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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목사

[김병삼목사]부족함 가운데서 행하시는 기적(마14:13-21)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4.01.06|조회수259 목록 댓글 0

부족함 가운데서 행하시는 기적(1413-21)

성경본문:마태복음14:13-21

13. 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 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14.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15.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20. 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으며

21 먹은 사람은 여자와 어린이 외에 오천 명이나 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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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들어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현실도피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왜 현실에서 도피하려고 할까요? 아마도 현실의 문제를 타파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동아대 인문과학대학 학장인 박은경 교수는 국제신문 칼럼에서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근래 '응답하라' 시리즈와 외딴 섬에서 하루 세끼를 해결하는 예능프로그램이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았다.

두 프로그램이 공통으로 현실도피라는 코드와 맞물린다는 생각에 팍팍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반영한 듯해 애처롭다.

희망마저 보이지 않을 때는 비현실적인 대안으로 과거로의 회귀를 꿈꾼다.

그러나 응답할리 없는 과거에 대고 응답하라는 외침은 물질적 풍요는 없더라도 미래에 대한 희망이 지배했던 시대에 대한 동경으로 읽힌다.

희망을 잃었다는 것은 끊임없이 삶에서 느끼는 부족감 그리고 절망감같은 것이죠.

오늘의 기적은 바로 빈들에서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제자들을 통해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채우시는 예수님의 기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가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채워지지 못하는 것이 문제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현실을 도피하는 방법을 알려주신 분이 아니라, 현실을 이기고 소망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들으시고

오늘 말씀의 기적은 예수님의 사역 가운데 가장 많이 알려진 사건입니다. 우리가 흔히 오병이어의 기적이라 부르는,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오천 명을 먹이신 일입니다.

그런데 오늘 기적의 배후에 참 아픈 예수님의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는 간과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께서 들으시고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바로 전에 마태복음 141~12절에서 자신의 사촌이었고 자신의 길을 예비했던 선지자 세례 요한의 목이 잘렸다는 소식과 그의 제자들이 그의 몸을 장사지냈다는 소식을 예수님께 전한 것이죠.

그 소식을 들은 예수님은 13절에,“예수께서 들으시고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빈 들에 가시니”“무리가 듣고 여러 고을로부터 걸어서 따라간지라

 

빈들이 영어로는 ‘solitary place’라고 되어 있습니다.

혼자 배를 타고 아무도 없는 곳으로 떠나신 것입니다. 여기서 떠나다는 말도 ‘withdrew라는 말인데, 의도적으로 자신이 피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예수님이 그곳으로 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따라갑니다.

대중은 자신들의 필요를 따라갑니다. 종종 공인이 된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권리를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목회하면서 아마도 이런 예수님의 상황이 더 이해가 되는 것 같습니다.

인생을 살면서 힘들고 어려운 일, 슬픈 일을 만나도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 것, 혹은 기쁜 일이 있어도, 이 기쁨을 함께 나누지 못할 사람들 때문에 참아야 하는 일.

 

오늘 말씀에 보니까, 예수님이 한적한 곳으로 가신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사람들이 죽 걸어서 쫓아간 상황입니다.

그렇게 자신을 따라오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며 예수님의 마음에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드셨습니다. 14절 말씀을 보세요.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여기에서 불쌍히 여기다라는 말은 compassion’이란 단어를 쓰고 있는데, 예수님을 따라오는 군중의 아픔을 공감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적을 보면 거기에 늘 주님의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파하시는 마음 때문에 불쌍히 여기시고 기적을 행하시는 주님이 있습니다.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는데, 기적은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아파하는 마음과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나는 곳에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고, 그 마음으로 인해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납니다. 만일 기적을 행하는 사람, 기적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거나 자랑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기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사탄의 시험에서 기적을 거부하셨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돌을 들어서 빵을 만들라는 것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이요, 높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 보라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없는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요, 사탄에게 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부인하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이야기하고 기적을 구할 때마다 우리가 새겨야 할 것입니다.

그곳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는가?’

 

곤란한 상황

우리의 인생에서 곤란한 상황을 만나고, 그 상황을 우리의 힘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고, 그 상황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안타까운 마음이 있다면 기적이 일어나는 최적의 조건이 형성된 것입니다. 본문 15절을 보세요.

저녁이 되매 제자들이 나아와 이르되 이곳은 빈 들이요 때도 이미 저물었으니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예수님이 한적한 곳으로 사람들을 피해 왔던 그 장소로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의 능력으로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문제는 사람이 떡으로만사는 것은 아닌데, 떡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곳에서 현실적인 문제인 을 해결한 방법이 없습니다.

필요는 있는데 해결할 방법이 없는 것이 곤란한 상황이 아닐까요?

이러한 상황에서 해결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현실을 도피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제자들이 제시한 방법은 해결책이 아니라 도피책입니다. 사람들을 다 보내어 마을에서 음식을 사 먹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곳에서의 예수님의 사역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생략되어 있지만, 평행 본문인 요한복음 6장에는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신 이유가 명백하게 나와 있습니다.

이 기적 이후에 행하신 설교 때문이지요. 예수님이 이 기적을 행하신 후에 바다 건너편으로 가셨고, 그곳에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626~27절입니다.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떡을 만들어주셨지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육신의 양식을 위해서가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시겠다는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참 중요한 신앙적 태도가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곤란한 상황을 만났을 때, 우리가 그 현실을 피해 가는 것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때, 그 상황을 바꾸시는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출처: [리 스트로벨의 불변의 소망], 리 스트로벨, 두란노, 2016. (P.112-113)

나는 초신자 시절 당시 교인들의 질문 카드에 답하는 일에 자원했다.

어느 주일, 열두 살짜리 여자애가 단순히 예수님에 관해 더 알고 싶다는 내용의 카드를 제출했다.

그리고 나중에 내게 전화를 걸어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사모님과 함께 와 주실 수 있으세요? 저희 아빠와 함께 얘기를 좀 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좋지!”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시간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아내와 함께 그 가족의 집에 도착해서 거실 탁자 위에 수북이 쌓여 있는 책들을 보고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하나같이 기독교 비판자들이 쓴 책이었다. 알고 보니 그 여학생의 아버지는 오랫동안 기독교의 맹점을 연구해 온 학자였다.

여학생의 아버지는 피자와 음료수를 앞에 두고서 한밤중까지 질문을 퍼부었고, 나는 대부분 질문에 제대로 답변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몇몇 질문은 내 믿음을 송두리째 뒤흔들었다.

마침내 나는 이렇게 말했다.

주신 질문에 제가 다 답변해 드릴 수는 없지만, 선생님이 아무리 애를 쓰셔도 기독교의 기초를 무너뜨릴 만큼 결정적인 흠을 찾아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께 말씀드릴 좋은 답이 있다고 자신합니다. 제가 좀 더 조사해서 오겠습니다.”

 

그날 적잖은 의심을 품고 집에 돌아온 나는 그때부터 새로운 영역들을 파헤치기 시작했고 곧 만족할 만한 답들을 발견했다. 덕분에 기독교에 대한 내 확신은 전보다 훨씬 더 강해졌다. 지금 나는 이런 종류의 질문을 전보다 더 잘 다루게 되었다.

곤란한 상황이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는 것, 그리고 우리를 사명의 자리로 인도하도록 살아간다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도전적인 명령

오늘의 기적은 예수님의 도전적인 명령에서 시작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도피하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도전하고 계십니다.

본문 16~18절에 보니까,

16. 예수께서 이르시되 갈 것 없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17.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뿐이니이다

18. 이르시되 그것을 내게 가져오라 하시고

 

현실적으로 제자들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현실적으로 제자들이 가진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현실을 기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공식이 존재하는데, 우리가 가진 현실을 보게 하시지만, 그것을 가지고 오라는 것입니다.

 

기적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묻거나 명령하셨을 때는 이유가 있다는 것입니다.

한적한 곳에서 말씀을 마치고 사람들을 돌려보내도 될 일인데, 굳이 이곳에서 사람들을 먹이라고 명령하시는 불합리한 상황이 의도가 있다는 말입니다.

가만히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들은 아주 불합리한 명령을 통해 드러나죠.

그래서 우리 삶에 불합리한 명령이 들어올 때는 라고 묻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라고 물어야 합니다. 라는 물음은 어떻게를 통해 드러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단편적인 기적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하시는 과정이 놀라운 기적이 아닐까요?

당시 애굽과 이스라엘이라는 구도 속에서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요?

그런데 기적을 행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참 이해하기 힘든 거죠.

광야에서 40년을 헤매도록 하셨을까요?

광야의 시간 동안 많은 기적이 일어났지만, 그런 기적이 없이 1주일 정도에 가나안으로 가게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중요한 것은 광야에 들어서는 순간,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안내를 받아 광야 깊숙이 들어가는 순간 라는 물음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제 어떻게 그 과정을 통과하느냐, 하나님과 동행하느냐의 문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앞에 두고, 요단강을 건너며, 모세가 느보 산을 앞에 두고 죽으며,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는 일들을 경험하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40년을 광야에서 보내게 하셨는지, 왜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는지 말입니다. 사실 직선으로 인도해 주셨다면 만나의 기적이 없이도 가나안에 다다를 수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오늘의 기적이 그런 상황이 아닐까요?

사람들을 돌려보내면 될 일을 굳이 왜 이 광야에서 먹이라고 하시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너희들이 먹이라고 명령을 하시는지 말입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가 아니고 어떻게입니다. 이제 어떻게가 작용하기 시작합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뿐입니다.

내게로 가져와라

예수님께서 빈들에서 사람들을 먹이셨는지는 나중에 깨닫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방법은 제자들이 가진 것을 가지고 예수님께 가져와 기도하셨다는 것이죠. 본문 19절을 보세요.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우리가 가장 많이 들었던 해석일 것입니다.

비록 작은 것이지만 주님께서 축사하셨다는 것, 그리고 그 떡을 제자들을 통해 나누셨다는 것.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기적을 사람을 통해 보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아주 중요한 말씀 가운데 하나가 축사라는 단어입니다. 두 가지 단어가 결합해 있습니다. 축복하고’ ‘감사하다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불쌍한 사람들이 보였고, 그들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문제는 날이 저물자 먹을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안타까운 마음에 이 상황을 어찌해야 할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해결이 아니라, 제자들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

제자들이 근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들이 가진 것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고는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것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할 때, 주님은 우리가 가진 것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참 좋아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영광입니다.

우리의 성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를 원하신다는 그럴싸한 고백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이, 그럴싸한 성공의 욕구를 포장하고 있을 때가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해 저에게 참 커다란 울림이 되었던 책 중의 하나가 [내가 왕바리새인입니다]라는 허운석 선교사의 글이었습니다.

그분이 성공과는 정반대의 길에서 말기 암으로 인해 사람들에게 외면당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간증한 설교 중에 일부를 소개합니다.

하나님은 내게 암이라는 시련을 주셔서 도살당할 양같이 여기게 하셨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저 선교사는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저런 병에 걸렸나라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어떤 교회는 건강할 때는 나를 그렇게 초청하더니, 병들자 교인들이 시험에 든다며 단에 세우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나를 천대받게 하심으로 내 영혼을 보호하십니다.

내가 뭐라고 하나님이 이렇게 내 영혼을 간수하십니까?

인간적인 눈으로 보면 비참하지만, 그분의 끔찍한 사랑을 알기 때문에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리게 됩니다. 그리고 내가 받는 이 고통과 괴로움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떡과 포도주가 됩니다.

그 사실이 감격스럽습니다.

선교사님, 나도 그 사람을 맞고소할까 봐요!”

모함을 당해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어떤 분에게 나는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못된 것은 사람들이 다 알지요? 당신이 꾹 참고 있다는 것도 사람들이 다 압니다.”

그러자 그분이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하더군요.

우리가 겪는 고난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떡과 포도주가 됩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기적은 우리가 가진 것, 우리가 누리는 영광을 가지고 일어난 기적이 아닙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것,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을 축사하심으로 행하신 것입니다.

 

때로 우리의 부끄러움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어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 때로 우리의 고통과 괴로움을 감내하는 모습이 떡과 포도주가 되어 전달됩니다. 작은 것에서 시작된 오병이어의 기적이 놀라운 이유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이야기합니다.

무리를 보내어 마을에 들어가 먹을 것을 사 먹게 하소서

 

제자들처럼 우리는 늘 우리의 최선을 말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의 최선은 늘 우리의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해결책이란 늘 우리의 소유에 근거할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신세를 한탄할 때가 많습니다.

 

제자들이 제시한 방법은 해결책이 아니라 신세 한탄이며 하소연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하소연을 듣고는 그것을 가져오라고 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찮은 제자들의 소유를 예수님께서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축복하시자 제자들의 소유가 아닌, 하나님의 축복이 나타났습니다.

참으로 감사한 것은 예수님이 축복한 것을 다시 제자들에게 주시며 그것을 나누어 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것을 깨닫게 되는데, 하찮은 우리 인생도 주님이 축복하시면 위대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고, 주님은 우리를 도구로 사용하신다는 놀라운 사실입니다.

 

제가 늘 생각하고 깨닫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은 자격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시기 때문에 자격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종종 착각하는 위대한 기도들 역시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저를 드립니다. 저를 사용하세요!라는 기도가 위대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자격이 충분하거나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가치 있게 여겨주셨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신기하죠.

예수님께서 빈들에서 굶주린 5천 명이 넘는 사람들을 우리에게 먹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격이 없는 제자들에게 말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제자들의 능력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닌데, 참 작고 부족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귀하게 여기셨습니다.

오병이어가 충분한 능력이 아니라, 그것을 보시고 감사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는 한 어린아이가 가져온 것이라고 되어 있지만, 여기에는 누구의 것인지 분명하게 나와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가지시고 하늘을 우러러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기도하셨을 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보잘것없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그곳에 모인 무리를 모두 먹이고도 남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참 하찮은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쓰임 받는 것은 주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감사하시고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병이어가 주님의 손에 들려질 때, 감사와 축복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해결책이 무엇일까요?

우리가 가진 것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지만 도저히 계산이 나오질 않습니다.

특별히 사명자로 살아가는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에게는 능력이 없는데 너희가 하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한 한계를 가지고 하소연하는 것이 아니라, 그 한계를 가지고 주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참 인상적인 구절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사하시기 전에 본문 19절에 보니까,“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

 

왜 무리를 앉히셨을까요?

우리가 의문을 가지고 성경을 보면 대답해 줍니다.

너희가 가진 것은 이것뿐인데, 하나님이 행하시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아주 중요한 것을 보이기 전에 잠시 침묵과 여유를 가지는 것입니다.

아니, 1등을 발표하기 전에 북을 치며 긴장을 고조시키는 것처럼 클라이맥스로 치닫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클라이맥스가 언제일까요?

우리의 능력이 극대화되는 순간이 아니라, 우리의 가진 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다 하고, 이제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기다리는 순간입니다. 마치 중요한 순간을 기다리는 아이가 침을 꼴딱삼키며 기다리는 순간입니다.

출애굽기 1414절에서는 홍해를 앞에 두고 바로의 군대들이 뒤를 쫓아오는 순간에 모세가 말합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제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서에서 출애굽 한 백성이 가나안에서 첫 번째 전투를 벌이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7일 동안 성을 돌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통해 백성들에게 명령한 것이 무엇입니까?

성을 돌 때 아무 말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매일 한 바퀴씩 성을 돌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 불평하거나 소리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조용히 앉아야 하는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의 가진 것을 내어놓고, 내 능력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인생 최고의 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은, 우리 인생에서 최고의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주님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는 순간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닙니다.

주님 나에게는 가진 것이 이것밖에는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때는 우리의 부족한 순간입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목회자의 마음이 될 것 같은데, 아마도 예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올해 나온 책 중에 돌아가신 하용조 목사님이 나눈 인터뷰 글들을 모아 [그날의 대화]라는 제목으로 나온 것이 있습니다. 조용기 목사님하용조 목사님과의 대화였는데, 두 분 다 건강의 문제를 가지고 살았던 분이죠.

하 목사님조용기 목사님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조 목사님도 그런 말씀을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고치면서 당신은 왜 아프냐는 말이요.”

 

조용기: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지만, 옛날에 많은 병자를 위해 기도하고 나서 하나님 저도요라고 기도했습니다.

병든 사람들이 너무 고통스러워하니까 불쌍해서 기도했습니다. 제게 은사가 있어서 한 것도 아닙니다.

2002년 아프리카에서 집회할 때였습니다. 사람들이 스타디움을 가득 메우고 대통령, 각료들이 도착했는데 도저히 일어날 수가 없는 거예요.

주님, 일어나 강단으로 갈 수 없는데, 누구에게 말할 수도 없고 어느 누가 부축해 줘야 나갈 수 있겠습니다. 주님, 이번만 설교하고 죽어도 좋으니까 창피를 안 당하게 일으켜 주십시오.”

그러고 나서 겨우 일어나 걸어나갔는데, 설교를 시작하니까 성령님이 힘을 주셨어요.

설교 도중 쓰러질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들면서도 설교를 무사히 마칠 수 있었죠.

그리고 병자들을 위해 기도했는데, 또 많은 사람이 나았어요.

그래서 속으로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하나님 저도요. 저 많은 사람이 기도로 낫는데, 왜 저는 안 낫습니까?”

 

하용조:

처음에 암을 발견하고 수술을 받으려 할 때, 서울에서 수술받으면 소문이 나겠더라고요. 제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은데, 우리 교인들이 실망할 것 같아서 그게 두려웠어요.

 

조용기:

저는 주일마다 번지 점프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말씀에 묶여 있다고 생각하고 번지 점프를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줄을 잡아 주시지 않는다면 저는 그냥 떨어지고 마는 겁니다.

제가 살려고 하다 보니까 다른 사람들을 살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살기 위해 말씀을 찾고 말씀을 증거하다 보니까 저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은혜를 받고 교회로 모였습니다.

제가 신령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40일 금식기도 하는데, 저는 금식기도 못 합니다. 체질이 약해 사흘만 금식하면 졸도해요. 그러니까 최자실 목사님이 살아 있을 때 항상 저를 위해 대신 금식해 주셨어요.

 

기적은 하나님밖에 붙들 수 없는 심정으로 살아갈 때 경험하는 것이죠.

우리가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지만, 그저 우리를 기적의 도구로 사용하실 때도 있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기적의 매개체가 되는 것처럼 말입니다.

 

저는 다는 아니지만, 하용조 목사님조용기 목사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저도 공중의 줄 하나를 붙들고 있는 심정으로 강단에 서야 했을 때가 있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렇게 힘든 순간에도 교인들을 바라보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 기도했기 때문이죠.

기적은 모든 것이 채워짐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 가운데 일어나는 것이 정상적인 것 같습니다.

기적은 신학적 지식과 관계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입니다.

기적은 간절한 마음 가운데서 체험하게 되는 마음입니다.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죠.

문제를 회피하는 자들은 절대로 기적을 경험하지 못합니다. 문제를 가지고 주님께 나아오는 자들만이 주님이 행하시는 기적을 스릴 있게 만나게 됩니다.

 

하용조 목사님이 이렇게 말을 했더군요.

저는 믿음이란 항상 낭떠러지에 서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큰길을 걷는 게 아니라 낭떠러지에 떨어지는 심정으로 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기적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성령님의 역사를 가장 강하게 경험하는 것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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