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김병삼목사

[김병삼목사]영국의 종교개혁자 존 웨슬리(John Wesley,행26:28)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3.12.06|조회수261 목록 댓글 0

영국의 종교개혁자 존 웨슬리(John Wesley,2628)

성경본문: 사도행전26:28

28-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

 

(John Wesley 1703-1791)

웨슬리 하면 떠오르는 것이 부흥운동입니다. 미국으로 넘어간 감리교회는 부흥의 역사를 경험했고, 한국에서 일어난 부흥을 보며 미국교회가 부러워하던 것이 엊그제의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역사를 통해 참 기이한 현상을 보게 됩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이 있는 곳에서 교회가 죽어간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신기한 현상입니다.

왜 교회는 성장하면서 죽어갈까요?

윈 형제가 쓴 [하늘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에 참 인상적인 내용이 등장합니다.

중국에서 가정교회가 핍박을 받던 때 기쁜 소식이 들립니다.

정부에서 정식으로 교회를 인정한다는 소위 삼자교회가 세워진 것이죠.

그런데 중국에서 교회가 편안하게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찾아오자 사단의 세력이 공격합니다.

외국에서 자본이 흘러들어와 교회를 돕기 시작하면서 가정교회들이 반목하기 시작합니다.

 

사단은 늘 우리에게 편하게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유혹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반대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난으로 이끄실 때에는 우리를 가장 신실하게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 개혁 설교를 하는 마지막 날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성장부흥이 결코 같은 단어가 아니라는 것을 말입니다.

성장하지만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과 멀어질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어쩌면 웨슬리가 종교개혁가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성공회>로부터 쫓겨나 고난의 길에 들어섰기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의 삶의 치열함이 하나님과 동행하도록 말입니다.

 

김장환 목사님 [큐티 365]에 나오는 이야기로 오늘 말씀을 열어가려고 합니다.

유명한 인도의 간디예수의 교리도, 예수의 교훈도, 예수의 가르침도 훌륭한데 너희 예수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왜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가지 못하느냐? 그래서 나는 예수님을 믿지 않겠다.”라고 고백을 했다 합니다.

 

내가 사관학교에 잠깐 들어갔다가 나왔다고 내가 군인이 되는 경우는 없습니다.

내가 의과대학에 잠시 다니러 갔다가 왔다고 해서 의사가 되는 것이 아닌 것처럼 오늘 우리가 교회에 들락날락했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 대한 정의는 성경을 찾아봐야 합니다.

어떤 새 신자가 성경을 두 번 통독하고 난 다음에 먼저 믿는 신자에게 교회사 책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왜 그러냐?”라고 물으니 읽어봐야겠다.”라고 해서 왜 읽으려고 하느냐?라고 다시 물으니 언제부터 그리스도인들이 전혀 그리스도를 닮지 않는 모습으로 살기 시작했는지 궁금해서 교회사를 한번 읽어보려고 한다.”라고 했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 명칭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릴 수 있습니다.

내 삶에 그리스도가 전부인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부업이 아니라 전업이 되도록 합시다. 나는 진짜 그리스도인입니까?

 

만나교회가 감리교회이고 제가 감리교 목사임에도, 창시자인 웨슬리에 대한 설교를 잘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제가 하는 목회의 여러 부분에서 웨슬리의 사상이 스며들어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합니다. <종교개혁>가 중에 제가 제일 존경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 웨슬리라는 것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단지 제가 웨슬리를 많이 거론하지 않았던 것은, 만나교회는 웨슬리 배우고 따르는 사람을 만드는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을 만드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웨슬리의 전통이 좋고 아름답지만, 그리스도의 영광을 가로챌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한 사람이 꿈에 죽어서 천국에 갔다가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되었답니다.

천국에서 가장 놀랐던 것은 장로교인이 하나도 없더라는 것이죠.

이 말을 듣고 저는 교파적인 이야기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천국을 가만히 살펴봤더니 감리교인도 하나도 없더랍니다.

침례교인도 성결교인도 순복음 교인도 하나도 없더랍니다. 놀라운 것은 천국에는 오로지 그리스도인들로 가득하더랍니다.

 

웨슬리의 생애와 회심

웨슬리의 생애를 이야기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회심입니다.

사도 바울의 회심, 어거스틴의 회심, 그리고 루터웨슬리의 회심은 모두가 세상을 바꿔놓는 일이었고 모두가 로마서와 연관이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존 웨슬리 (John Wesley, 1703~1791)1703617일 노스 링컨셔에 있는 엡워스 (Epworth)에서 태어났습니다. 당시 그의 아버지는 영국 국교회 목사였고, 그의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던 것은 아버지보다 학식과 재능, 신앙 면에서 비범하였던 그의 어머니 수잔나(Susanna)였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것처럼 위대한 인물들의 뒤에는 다 여인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개혁자 모두가 그러했듯이 학문적인 부분에서 충분히 성취를 이루고 성실했던 사람들이었던 것 역시 공통점인 듯합니다.

 

바울이 가진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지만, 그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사용하셨습니다.

어거스틴이 그가 배웠던 모든 지식으로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을 만난 후에 그의 모든 지식이 귀하게 사용되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웨슬리 역시 그가 배웠던 지식과 학벌이 개혁자로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삶의 배경이 되었고, 학문을 하면서 가졌던 성실함 역시 그의 사역에도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학교에서 기본고전 교육의 기초를 잘 닦았고 특히 히브리어를 빨리 터득하였습니다. 1720, 17세가 되었을 때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경건 운동(Holy Club)을 일으키면서 회원들과 함께 규칙적인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며, 희랍어 신약 공부와 고전 연구하며, 매 주일 성찬식과 수요일과 금요일에 금식을 했습니다.

또한, 말이나 행동에서의 모든 죄악을 경계하면서 올바르고 순결한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으며, 가난한 자들과 병든 자들, 감옥에 있는 자들을 방문하고 선행을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자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그리스도의 의에 대해 알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의 의를 쌓기에 열중하였습니다.

그의 문제는 율법 아래서 열심히 살았지만, 자신을 채찍질할 뿐 하늘로부터 주시는 은혜의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신학적으로 말하자면 칭의 없는 성화의 삶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에게 영적 호기심을 가져다준 사건이 있습니다. 그가 미국에 선교사로 떠날 때 바다에서 만났던 폭풍이었습니다.

루터가 죽음 앞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듯이, 선교 여행 중 배 안에서 폭풍 가운데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라비안 교도들을 보면서 깊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 안에 구원의 확신도 죽음도 준비되어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웨슬리가 직면했던 문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만, 아니 거의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설득되었지만아직은 참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그런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박호근 씨가 쓴 [탁월한 왕따 되기]라는 책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틀림없이 불행해질 수 있는 조건은 반쪽짜리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교회와 세상에서 이중성을 가지고 살 때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크리스천 사업가는 무엇을 의미하는 말인가?

혹시 교회에 다니면서 사업하는 사람을 모두 크리스천 사업가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해다.

만약 사업하는데 그 사업의 원리 속에 성경적 원리를 적용하지 않고 세상적인 방법으로만 장사한다면 그것은 교회 다니면서 사업하는 사람이지 결코 크리스천 사업가는 아니다.

 

진정한 의미의 크리스천 사업가는 사업의 원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적용해서 사업하는 사람을 말한다.

 

크리스천 직장인도 마찬가지다. 직장 생활의 원리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가지고 직장 생활을 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적 방법으로 직장 생활을 하며 교회에 출석하는 크리스천들은 많지만 정작 일터의 현장 속에서 크리스천답게 사업하거나 일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의 원리 속에 성경의 원리를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중적인 신앙을 버리고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를 밖으로 나타내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로 거듭 태어나자!

 

설교를 시작하기 전 우리가 보았던 웨슬리의 삶은 나무랄 것이 없는 경건성과 신앙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미국에 선교사로도 가보았지만, 자신이 하나님을 바라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는 지식적으로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슴이 뜨거워졌던 1738524일의 체험을 하기 전까지 구원을 받는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웨슬리는 회심의 역사를 체험하지 못한 체 거의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에서 공부를 하고 지성적인 목사가 되었고, 목회하던 아버지를 돕던 성실과 열정의 사람이었습니다.

이후 옥스퍼드 대학으로 돌아온 후에 학자로서도 그는 눈부신 활동을 했습니다.

소위 [신성 구락부](holy club)라는 단체의 지도자로 추대되기까지 했습니다.

 

이 단체는 1729년 타락한 조국을 바로 잡고자 뜻있는 청년 몇 사람이 조직하여 성경을 연구하는 곳이었습니다.

첫 열매는 구제운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모임을 통해 그들은 가난한 자를 방문하고 병자를 위로 하는 등 여러 가지 봉사사업을 펼치게 되었습니다.

 

그의 일기에 보면 이런 일화가 소개되고 있습니다.

한번은 남루한 옷을 몸에 걸친 소녀 하나가 웨슬리에게 구걸했습니다.

너는 대단히 배가 고픈 모양이로구나. 옷은 그것밖에 없니?”

 

웨슬리는 그 소녀에게 돈을 주려고 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으나 돈이 없어 줄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그의 서재 벽에는 훌륭한 그림들이 걸려 있었고. 그 그림들은 마치 자신을 꾸짖는 것 같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가련한 소녀의 배고픔을 면케 해줄 만한 돈으로 내 집의 벽을 장식하지 않았는가? - 내 마음엔 공의도 없고 자비도 없다. 이 그림들은 저 가련한 소녀의 피 값이 아닌가?"

 

이때부터 신성구락부 회원들은 그들의 수입 중에서 생활비를 제외한 잔액 전부를 구제비에 썼습니다.

웨슬리는 연 수입 30파운드 중 생활비 28파운드를 제외한 2파운드를 내놓았고 이듬해는 60파운드의 수입 중 생활비 28파운드를 제외한 32파운드를 구제비로 썼고, 다음 해 역시 90파운드 수입 중 생활비 28파운드를 제외한 62파운드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썼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웨슬리는 그의 끝없이 타오르는 종교적 정열로 완고한 영국교회의 안일주의와 의식에 치중한 생활을 박차고 믿음의 요람인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직을 사직하고 북아메리카로 전도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이 전도단은 17351018일 시몬주호를 탔는데 이 배에는 모라비아인들과 80명의 영국이민자가 함께 타고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아주 유명한 일이 일어나지요.

그들이 미 대륙에 도착하기까진 8주나 걸렸는데 이 항해는 웨슬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습니다.

특히 선객 중 모라비아 교도들과 교제를 통해 그들의 굳건한 신앙과 용감한 정신에 깊은 감동을 받게 됩니다.

 

항해 도중 여러 차례의 풍랑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웨슬리는 공포에 떨었는데, 독일 모라비안 교인들은 전혀 두려움이 없이 태연했던 것이지요.

폭풍이 지난 후 웨슬리는 한 모라비아교인에게 물었습니다.

당신들은 폭풍이 두렵지 않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한 일입니다만 별로 두렵지 않습니다. 여자와 아이들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날 웨슬리는 그의 일기장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나의 일생 중 가장 영광스런 날이었다.”

 

그 영광은 웨슬리가 구원의 빛을 보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웨슬리가 일생 처음으로 그 구원의 빛이 존재함을 깨달은 것입니다.

 

173626. 웨슬리 일행이 탄 배는 조지아에 도착했고, 배가 도착하자 웨슬리는 자신의 신앙이 무언가 잘못돼 있음을 깨달아 모라비안교 목사 스팽겐베르크에게 신앙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웨슬리 선생, 성령께서 친히 당신이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고 계십니까?”

이 물음에 웨슬리는 무슨 말로 대답할지 몰라 주저하였습니다.

이때 스팽겐베르크 목사는 다시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있습니까?”

 

이 질문은 웨슬리가 수없이 들어 본 것이었습니다. 웨슬리는 대답했죠.

. 그는 세상의 구주이십니다.”

그러나 그의 대답은 그에게 숙제를 남겨 줬을 뿐이었죠.

 

그는 그곳에서도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주간학교를 설립한 후 아이들을 직접 가르쳤으며, 오전 5시 새벽기도회를 열었고 11시에는 성찬식과 설교를 했으며, 오후 1시에는 프랑스인 예배에 참석하고, 2시에는 유년들을 모아 교리문답을 가르쳤습니다.

3시에는 기도회를 인도하였으며 6시에는 모라비아인 교회에 나갔습니다.

토요일에는 사바나시 부근에 있는 2개 마을에 들러 독일인과 프랑스인들의 기도회를 인도했으며 평일에는 스페인 출생의 유대인에게 전도할 목적으로 서반아어(스페인어)를 공부하기도 했습니다.

 

웨슬리는 이처럼 주야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고 노력하였지만, 신도들을 젖으로 먹이지 않고 그들이 먹기 어려운 극단의 교회주의와 금욕주의의 굳은 음식으로 먹인 까닭에 그 비상한 활동과 노력은 아깝게 수포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이러한 그의 노력에도 그는 철저하게 실패를 경험했고, 급기야 1737122웨슬리는 귀국의 여정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그때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미국인을 회개시키려 아메리카로 건너갔었다. 그러나 나를 회개시킬 자는 누구인가?. 나는 외관상으로는 훌륭한 신자다. 위험이 없는 한 설교도 잘하고 믿음도 좋다. 그러나 나는 모든 사람에게 '네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라고 외칠 수 있는 신앙을 원한다.]

 

귀국 후 모라비안 교도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던 중, 1738524, 웨슬리는 중생의 기쁨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날 그는 런던시 올더스게이트가의 성경연구와 기도를 목적으로 한 작은 집회에 참석했습니다. 그날의 일기입니다.

 

한 낭독자가 루터의 로마서 서문을 읽고 있었다. 그때 웨슬리의 마음엔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예수를 믿음으로 일어나는 마음의 변화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 이상스럽게도 나의 마음이 뜨거워짐을 느꼈다. 그리고 그리스도만을 나의 구주로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또한, 그리스도가 나의 죄를 사하시고 나를 구원하셨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이 중생의 경험은 웨슬리의 성격과 전도방법에 큰 변화를 주었다.

이때부터 엄격한 의식주의자였던 요한 웨슬리는 복음주의의 구원과 생명을 전도하는 위대한 전도자가 되었다.

 

웨슬리가 중생한 지 18일 후 옥스퍼드대학 앞뜰에서 [너희가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게 됩니다.

이 설교의 내용은 감리회 신앙개조의 표준이 되었습니다.

이 설교는 그가 지금까지 배워왔고, 자신이 가르치던 신앙과는 그 내용이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영국 국교는 웨슬리를 의식을 깨뜨리는 자로 간주, 그를 배척하기 시작했습니다.

 

벌써 런던에 있는 교회들도 그에게 강단을 허락하지 않았고 1739년에는 네 교회만 그에게 설교를 허락했을 뿐이지요.

이제 종전에 해오던 방법으로는 복음을 전할 수 없게 된 그는 야외설교를 시작합니다.

 

173942일 월요일 밤 <브리스톨(Bristol)>에서의 첫 노천 전도 이래 50여 년간 그는 매주 열다섯 번 설교하며 3, 4백 리를 여행하였는데, 교회를 얻어 쓸 수 없으므로 옥외나 감리교인들의 집이나 집회소에서 전도하였습니다.

 

그가 자라난 에보트에서도 교회사용을 거절당하여 웨슬리는 부친의 묘석 위에 올라서서 밤마다 집회를 하기도 합니다.

이제 그는 아주 유명한 말을 남기게 됩니다.

더는 교회에서 설교할 수 없기에, 이 세상이 모두 자신의 교구가 된 것입니다.

 

이 세계는 나의 교구다

참으로 묘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그가 설교할 곳을 막아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더 넓은 곳에서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성경 말씀에 하나님은 나에게 내 능력에 따라 무지한 자를 가르치고 악한 자를 바로잡고 덕이 있는 자를 견고하게 해 주라고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내가 다른 교구에서 일하는 것을 막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합니까. 나는 이 세계를 나의 교구로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내가 세상 어느 곳에 있더라도 기쁜 구원의 소식을 듣기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선포하는 것이 나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건강한 몸으로 장수한 그는 그 시대에서 가장 분주하고 많은 일을 했습니다.

영국 전역과 스코틀랜드 웨일스 아일랜드 등을 순회하며 전도 집회를 열었으며, 4천 번 이상의 설교를 했고 일생을 통해 선교 여행한 총거리가 40km에 달했습니다.

 

179132, 그의 작은 방에는 열 한사람이 모여 있었습니다.

침상 위에 누운 웨슬리는 친지들에게 [평안히 계시오.]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습니다. 그의 나이 88세였습니다.

 

Methodist!

웨슬리에 의해 세워진 감리교운동은 당시에 ‘Methodist’란 이름으로 불렸습니다.

그들은 늘 규칙적으로 모여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모임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종교개혁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웨슬리에게도 가장 기본적인 교리와 중요한 신학의 근원은 바로 성서였습니다.

메도디스트의 특색이란 글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는 진실로 모든 성서가 하나님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을 믿는다. 이 점에서 우리는 유대인이나 회교도(터키인)이나 불신자와 구분된다. 우리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에 유일하며 충분한 기준임을 믿는다. 이 점에서 우리는 가톨릭 교회와 구분된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사실 내가 무엇이라 주장하는 것보다 누군가가 우리를 어떻게 보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 초대교회 교인들이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 불렸다는 것을 압니다.

사도행전 1126절 말씀에 보니까, “만나매(바나바가 사울을)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라고 기록합니다.

 

아주 흥미롭죠?

초대교인들이 처음부터 예수님을 믿고 전했지만,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을 받고 공동체를 이뤘지만, 11장에 가서야 정체성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아니, 사람들이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인정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 혹은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웨슬리 당시 영국교회는 아주 형식적이었습니다.

그들은 옷을 잘 차려입고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의무를 다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배를 드리지만 그들의 삶에서 성경이 기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성경을 읽으려 하지 않았고, 기도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감리교인이 된다는 것은 그냥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통해 증명된 것입니다.

 

웨슬리 당시 일화입니다.

어떤 회사에서 직원을 뽑을 때, 가장 확실한 보증이 methodist”였다는 것을 아십니까?

우리가 이 사회에서 영향력 있는 크리스천이 된다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 같습니다.

웨슬리 당시 methodist의 교리와 규례는 초대교회부터 해석된 성서적인 것이며, 따라서 성서는 메도디스트의 전적인 기준이었습니다.

 

당시의 글을 보세요.

메도디스트들은 한 책 곧 성서가 인정하는 교리나 규례라고 인정하는 것 외에는 다른 아무것도 지키지 않았다.

저들은 오직 철저한 성서적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원했고 또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저들은 초대교회와 우리 교회에 의하여 해석된 그 성서의 말씀을 메도디스트의 전적인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면 성서와 교리적 표준에 근거한 메도디스트의 기본 교리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하여 웨슬리1761. 4. 6일 조지 다우닝에게 보낸 편지에서 메도디스트가 설교해야 할 세 가지 중요한 성서적 교리가 있는데 이는 곧 원죄, 믿음에 의한 칭의, 그리고 그 결과로 일어나는 성결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거듭거듭 아주 쉽게 우리가 주장하는 교리가 무엇인가 외쳤다. 바로 이 교리에 의하여 우리는 이교도와 명목상의 신자와 구분된다. 이 교리는 우리가 말한 모든 교리를 포함한다.

이 주요 교리는 셋인데, 곧 회개의 교리, 믿음의 교리, 그리고 성결의 교리이다. 회개가 마치 종교의 현관과 같다면, 신앙은 문과 같고, 성결은 종교 그 자체이다. 여기서 종교 자체라는 것은 곧 내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의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한편의 설교로 그의 삶을 다 담아낼 수는 없지만, 그가 고민했던 그리스도인의 완전즉 성결의 삶이란 어떤 것인지를, 어쩌면 역설적일지 모르지만, 그가 비판했던 거의 크리스천이란 설교를 통해 그의 신앙을 엿볼 수 있을 듯합니다.

 

 

거의 크리스천이란?

웨슬리는 자신의 회심 경험을 통해, 성실과 열심이 결코 진정한 크리스천의 기준이 될 수 없음을 깨닫게 됩니다.

웨슬리의 유명한 설교 중의 하나는 “Christian Perfection이고 다른 하나는 “Almost Christian”입니다.

 

아마도 웨슬리의 삶을 통해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그의 신앙의 이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가 몸담고 있던 영국 국교회를 생각해 보세요.

온 국민이 누구도 빠짐없이 예수를 믿고, 주일에는 예배를 드리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교육의 가치의 중심에는 성경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온전한 크리스천의 삶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시대정신은 다윈의 진화론이나 계몽주의의 세계관 때문에 영적인 면보다는 좀 더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가치를 추구하게 했습니다.

 

웨슬리의 삶에서 가치로 삼았던 크리스천의 완전이란, 인간의 가치를 완성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해 나가는 성화의 삶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웨슬리의 설교를 통해 도전을 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눈에 보기에 흠이 없어 보이고 좋은 것 같아도 하나님을 닮아가지 못하는 어떤 신앙도 거의에 머무르고 만다는 것입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heathen honesty즉 이방인들도 있는 정직함을 가지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착각하지 말라는 것이지요.

조금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아주 중요한 신앙의 본질을 다루는 부분입니다.

첫 번째, 정직함이 온전한 크리스천의 기준은 아니다.

바로 여러분이, 아니면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정직함의 기준으로 자신이 크리스천이라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삶의 기준으로 크리스천이라고 말한다면, 이러한 기준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 아니 타 종교인 가운데서도 얼마든지 발견될 수 있습니다.

 

웨슬리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정직성의 규칙에 따라 그들은 이렇게 교육받는다: 불공평하지 말 것, 강도든지 절도든지 이웃의 물건에 손대지 말 것, 가난한 자들을 압제하지 말 것,누구에 대해서도 착취하지 말 것, 어떤 상거래에 있어서든 가난한 자나 또는 부유한 자나 간에 속이거나 지나치게 값을 받지 말 것,누구에게서든지 그의 권리를 빼앗지 말 것, 그리고 가능하다면 누구에게든지 어떤 빚이든지 지지 말 것.”

 

그리고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보는 보편적 가치가 있습니다.

이웃을 비방하고 중상하는 자를 혐오하는 것, 의도적인 거짓말, 자신이 손해를 보지 않으면서 남을 도울 수 있다면 이것은 누구나 가진 정직성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적어도 웨슬리는 이러한 부분에서 최선을 다하고 살았기에, 아니 그렇게 노력하고 살았기에 이런 말을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두 번째로 웨슬리가 보기에 더욱 심각한 거의 크리스천경건의 외양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옛날에 경건한 사람들은 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자세로 길을 걸어 다니다가 나무에 이마를 부딪쳐 피를 흘리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마에 피가 흐르는 사람들을 보면 경건한 사람이라고 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이 말을 듣고 싶어 하던 바리새인들이 아예 집에서 나올 때부터 자신의 이마를 벽에 찧어 피를 흘리며 나왔다고 합니다.

그들의 경건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토마스 왓슨은 이와 같은 거짓 경건을 이중 죄악이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에게 거의 크리스천들은 복음이 금하는 것을 어떤 것도 하지 않습니다.

아니 이 말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성경에 나온 대로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않습니다.

 

남을 축복하고, 다른 사람을 저주하지도 않습니다.

할 때는 하고 아니오할 때는 아니오를 합니다.

남을 욕하지도 않고, 남이 없는 데서 험담하지도 않습니다.

아니 모든 언사를 조심합니다.

 

또한, 술 취하지 않습니다. 흥청거리거나 탐식하지도 않습니다.

늘 다른 사람과 평화하려고 노력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도 않습니다.

, 남을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는 일도 절대로 마다치 않습니다.

그는 게으르지도 아니하며, 선을 행할 기회가 있는 대로 모든 사람의 영혼과 육신을 위해 각종의 선을 행합니다. 범사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욱 드높이는 일에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그래서 경건의 모양을 가진 그는 또한 은혜의 수단을 활용합니다.

예배 시간에도 순서마다 주의를 기울이며 진지하게 행동합니다.

성만찬을 받기 위해 앞으로 나갈 때에는 더욱 조심하며 나가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하나님, 죄인인 나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게다가, 가족 기도회를 하고, 개인기도 시간을 정해 놓고 있으며 매일매일 실천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집에 들어올 때도 한결 같은 모습으로 출입하며 절대로 예절에 거슬리는 일도 하지 않습니다.

어디에 내놔도, 누가 보기에도 경건의 모양을 가진 아주 진실한 크리스천으로밖에는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여기까지 웨슬리의 설교를 읽으면서 저에게 혼돈이 왔습니다.

혹시 이 설교가 번역이 잘못된 것은 아닌지. 아니 이 정도 신앙생활을 하면 완전한 크리스천이라고 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말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웨슬리의 마음이 뜨거워지기 전에, 그가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과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세 번째 웨슬리가 보기에 거의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고 있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는데, 바로 진실성(sincerity)이란 것입니다.

웨슬리에게 거의 크리스천이라는 것은 아주 높은 단계의 신앙을 말합니다.

적어도 진실성을 이야기할 때 추상적인, 아니 거짓의 가식적인 진실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는 자신의 설교에서 비기독교인인 에피큐리안 시인의 글을 인용합니다.

선한 사람들은 덕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피하고악한 사람들은 처벌이 무서워서 죄를 피한다.

그러므로 만약 누가 처벌을 면하기 위해서만 악행을 멀리 한다면,너는 교수형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비기독교인조차도 이런 동기로 선을 행한다면 너는 선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 중에 처벌을 면하기 위해, 벌을 받지 않기 위해,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 선을 행하고, 은혜를 사용한다면 그런 사람을 보고 거의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적어도 거의 크리스천이라고 불리기 위해서는 더 나은 원칙이 적용되어야 합니다.

 

웨슬리에게 거의 크리스천,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진정한 의도,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자 하는 진정한 소원(a real design to serve God, a hearty desire to do his will).이 포함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원칙을 가지고 진실한 삶을 추구합니다.

그런데도 뭔가 부족합니다.

그 사람을 가리켜 온전한 크리스천이라고 부를 수가 없습니다.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이 설교를 하면서, 크리스천의 완전을 향한 그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마가복음 1230절에 유명한 황금률이 나오지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정직함과 성실함, 외적인 경건 이 모든 것을 갖추어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한 거의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이 사랑은 우리의 마음 전체를 사로잡는 그런 사랑입니다.

우리의 영혼을 가득 채우는 사랑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능력을 다 동원하도록 만드는 사랑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을 때 우리의 영이,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 안에서 한결같이 기뻐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웨슬리는 또 시편 7325절을 인용합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

내 삶의 안과 밖에 하나님으로 꽉 채워진 충만한 상태가 되는 것이 바로 온전한 크리스천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의 원칙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그분으로 채워져서 그분과 동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지요.

매일매일 뜻을 묻지 않아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 말입니다.

이 상태는 세상에 대하여 내가 십자가에 못 박힌 상태입니다.

내가 진실하게, 내가 거룩하게, 내가 솔직하게 사는 것이 아닙니다.

이 상태가 되면 우리 삶의 모든 교만이 이미 사라집니다.

나의 안에 거하라는 말이 이제 이해가 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므로 가장 기쁘고 충만한 상태라는 말입니다.

 

마가복음 1231절에서 황금률은 계속됩니다.

둘째는 이것이니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

웨슬리의 설교를 그대로 조금 인용해 보겠습니다.

누가 묻기를 누가 나의 이웃이요?’라고 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 즉 모든 육체의 영의 아버지이신 그분의 모든 자녀가 우리의 이웃이라고 우리는 대답한다.

 

우리는 우리의 원수들이나 하나님과 그들 자신의 영혼에 대한 원수들이라 할지라도 절대로 제외하지 않는다. 모든 [온전한] 그리스도인들은 이들도 자신의 몸처럼 사랑한다. 그렇다,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사랑한다.

 

언젠가 읽었던 글이 생각납니다.

교회의 문제, 교인들의 문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데 있어서 어떤 조건이나 제한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며, 내가 소중한 것처럼 그 누군가가 다 소중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나 중심적이라는 말을 하는데, 이것은 누구를 사랑할 때, 나를 사랑하는 것과 상대방을 사랑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적어도 웨슬리가 추구하는 크리스천의 완전은 이웃을 사랑하는 그 사랑이 완전히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이루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향림설교대회 유현익 전도사 반쪽짜리 사랑 아닙니까?설교에서 소개한 이야기입니다.

한 아버지와 중학교 1학년짜리 아들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집안이 어려워지자 의견차이로 싸우기 시작했고 결국 어머니는 친정으로 가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와 아들 둘만 남게 되자 아버지는 아들에게 매일 도시락을 준비해 줘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해 줄 수 있는 것을 그렇게 많지 않아.

매일 똑같이 흰밥에 김치 그리고 계란 프라이가 전부였답니다.

아들은 그것이 부끄러웠고, 다른 친구 엄마들이 싸주는 도시락이 늘 부러웠답니다.

 

그러한 부러움은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미움으로 변해서, 급기야 도시락과 반찬을 쓰레기통에 부어 버렸답니다.

그리고 빗나가기 시작하던 어느 날.쓰레기통에 도시락을 쏟아버리다 밥 속에 작은 쪽지를 보게 되었답니다.

아버지가 적은 글씨였답니다.

아들아 정말 미안하다. 그렇게 되어 정말 미안하다. 그리고 사랑한다. 우리 조금만 견디자.”

그 편지와 비닐로 꼭꼭 싸 맨 3만 원을 보는 순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답니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생각에 빗나가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그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에, 아버지가 너무나도 마음 아파한다는 사실에.

가정을 회복해야겠다고,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 공부하기 시작했답니다.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답니다.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그 완전한 사랑에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말입니다.

완전한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고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 아버지가 주셨던 사랑보다 더 완전한 사랑을 주셨다고 말입니다.

 

우리 삶의 완전은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에서 시작된다고 말입니다.

이 온전한 크리스천의 삶을 위해 요구되는 것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어떻게 구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웨슬리 목사님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는 예수님의 사랑받던 제자 요한은 요한 151절에서, 믿는 자마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니라고 하지요. 또한, 요한복음 112절에서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아들을 믿는 자에게 영생이 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한다라고 선언하십니다.

여기에서 믿음이란 올바로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회개와 사랑과 온갖 선행을 초래하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입니다.

하나님 안에 거하지 않으며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 믿음은 거짓 믿음입니다.

 

웨슬리에게 올바르고 진정한 기독교적 믿음이란 성경이 진리라는 것을 믿는 것이요, 영원한 정죄로부터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는 확실한 신뢰와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이미 나의 죄는 용서 받았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고 있음을 신뢰하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정직성과 성실함과 경건의 모양이 나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믿음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옵니다.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고, 이웃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이 믿음에서 나옵니다.

 

솔직하게 오늘 우리는 이런 고백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요한 웨슬리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여러분들 각자가 스스로 자신의 심중에 이렇게 물어보기를 나는 바랍니다: 나는 그 살아 있는 증인 가운데 들 수 있는가? 나는 비기독교인들의 정직성의 준칙들이 요구하는 그만큼 정의와 자비와 진리를 행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외양이 내게 있는가? , 경건의 모양이 내게 있는가? 나는 악을,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금지하는 모든 것을 다 멀리하는가? 내 손이 찾아 행할 수 있는 모든 선을 나는 힘써 행하는가?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의 수단을 모두 진지하게 활용하는가? 그리고 이 모든 일을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진실한 의도와 염원으로 하는가?

여러분들 가운데 많은 사람은 그만큼도 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지 않는가? , 나는 거의 그리스도인도 못 되는구나 하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가?

나는 비기독교적 정직성의 기준에도 도달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가? 또는 적어도 기독교적 경건의 모양에도 도달하지 못하는구나 하는 것을 인식하지 않는가?

그러나 이런 선한 의도와 염원만을 가지고 우리가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말합니다. 지옥의 길은 선한 의도들로 포장되어 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남아 있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너의 마음에 충만히 부은 바 되었는가?”

오늘 우리에게 가장 강력하게 도전이 되는 것은 거의 크리스천이 되려는 노력에서 온전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게 임하여서 하나님과 함께 화평을 누리는 것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기뻐 뛰며 노래하는 역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