가에게도 그런 것입니다.

아시아에서도 지난 얼마 동안 모두 많이 경험한 바들입니다. 무한한 힘을 휘두르던 이란의 팔레비 국왕, 필리핀의 마르코스,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같은 사람들은 그 힘을 가지고 엄청난 재산을 모으고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힘 때문에 모두 불행하게 되었습니다. 그 힘을 가지고 계속 힘있게 살려고 하다가 남은 힘까지 다 빼앗기고 자기나라에서 죽지도 못하고 남의 나라에 가서 비참한 종말을 맞았습니다.

 

저는 지난 주간에 필리핀에 다녀왔습니다. 필리핀은 마르코스가 죽은 지 상당히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얼마나 가난한지 우리 나라 6.25사변 그 수준으로 살아가는 국민이 대부분입니다. 너무 불쌍하게 살아갑니다. 마르코스는 얼마나 화려하게 살았습니까?

지금도 그 죽은 시신을 미이라로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백년 혹은 이 백년 지나서 부활할지 모른다고 생각합니다. 그 딸이 결혼식을 할 때는 외국의 손님들을 전세비행기로 실어 날랐고, 비행장에서부터 결혼식장까지 가는 길을 꽃다발로 장식을 했습니다.

몇 킬로미터의 도로를 꽃으로 덮었는데 그것도 그 나라꽃을 쓰지 않고 호주의 꽃을 가져다가 장식을 했습니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야 다 그렇습니다. 힘있는 자의 편에 서야 자기 힘이 주어지니까 "각하 각하 오스트레일리아 꽃이어야 합니다.이 꽃은 안됩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힘있는 사람은 언제나 힘 관리를 잘해야 합니다. 아랫사람이 힘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힘없는 자에게서 힘이 오는 것이지, 힘있는 자에게서 힘이 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일반 상식적인 법칙과는 전혀 다른 진리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힘을 관리해야 합니까?

힘있는 자는 힘없는 자에게 봉사하고, 힘없는 자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힘없는 자를 일으켜 주는 위로하는 힘, 불쌍히 여기는 힘, 나누어주는 힘이 되어야 합니다.

억울한 자에게 이 힘이 갈 때에 그 한 사람에게 빛이 되고, 생명이 되고, 구원이 되고, 기쁨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힘있는 자끼리 모여서는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힘이 없는 자에게 가면 생수가 될 수 있습니다.

빛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힘이 있는 자입니다.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능치 못하심이 없는 분이십니다. 우리에게 권력도 주시고, 생명도 주시고, 부귀 영광도 다 주시고, 바람도 잔잔하게 하시고,모든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주님이십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33년 동안 한번도 힘있는 자와 사귀지도 아니하시고, 힘있는 자의 편에 서서 힘있는 자와 함께 파티를 열고, 만찬을 열고, 힘을 과시하는 일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가난한 자, 병든 자, 문둥병 자, 길거리에 헤매이는 불쌍한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주님은 없는 자와 같이 음식을 나누셨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귀신들린 사람에게 귀신의 옷을 벗겨주시고 기쁨을 주신 주님이십니다. 언제나 없는 곳에 가서 힘이 되어 주시고, 그들을 위해서 친구가 되어주시고, 이웃이 되어주셨습니다.

오늘 많은 힘있는 자들이 이렇게 힘을 관리하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축복 받아 어떤 힘이든지 힘 관리를 잘하면 행복할 수 있고 본인에게 은혜와 영광이 주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힘을 잘못 관리하면 불행과 파멸과 어려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보아왔습니다.

우리의 힘을 필요로 하는 곳이 너무 많습니다.

시편 685절에서 "하나님은 고아의 아버지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시라"고 말했습니다.

야고보서에는 "하나님 앞에 더러움이 없는 참 경건한 삶은 고아와 과부들을 환난 중에 돌아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목회를 하면서 우리 성도들의 상담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너무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얼마나 안타까운 분들이 많은지 모릅니다. 변호사를 살 돈이 없습니다. 만가지 어려움을 당하고 있지만 하소연 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힘있는 사람은 이러한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자기에게 유익이 있는 곳으로 힘을 모으는 것이지 그런 곳에는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 힘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아직 힘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

더 큰 힘을 가지기를 원하십니까? 힘에 대한 자족함이 있어야 됩니다. 축복에 대한, 삶에 대한 만족이 있어야 합니다. 내 지위와 내 신분은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부족함은 이웃을 위해 나눠주는 일에 부족함이어야 하고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일에의 부족함이어야 합니다.

위로해 주는 것의 부족함이어야 합니다. 내가 이미 받은 축복은 너무 많은 것으로 알아야 합니다.

연말이 되면 저에게 기도해 달라고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는 기준을 정해 드리고자 합니다. 경찰관이라 할 때 파출소 소장만 되면 그건 출세한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께 맡겨야 됩니다. 내가 소장이 되었다는 것 얼마나 은혜입니까? 이제 믿음의 소장이 되고, 나눔의 소장만 되면 하나님이 만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계급만 올라가면 좋은 것이 아닙니다. 군에 있는 분들은 중령만 되면 출세한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에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또 올라가려고만 합니다. 장군들이 많습니다만 장군이 되어서도 하나도 만족이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일 많이 하려고 해야 합니다. 권력은 결코 아름답지 않습니다. 그러나 행함은 아름다워 질 수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할 때 우리 삶이 아름다운 것이지 지위가 아름다운 것이 아닙니다. 돈이 아름다운 것 아닙니다. 돈을 가지고 쓰는 데에 아름다움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은행에 계신 분들은 은행 지점장만 되면 소원은 다 이루어 진 것입니다. 어떻게 그 이상 바라겠습니까? 이제 남은 것은 내 이웃을 위해서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주변에 불행한 사람이 얼마나 살고 있는가 파악이나 하고 있습니까? 알고 계십니까? 여러분이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식구들과 함께 TV를 본다든지 음식을 먹을 때에 부모 없는 고아들이 혼자서 추운 방에서 밤을 새고,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학교 가는 것 생각해 보셨습니까? 부부가 함께 행복하게 침대에서 잘 때, 혼자서 살아야 하고, 직장 생활해야 하고, 아이들 먹여 살리기 위해서 혼자 밤을 새우는 그 많은 불쌍한 여인들과 과부들을 생각해 보셨습니까?

여러분이 맛있게 반찬을 나눌 때에 반찬 없이 먹는 분들 생각해 보셨습니까?

저는 우리 교인들 가운데 십 년을 가도 옷을 갈아입지 못하는 교인들을 본 일이 있습니다.

몇 년 가도 항상 그 옷 입고 나오는 것입니다.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를 더 다니지 못하고 그 등록금 벌기 위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직장에 다니는 분 보셨습니까? 신문 배달하는 수많은 학생들, 여러분 생각해 보셨어요? 겨울에 장갑이라도 하나씩 다사드리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변에는 얼마든지 좋은 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힘을 잘못 사용하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잘못 사용해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구약에 아합 왕이 있습니다. 아합은 첫째로 우상 숭배의 죄를 짓고 또 하나는 남의 것을 빼앗은 죄를 범하였습니다. 열왕기상 21장을 보면 아합이 상아로 만든 궁에서 살았습니다. 상아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불만이 많았습니다.

힘있는 사람은 항상 불만이많습니다. 어느 날 궁에서 앞을 내려다보니까 포도원이 보였습니다. 얼마나 좋은 포도원이 보이는지 욕심이 생겼습니다. 자기에게는 포도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별의별 과수원이 있고, 별장이 있는데도 만족이 없고 남의 포도원이 맘에 들었던 것입니다. 아합이 신하들에게 묻습니다. "저것이 누구 것이냐"

그러니까 "나봇의 포도원입니다". "그것을 사도록 하라"고 지시합니다. 그런데 나봇이 그 밭을 안 팔겠다고 합니다. "우리 폐하께서 원하시는데 파세요" 라고 하였는데 나봇은 "이 밭은 우리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것인데 내가 어떻게 팔겠으며 또 자손들에게 물려주어야 되는데 팔 수가 없습니다"고 말했습니다. 여러분들도 오히려 더 보태어서 물려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조상의 것을 함부로 취급하는 삶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나봇의 이야기를 들은 아합은 잠이 안 왔습니다. 잠만 자려고 하면 그 포도원이 생각나고, 갖고 싶어졌습니다. 그 많은 은·· 보화와 별장이 눈에 안 들어옵니다. 욕심을 내는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것으로는 만족이 안 됩니다. 안 가진 것, 남의 것이 부러운 것입니다. 아합 왕이 잠을 못 이루자 부인 이세벨이 그 이유를 묻습니다. 그래서 포도원 이야기를 했더니 자기에게 맡겨달라고 합니다. 그 다음날 이세벨은 당장 사람을 불러모아 놓고 나봇을 불러다가 죄를 뒤집어씌우고 돌로 쳐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보내사 "나봇이 흘린 피가 너희 집에 피가 되리

"고 말씀하셨고 그 말씀 그대로 이세벨도 아합도 모두 피 흘려 죽임을 당합니다.

권력을 가지고, 힘을 가지고 잘못 사용할 때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잘 사용하면 은혜와 복이 됩니다. 선한 일에 부자가 되면 그는 부자입니다. 신약에도 부자가 있었는데 그의 집에 누가 있었습니까? 거지 나사로였습니다. 나사로가 그렇게 추위에 떨며 자도 돌보지 않았습니다. 죽었는데도 그냥 쓰레기더미에 버렸습니다. 그러나 천사가 와서 데려갔습니다. 이 땅을 떠난 다음에 누가 데려가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부자가 죽은 다음에는 귀신이 와서 데리고 갑니다. 저는 임종할 때를 중요하게 봅니다. 여러분 임종 순간이 제일 중요합니다. 임종 순간에 찬송하며 기도하지 않고, 벌벌 떨고, 헛소리 자꾸 하고, 눈을 부릅뜨면 그건 잘 믿은 것이 아닙니다. 잠자듯이 가야 됩니다. 기도하면서 가야 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이 주신 힘을 잘 관리하면 영적인 부자가 될 수 있고 하나님이 주신 이 축복과 힘과 능력이 하나님을 위해서 쓰여질 때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본인에게는 영원한 힘이 주어질 줄로 믿습니다.

어떤 분들은 교회에 와서 힘 주는 분들이 많습니다. 전혀 힘없는 자가 되어야 교회에 쓰임 받는 것입니다. 여기는 힘 자랑하는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힘 빼는 곳입니다.

힘 자랑하면 안 됩니다. '내가 누군데'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죄인이지 누구는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죄인이지요. 우리 교회에 농촌 교역자들이 오시면 그 분들을 영접하시는 분들이 마냥 우리 교회 자랑을 하는 거예요. 우리 교회는 몇 만 명 모이고, 몇 년만에 부흥하고..... 이런 말들을 하는데 잘못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무리 전도해도 부흥 안 되는 농촌 교회에서 온 분들에게 몇 만 명된다 그러니 그건 상처 주는 것입니다. 절대로 그런 과시를 하면 안 됩니다.

많이 모이는 게 힘입니까? 은혜이지 그게 무슨 힘입니까? 하나님께 감사할 일이지 이게 무슨 자랑할 일입니까?. 우리는 무엇이라도 있으면 자랑하려고 하고 힘을 주려고 합니다. 자동차가 힘입니까? 권력이 힘입니까? 옷이 힘입니까? 얼굴이 힘입니까?

무엇이든지 있으면 자랑하려고 하고, 있으면 과시하려고 하면서 자꾸 문제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아름다움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그 힘 때문에 망하게 되고, 힘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언제나 주님의 뒤에는 이런 불쌍한 사람들이 따르고, 주님의 주변에는 언제나 이런 분들이 함께 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위로와 사랑과 축복을 받고, 주님과 함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삶을 우리가 보면서 우리의 발걸음, 새로운 세기의 우리의 삶도 이러한 길로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여인은 주님을 향하여 막 매어 달립니다. "나사렛 예수여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 고쳐주세요" 주님을 만나서 주님을 붙잡고 주님에게 간구합니다. 예수님께서 못 본척 하셨습니다. 그래도 끊임없이 따라갑니다. 많은 제자들과 사람들이 말렸지만 끊임없이 주님을 따라가면서 내 딸을 건져달라고, 또 불쌍한 우리 가정, 엄청난 상처, 환난을 당한 우리 가정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매어달립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믿음대로 되게 하셨습니다. 소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이 딸의 흉악한 병을 고쳐서 새로운 기쁨과 새 삶을 이 가정에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의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떠한 어려움과 환난을 당할지라도 주님에게 나아가면, 주님에게 간구하고 주님에게 부르짖으면 주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십니다.

긍휼을 베풀어 주시고, 인자와 자비를 베풀어 주셔서 우리의 모든 어려움에서 우리를 건져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당하는 어떤 어려움과 절망가운데서도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아 큰일났다' 큰 일이 아닙니다. 주님에게 가면 작은 일로 만들어 주십니다. '이젠 끝이다' 아닙니다. 예수님께 나아가면 시작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아 나는 이제 어떻게 하느냐' 아닙니다. 주님에게 나아가 믿고, 간구하고, 의지하면 주님은 우리를 그 모든 어려움에서, 위기에서, 환난에서 건져주시는 줄로 믿습니다. 빌립보서 413절에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못하고 나는 안되지만 주님은 할수 있습니다. 시편 1829절에 "내가 여호와를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을 의지하면 담을 뛰어 넘습니다. 내 앞길을 가로막는 담이 많습니다.

질병의 담, 환난의 담, 가난의 담, 자녀의 담, 남편의 담, 죄악의 담, ·육의 모든 담이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담을 넘을 수 있습니다. 누구로 말미암아 넘습니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류의 담이 되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담이 되게 하셔서 오히려 짚고 넘어가도록 하십니다.

국가의 문제도 주님을 짚고 넘어 갈 수 있습니다. 담을 뛰어 넘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십자가를 짊어지시고, 저주를 받으신 바 되셔서 우리가 못 가는 길이 없도록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주님을 의지하고, 믿고, 주님을 사랑하고 뛰어 넘으면 모든 담은 넘어갈 수 있습니다. 낙심할 일이 없습니다. 헬렌 켈러를 아십니까? 듣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고, 말할 수도 없던 이 사람이 세계적인 인물이 됩니다.

 

헬렌 켈러의 힘이 뭡니까? 주님을 붙잡은 것입니다. 주님을 붙잡은 설리반 선생님을 통해서 주님을 붙잡습니다. 예수를 모르는 분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 주어서 눈을 뜨게 하고, 힘을 얻게 하고, 기쁨을 얻게 하고, 생명을 얻게 하는 이러한 설리반 선생님의 역할을 우리가 모두 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영국의 유명한 스티븐 호킹이라고 하는 분은 우리 나라에도 다녀 갔습니다마는 이분은 서른 두 살에 왕립 회원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분은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분입니다. 수재입니다. 그리고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한 학기를 마쳤는데 몸에 이상이 생겨서 진단을 받아보니 희귀한 병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병은 현대 의학으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얼마 안 있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그런 병입니다.

처음에는 물론 낙심했습니다. 부모나 본인이나 모두 낙심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는 기간이라도 믿음으로 살자고 주님을 붙잡고, 소망을 갖고, 믿고 기도하였는데, 이상하게 죽어야 할 사람이 죽지 않고 이상하게 생명이 연장되는 신비함 을 느꼈습니다. 사람은 신비합니다. 몸도 신비하고, 생명도 신비하고 생활도 신비한 것이 사람입니다. 주님을 믿어 주님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어떠한 장애물도 넘어설 줄로 믿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면 넉넉히 이기고 감당할 수 있습니다.

192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미식 축구를 하는 그 경기장에 유명한 데이칼이라고 하는 선수가 공을 가지고 상대팀을 향해서 막 뛰어가는데 누가 다리를 걸었습니다.

그래서 넘어졌습니다. 다리를 건 사람은 바로 자기 팀 선수였습니다. 왜 그랬는가 하면 선수가 공을 가지고 상대팀이 아니라 자기 팀으로 공을 가지고 뛰어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동료가 다리를 건 것입니다. 세상에 그런 선수가 어디 있습니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된 것입니다. 머리를 푹 숙이고 있는데 코치가 와서 "낙심하지 마라 아직도 시간이 반이 남아 있어" 그래서 이 사람은 그 코치의 말에 감동을 받아서 열심히 노력하여 미국 최고의 선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습니다. 오늘날까지 주님을 떠나서 내 행복을 위하여 불의와 정욕의 길로, 헛된 길로, 적진의 길로, 사탄이 좋아하는 길로, 마귀의 길로, 악한 길로 달려가던 우리들입니다.

이제 새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들을 향하여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네가 어디를 가고 있느냐?" 오늘 이 여인처럼 주님을 향하여 달려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를 건져주세요. 나와 함께 해 주세요. 나를 구원해 주세요".

주님은 능치 못하심이 없습니다. 38년 된 병자도, 열 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도 주님을 찾아갈 때, 천한 어부도 주님을 찾아갈 때, 세리 마태와 삭개오도 누구든지 주님에게로 나아갈 때 주님은 우리의 짐을 벗겨주시고, 길이 되시고, 소망이 되시고, 능력이 되시는 줄로 믿습니다.

고통의 멍에 벗으려고 예수께로 나옵니다

자유와 기쁨 베푸시는 주께로 옵니다

병든 내 몸이 튼튼하고 빈궁한 삶이 부해지며

죄악을 벗어버리려고 주께로 옵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뒤에 예수께로 나옵니다

십자가 은혜 받으려고 주께로 옵니다

슬프던 마음 위로 받고 이 생의 풍파 잔잔하며

영광의 찬송 부르려고 주께로 옵니다

 

새 시대는 주님에게로 나아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이 민족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여러분의 소망도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기도하던 일 계속하시고, 말씀 계속 읽으시고, 주님을 향하여 끊임없이 달려가야 할 줄로 믿습니다.

어떤 분이 교회에 오다가 길거리에서 노는 천한 집 아이들을 교회로 데려왔습니다.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일년, 이년, 오년 잘 가르쳤습니다. 저들이 나아가 훌륭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가르치던 이 선생님은 어느덧 노인이 되었습니다.

하루는 그 배운 사람들이 편지를 써서 노인의 생일날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한 사람은 중국의 선교사가 되었었고 한 사람은 미국 연방은행 최고의 총재가 되었습니다. 한 사람은 후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되었고 또 한 사람은 후버 대통령입니다.

1929년부터 1932년까지 미국에 공황이 닥쳐왔을 때, 온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미국을 이끌어 내어서 다시 경제를 일으키고, 미국을 공황에서 건져낸 지도자가 후버 대통령입니다. 후버댐이라는 곳도 있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그 때 세웠습니다. 훗날 후버"내가 이렇게 된 것은 우리 선생님이 내게 가르쳐 주신 말씀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기도 및 성경읽기 대행진'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모릅니다. 그러나 십 년, 이십 년 가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때가 올 것입니다. 말씀은 늦게맺는 열매입니다. 그러나 그 열매는 확실하게 맺어지고 말씀의 훈련을 받은 분들은 놀라운 일을 하게 되어져 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말씀에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시대에 어떤 공황이 우리에게 닥칠지 모르지만 우리들이 말씀의 훈련을 받고, 주님을 향하여 기도하면서 나아간다면 어떠한 위기, 어떠한 공황, 어떠한 환난 이 올지라도 반드시 승리할 줄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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