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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삼목사

[김병삼목사]고센은 축복의 징검다리 일뿐(출12:37-51)

작성자성경 벌레|작성시간24.11.28|조회수138 목록 댓글 0

고센은 축복의 징검다리 일뿐(1237-51)

성경본문:출애굽기12:37-51

37.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38.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39. 그들이 애굽으로부터 가지고 나온 발교되지 못한 반죽으로 무교병을 구었으니 이는 그들이 애굽에서 쫓겨나므로 지체할 수 없었음이며 아무 양식도 준비하지 못하였음이었더라

40.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41. 사백삼십 년이 끝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 즉

42.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

4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유월절 규례는 이러하니라.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나

44.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

45. 거류인과 타국 품꾼은 먹지 못하리라

46. 한 집에서 먹되 그 고기를 조금도 집 밖으로 내지 말고 뼈도 꺾지 말지며

47. 이스라엘 회중이 다 이것을 지킬지니라

48.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49.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거류하는 이방인에게 이 법이 동일하니라 하셨으므로

50. 온 이스라엘 자손이 이와 같이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였으며

51.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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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의 징검다리에서

오늘부터 시작하는 광야에서의 동행을 이해하기 위한 사전 지식이 조금 필요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고센 땅에서 거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고센과 라암셋이라는 지명에 대해서도 이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고센 땅에 거하게 된 이야기는 창세기 4628절 이하에 잘 나와 있습니다.

28. 야곱이 유다를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 자기를 고센으로 인도하게 하고 다 고센 땅에 이르니

29. 요셉이 그의 수레를 갖추고 고센으로 올라가서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맞으며 그에게 보이고 그의 목을 어긋맞춰 안고 얼마 동안 울매

30.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 지금 죽어도 족하도다

31. 요셉이 그의 형들과 아버지의 가족에게 이르되 내가 올라가서 바로에게 아뢰어 이르기를 가나안 땅에 있던 내 형들과 내 아버지의 가족이 내게로 왔는데

32. 그들은 목자들이라. 목축하는 사람들이므로 그들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

33. 바로가 당신들을 불러서 너희의 직업이 무엇이냐 묻거든

34. 당신들은 이르기를 주의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목축하는 자들이온데 우리와 우리 선조가 다 그러하니이다 하소서 애굽 사람은 다 목축을 가증히 여기나니 당신들이 고센 땅에 살게 되리이다

 

이렇게 가나안 땅에서 가뭄으로 고난을 겪던 야곱의 일가는 애굽에서 총리가 된 요셉을 만나고 극진한 대우를 받으며 애굽에 정착하게 됩니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이었습니다. 그가 제일 사랑했던 아들이지만, 어린 요셉을 잃고 맙니다. 아버지의 편애를 시기한 형들에 의해 애굽으로 팔려간 것이지요.

성경이 늘 그러하듯이 요셉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끝이 아님이 증명되었습니다. 그는 애굽으로 팔려갔지만,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았습니다. 그에게 수없이 많은 고난이 따랐지만, 그는 신앙을 지켰고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이 이스라엘이 가뭄으로 고난을 겪을 때 그는 예비된 사람이 되어 그의 식구들을 다 살리게 되지요.

재미있는 사실 중의 하나는 고난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꼭 쓰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고난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며 사는 사람입니다.”

이후 430년이 흐르고 70명이 이주한 이스라엘 백성은 장정만 60만을 헤아리게 됩니다. 그곳에는 다른 족속으로 함께 종 되었던 자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요셉을 모르는 새 왕들이 등장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가 딱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번성함을 축복하기보다는 두려움을 느낀 애굽은 이제 그들을 노예로 삼아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핍박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팔복 말씀 중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라고 했지요. 성경은 끊임없이 우리가 환난을 겪을 때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역설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을까요?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요셉은 애굽의 은인이었습니다. 7년 흉년과 풍년을 지나는 동안 그의 탁월한 치리로 말미암아 애굽은 강대국이 됩니다. 곡식을 보관할 창고들을 만들면서 건축도 발달하게 되고, 주변의 모든 국가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요셉의 가족들이 애굽을 찾아왔을 때, 그들은 은인의 가족이었고, 아마도 그 가족들을 위해 무엇을 해 주어도 아깝지 않았을 것입니다.

창세기 46장에 나와 있는 것처럼 요셉이 가족들로 하여금 고센 땅에서 머물도록 전략을 짰을 때 그렇게 무리한 일도 아니었을 것입니다.

애굽은 사하라를 비롯해 알렉산드리아 사막 등 전 국토의 95%가 사막입니다.

그러나 고센은 완전히 다른 땅입니다. 고센은 지하 170m 이상을 파도 암반이 전혀 없는 천혜의 비옥한 땅입니다. 고센이란 이름이 땅 중에서 좋은 곳’ ‘축복받은 땅’(47:6)이란 의미가 있는 것을 보아도 말입니다.

라암셋(Rameses)은 애굽의 나일 강 하류 델타 동북부에 있던 삼각주의 중앙 부분에 있는 성읍으로 나일 강의 타니데익 지류 동쪽에 있는 국고성이며 요새 성읍입니다.

바로는 요셉과 그 친족(이스라엘 백성)을 위하여 애굽에서 가장 비옥하고 살기 좋은 땅인 고센 지역을 거주지로 허락하였는데 라암셋은 고센 지역 중 고정된 한 구역입니다(47:6, 11).

라암셋이 성경에서 유명한 것은 야곱 이후 400년 동안 그 후손이 거주하면서 이스라엘이라는 큰 민족을 이룬 후 모세의 인도로 애굽을 탈출할 때 출발지였기 때문입니다.

라암셋은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에서 북쪽으로 약 250km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사막 가운데 있는 고센 지역은 주위의 사막 지역과 달리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비옥하여 양배추가 우리나라의 것에 비해 23배는 더 커 보이는데, 이는 나일 강이 가져다준 결과입니다.

실제로 성경에 나오는 고센 지역은 강수량은 아주 적으나 아프리카 수단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나일 강으로 이루어진 세계적인 곡창지대입니다. 오늘날에도 카이로는 역시 강수량은 적은 지역입니다.

라암셋은 150년간 발굴작업이 이루어졌으나 지하수 분출로 일부분만 발굴돼 있다. 관람이 가능한 곳은 아몬 대신전과 말기 왕조시대 왕가의 네크로폴리스(낮은 지역의 도시)뿐이다. 그중에는 애굽의 바로였던 시삭과 오솔콘의 무덤이 있으며 대부분 라암셋의 석상과 우물터가 발굴되어 있다.

특히 거대한 크기의 오벨리스크가 7개나 된다. 출애굽기 11114절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라암셋 건축을 위해 고초를 겪으며 벽돌을 만들었다고 기록한다. 아직도 이곳에는 당시 흙으로 만든 벽돌이 많이 남아있다. 특이한 사실은 벽돌 일부에는 짚이 있었으나 또 다른 벽돌에서는 짚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것은 구약성경 출애굽기의 기록에 나타나 있듯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에는 짚을 공급받아 벽돌을 만들었으나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보내라고 요구한 이후 바로는 그들에게 짚을 주지 않고 이전과 같은 양의 벽돌을 만들도록 한 사실을 상기시켜준다(5:614).

라암셋은 이스라엘의 고난의 역사를 보여준다. 하나님은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그들의 신음을 들으시고 모세로 하여금 출애굽의 역사를 이루셨다(3:710).

지역설명은 이 정도만 하도록 합니다.

고센 땅은 분명히 축복의 땅이고, 그곳에서 43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큰 민족을 이루는 것을 보고 어떻게 애굽 사람들이 좋아할 수 있겠습니까?

 

무엇보다도 요셉에게 은혜를 입었던 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없어지자 은혜보다는 위협을 느꼈을 것이고 위협을 제거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구분하는 것이었겠죠.

이제 이스라엘은 고센에서 자유인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 노예가 되었고 통제를 받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

그러나 그 어려운 과정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계속되었습니다.

점점 더 번성한 민족을 이루자 모세가 태어날 당시 태어나는 모든 어린아이를 죽이라는 명령을 내리게 됩니다. 출애굽기 1장에 보면 요셉을 모르는 왕들이 나타나면서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합니다.

두려움이 찾아오면 여유를 잃어버리게 되죠.

이제 이 민족을 통제할 최후의 수단에 이르게 된 것이죠.

게다가 아주 힘든 노역을 시킴으로 인해 민족적 자존감을 빼앗아 가려는 통치 이념이 작용을 했겠죠.

아마도 우리 민족에게는 잘 이해가 되는 부분일 것 같기도 합니다.

36년의 일제 강점기하에서 우리는 언어를 잃어버리고, 하층민으로 전락을 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참 많이 들었던 말이 빠가야로!라는 말이었죠.

몹시 나쁜 말인데,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우리 민족에게 많이 했던 말입니다.

민족적 자존감을 해치는 것 중의 하나가 비참하게 만드는 것이죠.

탄광 농부로, 사할린으로 만주로 노예처럼 끌려간 사람들, 목숨을 구걸하며 돈에 끌려 알게 모르게 위안부로 끌려갔던 사람들.

이것은 단지 노역의 차원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자존감을 말살하려는 정책이 아니었겠습니까?

그런데 역사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사에 훌륭한 문학가와 독립 운동가들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많은 이가 현실에 순응하며 살아갈 때 깨어있는 선각자들이 희망을 품고 싸우지 않았습니까?

그 당시 참으로 적은 수의 크리스천들이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했고, 위대한 순교자들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민족적 자긍심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고난이 와도 우리는 대한민국의 위대한 민족이었고, 그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지 않았습니까?

애굽이 이스라엘에게 위협을 느낄수록 고난은 심해졌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위대한 지도자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는 고난의 광야 가운데서 하나님을 만났고,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던 것을 믿음으로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는 눈에 보이는 바로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말씀에 순종하고 나아갔습니다.

택하신 백성에게 왜 환란과 고통이 축복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통을 보시고, 들으시고, 기억하시기 때문입니다.

택하신 백성에게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지금 누리는 축복이 다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축복에 머물 수 없다는 것입니다. 고센은 단지 축복으로 가는 징검다리였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로 고센 땅에 머물도록 이끌어 오신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하나님이 백성을 만들어 가고 계셨습니다.

고난이 왜 유익입니까? 만일 이스라엘이 고센 땅에서 고난을 겪지 않았다면 그들은 절대로 징검다리를 건너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그곳에 머물다 죽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편안함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애굽의 신을 섬기다 그렇게 세상의 백성처럼 죽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은, 라암셋 2에 의해 그들에게 부여된 노역은 애굽을 바라보고 살던 그들의 눈을 돌리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 의식을 바꿔놓는 것처럼 위대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물과 부르짖음을 들으셨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223~24절을 보십시오.

23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

24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의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이 고통을 겪는 이유는 그들이 못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들을 축복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크리스천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 세상 사람에게 핍박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상 사람이 우리를 보고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세상은 절대로 축복받는 사람들을 보고 함께 기뻐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의 위협의 대상으로 생각할 뿐입니다.

저는 오늘날 한국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조롱을 받는 이유를 두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축복을 받았지만, 그 축복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말미암은 비난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선조들의 믿음으로 우리가 누리는 축복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고센 땅에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부르짖음은 당연하고,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는 것이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기억하사 이들을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센은 축복의 땅이었지만, 그 속에서 안주하지 못하도록 주어진 고통은 징벌이 아니라 진정한 축복을 향하는 길을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 위에 살아가는 한 축복의 땅 고센은 여전히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끊임없이 고센을 떠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진정한 축복의 땅을 향해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그 징검다리를 건너야 하는 곳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의미를 하나 발견하게 됩니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구원의 시발점

오늘 본문에 보면 이제 출애굽 하기까지의 어려운 과정을 지나서 막 떠나려는 순간입니다.

10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고, 바로가 얼마나 완악한지도 알았습니다.

마지막 재앙인 애굽의 모든 장자가 죽는 무서움과 유월절 어린양의 피로 죽음의 사자가 문설주를 넘어 이스라엘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이들은 죽음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고, 그 하나님과 함께 새로운 삶을 설계하려 풍요의 땅, 그러나 그들을 노예로 만들었던 고센 땅을 떠나기 위해 라암셋에 모입니다.

오늘 본문 38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할 때에 중다한 잡족이 그들과 함께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잡족이란 이스라엘 자손과 마찬가지로 애굽에서 압제 받던 다른 소수 민족으로, 이들은 아마도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을 통해 하나님만이 참 신인 것으로 깨닫고 이스라엘과 함께 출애굽 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저들 가운데는 이스라엘 백성과 혼혈한 자들과 여호와를 믿는 신앙으로 개종한 셈족들과 애굽인들이 포함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볼 때 출애굽에 참여한 사람은 순수 이스라엘 백성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라고 하신 약속의 성취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습니까?

하지만 모두에게 열린 축복의 흐름이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에 보니까, 축복의 공동체에 들어가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43절부터는 유월절에 대한 보완 규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4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유월절 규례는 이러하니라 이방 사람은 먹지 못할 것이나

44. 각 사람이 돈으로 산 종은 할례를 받은 후에 먹을 것이며

45. 거류인과 타국 품꾼은 먹지 못하리라

48. 너희와 함께 거류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 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51. 바로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그 무리대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더라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을 지키면서 양고기를 먹는데 이방인은 먹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비록 혈통적인 이방인이라고 할지라도 할례를 받고 여호와의 언약 백성이 된 사람에게는, 유월절 절기를 지키며 어린 양의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하였습니다.

그러나 거류인과 타국 품꾼은 먹지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들이 유월절 예식에 참여하지 못했던 원인은, 그들이 돈을 위해서나 다른 계약 관계로 이스라엘에 잠깐 머물렀을 뿐, 그들을 머물게 한 그 요인이 없어지면 언제든지 이스라엘 공동체를 떠날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믿기로 작정하고 할례받은 자는 영구히 이스라엘 공동체 안에 머물며 유월절 예식에도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후에 할례 의식을 통하여 정식으로 이스라엘 공동체에 편입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공동체가 혈통에 의한 폐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누구든지 유일신 여호와 신앙을 고백하기만 하면 편입될 수 있는 열린 공동체였음을 볼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의 핵심입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신 부르짖음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그 땅에서 고통당하는 모든 이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는 것이죠. 또한, 그 위대한 구원 잔치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뿐 아니라 같은 고백을 하는 모든 이에게 열려있는 축제였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있습니다. 구원의 축제가 교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구원의 가장 큰 장애가 교회의 담이 되어버렸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 된 것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임에도, 다른 이들에게 임하는 사랑과 구원의 역사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얼마 전에 읽은 필 라이큰[사랑한다면 예수님처럼]이라는 책에 참 멋진 구절이 나와 있습니다.

사랑은 주는 것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받는 것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우리가 받는 것만 줄 수 있다.

따라서 예수님을 믿어야만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온유하심을 알아야만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온유하심을 보여줄 수 있다.

물론 우리는 누군가의 구세주가 될 수도 없고, 그들의 죄를 씻어줄 수도 없다.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들에게 구세주에 대해 들려주는 것, 예수님과 그분의 사랑에 대해 들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을 우리의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쉽게 나눌 수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렇게 세상을 나누신다면,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을 것이다. 자격이 있는 사람은 세상에 단 한 명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격 없는 우리가 하나님의 온유하심을 경험했다.

오늘 라암셋에서 출발하는 구원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자격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축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은 그 누군가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것이 아닐까요?

출발!”

애굽 곳곳에 흩어져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그 밤에 라암셋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서로가 얼싸안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여호와의 위대한 역사에 놀라며 찬양했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통곡소리로 가득 찬 애굽 땅을 떠나 저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 가나안 땅을 향해 힘 찬 발걸음을 내딛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정말 길고도 긴 밤을 보냈습니다. 평생 잊을 수 없는 아니 자자손손 잊을 수 없는 놀라운 밤을 겪었습니다. 그들이 이 밤을 여호와의 밤이라 불렀습니다.

이 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심으로 말미암아 여호와 앞에 지킬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밤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대대로 지킬 것이니라”(42)

하면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지난 여름을 지나며 아니 매년 여름을 지나며 우리는 소위 납량특집이라는 드라마와 영화들을 많이 접하게 됩니다. 대표적인 것이 전설의 고향에 나오는 하얀 소복 입은 귀신이죠. 꼭 머리는 길고 눈과 입에는 피가 묻어 있죠.

요즘은 소복 입은 귀신보다 학교에서 많이 나타나죠. 자살을 하기도 하고, 또 스마트 폰을 자주 쓰다 보니 을 주제로 한 귀신도 등장합니다.

또 하나의 트렌드는 달밤에 등장하는 늑대, 그리고 뱀파이어와 드라큘라 같은 서양귀신도 한몫을 합니다.

이 모든 귀신의 특징은 절대로 낮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죠, 주로 밤에 활동합니다. 우리는 밤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두려움이죠.

그런데 오늘 본문에 보니까 구원의 역사가 일어난 시간이 여호와의 밤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밤에 역사하신 일이 참 많습니다.

오늘의 사건도 그렇고,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도 밤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바다에 빠져 죽게 된 제자들을 구원하실 때도 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언된바, 장차 주님께서 신랑이 되셔서 오실 때도 밤일 것입니다. 오늘 이 밤도 여호와께서 역사하시는 밤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밤에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악한 영에 대하여 두려움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확실하게 깨닫게 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사역 역시 밤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밤이 두려움과 심판의 시간이지만, 어떤 이들에게 밤은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는 기대의 밤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캄캄한 어둠 가운데서 소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밤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가장 어두운 순간에 빛이 가장 강렬하게 비칠 수 있습니다.

애굽의 억눌림과 고통 가운데서 신음하던 밤의 세력이, 여호와의 밤이 되어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

유월절 만찬에 참여하며 예배하는 자들에게 오늘 여호와의 밤이 시작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서 있는 곳이 고센인가요?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닙니다. 단지 징검다리일 뿐입니다. 이제 일어나야 합니다. 떠나야 합니다. 이제 위대한 여정을 하기 위해 우리가 라암셋에 모였습니다.

지금부터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위대한 광야의 여정을 시작해 봅시다.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땅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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