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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목사

[김병삼목사]베드로 - 반석이 된 사람(마16:13-25)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4.01.05|조회수149 목록 댓글 0

베드로 - 반석이 된 사람(1613-25)

성경본문:마태복음16:13-25

13. 예수께서 빌립보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14. 이르되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20. 이에 제자들에게 경고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계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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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제자 중 베드로의 삶은 가장 드라마틱합니다. 이야깃거리가 많은 만큼 성경에서 가장 많은 분량이 할애되고 있는 듯합니다.

무엇보다 부활절을 지나는 우리에게 가장 명확한 부활의 메시지를 전해주는 인물이 베드로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의 삶에는 반복되는 패턴이 있습니다. 잦은 실수와 실패의 경험, 하지만 그는 곧 깨닫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여지없이 주님은 용서하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의 이름 베드로는 반석이라는 뜻인데, 이름대로 살지 못했던 그를 결국은 이름처럼 사용하시는 예수님의 참으심과 사랑이야말로 부활절을 맞는 우리에게 복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명한 화가요 조각가인 미켈란젤로는 많은 일화를 남겼습니다.

그중의 하나가 불후의 명작 모세상을 조각할 때의 일입니다.

그는 볼품없이 보이는 바윗덩이를 자신의 작업실에 가져왔습니다. 사람들은 저 바위를 어디에 쓸지 모르고 궁금해했지만, 미켈란젤로의 머릿속에는 청사진이 있었습니다.

그의 작업은 끌과 망치로 필요 없는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날이 지나고 이제는 줄과 샌드페이퍼(사포)로 다듬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모세상입니다.

위대한 작품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 없는 것들을 끊임없이 다듬어간 작가의 흔적입니다.

 

우리가 베드로라는 인물을 보면서도 의구심을 가지는 것이 그의 투박함과 경박함 그리고 부족함입니다.

어떻게 저런 사람을 쓸 수 있을까?’

어떻게 저런 사람이 예수님의 수제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그의 삶을 향한 주님의 청사진은 끊임없이 그를 다듬어 갔습니다.

오늘 베드로를 만나는 것은 바로 우리 인생에 찾아오신 주님을 만나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을 다듬어 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알게 될 것입니다.

베드로는

베드로 하면 생각나는 것 중의 하나가 실수입니다.

그런데 그의 실수를 보면 많은 위로가 됩니다. 왜냐하면, 아주 인간적이기 때문입니다.

요즘 알파고와 이세돌 9단 사이의 바둑으로 인해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불안하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앞으로 인간들을 대체하게 될 인공지능의 역할입니다.

사람보다 더 정확하게 판단하고 결정합니다. 지금 인간들이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능력 있게 행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렵습니다. 인간적이지 않기 때문이죠.

 

사실 저에게 찾아오는 두려움 역시, 실수하지 않는 인간의 모습입니다.

아니,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완벽을 추구하려는 인간들의 모습이 다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인간들의 교만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예배를 마치고 새가족과 사진을 찍었습니다. 유난히 젊은 부부가 많았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묻는 것은 아닌데, 알면서도 신혼부부인가 봐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부인이 이렇게 대답을 하더군요.

목사님이 주례하셨는데요.”

그래서 또 엉겁결에 대답한 것이, “드레스를 입었을 때하고는 많이 다르네요.”

저에게는 이런 실수가 참 잦습니다. 그게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요?

실수한다고 인간은 절대로 비참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인생이란 실패 가운데서 배워나가죠.

 

20159, 머니 투데이에 실린 국수 조훈현 9단에 대한 기사입니다.

어떤 20대 청년이 조훈현 9단에게 패배 후에도 기분 좋게 복기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9단은 영원한 국수로 불리지만, 좌절을 자주 경험했습니다. 일본에서 바둑을 배우고 승승장구했지만, 자신이 키웠던 제자 이창호에게 일인자의 자리를 내줘야 했습니다.

그는 패배할 때마다 복기하며 승리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패배 후에 복기하면서 자신의 실패를 바라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지만, 그 복기라는 과정을 통해 성찰하고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제공한 [실패를 통해 배우라]라는 주제의 자료입니다.

실패한 사람의 95%는 진짜 실패한 게 아니라 도중에 포기한 것이라고 한다.

결국, 성공이란 어떤 어려운 역경에 처하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자의 프리미엄이라는 것이다.

미국 항공우주국 나사(NASA)에서는 직원 채용 심사 시, 실패 경험을 매우 중요하게 고려한다고 한다.

실패 경험이 없는 사람은 큰 어려움에 직면하면 쉽게 당황하고 혼란스러워합니다. 반면, 실패해 본 사람은 중심을 잃지 않고, 차분히 대처할 가능성이 큽니다.”

뛰어난 사람일수록 잘못이 크다. 그만큼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 때문이다.

한 번도 잘못을 해 본 적 없는 사람, 그것도 큰 잘못을 저질러 본 적 없는 사람을 윗자리에 앉게 해선 안 된다.

잘못을 저질러 본 적 없는 사람은 평범한 사람으로서 어떻게 잘못을 발견하며 어떻게 조기에 고칠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피터 드러커의 말입니다.

 

오늘 베드로를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실수가 실패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삶을 바꾸어 가신 예수님과의 만남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참 좋아하는 표현인데, ‘자갈과 같은 인생을 살던 베드로를 불러 반석으로 바꾸신 이야기입니다.

결정적으로 베드로가 반석이 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입니다.

아마도 베드로의 인생에서 가장 비참했던 순간은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에도 옛 생활로 돌아가 고기를 낚고 있었던 때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비참한 인생 가운데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베드로 역시 성경에 등장하는 실수한 사람들의 성공적인 이야기를 장식하게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42절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를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베드로를 만난 처음부터 그에 대한 예수님의 청사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가면 갈릴리 근처 가버나움베드로의 집터가 남아 있습니다.

회당 옆 조그마한 집을 보면 그는 당시 보통 수준의 교육과 삶을 영위하던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미 결혼한 사람이었고, 형제 안드레와 함께 어부로 삶을 영위하고 있었습니다.

다수 충동적이고 다혈질적인 그의 성품은 수시로 변하는 갈릴리 바다의 환경적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그는 때로는 헌신적으로, 때로는 모험적인 행동으로 인해 예수님의 마음에 드는 사람이기도 했지만, 때로는 충동적으로, 때로는 조급함으로 서두르다 실수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요한의 아들 시몬은 그렇게 자연인으로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그에게 꿈이 있다면 만선의 기쁨이 아니었을까요?

고기를 실컷 잡고 가족을 위해 배를 저어 돌아오는 것 말입니다.

베드로의 삶을 보면 우리의 인생을 보는 것 같아 위로가 될 때가 참 많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도 그렇듯이 베드로의 삶에도 주님을 만난 것은 실패의 순간이었습니다.

인생에서 성공의 가도를 달릴 때는 만나기 힘든 주님이 실패의 순간에는 참 가깝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실패의 순간이란 자신의 부족함이 보이는 때가 아닐까요?

어쩌면 인생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실패라고 정의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실패를 인정하기가 참 힘이 듭니다.

그것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삶이 보잘것없고 수치스럽게 보이기 때문이죠.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던 순간, 그의 삶의 프로페셔널이라고 생각했던 어부의 인생에서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이었습니다.

단순히 그가 밤새도록 수고하고 그물질을 했지만, 잡은 것이 없는 것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가뜩이나 고기를 잡지 못해 속이 상해 있는데, 한 번도 고기를 잡아본 적이 없는 목수 출신의 예수님이 깊은 곳에 그물을 던지라고 훈수를 두고 있으니 말입니다.

지금까지 자신 있게 살아왔던 삶에 누군가 들어와 내가 너보다 너를 잘 안다.라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참 신기한 것은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시는 분 앞에서 우리는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58절에 보면, 이 순간 베드로는 주님의 발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순간 절망적인데, 주님을 보는 순간 자신의 삶에 희망이 생깁니다.

그분 앞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겨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깁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만나고 그물을 내려두고.’ 따랐다고 했는데, 사실 이 그물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그의 삶의 자존심이 아니었을까요?

사실 누군가 앞에 내 자존심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 아닐까요?

우리의 자존심을 내려놓으면 비로소 사명이 보이는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는 배를 타고 고기를 잡는 인생을 살았지만, 이제부터 주님이 그의 삶을 사람을 낚는 인생으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지금까지 생존을 위해서 살았던 그에게 주님이 사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만들어 가시는 주님

이제 잠깐 투박한 돌덩이를 반석으로 다듬어 가시는 주님의 손길을 보았으면 합니다.

복음서에 유난히 베드로의 실수 이야기가 많습니다. 복음서 중에 제일 먼저 쓰인 것이 <마가복음>인데, 마가베드로를 따라다니며 그의 설교를 많이 들었던 인물입니다.

아마도 추측인데, 마가의 기록에 그렇게 많은 베드로의 실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으로 미루어, 베드로는 자신의 간증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주님을 만나며 동행했던 3년의 기간에 일어났던 실수를 자랑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 실수의 순간순간마다 예수님베드로를 조금씩 다듬어 가시고 있었기 때문이죠.

그의 실수의 순간은 실패가 아니라 주님의 임재를 느끼는 역사의 순간이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의 삶에 있었던 실패의 이야기를 즐겼던 것 같습니다.

그 순간을 통해서 많이 성장했다는 간증을 할 수 있으니 말입니다.

베드로에게도 그렇듯이, 우리 인생에서도 실패의 순간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의 순간이 찾아오는 길목인 듯합니다.

밤새 고기를 못 잡은 것은 베드로에게서 그렇게 흔한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가 예측했던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예측하지 못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에 손을 대시기 시작했다는 말입니다.

 

재미있는 상상이지만, 주님이 베드로를 쓰시기 위해 물속에 고기들을 여기저기 흩으셔서 베드로의 그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 것은 아닐까요?

그의 실패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지 않았을까요?

참 흥미롭지 않습니까?

우리의 실패 속에도 하나님의 뜻이 있다는 것 말입니다.

이제 고기 좀 못 잡은 것이 베드로의 인생에서 결코 실패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아니, 그의 인생을 바꾸어 새로운 꿈을 주시는 은혜의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생에서 고기를 흩으시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것이 아닐까요?

실패가 의미 있는 것은, 그 속에 깨달음이 있기 때문이요, 실패가 은혜인 것은 그로 인해 하나님의 사명이 임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베드로에게서 가장 수치스러운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그의 생애 가장 위대한 고백을 하고 예수님께 칭찬을 받자마자 가장 모욕적인 질책을 받는 장면입니다.

예수님께 들었던 최대의 찬사는 베드로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하여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본문 15~19절을 보세요.

15. 이르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17.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8.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9.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네가 복이 있도다.”(17)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18)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19)

 

아주 중요한 것은 주님의 교회는 이 고백 위에서만 세워진다는 것이죠.

그리고 21절 말씀이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이때로부터

베드로가 고백한 것을 들으시고, 저 정도의 고백을 하였으니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도 되겠다고 생각하신 거죠.

예수님이 당할 고통과 져야 할 십자가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예수님을 실망시키는 말을 베드로가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여 이르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22)

 

중요한 것은 이런 말을 하는 베드로의 내면을 보신 것입니다.

조금 전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고백이 얼마나 이기적인 것이었는지, 말은 라고 고백하지만, 사실은 그의 내면에 자신의 이기심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래서 23절에 예수님이 이렇게 질책하십니다.

23-“예수계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예수님을 생각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자신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 증거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사람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사람의 생각이 개입하는 순간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인간적으로 말해서.”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말입니다.

 

예수님의 무서운 질책은 자갈 같은 그의 생각을 반석 같은 생각으로 만들어 가시는 데 꼭 필요했습니다.

아마도 주님의 말씀이 무척 아플지 모르지만, 베드로는 깨달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P31 성경대로 비즈니스 하기]의 저자인 하형록 회장은 베드로에 대하여 이런 글을 썼습니다.

베드로는 어부였다. 다들 그렇게 말하지만 나는 다른 시각으로 본다. 그는 직책이 어부였지만 고기 잡는 것에 은사가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잡는 것(catch)에 은사가 있었던 사람이다.

만일 베드로가 사막에 있었다면 뱀이나 전갈을 잡는 명수가 되었을 것이다. 산에서 살았다면 에서를 능가하는 사슴 사냥꾼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에게 그런 잡는 은사가 있었다. 그가 어부가 된 것은 갈릴리 호숫가에 살았기 때문이다.

 

우리 예수님의 장기는 방향을 모르고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의 방향을 잡아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로의 삶을 열심에서 사명으로 바꾸어 놓으신 분. 아직 형체가 드러나지 않는 바위를 가져다 여기저기를 쪼아 완성된 작품을 만드시는 분 말입니다.

요한복음 141~42절에는 그의 형제 안드레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의 형제 베드로에게 소개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처음 만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이 42절 하반절에 나옵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처음 말씀을 시작하면서 언급했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을 깨닫습니다.

예수님은 이름 짓는 선수라는 사실이죠.

유대에서 이름이란 단순한 이름이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입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만나고 이름이 바뀐 사람, 구약에서 삶을 바꾸실 때 이름을 바꾸시는 것을 자주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지어 주셨다는 것은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그의 모습에서가 아니라 미래의 그의 모습을 보시고 말입니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베드로를 부르셨던 것처럼 우리를 쓰실 수 있는 이유는,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미래의 모습을 꿈꾸고 계셨기 때문이라고 말입니다.

 

말씀을 준비하다 참 좋은 예화를 하나 만나게 되었습니다.

경북대학교 총장을 지낸 박찬석 교수2002년 한국일보에 [내 평생 잊지 못할 일]이라는 제목으로 기고했던 글입니다.

나의 고향은 경남 산천이다. 지금도 비교적 가난한 곳이다. 그러나 아버지는 가정형편도 안되고 머리도 안 되는 나를 대구로 보냈다. 대구 중학을 다녔는데 공부가 하기 싫었다. 1학년 8, 석차는 68/68, 꼴찌를 했다. 부끄러운 성적표를 가지고 고향에 가는 어린 마음에도 그 성적을 내밀 자신이 없었다. 당신이 교육을 받지 못한 한()을 자식을 통해 풀자고 했는데 꼴찌라니.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는 소작농을 하면서도 아들을 중학교에 보낼 생각을 한 아버지를 떠올리면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잉크로 기록된 성적표를 1/68로 고쳐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다. 아버지는 보통학교도 다니지 않았으므로 내가 1등으로 고친 성적표를 알아차리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대구로 유학한 아들이 집으로 왔으니 친지들이 몰려와 찬석이는 공부를 잘했더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앞으로 봐야제, 이번에는 어쩌다 1등을 했는가배했다. “명순(아버지)이는 자식 하나 잘 뒀어. 1등을 했으면 책거리를 해야제했다.

당시 우리 집은 동네에서 가장 가난한 살림이었다.

이튿날 강에서 멱을 감고 돌아오니, 아버지는 한 마리뿐인 돼지를 잡아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잔치를 하고 있었다.

그 돼지는 우리 집 재산 목록 1호였다. 기가 막힐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버지!”하고 불렀지만, 다음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달려나갔다.

 

그 뒤로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겁이 난 나는 강으로 나가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에, 물속에서 숨을 안 쉬고 버티기도 했고 주먹으로 내 머리를 내리치기도 했다.

충격적인 그 사건 이후 나는 달라졌다. 항상 그 일이 머리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17년 후 나는 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러니까 내 나이 45세 때 되던 어느 날, 부모님 앞에 33년 전의 일을 사과하기 위해,

어무이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요하고 말을 시작하려고 했는데. 옆에서 담배를 피우시던 아버지께서 알고 있었다. 그만해라. 민우(손자)가 듣는다.”고 하셨다.

자식의 위조한 성적을 알고도 재산 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잔치를 하신 부모님 마음을, 박사이고 교수이고 대학 총장인 나는 아직도 감히 알 수 없다.

 

오늘 말씀과 딱 맞는 이야기가 아닌가요?

오늘 우리에게 소망이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때로 지극히 인간적이고, 때로 지극히 이기적인 자신의 열정으로 살아가는 이유를 예수님이 불러 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소망이 있고, 우리의 삶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부르신 그분이 끝까지 우리를 믿고 계시다는 것. 지금은 우리가 실수투성이지만, 끊임없이 우리를 다듬어 가시고 계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또한, 베드로를 보면서 깨닫게 되는 흥미로운 사실은, 베드로가 주님을 실망시키는 일을 할 때마다 찾아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실수한 베드로를 버리신 것이 아니라 찾아오셔서 꼭 옛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시몬아라고 말이죠.

 

옛 이름을 부르실 때마다 베드로는 무엇을 생각했을까요?

! 내가 옛사람으로 돌아왔구나!’

우리가 너무나 분명하게 경험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삶의 구주로 인정했음에도 참 쉽게 무너지는 존재라는 것이죠.

주님을 향해 위대한 고백을 하고도,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으로 주님의 길을 막고자 했던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무엇이 십자가인가요?

시도 때도 없이 우리 마음속에 드는 사람의 생각이 십자가입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십자가입니다.

우리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질 수 없는 것이 십자가입니다.

 

그 십자가는 자기 부인이 없이는 질 수 없습니다. 자기의 목숨역시 버려야 할 때가 올지도 모릅니다.

놀라운 신앙의 진리는 주님을 위하여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은, 우리가 한 번 했던 고백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감정적으로 뜨거웠던 때 들었던 생각이 자기를 부인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이기는 훈련을 하지 않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 우리에게 신앙적 교만이 들어오는 순간, 율법적이 됩니다.

교만은 주님의 도우심이 없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주님 우리를 도와주세요!라는 고백이 가장 신앙적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연조가 높아지고 오래될수록 주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한 존재임을 아는 것이죠.

 

주님을 고백하는 것과 사탄의 생각을 하는 것이 그리 멀리 있지 않습니다.

조금만 방심하면 넘어질 수 있는 존재, 그리고 수없이 실수할 수 있는 존재이죠.

우리가 주님께 도우심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실수 가운데서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주님을 믿기 때문이죠.

우리를 끝까지 믿어주시는 주님 때문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는 것이죠.

부활은 죽음 권세를 이기고 생명으로 승리하신 것입니다.

우리 삶의 어둠과 실패, 그리고 저주를 끊고 승리하실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음에 머물러 계셨더라면 십자가의 사건은 실패로 끝났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죽음 권세를 깨뜨리고 일어나셨습니다. 십자가가 절대로 실패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 모두에게는 부끄러운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우리가 실패하지 않을 것은 우리가 능히 그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장 부끄러운 모습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어주시는 주님을 바라보며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갈 같은 우리를 반석으로 만들어 가시는 주님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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