넉넉한 은혜(고후 9장 6-8)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9: 6- 8
6-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7-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8-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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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저를 위해 기도해 주셔서 지난 주말에 시카고에 잘 다녀왔습니다. 저의 세 딸과 두 사위와 다섯 손주와 사위 될 젊은이와 오랜만에 저희 온 집안 식구들이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날에는 큰딸의 대학원 졸업식이 있었습니다.
결혼하고 바로 대학원을 시작했는데 그 동안에 아기 셋을 나아 키우다보니 졸업하는데 9년이나 걸렸답니다. 9년만에 마치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하였습니다.
만약 1년이나 2년만에 마쳤으면 지식만 얻었지 깨달음이 적었을 텐데, 상담학을 오래 공부하다보니까 많은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아이를 셋이나 키우면서 더 알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오전에는 졸업식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막내딸의 약혼식을 했습니다. 그 딸이 전에는 계속 독신의 은사가 있다고 주장하더니 이제야 독신의 은사를 포기하는 것 같습니다.
10월에 결혼하겠다고 해서 아주 즐거웠습니다. 이 딸은 꼭 목사님과 결혼하겠다고 하였는데, 사돈 될 집안을 만나보니 그 집안에 목사님이 10 분이 계셨습니다. 당사자는 목사님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비슷하게 기도에 응답해 주셨습니다.
시카고 행 비행기를 타고 가는데 제 왼쪽 앞줄에 25-6세 정도의 젊은 엄마가 돌 정도 된 아기를 데리고 가더군요. 인천에서부터 시카고까지 13시간 동안 그 아기가 칭얼대고 울고 보채는데 그 젊은 엄마는 아주 능숙하게 그 애를 끌어안고 먹이고 토닥거려 주고 재워주더군요.
저는 옆에서 가만히 지켜보면서 '아, 우리도 다 저렇게 컸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제멋대로 보채고 울고 속상하게 할 때도 어머니는 말없이 우리를 보듬어주시고 먹여주시고 입혀주시고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저절로 쑥 큰 것처럼 착각할 때도 있고, 부모님들의 사랑과 헌신, 눈물과 수고를 잊어버릴 때도 가끔 있지요. 지난 주 동안에 어버이날이 있었는데, 여러분의 부모님이 아직 살아 계시다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셨기를 바랍니다.
아직도 못하셨다면 오늘 예배를 마치고 전화라도 한 번 드리든지, 직접 방문하셔서 부모님의 노고를 위로해주시기 바랍니다.
어머니는 그렇게 자식을 위해서 바칩니다. 그래서 아무리 덩치가 크고 건장한 남자도 '어머니'라는 말만 나오면 기운을 못 씁니다. 눈물을 흘리며 감격하고 고마워하며 어머니를 잊지 못합니다.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우리는 어머니를 잊을 수 없습니다. 그 분들의 사랑과 수고와 헌신을 도저히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 어머니와 아버지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부모님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돌아올 때는 제 옆에 한 모자가 탔습니다. 어머니는 짐작컨대 67-8세 정도 되셨고 아들은 45-6세 정도 되었더군요. 13 시간 동안 그 두 분의 모습을 옆에서 그저 말없이 지켜만 보았습니다. 그 아들은 중풍에 걸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를 조심스럽게 모시고 탔습니다.
저는 비행기 탈 때 습관이 하나 있는데, 좁은 데 앉고 싶지가 않아서 맨 마지막에 탑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비행기를 놓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도 마지막에 타시더군요. 그 분들을 보면서 제가 참 감동을 받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바로 가정입니다.
꽃이 참 아름답지만, 가정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부부의 모습, 부모와 자식의 모습, 형제의 모습보다 아름다운 것은 세상에 없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은 엄마가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세상에 감동적인 것이 많이 있지만 그 모습이 제게 가장 감동을 줍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거동이 불편하니까 그 아들이 어머니를 돌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아들이 아주 건장하게 잘 생겼습니다.
그러나 정말 멋있는 것은 그가 어머니에게 따스한 눈길을 줄 때 그의 얼굴에 풍기는 내적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오른 쪽이 마비되었는지, 그는 앉아서도 계속 어머니의 오른 손을 만져줍니다.
어머니가 심심하신 것 같으면 그는 TV 모니터를 꺼내서 좋아하시는 프로를 보게 해 드립니다. 제가 "한국에 사시나요?" 라고 물었더니 "저는 미국에 사는데 어머니께서 저를 방문하셨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두 분의 모습을 보니 너무 아름답습니다. 제게 깊은 감동을 주십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는 "이런 아들을 두셔서 참 좋으시겠어요"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분들이 어떻게 옆 사람에게 그런 깊은 감동을 줍니까? 두 사람 사이에 사랑을 심었기 때문입니다. 그 어머니는 아들이 태어날 때부터 오늘까지 엄청난 사랑을 그에게 심으셨고, 어머니가 심은 그 사랑이 아들에게 전해져서 아들의 가슴속에서도 어머니를 향한 사랑이 솟아오르고 사랑의 열매로 나타난 것입니다.
여러분! 심는 대로 거둡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이 나오고, 증오를 심으면 증오가 나옵니다. 칭찬을 심으면 칭찬이 나오고, 원망을 심으면 원망이 나옵니다. 우주의 보편적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인생에서 무엇을 어떻게 심는가는 대단히 중요합니다.
우리 나라에도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라는 속담이 있지요? 이것은 성경적인 진리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에 보면 "사람이 심은 대로 거두리라" 하셨는데, 이것은 보편적 진리이므로 한국 사람들도 체험을 통해서 그런 속담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잘 심어야 됩니다. 그래야 잘 거둡니다. 심지 않고 거두는 법이 없습니다.
인생은 대단히 공평하고 정의롭습니다. 하나님의 진리요, 우주의 진리요, 농사의 진리요, 보편적 진리입니다. 효를 심으면 효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분이 있는데, 그 분을 사귀는 동안에 늘 제 마음에 꺼림직 한 것이 있었습니다.
그 분은 자기 부모님에게 잘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자라날 때 보니까 부모님에 대한 태도가 불손하였고 부모님께 말도 막 함부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항상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러다가 여러 해가 지나서 그 분도 결혼을 하였고 자식을 나았습니다.
이제는 손주들까지 두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게 와서 자식들이 얼마나 자기에게 힘들게 하는가를 이야기하는 겁니다. 제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당신이 당신의 어머니께 한 것이 있지 않느냐?'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부모님께 했던 그대로 자식들이 그에게 그렇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게 와서 눈물을 짓고 하소연을 하는데 저는 그 분이 그 부모에게 하던 것을 보면서 늘 걱정을 했었거든요. 그렇게 심은 대로 나타나더군요. 효를 심으면 효가 나옵니다. 사랑과 인내와 충성을 십 몇 년씩 심으면 그대로 나옵니다. 열심히 공부한 아이들은 대학에 가지요. 하루에 4시간씩 바이올린을 연습하는 고등학생을 만난 적이 있는데, 너무 너무 잘 합니다.
제가 있던 학교의 채플시간에 와서 연주를 하는데 너무 잘 해서 모두 일어나 감격의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끝나고 제가 찾아가서 얼마나 연습하느냐고 물었더니 하루에 4시간씩 한답니다. 하루에 15분 연습하는 사람과 4시간 연습하는 사람이 다른 것은 당연합니다.
심는 대로 거두니까요.
고등학생이 그 수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마지막에 일어나 기립박수를 치게 하는 실력가가 된 데에는 그만큼 심은 것이 있습니다. 열심히 심었고 잘 심었습니다.
오늘 마침 검사님들이 여러분 오셨는데, 사법고시 준비하느라고 죽도록 고생하셨지요?
고생을 해야 통과를 하는 거지요. 물론 그 때는 힘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심었기 때문에 거두는 거지요. 정직을 심으면 신뢰감을 거두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지 않는 것은 정직과 성실을 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꾸준히 심는 자는 반드시 거둘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특별히 잘 심어야 됩니다.
제가 참 싫어하는 말이 있습니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그런 망측한 말이 세상에 어디 있습니까?
"심세, 심세, 젊어서 심세" 라고 해야지요.
한참 심어야 될 나이에 놀기만 하자는 이런 망할 말이 어디 있습니까?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개인을 망하게 하고 가정을 망하게 하고 가문을 망하게 하는 이런 말이 한국에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며, 여러분들은 아예 입에 올리지도 마십시오.
젊었을 때는 심어야지요.
다윗을 기억하시지요?
겨우 열 여섯, 일곱의 나이에 거인 골리앗 장군을 죽여서 이스라엘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다윗을 얼마나 많이 심은 사람인지 한 번 연구해 보십시오. 한참 놀 나이에 그 젊은이는 많을 것을 심었습니다. 위대한 시인이 되어서 시편 150편의 절반 이상이 그 분의 것입니다. 그는 양을 치면서 자연을 바라보며 시를 썼습니다.
그 때 야구는 없었지만 돌팔매를 연습해서 언제나 스트라이크였습니다.
젊었을 때 개발한 것 때문에 골리앗 장군을 때려눕히고 온 국민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젊었을 때는 개발해야 됩니다. 땅을 열심히 파서 넓고 깊게 토대를 쌓아야 합니다. 심어야 됩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슈바이처 박사의 전기를 읽어보니까 그 인생의 절반은 훈련받는데 즉, 심는데 쓰겠다고 젊어서부터 노력했고, 그 결과 신학자, 의사, 철학자, 작가, 음악가가 되었습니다.
그 분은 신학박사가 된 후에 의과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의학을 열심히 공부해서 아프리카로 가서 얼마나 엄청난 일을 했습니까?
그는 심지어 오르간까지 배워서 얼마나 열심히 연습을 했던지, 대 연주가가 되었습니다. 이 분은 "인생의 절반은 심어야 된다. 땅을 파는데 써야 된다"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인생의 절반만 심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계속 심어야 됩니다.
사람은 노인이 되어가면서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납니다.
자기가 갖고 있는 장점이 극대화되는 사람이 있고 단점이 극대화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장점이 극대화되는 노인들은 그 자손들에게 축복과 은혜가 되고 지역사회에 큰복이 됩니다.
반면에 단점을 오랜 세월 반복적으로 개발한 사람들은 연세가 들수록 심지어 손주들까지도 그 할머니, 할아버지를 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단점이 극대화되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고생을 시키는지요.
그것이 하루아침에 된 것입니까?아닙니다.
일생을 심은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심은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더 아름답고 덕스러운 사람이 될 것인지, 아니면 손주들도 피하는 그런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것인지를 지금 결정해야 됩니다.지금 심을 때 결정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일생을 사시면서 반드시 여러분의 가정과 교회와 이웃과 지역사회에 꼭 축복이 되는 사람이 되도록 심으시길 바랍니다. 지금 결정해야 합니다.
이 다음에 육십, 칠십, 팔십이 되면 그 때는 이미 심은 것을 거두고 있는 상황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을 거둘 것인지, 얼마를 거둘 것인지, 추수의 내용과 양은 심는 사람이 미리 결정을 해야 합니다. 6절에 보면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만일 적게 거두기를 원하면 조금만 심으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이 미리 정해야 됩니다. 추수할 때가 되어서 그 때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조금 심어 놓고 많은 것을 거두려 해 봤자 심은 것이 적기 때문에 거두는 것도 적습니다. 조금 거두고 싶은지 많이 거두고 싶은지, 큰 것을 걷고 싶은지 작은 것을 걷고 싶은지는 미리미리 여러분이 결정을 해야 합니다.
또 "각자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라고 하였습니다. 결국 마지막 추수는 우리가 정하는 것입니다. 젊었을 때는 꿈과 비전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앞으로 무엇을 거두고 싶은지를 미리 정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심을 것을 심고 안 심을 것을 안 심지요.
제 친구 하나가 UN 사무총장이 되겠다고 대학 때 그랬습니다. 그래서 외무부에 들어가라고 권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자기는 낙하산처럼 위에서 떨어질 것이라서 외무부에 안 들어가도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길에서 우연히 만나서 요즘 무엇을 하냐고 물었더니 음악공부를 한다고 하더군요. 음악공부를 해서 어떻게 UN 사무총장이 되냐고 했더니 걱정하지 말라고 장담을 합니다. 2년이 지나서 만났더니, 여자친구가 무용과를 다녀서 발레를 같이 공부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헤어진 지 30년이 지났습니다. 30년 후에 만나 보니까 UN 사무총장이 아니더군요. 미국 어느 도시 작은 골목에서 피자 집을 하고 있었습니다. 피자집 주인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거두겠는지 미리 보고 정해서 자기가 결정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거두고 싶으면 좋은 것을 심어야 됩니다. 좋은 것을 심지 않고 어떻게 좋은 것을 거둡니까? 나쁜 것을 심어 놓고 어떻게 좋은 것을 거둡니까? 그럴 수가 없습니다.
세상은 공평하고 보편적 진리가 이 세상에 있습니다.
또 심을 때 태도도 좋아야 합니다. 7절에 보면,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는 것은 좋은 태도가 아닙니다. 즐겨하는 자, 똑같은 일을 하더라도 즐겁게 하는 것입니다. 왜 즐겁게 합니까? 미래를 보니까요. 내가 무엇을 추수하고 싶은지 미래를 보았기 때문에, 지금은 수고하여 심고 밭 갈고 애를 쓰고 있지만 언젠가는 거둘 것을 보니까 즐거운 것이지요. 그러나 그런 소망도, 계획도, 목적도 없이 살 때는 어떻게 그 사람이 즐겁겠어요?
심는 것이 귀찮지요. 공부하는 아이들이 그 공부하는 것이 귀찮고 힘들어서 어떻게든지 피하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것은 미래를 못 보기 때문입니다. 미래의 추수를 보지 못하고 있으므로 심기가 싫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인색하게 심으면 조금 거둘 것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억지로 심으면 재미가 없습니다.
심을 때마다 즐거운 태도로 하는 것입니다.이런 사람이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입니다.
저 사람이 축복을 받을까 못 받을까, 저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시나 안 사랑하시나 하는 것은 지금 봐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추수하기 전에도 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압니까? 그 사람의 태도를 보면 아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우리가 봉사를 하지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자원 봉사팀으로 2000년 동안 지켜져 왔습니다.
세계 인구 중 20억이 헌신 봉사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오늘까지 성장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교회는 김상복 목사가 잘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성도들이 헌신 봉사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총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은 그 태도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심으러 갈 때 기뻐하며 찬송하며 즐거워하며, 앞으로 다섯 달 후에, 1년 후에, 2년 후에 거둘 것을 기대하면서, 추수의 양과 질을 생각하면서 심기 때문에, 지금은 힘이 드는 것 같아도 즐거운 마음과 밝고 긍정적인 태도로 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좋은 태도가 늘 있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실 그런 태도가 여러분에게 꼭 있어서 어차피 심어야 할 일이라면 좋은 태도로 즐거움으로 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심을 때, 자라게 하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씨를 심고 물을 주고 김을 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할 일입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울은 심고 아볼로는 물을 주나 자라게 하는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어떤 때는 우리가 발버둥치고 노력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어느 분과 대화를 하는 중에 물었습니다. "어떻게 무엇이든지 잘 되어 갑니까?" 그랬더니 그 분이 "글쎄요, 목사님, 잘 모르겠습니다. 제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저를 축복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라고 합니다.
"제가 다른 사람과 특별히 다르게 하는 것은 아닌데, 제가 하나를 심으면 거기서 30배가 나오고 60배가 나오고 100배가 나오는데, 어떤 때는 저도 이해를 못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이고 축복인 줄로 저는 생각합니다" 그러시더군요.
옳습니다! 집을 지키는 자가 아무리 지켜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지 않으시면 지키는 자의 수고가 헛되다고 시편에 말씀하고 있지요?
여러분과 저는 궁극적인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나님이심을 믿으십시오!
그분을 의지하시고 그분을 찬양하며 그분으로부터 힘을 얻어서 심어 나갈 때,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꼭 축복을 베풀어주실 것입니다.
또 하나의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심는 것보다 더 많이 거둔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누가 농사를 짓겠습니까? 농부들은 그것을 압니다.
예수님은 씨 하나를 심으면 30배, 60배, 100배를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씨 하나를 심으면 옥수수 하나에도 수 백 개가 달려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햇볕과 비와 바람을 적당히 보내 주시면 옥토에 심긴 밭에서는 30배, 60배, 100배가 나오는 것입니다.
많이 심어야 할 사람은 많이 심어야 하고, 자주 심어야 할 사람은 자주 심어야 됩니다. 이렇게 심는 것보다 더 많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8절에 보면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합니다.
무엇입니까? 우리보고 왜 심으라고 하십니까?
심는 것보다 더 많이 주셔서 선한 일을 많이 하며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목적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많이 심으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모든 착한 일들을 도모하며 살 수 있게 하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있는 사람만이 착한 일을 할 수 있지요? 지식이 있어야 지식 없는 사람을 도와줄 수 있지요. 몸이 건강한 사람이어야 약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지요. 키가 큰 사람이어야 선반 위의 것을 내려줄 수가 있습니다.
지혜가 있어야 다른 사람을 지혜롭게 도울 수 있습니다. 사랑이 있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을 사랑스럽게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평화가 있는 사람만이 평화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없는 사람은, 가난한 사람은 할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잘 심고 잘 거두고, 자주 심고 자주 거두고, 좋은 것을 심고 좋은 것을 거두는 인생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원리에 맞추어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살아갈 때, 여러분과 저는 많은 것을 거두어서 내 인생에 부족함과 모자람이 없고 오히려 축복이 넘쳐흘러서 평생토록 모든 선한 일을 도모하며 살 수 있는 축복이 꼭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쁘게 심어야 합니다. 즐겁게 심어야 합니다. 많이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넉넉한 은혜를 누려서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여러분 가정의 평화와 이 땅의 풍성한 축복들이 여러분을 통하여 꼭 나타나게 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