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김병삼목사

[김병삼목사]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계 2: 2- 5)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3.04.28|조회수80 목록 댓글 0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22- 5)

성경본문: 요한계시록 2:2-5

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3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노라

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

 

인터넷에서 한 청년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제가 다니는 교회의 일입니다. 저희 교회 담임목사님께서 어느 날 설교를 마치고 침통한 표정으로 성도들에게 사죄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시기 시작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울음이 섞인 음성으로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하셨습니다.

한 여성도와 부적절할 관계를 가졌었다고......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너무 부끄러워 관계를 청산하고 회개했지만 목사로서 성도 여러분의 용서를 구하지 않고는 이 자리에 설 수 없어서 사죄드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용서해 달라는 말과 함께. 그 다음 주 정확하게 절반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요즘 어게인 1907’이라는 표어로 예전 평양대부흥의 그 시절로 돌아가자는 운동이 있는 줄 압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회개하라고만 이야기할 뿐이지 그 당시에 회개와 함께 있었던 용서는 말하고 행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후에 자신이 남았다고 떠난 성도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목사님이 그랬다는 사실에 놀라고 실망했다. 그러나 내 죄를 하나님께서 용서하셨고, 목사님 죄도 용서하셨는데 내가 용서 못한다고 버틸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내용으로 글을 정리했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

오늘 본문의 내용은 에베소 교회를 향한 편지입니다.

처음 말씀은 칭찬으로 시작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많은 수고를 통하여 이루어 놓은 것이 많았습니다.

에베소는 사도행전 18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전도할 곳이며,3차 여행 시에는 그곳에서 세례를 주고 안수할 때 성신이 강림하여 방언과 예언을 하며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난 것을 본 요술객들이 가지고 있던 술서 5만 어치를 소각하고 예수를 믿었던 곳입니다(19:1-20).

 

에베소는 부흥한 교회로, 기독교 역사에서 얼마나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던 교회인지 모릅니다.

마치 한국 교회가 역사의 유래가 없는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 세계에서 선교사를 두 번째로 많이 파송한 나라가 되었다는 것, 세계의 10대 교회 가운데 몇 교회가 한국 교회라는 것과 같은 자랑할 것이 많이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처음 사랑을 회복하지 아니하면 그 영광의 촛대를 옮기시겠다는 경고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여기서 촛대를 옮기시겠다는 말씀은 더 이상 그 교회를 사용하지 않으시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한 절망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사랑을 회복한다면, 그리고 회개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민족의 교회를 통해 역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강력한 경고와 도전을 줍니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에베소 교회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형체만 남은 에베소의 유적지는 사람들이 찾아와 촬영하는 장소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평양 대 부흥의 감격을 맛보기 위해 평양의 <장대현 교회>를 방문했을 때, 거기에는 어떤 교회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어떤 교회도 기념비도 없었습니다.

단지 소년 소녀들에게 체제를 교습시키는 소년 궁전이 서 있을 뿐이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1907년을 맞이하면서 많은 연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핵심은 그때의 감격과 부흥을 다시 한번 경험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오셔서 설교하신 안석모 교수님 고백이라고 표현을 했습니다.

 

부끄러운 베드로의 고백이 초대교회의 능력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해석들이 가능하겠지만, 1907년 대 각성 운동의 기본을 성결 운동이라고 정의합니다.

죄에 대한 철저한 자각, 거기에 대한 고백과 배상, 변화된 삶, 그리고 성령의 능력을 통한 전도 등이 전형적인 대 각성 운동의 특징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감리교 목사이기에 1903824일 원산에서 시작된 하디 목사님의 회개와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압니다.

그러나 굳이 교파적인 색으로 인하여 년도를 고집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국 전체 교회가 1907년의 대 각성 운동을 통해 옛 사랑을 회복할 수 있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중한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첫 사랑의 회복은 한국 교회의 교파간의 반목과 시기심을 극복하는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36절에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 자라나게 하셨나니 라고 되어 있습니다.

초대 교회 성령의 역사는 한 사람을 통한 역사가 아니라, 모든 사람을 통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바울이 가장 경계 하였던 것이, 하나님 편에 서지 아니하고 사람 편에 줄을 서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재미있는 역사를 알려드리겠습니다.

188545일 부활 주일은 개신교에 있어서 아주 역사적인 일로 기록됩니다.

공식적으로 한국 교회에 장로교 목사인 언더우드와 감리교 목사인 아펜젤러 선교사가 인천을 통해 한국 교회에 첫 발을 내 딛었기 때문입니다.

논문도 나오고 논란이 되었던 것 중에 하나는 과연 누가 먼저 한국 땅에 첫 발을 내 딛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가지 근거들을 대지만 당시에 아펜젤러는 결혼을 했고 언더우드는 총각이었던 것으로 보아 미국 문화에 따라 ‘lady first' 즉 감리교 선교사의 부인이 먼저 한국에 들어 왔을 것이라고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소모적이고 의미 없는 논쟁입니까?

이들의 전통을 이어받은 신앙의 후손인 우리가 교파적인 논쟁을 하고 있으나, 이 둘은 얼마나 공통점이 많은 사람이었는지 모릅니다.

언더우드는 본래 개혁주의 전통과 감리교회의 경건주의를 체험하며 자란 사람이었기에 장로교 동료 선교사들에게 시끄러운 감리교도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펜젤러는 본래 칼빈주의 계통의 개혁교회의 신앙 전통에서 자랐지만 마음대로 할렐루야를 외칠 수 있는 교단을 찾아 감리교회로 옮긴 사람입니다.

 

이 둘은 188310월 미국의 커네티컷에서 열렸던 초교파 신학생 수련회에서 선교사로 헌신하기로 결단을 했습니다.

이 둘은 다 같이 다른 나라로 선교지역을 선택한 사람이었습니다.

언더우드는 본래 인도 선교를 생각하고 있었으나 선교지를 결정하는 마지막 순간에 조선에 갈 사람이 하나도 없구나. 조선은 어이할고?” 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후 생각을 바꾸어 조선으로 방향을 틀었습니다.

 

아펜젤러의 원래 계획도 일본의 선교사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동료였던 워즈워드가 조선을 생각하고 있다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선교를 나갈 수 없게 되자 아펜젤러에게 대신 조선에 가줄 것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고민 끝에 아펜젤러는 조선으로 가게 됩니다.

이 두 사람 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조선을 향해 오게 된 것입니다.

 

사실 교파주의적 논쟁과 경쟁은 미국에서 상당히 심각한 지경이었습니다.

특히 남북 전쟁 이후에 교회의 분열이 더욱 심각하게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이 둘은 1887년에 공동으로 성경 번역 위원회를 만들었습니다.

이 둘은 세례를 베풀 때에 한 사람은 집례를 한 사람은 보좌를 하면서 협력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18879월과 10월 사이에 언더우드는 정동 사택 사랑방에서, 아펜젤러는 남대문 안의 베델 예배당에서 각각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이것이 최초의 교회인 새문안 교회와 정동제일교회의 출발입니다.

 

이 둘은 자신이 속했던 선교부와 교파를 초월한 하나 된 교회를 생각하며 협력하고 목회했던 모습을 역사적 자료를 통해 얼마든지 찾을 수 있게 됩니다.

한국 첫 번째 교회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 하나 된 교회를 이루려는 협력 선교를 통해 부흥의 역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성령님은 분열된 곳에서 역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 된 곳에서 성령의 역사가 불길처럼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2장의 오순절 성령체험이 어떻게 시작하였습니까?

1절입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다시 한 번 제가 여러분에게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만나교회는 감리교단에 속하여 있으나 하나님의 교회보다 우선하지 않습니다.

우리교회는 감리교인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감리교의 교리가 건강한 교인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만일 교단이라는 색이 그 배경이 하나님의 사역보다 앞서 나간다면 과감하게 그 옷을 벗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대 각성 운동이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는 하나님의 역사는 교단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모여서 기도하는 사람들, 회개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라는 사실입니다.

 

회개 운동으로. . .

본문에 처음 사람을 회복하라는 말씀은 아주 많은 복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Living Bible>에 보면 본문 4절의 말씀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Yet there is one thing wrong; you don't love me as at first!" ‘사랑이라는 단어를 접하면서 고린도 전서 13장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천사의 말을 하고, 네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준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nothing!”

에베소 교회에서 있었던 좋은 일들이 있습니다.

선한 일을 많이 했구나!” “많은 인내가 있었구나!” “악과 싸워 이겼구나!” 그러나 너희가 나를 향한 첫 사랑을 버렸구나!” 여기에서부터 어긋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7절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덮어 주며(표준새번역)

그런데 한국 교회의 선교가 시작되고 하나님께서 일하시려고 하는데 자꾸 걸림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선교사들의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서 선교하다 죽어가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자신의 몸을 불사르게 내어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 선교사들은 성령을 체험하고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헌신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첫 사랑이 무엇입니까?

그 사랑을 받았을 때, 그 사랑을 알 때 모든 것들이 용납되고, 모든 것들을 품어주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사랑이 식어지면서 자기 자신이 살아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잃어버린 우리의 헌신과 노력은 결국 자신의 의를 드러내게 되고, 결국은 자신의 지경을 넓히는 일이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잃어버린 자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 무언가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겠습니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의 첫 사랑을 경험한 체험이 있습니까?

1903년 원산과 1907년의 대 각성 운동은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성령체험과 함께 회개의 운동으로 번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잃어버렸던 첫 사랑의 회복이 새로운 성령의 운동으로, 잃어버렸던 첫사랑의 회복이 회개의 운동으로, 첫 사랑을 경험한 사람들의 회개 운동으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첫 성령 운동의 진원지가 되었던 원산의 하디 목사1890년에 내한하여 의사로서 열심히 선교하며, 후에는 감리교 목사가 되어서 선교를 하였습니다.

그에게는 누구에게도 따르지 못하는 열심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에서 역사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인간의 열심과 하나님의 역사는 분명히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사역에서 열매가 일어나고 있지 않다면 심각하게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하디는 실패 가운데 심각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성령 강림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그에게 부딪친 말씀은 스가랴 46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네가 한국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구나! 그들을 우습게 여기고, 교만하구나!”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민족, 하나님의 사랑을 입어야 할 그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 있었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색시가 좋으면 처갓집 말뚝에다 절을 한다.”라고 했는데, 그에게 있었던 열심이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아니었다는 것을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시고, 그의 잘못을 시인하고 회개하기 시작할 때,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회개에는 전염성이 있어서 계속적인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하디가 회개한 그 다음 주일에 원산에서 사경회가 열리게 되었는데, 여기에서 회개가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회개의 특징 중에는 보속(補贖)’ 행위가 있습니다. 교인들이 자기가 지은 죄를 보상하거나 혹은 보상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덕주 목사가 쓴[한국 교회 처음 이야기]에 보면 윤승근양심전이라는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경기도 벽제 출신 윤승근은 믿기 전 불량배소리를 듣던 사람이었다.

예수를 믿은 후엔 전혀 새사람이 되어 각지를 다니며 전도하였는데, 교통이 불편한 강원도 선교를 자원하여 지경터에서 가까운 김화 새술막을 거점으로 전도하고 있었다.

그도 19039월 원산에서 열린 사경회에 참석했다가 은혜를 받고, 전에 선교사 몰래 쓴 7달러를 갚으면서 용서를 구했다. 그는 새술막으로 돌아오는 내내 기도하였다.

하나님이시여, 과거에 지은 모든 죄를 기억나게 하사 해를 입힌 자들에게 사죄하게 하소서.”

 

그리고 집에 도착했을 때, 20년 전에 지은 죄가 떠올랐다.

예수 믿기 전 인천에 있던 주전소에 근무할 때 정해진 봉급보다 많은 돈을 받고도 그 돈을 돌려주지 않고 쓴 것이 생각났던 것이다.

윤승근은 그 돈을 갚기로 하고 20원을 마련하여 인천 주전소를 찾았으나 문이 닫은 지 이미 오래였다. 그는 포기하지 않고 주전소 기능을 관장하고 있던 탁지부를 찾아가 사정을 말하고 돈을 내밀었다. 탁지부 관리는 의아해 했다.

대저 나랏돈이라면 누구나 거저먹으려고 하거늘 예수교인은 어찌된 일인지 20년 전에 정부 잘못으로 나간 돈마저 갚으려 하는가?

탁지부에서는 윤승근이 가져온 이 돈을 양심전이라 하였고 탁지부에서 발행한 양심전 영수증은 하디 목사가 기념으로 가져갔다.

 

Again 1907!

평양에서 영적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당시의 평양은 소돔과 고모라 도성으로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27살의 토마스 <셔어몬 호>를 타고 들어가 복음을 전했을 때 첫 번째 순교의 피를 흘렸던 곳입니다.

 

초대교부였던 터툴리안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라고 했는데, 유독 순교의 피가 흐른 그곳에서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대 각성 운동이 의미가 있는 것은 단지 영적 대 각성 운동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 각성으로까지 이어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평양의 대 부흥은 우리민족의 부모들에게 교육열을 일으켰으며, 금주와 금연 운동, 우상 숭배에서 해방되고, 여권이 신장되며, 기독교 학교 설립이 촉진 되었습니다.

그리고 윤리 의식이 증진되고, 새로운 세계관이 정립되게 되었습니다. 이것으로 영적 변화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역사 속에서 증명된 일이 아니겠습니까?

 

당시 부흥 현장의 중심에 있었던 매큔 선교사는 미국 북장로교 선교부에 다음과 같은 글로 선교 보고를 했습니다.

존경하는 브라운 박사님,우리는 매우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권능 가운데 임하셨습니다. 장대현 교회에서 모인 지난 밤 집회는 최초의 실체적인 성령의 권능과 임재의 현시였습니다.

우리 중 아무도 지금까지 이전에 그와 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우리가 웨일즈, 인도에서 일어난 부흥 운동에 대해서 읽었지만 이번 장대현 교회의 성령의 역사는 우리가 지금까지 읽었던 그 어떤 것도 능가할 것입니다.”

 

우리가 볼 수 없지만 1907년의 부흥 운동이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교회 역사학자들에 의하면 이 놀라운 부흥 운동의 역사는 회개와 함께 일어났다고 말합니다.

 

처음 사람의 회복은 반드시 회개를 동반합니다.

장대현 교회에서 부흥회가 열렸을 때입니다.

이 부흥운동의 주역이었던 길선주 목사님은 아직 목사 안수를 받기 전이었습니다.

설교 중 한 가지 연극을 실연해 보였습니다.

줄을 하나 가져오라 해서 허리에 묶고는 그 끝을 사회자에게 주며 단단히 잡고 있으라 했습니다. 줄은 팽팽하게 당겨졌고 둘 사이에 힘겨루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예수 믿기 전 선도 수행을 할 때 각종 차력을 해서 힘이 장사였던 길선주 목사님의 힘도 대단했지만 잡아당기는 사회자의 힘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한참 애를 쓰던 길선주 장로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는 청중을 향해 외쳤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를 세상에 묶어 두고 있는 죄의 사슬이오. 이 사슬을 끊고 하나님의 영생나라에 들어가야만 하는데 죄가 나를 놓아 주지 않는구나!”

 

그리고 힘을 불끈 썼습니다.

그러자 줄이 끊어지면서 길선주 장로는 튕기듯 건너편에 서 있던 선교사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선교사도 엉겁결에 두 손을 벌려 길 장로를 얼싸안았습니다.

마침내 나는 자유 하였소!”

길선주 장로의 외침이 있자 1천 명이 넘는 회중 가운데 통성기도가 순간 터져 나왔습니다. 과거에 지은 죄로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사람, 공개적으로 자기 죄를 자복하는 사람, 죄 사함의 은혜에 감격하여 기뻐 춤추는 사람 등등 은혜의 도가니였습니다.

 

당시 길선주 장로를 끌어안았던 선교사는 매큔이었습니다.

그는 당시 갓 신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와 평양 숭실 학교 교사로 있었는데 미국 교회의 전통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그는, 한국 전통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던 길선주 장로와 관계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둘이 마주 안는 순간 왈칵 눈물을 쏟았고 이 둘 사이에도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이후 매큔은 누구보다 한 민족을 사랑하게 되었고, 3.1운동 당시에는 만세시위를 도운 혐의로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회개 운동, ‘원초적 성령체험은 자연스럽게 교리와 신조, 교파의 장벽을 넘어섰으며, 화해와 일치의 운동으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바울이 에베소 교회에 보낸 편지에 나와 있는 교회론에 주목하십시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2:20-22)

 

하나님의 역사는 분열이 회복되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미움을 극복하는 데서 일어납니다.

첫사랑을 회복하고, 그 사랑으로 인하여 나도 사랑할 수 있을 때 일어납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열심히 헌신해도 사랑하지 못한다면 ‘nothing'입니다.

 

평야 대부흥 운동은 기독교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우리 한국 교회가 분열하고, 서로를 인정하지 못하는 한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에게서 화해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영이 역사하지 못합니다.

성령이 임하여 여러분의 삶이 변화되고, 회개하고, 첫 사랑이 증명되지 않으면 성령님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의 유산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 성령의 역사는 근세기를 거쳐 80년대 후반까지 영향력 있게 이 사회를 이끌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일들이 과거지사가 되고 말았습니다.

처음 사랑을 상실하고 과거 속에 묻혀 버렸습니다.

우리에게 순수한 열정, 조건 없는 희생, 따뜻한 화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소리는 요란하지만 반향이 없는 위기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에게 어떤 소망이 있을까요?

처음 한국 교회가 말씀으로 변화를 받아 그들의 삶이 변화되고 사회의 영향력을 주었던 그 첫 사랑과 영성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 1세대의 신앙이 과거에서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 세대에서 다시 한 번 일어나야 합니다.

 

창세기 2617-18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곳을 떠나 그랄 골짜기에 장막을 치고 거기 우거하며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들을 메웠음이라 이삭이 그 우물들의 이름을 그 아비의 부르던 이름으로 불렀더라.”

 

이삭은 아버지가 죽은 후 아버지가 팠던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적들이 메웠던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리고 그 우물의 이름도 아버지가 불렀던 이름으로 다시 회복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신앙의 흔적을 발견합니다.

그 순간 하늘에서 음성이 들렸습니다.

창세기 2624절입니다.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신지라.”

 

거기에서 이삭은 아브라함이 만났던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이 아버지에게 했던 것처럼 아들을 축복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1907년을 생각하며 말씀을 상고하게 됩니다.

하나님, 우리 조상들이 만났던 그 놀라운 하나님을 만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들에게 임했던 성령의 능력을 나도 체험하기를 원합니다.

그들이 하나님 앞에서 자복하고 회개했던 그 역사가 이 시간에도 임하기를 원합니다.” 우리 조상의 하나님을 우리가 만나야 합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