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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목사

[김병삼목사]감람산으로 가자(눅22:39-46)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3.12.24|조회수85 목록 댓글 0

감람산으로 가자(2239-46)

성경본문; 누가복음22:39-46

39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40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41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43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45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46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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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으로 가자!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현재 있는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떼는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가 함께 나누어 볼 들의 이야기는, 삶의 현장을 떠나, 그 산에 가서 일어났던 일이라는 것이죠.

우리가 살펴 볼 7개의 산들은 모두가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역사적인 사건들이 과거의 일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의 삶에서도 동일하게 일어날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에서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그 을 향해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이죠.

한홍 목사가 쓴 [하나님이 내시는 길]에 보면, 신대륙을 발견했던 콜럼버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당시, 콜럼버스와 선원들 중에 육지로부터 3백 마일이상 떨어진 대양으로 항해를 해 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신이 밟고 있던 땅을 출발해, 자신이 출발했던 곳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새로운 땅을 발견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 산으로 가자는 것은 어쩌면 우리의 과거와 작별을 하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선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8년 전 여러분들과 함께 올라갔던 산들을 다시올라가려고 합니다. 물론 설교의 내용들이 조금 다르겠지만 동일한 산에 올라가려고 합니다.

우리 인생에 중요한 것이라면 다시 반복하고 기억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아니 성경의 이야기들은 우리의 삶에서 수없이 반복되고 기억되어야 하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종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너무 단편적으로 본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를 들어서,홍해를 가르고 그 바다를 건넌 일에 열광하지만 홍해를 건넌 후에 다시 바다가 합쳐졌다는 사실을 간과합니다.

하나님께서 홍해를 닫으시므로 이스라엘은 다시 애굽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새로운 곳에서 이스라엘은 이제 승부를 보아야 합니다.

순종하며 가나안 땅으로 가든지, 불순종하며 광야에서 죽든지 말입니다.

 

우리가 그 산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인생의 승부를 거는 장소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고, 그 만남의 장소로 인해 우리 인생에서 결단해야 하는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홍해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한홍 목사의 글을 조금 인용해 보겠습니다.

홍해가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그 안에 길이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했겠는가? 가장 큰 문제 속에 하나님의 길이 있다.

진퇴양난, 사면초가의 상황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는가?

어쩌면 그것은 지금까지 보지 못한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할 기회인지 모른다. 믿음은 바로 그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여 우리의 두려움 한 가운데로 치고 들어가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께서 올라가셨던 산. 비록 높지 않은 산이지만,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올라야했던 가장 높고 힘겨운 산이 아니었을까요?

예수님이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사명을 지고, 방법과 길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올라가셨고,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하고 씨름해야 했던 곳이 바로 감람산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정말 길이 보이지 않고, 씨름하지 않고는, 처절하게 기도하지 않고는 해결이 되지 않는 삶의 순간과 인생의 산이 있지 않을까요?

길이 보이지 않는 곳, 그래서 너무 답답해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곳 말입니다.

그곳이 바로 감람산입니다.

 

벌써 수년이 지나 잊혀져 가는 일이 되었나요?

아프카니스탄에서 우리의 젊은이들이 순교했던 일, 그리고 그 일 때문에 지탄의 대상이 되어야 했던 일들 말입니다.

배형규 목사의 장례식에서 송정미 사모가 자청해서 불렀던 찬양이 있습니다.

누가 뭐라 해도 하나님 품 안에서 영광스럽게 안겨있을 하나님의 아들을 생각하며 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 아니 우리가 살았던 과거의 많은 역사 속에,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믿음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버지의 뜻을 위해 눈물을 흘리고, 헌신 했던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부르심을 받고 살았던 사람들을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오르셔서 기도하실 때, 그 분은 외로우셨습니다. 때로 무섭고 가슴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향해 가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 사명의 산에 오르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면서,인생에서 넘어야 하는 산을 하나하나 넘어 가려고 합니다.

 

송정미 찬양

아무리 힘들어도 해야 할 일

힘이 들고 낙심될 때,

주저앉고 싶을 때,

아무리 치열해도. . .

기뻐하라 고난당할수록, 기뻐하라 싸움 치열할수록. . .

 

 

누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낙원에 이르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행한 자들이나 지옥에 가는 사람은 자신의 뜻을 행한 자들이다.”

저는 오늘 여러분들과 에 오르며 이런 말을 하고 싶습니다.

산에 오른다는 것, 특히 하나님의 산에 올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과정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 하지만 그 뜻을 따라 오른 자들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있다면 낙원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스럽게 품에 안겨 있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차례로 하나님의 뜻에 오르는 산을 하나하나 정복하며 우리의 믿음을 키워가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어쩌면 여러분들에게 어려운 결정의 순간, 여러분들의 뜻을 꺾는 순간이 될지 모릅니다.

그리고 그 산에 오르기 위해 많은 준비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결코 그 산이 정상이 아니라 우리의 인생을 지나며 지나가야 하는 과정이기에 만족할 수 없는 산이고,하지만 그 산을 하나하나 오를 때 마다 우리의 믿음과 삶이 성장하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고, 인생의 사막 가운데서 만나는 그 산들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오르는 만족감과 기쁨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첫 번째 산 감람산에 오를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감람산과 겟세마네 동산이 조금 혼동되어 사용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감람산은 성경 여러 곳에서 등장하는데,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산으로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주님은 이곳에서 당신의 재림에 대하여 말씀하셨고,사도행전 112절에 보면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사명을 주시고 승천하신 곳이 바로 감람산입니다.

감람산은 4km에 걸쳐서 세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예수님께서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시매라고 되어 있는데,예수님께서 자주 가시던 감람산의 봉우리 중에 하나가 겟세마네로 불리는 곳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내용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도 그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습관을 좇아 기도하시던 겟세마네 동산은, 중요한 결정의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 장소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주목해 보아야 하는 산, 예수님이 기도하시던 겟세마네동산의 뜻은 기름을 쥐어짜는 곳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곳에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전신을 쥐어짜듯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이런 기도의 시간들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전심을 다해 하나님을 찾아야 할 때가 필요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순간, 십자가를 지셔야 하는 사명의 의미를 발견해야 하는 시간입니다.

 

유명한 심리학자인 Victor Frankle [삶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는 나치의 수용소에서 죽음의 위협을 견뎌냈던 사람입니다.

그가 경험한 수용소에서는 생명의 의미를 손상시키거나 생명을 해하는 한 방법으로 고의적으로 의미 없는 일을 맡기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아무 목적 없이 이쪽 방향에서 저쪽 방향으로 하염없이 흙을 옮기는 것 같은 일말입니다.

일이 힘든 것보다 의미 없는 고통이 사람을 견딜 수 없이 만들었다는 것이지요.

그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가 주어지는 한 어떤 종류의 어떻게도 극복할 수 있다.”

오늘 여러분들이 몸을 쥐어짜며 를 발견한다면, ‘어떻게살아야 하는 삶의 방향이 잡힐 것이며 의미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문제는 고통과 시련이 아니라, 목적과 방향입니다.

뜻을 위하여 죽는 곳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당신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목숨을 버리기로,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한 장소라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들에게도 죽어야할 이유를 발견한다면 얼마나 멋지게 인생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 이 과정이 그렇게 쉽지 만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추구하고 바라는 육체적인 만족과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만족 사이에는 늘 차이가 있기 때문이지요.

 

어떤 분이 트위터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올려놓았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께서 들어주실 수 없는 기도. . .”입니다.

1. 과음 과식하면서 위를 보호해 달라는 기도.

2. 과로하면서 건강하게 해 달라는 기도.

3. 과속하면서 안전하게 해 달라는 기도.

4. 과소비 하면서 부자 되게 해 달라는 기도.

기도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를 우리는 수없이 하고 있지 않습니까?

 

본문에 나와 있는 이라고 하는 말은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이 되는데, 어떤 경우에는 축복의 잔 (16:5)으로, 승리의 잔 (23:5)이라는 긍정적인 뜻을 지니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분노와 진노, 책임과 죽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2022절에서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고 하셨을 때, 여기에서는 순교와 십자가의 형벌을 의미하지요.

그렇습니다.

누구에게나 마셔야 하는 잔이 있습니다.

때로는 축복이기도 하지만, 때로는 무거운 책임과 죽음의 잔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잔을 내가 원해서 질 수만 있으면, 내가 선택하는 대로만 질 수 있다면 무슨 걱정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나의 잔과 하나님이 주시는 잔이 일치하지 않을 때, 신앙적인 고민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결정해야 하지요.

아니 신앙적인 의미로, 하나님의 뜻을 물어야 하는 순간이 온다는 것이지요.

어쩌면 예수님은 이미 죽음을 예견하셨을 것입니다. 우리의 죄를 담당해야 할 것도 아셨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십자가의 죽음이라면 너무나 가혹한 것입니다.

명예로운 죽음이 있을 수도 있는데, 굳이 흉악범들이 지는 십자가를 져야 합니까?

같은 죽음이라도 한 번에 고통이 끝날 수 있으면 좋은데, 긴 시간을 십자가에서 인내하며 참아야만 하는 것입니까?

분명히 마셔야 하는 잔이지만, 피해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감람산은 예수님께서 이 갈등을 안고 올라 가셨던 산입니다.

예수님은 이 산을 오르면서 함께 사역하며 데리고 다니던 제자들과 함께 가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고뇌하며 기도하는 동안 제자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45)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십자가의 잔은 누구도 같이 져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그 순간은 바로 하나님과 여러분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적으로 인격적으로 만나야 하는 자리임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의 기도의 자리에 같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누군가 조언을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뜻을 따라 결단하고 움직이는 것은 그 누구도 대신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끔 저는 당혹해 할 때가 있습니다. 그 십자가의 잔을 놓고 저에게 상담을 요청하는 경우들입니다. 때로는 제 뜻을 묻는 경우들입니다. 물론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는 모르나 다른 누구도 대신 질 수 없는 잔임을 아십시오.

 

예수님께서 오늘 땀방울이 핏 방울이 되도록 기도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뜻때문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몇 년 전 여름, 단동에서 샘 의료선교 팀들을 위해 집회를 인도하며 저 자신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박세록 장로님의 간증을 들으면서 말입니다.

거기에 와서 사역하는 선교사님들은 모두가 자비량입니다. 한 나라의 국립대학에서 의학을 가르치던 사람도, 삼성이라는 걸출한 기업에서 사장단에 일하던 사람도, 미국에 수백만 달러가 넘는 집을 놔두고 그 땅에서 봉사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노고를 누구도 잘 알아주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더구나 그들이 그렇게 사랑하며 목숨을 걸고 돕기를 원하는 북한 사람들이 말입니다.

먹을 것, 입을 것, 의료 용품을 가지고 북한 땅에 들어가도, 한 번도 감사하다고 그 물품을 받는 적이 없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도움과 비교하며 트집을 잡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더 얻어 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분노가 일어날 때가 많이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북한 관리가 얼마나 억울하고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하고 트집을 잡든지, 더는 참지 못해 분노를 터뜨리려고 그 사람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 사람의 얼굴이 없어지고,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이 거기에 계시더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부터 장로님은 사역에 대하여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내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베푸는 것이 아니라, 지금 눈물을 흘리시고 애통해 하시는 주님 때문에 여기에서 이렇게 구걸을 하고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께서 겟세마네에서 왜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그렇게 몸부림치며 기도하셨어야 할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들의 모습, 또 배신하고 떠나버리며 범죄 한 우리들의 모습을 보았다면 얼마나 억장이 무너질 일이었겠습니까?

예수님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셨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보셨지요.

 

하나님은 뜻은 우리가 결코 하고 싶지 않지만 하라고 할 때가 있고, 결코 가고 싶지 않지만 가라고 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그런 크고 작은 문제들을 안고 하나님의 뜻을 묻지 않나요?

그런데 대부분 대로 살기 위해서 기도하기 보다는 그 뜻을 피해가기 위해 기도하지 않나요?

이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여자 1등은 하와랍니다(시어머니가 없어서). 행복한 여자 2등은 성모 마리아랍니다 (며느리가 없어서).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사명이 없는 것이 과연 행복한 일인지, 아니면 그 관계 가운데 지고가야 할 십자가와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는 것이 행복한 일인지?

 

오늘 여러분들에게 그런 기도 제목이 없나요?

될 수만 있다면 이 길을 피해가고 싶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이 무엇인가요?

하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며 우리들에게 가라고 하는 그 길이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길이라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겠지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다면 결코 후회할 일들이 일어나지 않겠지요.

우리들이 후회함이 없는 삶을 살기위해 우리들 자신들의 겟세마네에서 기도하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겟세마네에 오른 자만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을 것입니다.

 

다 같이 찬송가 549장을 보겠습니다.

이 찬송가는 1704Benjamin Schmolck 목사님의 찬송 시입니다.

당시 독일은 30년 동안의 종교 전쟁으로 인하여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게다가 흑사병이 휩쓸고 난 뒤라 인구의 반 이상이 목숨을 잃은 지옥과 같은 상태였습니다.

그 어려운 시기에 목사님은 사모님과 함께 사람들을 돌보며 심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늦게 심방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목사님의 집은 완전히 불타 버렸고,남겨둔 두 아들은 잿더미 속에 부둥켜안고 죽어 있었습니다.

그 순간에 조용히 기도하며 지었던 시입니다.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큰 근심 중에도 낙심케 마소서

주님도 때로는 울기도 하셨네.

날 주관하셔서 뜻대로 하소서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

내 모든 일들을 다 주께 맡기고

저 천성 향하여 고요히 가리니

살든지 죽든지 뜻대로 하소서.

 

 

하나님의 뜻에 실패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도하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을 위해 기도하면 우리를 도우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육신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에게 이 기도의 순간이 얼마나 힘이 드셨겠습니까?

사람의 몸으로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도록 기도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제가 말씀을 묵상하던 중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만 하나님의 뜻을 묻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것이지요.

오늘 말씀이 습관을 따라라고 시작하고 있지요.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에 보면, “as he so often did”라고 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는 자주 그렇게 하셨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기도하는 일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닌 듯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을 묻기 위해 예수님께서 기도하러 나가시면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인가요?

40절에 보니까,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말씀을 묵상하면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순간 우리들에게 다가오는 유혹이 있다는 말씀이지요.

그 유혹은 외부적인 유혹이라기보다는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유혹인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셨던 내용이 무엇인가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묻는 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보여주는 기도의 모습입니다.

기도의 핵심은 바로 42절에 있지요.

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아버지의 뜻과 예수님의 뜻이 일치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신앙의 유혹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나의 뜻과 다를 때 필연적으로 유혹이 된다는 말씀이겠지요?

아주 중요한 신앙의 진리의 산을 오늘 우리가 오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니 오늘부터 오를 7개의 산 모두가 이런 유혹을 내포하고 있겠지요?

문제는 이 유혹 앞에서 어떤 기도를 하며, 어떤 결단을 하느냐의 문제이겠지요?

중요한 것은 이 유혹과 결단의 순간에서 우리가 누구인가?가 결정되고 증명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인가가 결정되면, 그에 합당한 결과들이 따라오게 되어있습니다.

유명한 변증신학자인 C. S. 루이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밖으로 튀어나오면 방랑자라 부른다.”

 

방랑자는 도움의 손길을 떠나간 사람입니다. 외톨이가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물 때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이겠지요.

예수님의 결단이 분명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결단하는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늘 본문 말씀, 43절에 보니까.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고 되어 있습니다.

유진 피터슨의 메시지 성경을 보면 이 말씀이 훨씬 명확하게 다가옵니다.

“At once an angel from heaven was at his side. strengthening him. He prayed on all the harder. . .”

하나님의 편에 서는 순간, 하늘로서 천사가 내려와 그의 편에 서서 그의 힘을 돋아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더욱 열심히 기도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신앙의 공식을 오늘 말씀을 통해 보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기도할 때, 여러분들을 도우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주님의 약속입니다. 보혜사성령님을 우리에게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416절을 보세요.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힘들기에 순종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순종의 힘을 주시는 성령님을 경험해야 합니다.

언젠가 제 아들이 밤늦게 저에게 다가오더니 이렇게 부탁을 합니다. 아빠 기도해 주세요!” 공부하는 게 마음대로 안 되고 힘든 모양입니다.

그래서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당신의 하늘에 계신 아빠께 부탁 하세요. 하나님 저를 도와주세요.” “저의 기도를 도와주세요.”라고 말입니다.

윌리엄 거널 이라는 사람은 이렇게 말 했습니다.

순종을 연기하는 것은 곧 불순종하는 것이다.” “순종이 없는 제사는 신성모독이다.”

 

오늘 우리들이 신앙에실패했다 혹은 성공했다라고 말하기 전에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다혹은 불순종 했다라고 말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하나님 앞에 순종하면, 내일 여러분들의 모습을 하나님이 만들어 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에서 로마 병정들에게 잡히셨습니다. 그리고 곧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버지의 뜻이거든. . .”그것이 아버지의 뜻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실패로 끝나는 것 같은 순간입니다.

모든 희망이 없어져 버리는 것 같은 순간입니다.

분명한 것은 내가 죽어지고 나면, 하나님의 뜻이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겟세마네는 예수님의 사역에서 패배의 장소가 아니라, 승리를 선포하는 장소가 되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십시오.

하나님의 뜻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사도행전 14절을 보세요.

4-사도와 함께 모이사 그들에게 분부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부활하신 예수님이 감림산에 다시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기다리던 제자들에게 다시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분명히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에 감람산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마지막 질문을 던진 곳입니다.

사도행전 16절에서,

. .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감람산은 아주 무덤이 많은 산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심판의 주님이 감람산에 오실 것을 믿었습니다.(14:4) 그래서 빨리 부활하고 싶은 사람들이 죽으면 감람산에 묻히기를 원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중세 유럽의 유대인들 중에는 죽을 날이 가까워지면 예루살렘으로 와서 임종을 맞기도 했습니다.

지금 제자들의 관심이 무엇일까요?

빨리 괴로운 세상을 벗어나고 싶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제 살아나셨으면 새로운 왕국을 건설하시고, 더 이상 핍박이 없어야 한다는 생각이지요.

마치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가 또 생각나지 않습니까?

누가복음 2242절의 말씀,

42-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놓고 괴로워하셨던 것처럼, 사도행전에서는 제자들이 예수님 앞에서 더 이상 고통의 시간들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에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주님의 대답이 사도행전 17절에서 아주 간단명료합니다.

너희가 알바 아니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때 (time)와 시기 (date)는 아버지의 권한이기 때문에 알려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사실 알지 못하고 무엇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듭니까?

예수님은 시와 때의 기한을 알려주신 것이 아니라, 어떻게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나갈 수 있을지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유명한 사도행전 18절의 말씀을 바로 이곳에서 받은 것입니다.

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때에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일들은 절대로 실패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까지가 힘들지, 그 십자가를 지면 분명히 승리합니다.

송봉모 신부의 저서 [광야에 선 인간]에 나오는 우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자기가 지고 가는 십자가가 너무나 무겁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십자가는 너무나 쉽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불평을 했습니다.

하나님, 왜 저에게만 이렇게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하십니까?”

그 말을 들은 하나님께서 입가에 빙그레 미소를 띠며, 그래? 그렇다면 네 십자가를 바꾸어주마, 마음에 드는 다른 십자가를 하나 골라 보아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사람은 수많은 십자가가 쌓여 있는 창고에 가서 가장 가볍고 편해 보이는 십자가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좀처럼 자신이 원하는 십자가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좀 가벼워 보여 들어보면 무겁고, 좀 작다 싶어 들어보면 역시 불편하고 무거웠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하루 종일 십자가를 들어 보았다고 내려놓기를 되풀이 했습니다.

그러다 이거다 싶은 것을 발견하고 하나를 얼른 골랐습니다.

하나님, 드디어 마음에 드는 것을 하나 골랐습니다.”

그래 마음에 드느냐?”

, 흡족합니다. 가벼운 십자가로 바꿀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는 기쁨에 넘친 얼굴을 하고 하나님께 고개를 수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한참 동안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습니다.

자세히 보아라. 그 십자가는 본시 네가 지녔던 십자가다

 

십자가와 사명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순종하지 않고 지지 않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에서 분명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도우심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겟세마네에 올라왔습니까?

누구도 대신 져 줄 수 없는 십자가를 앞에 두고 피해가고 싶은 생각으로 인하여 괴로워하고 있습니까?

지지 않으면 실패하는 인생이 됩니다.

무거워도 십자가를 지면 결코 실패하지 않습니다. 당신 혼자 버거우면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하나님 언제 오십니까? 저의 인생이 끝나고 싶습니다.”하는 순간에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너에게 성령이 임하면.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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