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워 말라(사41장 8-13)
성경본문: 이사야41: 8-13
8-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9-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10-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11-보라 네게 노하던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될 것이며 멸망할 것이라
12-네가 찾아도 너와 싸우던 자들을 만나지 못할 것이요 너를 치는 자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허무한 것 같이 되리니
13-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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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두운 구름이 이 땅을 덮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분노의 구름입니다. 두려움과 분노는 인간을 파괴하고 마비시키는 부정적인 감정입니다. 인간 사회의 대부분의 문제들은 이 두 감정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납니다.
요즘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혼란의 원인은 <미국산 광우병 쇠고기>에 관한 것입니다.
광우병에 걸린 쇠고기가 당장 우리 밥상에 올라올 것 같고, 그것을 먹고 우리 국민 모두가 광우병에 걸릴 것 같은 두려움에 국민들은 분노하고 있습니다.
출범한 지 석 달도 안 된 정부가 그 문제로 많은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처음부터 이 문제를 조금 더 지혜롭게 다뤘다면 오늘과 같은 현상은 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초기에 이 어려운 일을 잘 감당하고 나면 남은 기간은 아마 더 잘 하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두려움은 현실의 문제를 과장하게 만듭니다. 당장 광우병이 생긴 것도, 광우병에 걸린 소가 들어오는 것도 아닌데 광우병이 생길 수도 있다는 공포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겁에 질려 일손을 놓고 시위를 하고 경찰과 몸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마치 여러분의 친구 몇 명이 심장병에 걸리면 ‘나도 심장병에 걸리면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나?’하며 두려워하다가 걸릴지 안 걸릴지도 모르는 병 때문에 의사를 찾아가서 “왜 내가 심장병에 안 걸리도록 심장을 미리 튼튼하게 안 고쳐 줍니까!”하며 데모하는 것과 같아요.
젊은 사람들이 친구들의 이혼 과정을 몇 번 보고는 ‘결혼을 하니까 이혼을 하는구나! 나도 결혼 후에 불행해져서 이혼하면 어떻게 하지? 이혼을 안 하기 위해서 결혼도 하지 않을 거야!’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너무 과장되고 비이성적이고 감정적인 상태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오늘 아침에 교회에 와서 어제 밤 12시에 젊은이들이 청와대로 쳐들어가려다가 저지를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밤 12시면 잠 잘 시간입니다. 데모를 하더라도 잘 시간이 되면 자고 아침에 나와서 할 일이지 밤 12시에 청와대까지 가다니, 두려움 때문에 생긴 분노가 이렇게 우리 국민들을 몰아붙이고 있습니다.
광우병 문제는 국내외 전문가들도 합의점을 찾기 힘든 문제입니다. 전문가들 중에도 ‘그렇다’고 하는 사람, ‘아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누구도 확실히 모른다는 말이지요. 확실한 내용이라면 합의가 됩니다.
전문가들도 합의하지 못하는 것을 중학교 1학년이 길거리에서 데모를 한다고 어떻게 해결하겠습니까?
국민들이 지금처럼 반응하는 것은 순전히 ‘혹시 광우병 걸린 소고기가 들어와 내가 먹게 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광우병이 발병했다는 소식만 들리면 당장 수입을 멈추면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미국과 통상체결을 했지만 조약이라는 것은 종이에 잉크로 사인한 것에 불과합니다. 세계의 조약 역사를 보더라도 서명한 그대로 이행된 조약은 거의 없습니다.
자국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으면 그저 종잇조각에 불과한 것이 조약입니다. 자기 국민의 건강을 해치는 병든 소를 어느 정부가 들여오겠습니까?
우리가 정말 두려워하고 조심해야 할 것은 지금 우리 발등에 불이 떨어진 AI입니다. 우리 땅에 발생한 AI로 많은 농가가 키우던 닭과 오리들의 수백만 마리 살처분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말도 않고, 생기지도 않은 광우병을 문제 삼는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분노를 유발합니다.
상상 속의 두려움을 현실화시키는 것은 이성적인 반응이 아닙니다. AI가 발생하자 정부는 조류들을 처분하고 신속하게 문제를 처리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어제 닭고기를 먹었어요.
우리 한국 사람들은 문제가 생기면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공포심을 일으키지 말아야 합니다. 지나치게 반응함으로써 쇠고기를 먹은 우리 아이들이 당장 죽을 것처럼 겁을 먹게 하고 있습니다.
미래에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까지 오늘 다 가져다가 미리 걱정하는 것은 비이성적이요 지나친 걱정입니다.
너무 두려워할 일 아닙니다. 정치인이든, 학생이든, 노조, 시민단체, 어느 누구든지 국민의 공포심과 불안감을 조성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불안해하는 사람은 안심을 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이 났는데 부채질을 해서 온 국민을 힘들고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두려움은 인간을 마비시킵니다. 창의력과 생명력을 빼앗아 갑니다. 두려움과 분노 속에서 하는 일은 잘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마음이 두렵고 불안하고 염려하고 근심하면 여러분의 몸에 어떤 메시지를 보내게 됩니까?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메시지를 보냅니다.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우리 몸은 모두 살아있는 세포인데, 그 세포에 부정적이고 파괴적이고 두렵고 불안한 메시지를 보내면 그 몸이 제대로 살아나겠습니까?
생산력과 생명력과 자신감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이제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길 바랍니다.
국민을 불안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은 과장된 공포분위기 조성을 중단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의 영을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1장 7절에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무엇이든 마음속에 두려움을 갖게 하고 걱정을 하게 만들고 불안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이 아니요 다른 영입니다. “마음”이라고 하나 정확하게는 “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두려워하는 자에게 사랑과 평안을 주시고 자신감을 주시고 힘을 주십니다.
“우리는 두려움의 영을 받지 아니했고 능력의 영과 사랑의 영과 근신의 영을 받았느니라.” 이것이 우리가 받은 영입니다.
“능력의 영을 받았다”는 것은, 우리는 연약해도 능력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할 수 있고 어떤 재난도 감당할 수 있음을 말합니다. “사랑의 영”은 모든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하나님, 우리 백성에게 사랑의 영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국가와 민족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가족과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랑의 영이 이 땅에 임하길 원합니다.” 사랑의 영은 모든 두려움을 추방합니다.
우리는 또한 “근신의 영”을 받았습니다. ‘근신의 영’(spirit of a sound mind)은 건전한 사고력을 뜻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 구원받은 사람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두려움과 분노에 떠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건전한 마음, 정상적인 마음, 건전한 사고방식을 갖추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극단적인 사고가 아니고 건전한 생각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왜 우리는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나?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선택받은 백성이기 때문입니다(사 41:8).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선택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주관하시고 이 나라와 이 백성과 이 민족을 주관하십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우상을 섬기던 백성을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위대한 하나님, 능력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을 섬기고 건강한 마음과 건전한 생각의 영을 믿습니다.
그분의 선택을 받은 이 나라, 이 백성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의 모든 두려움을 제거해주시길 원합니다.
두려움은 상황을 과장할 뿐 문제를 해결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 됩니다.
100여 년 전, 이승만 박사가 젊은 시절에 쓴 책이 있습니다.
한국에 기독교가 들어온 지 2-30년 밖에 되지 않은 때입니다. [한국교회 핍박]이란 책에서 이 대통령은 “한국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특별한 민족”이라고 했습니다.
그 당시 한국교회를 방문한 외국 사람들까지도 “한국은 제사장의 나라( Chosen Chosun), 즉 선택받은 조선”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백성을 사랑하십니다. 일제의 탄압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처참했던 6.25에서 우리를 지켜주셨습니다.
가난했던 나라를 세계경제 12위 국가로 만드셨습니다. 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교회를 주시고 세계에서 두 번째의 선교국가로 만드셨습니다.
어제 밤, 우리나라 축구대표팀이 요르단과의 시합에서 마지막에 2골을 허용해서 아쉽게 비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요르단 정도에게 쩔쩔매는 나라가 과거 월드컵에서 4등을 한 것은 기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을 사랑하시고 격려하시고 힘주시고 이 백성과 함께 하신다는 증거를 우리 역사 속에서 종종 보여주십니다.
광우병도, AI도 두려워 할 일이 아닙니다.
두려워해야 한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백성이 되십시오. 그분을 두려워하면 그분께서 모든 복을 주십니다.
그것이 광우병을 두려워하는 것 보다 훨씬 낫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반드시 붙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향해 약속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41:10).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의 손을, 이 민족의 손을, 여러분과 저의 손을 붙들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이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신지 아닌지 모르고 있는 그 시간에도, 여러분이 잠자고 있는 그 시간에도, 심지어 의심하고 있는 그 시간에도 하나님은 여러분과 함께 계십니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임을 알고 사는 사람은 두려워하거나 분노하거나 걱정 근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분 한 분의 아버지이신 것을 느끼시기 바랍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님처럼 폭풍 속에서도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우상을 숭배하던 우리가 돌아서서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경외하며 살고 있습니다.
재앙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사는 민족이 되었습니다. 두려움의 영이 아닌 사랑의 영을 받았습니다.
어떤 일이나 상황이 사실이든 아니든 여러분을 두렵게 만든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아닙니다.
어두움의 영은 쫓아내야 할 것입니다. 이 땅과 여러분 위에 하나님의 평화와 용기와 건전한 마음과 희망의 영이 임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오히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의지하면 모든 두려움의 영들은 떠날 것입니다.
“보라 네게 노하는 자들이 수치와 욕을 당할 것이요 너와 다투는 자들이 아무것도 아닌 자들이 될 것이다.” 바로 이것입니다.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강한 마음으로 전진하면 모든 두려움의 세력과, 나라와 개인의 문제들이 사라질 것입니다. 믿음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두려움은 승리하지 못합니다. 사랑만이 승리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십시다.
나라를 사랑하십시다. 용기를 사랑하십시다. 믿음을 사랑하십시다. 기도를 사랑하십시다. 이웃을 사랑하십시다. 평화를 사랑하십시다. 우리 농민을 사랑하십시다.
사랑보다 더 강력한 치료제는 없습니다. 사랑은 모든 두려움을 이깁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실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13절에도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 아침, 이 하나님의 음성을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움에서 해방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은 도와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른손으로 붙들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하십니다.
확실합니다. 두려움은 성령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악령입니다. 악령을 물리치고 성령으로 언제나 강하고 담대하게 되기를 원합니다.
옛날 다니엘도 두려움에 벌벌 떨어 “죽은 자처럼 됐다”고 했습니다. 너무 떨어서 얼굴이 창백해져서 죽은 자처럼 쓰러졌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 “다니엘아, 두려워 말라 네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강하라 강하게 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듣는 순간 다니엘은 “내가 강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다니엘을 향해 말씀하셨던 그분이 오늘 아침 여러분을 향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두려워 말라. 너희에게 평화가 있을지어다. 너희는 강건하여라.”
이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인 줄을 알고 여러분의 가슴속에 힘과 용기와 희망과 사랑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우리가 두려워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믿음과 사랑과 평화를 주옵시고 불안과 두려움과 분노에서 자유롭게 하시고 창의력과 생명력이 솟아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