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B.C 175-164)
1) 탄생:BC 215
그리스 셀레우코스 왕조, 안티오코스 3세 대제의 셋째 아들로 BC 215년에 태어났다. 손 위 둘째 형이 셀레우코스 4세(재위 187-175)이다.
2) 로마 인질과 귀국:BC 189-175
그의 아버지인 안티오코스 3세 대제(223-287)때 셀레우코스 왕조는 가장 강력한 세력과 영토 정복은 단행했다. 그러나 BC 190년 로마공화국과 전쟁하며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참패하자,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3세는 189년-175년까지 11년 동안 로마에 끌려가 인질로 살며, 로마의 제도와 정책, 그리고 군사력을 눈여겨봤다.
3) 귀국/반란 평정/왕권 쟁취:BC175
-175년 형인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가 (헬리오도로스의 반란 움직임 간파 평정 위해?...) 자기 아들과 동생을 인질 교환하며 귀국하였다.
-175년 9월 3일, 헬리오도로스가 주군인 셀레우코스 4세를 암살하고 왕의 막내 아들 안티오코스를 왕으로 추대하고 섭정했다.(2마카 14,1-2).
-175년 로마에서 나온 안티오코스 4세는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페르가몬 왕국의 지원을 받고 안티오키아로 진격하여 몇 달만에 반역자 헬리오도로스를 죽이고 왕권을 쟁취했다. 어린 조카 안티오코스는 왕좌에서 밀려나 은신처에 연금되었고, 기원전 170년 또는 169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안티오코스 4세가 왕권을 빼앗기 위해 잠재적 정적인 조카를 살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왕위에 올라 기원전 175-164년까지 통치하였다.(1마카 1,10)
3) 통치 초기:BC 175~
초기에는 주변의 강대국과 왕국내에서 유화 정책을 시행하였다.
4) 로마와 동맹 재체결:BC 173
173년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는 부친 안티오코스 3세가 로마에 패전한 전쟁 배상금을 완불하고, 로마와 우호 관계를 위해 동맹을 재체결하였다.
5) 대사제직 매관매직:BC 172-170
*안티오코스 4세는 왕위에 오르면서 오니아스 대사제직에 금품을 바치며 사제직을 탐하는 그의 동생 야손을 앉혔다. 야손은 사제직에 오르면서 유다인의 신앙과 생활을 그리스식으로 바꾸었다. 이교도 신을 위한 제물 비용과 금품 제공, 체육관과 청년 학교 설립하여 그리스 문명을 교육하고, 예루살렘 유다인을 안티오키아 시민으로 등록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유다인에게 일부 지지와 동시에 반발을 초래하였다.(2마카 4,7-22).
* 172년 야손보다 더 많은 금품을 제공하는 메넬라오스를 대사제로 임명했다. (2마카 4,23-29;2마카 5,23)
* 170년 유다인 대사제 메넬라오스는 야손을 밀어낸 후, 그의 형 오니아스 대사제를 암살하였다.(2마카 4,30-38)
6) 1차 이집트 침공과 대승:BC 170(1마카 1,16~64)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 아버지인, 안티오코스 3세 대제(BC 223~187)가 정복한, 코엘레 시리아(코엘레: ‘움푹 파인 곳’ 뜻으로 현재 레바논 동부 베카 계곡 일대), 팔레스타인, 페니키아의 소유권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두 왕조는 각각 로마에 사절을 보내 자기 편에 힘을 실어줄 것 요청했고 이때 로마는 중립을 지켰다. 안티오코스는 이러한 이집트의 행위를 응징하고자 침공하여 펠루시움을 점령한 뒤 본토로 진격하여 수도 알렉산드리아外 대부분 지역 점령하고 왕을 체포하였다. 그러나 로마 공화국의 개입이 두려워 꼭두각시 왕으로 세운 뒤 철군하였다(1마카 1,20).
7) 2차 이집트 침공과 대승:BC168(2마카 5,1)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6세 왕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의 처사에 반발하며 로마의 개입과 전쟁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는 즉시 함대를 키프로스로 보내 이집트 함대를 격파하고 키프로스를 수중에 넣었다. 이후 육군을 친히 이끌고 이집트로 진격하여 펠루시움을 추가로 공략하고, 하下 이집트를 점령한 후 알렉산드리아 외곽에 진을 쳤다. 이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완전 멸망하고, 셀레우코스 왕조가 이집트까지 전부 통치할 수 있는 형국이 되었다.
8) 로마공화국 세력 확대와 내정 개입:BC 168
로마공화국은 168년 6월 22일 그리스 제국의 하나인 마케도니아 안티고노스 왕조를 멸망시키며 더욱 세력을 확장시켰다. 로마는 사절단을 보내 이집트를 침공 정복한 안티오코스에게, 즉각적 철군 명령을 내리고 불응시에는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경고하였다. 안티오코스 4세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자, 로마의 포필리우스는 지팡이로 왕 주위에 원을 그리고, 안티오코스 4세에게 대답을 하기 전에는 원에서 한 발자국도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지난날 로마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로마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기에 다 된 밥을 내놓고 철수에 응해야 했다. 로마는 셀레우코스 왕조가 남부 시리아를 계속 영유하는 건 인정하였다.
9) 대사제 야손의 반란과 대박해:BC167:(2마카 5,11-20)
안티오코스 4세가 이집트를 침공으로 팔레스티나는 공백이었다. 이집트 원정을 떠난 왕이 죽었다는 헛소문에 대사제직을 빼앗긴 야손이 반란을 일으켰다. 성채를 제외한 예루살렘 전역을 정복하고 현임) 대사제 메넬라오스의 많은 추종자를 학살했다.
그러나 죽었다고 소문났던 안티오코스는 로마의 개입으로 이집트 정복이 허사가 되고 또한 공백기에 유단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에 대한 잔인한 보복을 하였다. 야손이 일시 점령한 도성을 재점령하고 군대를 주둔하였다. 사제직을 차지한 야손을 추방하였다. 유다인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인신매매와 성전을 약탈 더럽힌 후, 이교도 신전과 예식인 그리스 종교를 강제하였다. 그는 유대교가 저항의 뿌리라고 여겨 유대교를 괴멸시키고자 하였다.
이 난동을 부추긴 메넬라오스는 대사제로 임명되었다.(2마카 5,23) 야손은 국외 추방되어 떠돌다가 이국땅에서 죽었다(2마카 5,5~6,11).
10) 유다 마카베오가 봉기: BC 167(1마카 2장~/2마카 8장~)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잔인한 유다인 대박해에 대해 유다 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저항운동이 일어나 유다, 요나탄, 시몬 삼형제에 의해 지속됐다. 그 결과 142년 실질적인 독립을 쟁취하고 왕과 대사제로 공식 인정 받으면서 하스몬 왕조가 시작되었다(1마카 13,41). 이 왕조는 63년 로마에 정복당할때까지 80여년간 통치하였다.
11) 정복전쟁:BC167
안티오코스는 167년 파르티아의 명군 미트리다테스 1세가 헤라트를 점령하여 인도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자, 친히 군대를 이끌고 동방으로 출진해 파르티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상당한 영토를 되찾았다. 또한 아르메니아 군주 아르탁세스 1세가 자신의 종주권을 인정하도록 강요했다.
12)죽음:BC164
164년 11월 또는 12월, 페르시아아 원정중 (엘리마이스의 바알 신전 약탈시도)의실패 및 패전으로 퇴각하던 중 원인미상의 중병에 걸려 병사했다(2마카 9장/1마카6,1-17). 사후 장남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가(BC164-162)가 뒤를 이었다.(1마카6,14-16)
* 164년: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한 유다인은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하고 정화하였다.
입력:최 마리 에스텔 수녀/20260622/21:54
참조:성서백주간 도움책 예언*교훈편/위키백과/ AI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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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최성옥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작성시간 26.06.22 new
처음 백주간을 하시는 분들, 마카베오 상하권의 본문 내용에 매우 헷갈리시지요? 역사의 무대는 새로운 강대국 로마와 그리스 제국 알렉산더 왕 사후 분봉국들의 세력 다툼입니다. 그중 유다인을 크게 박해한 셀레우코스 왕조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 즉위에서 시몬 마카베오가 죽기까지 40년간의 기록입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 왕은 1*2마카베오 공동으로 등장하는 인물이라 그의 통치 시대 사건을 연도별 정리를 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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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빗방울 작성시간 26.06.22 new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