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베오기
(왕권*사제권 중심:BC 187-143)
A.시대 배경
이스라엘이 바빌론에 유배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를 맞이하기까지 근 500년의 기간이 있었다. 이때 고대 근동의 역사는 급격히 변동하는 어지러운 시대였다. 페르시아 제국(BC 538~333) 세력이 약화되고 새롭게 그리스 제국과 이어서 로마가 떨쳐 일어났다. 그동안 팔레스티나 가까운 지역에서 발생하던 약육강식의 전쟁이 이제 더 멀리 그리스와 로마 지역에까지 확대된 것이다.
그리스의 알렉산더 대왕은 BC 334/3-323년에 걸쳐 마케도니아, 이집트, 페르시아, 시리아, 팔레스티나, 인도 북부까지 광대한 영토를 정복하였다. 그러나 323년(32세) 바빌론 제국에서 병사한 후, 그가 점령한 제국은 장군들간의 치열한 권력 투쟁을 거치며 4개의 주요 세력으로 분할 통치되었다. 카산더가 통치한 그리스 본토와 마카도니아, 리시마코스가 통치한 트라키아 및 소 아시아(현제 튀르키예),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이집트 및 팔레스타인 지역, 셀레우코스 왕조의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시리아등 아시아의 광활한 지역이다. 이후 기원전 301년 이프소스 전투를 거쳐 최종적으로 3개의 거대한 헬레니즘 제국(마케도니아의 안티고노스 왕조, 이집트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아시아의 셀레우코스 왕조)으로 재편되었다.
로마 공화국은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지중해로 세력을 확장한 시점은 기원전 3세기 포에니(페니키아) 전쟁부터이다. 카르타고와 세 차례 전쟁(B.C 264-146)을 거치며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했다. 190년 세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3세 대제와 전쟁에서 승리하며 이집트에 이어 팔레스티나의 주인이 되었다. BC 168년 그리스제국의 마케도니아 왕조를 멸망시키고 지중해전역의 패권국이 되었다.
마카베오기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 4세 즉위부터 왕조의 정책에 저항한 시몬 마카베오가 죽기까지 약 40년간(BC 175-134)의 기록이다. 이 성공적인 항쟁으로, 시몬 대사제 142/1년 비로서 정치적 종교적 독립을 되찾고 하스몬 왕가가 시작되는 계기를 마련했다(1마카 13,41-42).
B. 셀레우코스 왕조의 임금과 주요 사건
-1대: 305-281:셀레우코스 1세 니카토르, 셀레우코스 왕조 시작
셀레우코스는 기원전 320년경 바빌론 지역 식민지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이미 알렉산더 대제는 병사하였고 제국은 장군들에 의해 각축전을 벌이던 시기다. 그는 305년 북쪽 오론테스강 유역에 수도를 건설하고, 자기 아버지 이름을 따서 ‘안티오키아’로 명명하며 셀레우코스 왕조를 시작했다. 기원전 281년에는 마케도니아 리시마코스를 물리치고 소아시아에서 페르시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차지했다.
-2대: 안티오코스 1세 소테르 281-261
-3대: 안티오코스 2세 테오스(261-246)
-4대: 셀레우코스 2세 칼리니코스(246-225)
-5대:셀레우코스 3세 소테르(225-223)
-6대:223-287: 안티오코스 3세 대제大帝/190년 로마와 전쟁 참패
셀레우코스 4세 (필리파토르)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의 아버지이다. 이 시대 셀레우코스 왕조는 가장 강력한 왕국과 땅을 점령하였다. 그러자 이 왕은 무리하게 영토 확장을 꾀하였다. BC 190년 말 로마와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참패하여 전쟁배상금과 셋째 아들인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를 189-175년까지 11년간 로마에 인질로 보내야 했다.
-7대:187~175: 셀레우코스 4세 필리파토르
*대사제직 암투 시작:
*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187-175)부터~요나탄 대사제직 겸직(143)까지 40여년간 대사직 매관매수가 외세의 정치 혼란과 함께 전개되었다.
* 시장운영)=금력과 권력
** 시몬(벤야민 지파: 성전관리책임,시장운영권 암투;2마카 3,4-11)/ 오니아스(레위 지파)
-8대: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B.C 175-164)
1) 탄생:BC 215
그리스 셀레우코스 왕조, 안티오코스 3세 대제의 셋째 아들로 BC 215년에 태어났다. 손 위 둘째 형이 셀레우코스 4세(재위 187-175)이다.
2) 로마 인질과 귀국:BC 189-175
그의 아버지인 안티오코스 3세 대제(223-287)때 셀레우코스 왕조는 가장 강력한 세력과 영토 정복은 단행했다. 그러나 BC 190년 로마공화국과 전쟁하며 ‘마그네시아 전투’에서 참패하자,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3세는 189년-175년까지 11년 동안 로마에 끌려가 인질로 살며, 로마의 제도와 정책, 그리고 군사력을 눈여겨봤다.
3) 귀국/반란 평정/왕권 쟁취:BC175
-175년 형인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가 (헬리오도로스의 반란 움직임 간파 평정 위해?...) 자기 아들과 동생을 인질 교환하며 귀국하였다.
-175년 9월 3일, 헬리오도로스가 주군인 셀레우코스 4세를 암살하고 왕의 막내 아들 안티오코스를 왕으로 추대하고 섭정했다.(2마카 14,1-2).
-175년 로마에서 나온 안티오코스 4세는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페르가몬 왕국의 지원을 받고 안티오키아로 진격하여 몇 달만에 반역자 헬리오도로스를 죽이고 왕권을 쟁취했다. 어린 조카 안티오코스는 왕좌에서 밀려나 은신처에 연금되었고, 기원전 170년 또는 169년에 사망했다고 한다. (현대 학자들은 안티오코스 4세가 왕권을 빼앗기 위해 잠재적 정적인 조카를 살해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후 왕위에 올라 기원전 175-164년까지 통치하였다.(1마카 1,10)
4) 통치 초기:BC 175~
초기에는 주변의 강대국과 왕국내에서 유화 정책을 시행하였다.
5) 로마와 동맹 재체결:BC 173
173년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는 부친 안티오코스 3세가 로마에 패전한 전쟁 배상금을 완불하고, 로마와 우호 관계를 위해 동맹을 재체결하였다.
6) 대사제직 매관매직:BC 172-170
*안티오코스 4세는 왕위에 오르면서 오니아스 대사제직에 금품을 바치며 사제직을 탐하는 그의 동생 야손을 앉혔다. 야손은 사제직에 오르면서 유다인의 신앙과 생활을 그리스식으로 바꾸었다. 이교도 신을 위한 제물 비용과 금품 제공, 체육관과 청년 학교 설립하여 그리스 문명을 교육하고, 예루살렘 유다인을 안티오키아 시민으로 등록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유다인에게 일부 지지와 동시에 반발을 초래하였다.(2마카 4,7-22).
* 172년 야손보다 더 많은 금품을 제공하는 메넬라오스를 대사제로 임명했다. (2마카 4,23-29;2마카 5,23)
* 170년 유다인 대사제 메넬라오스는 야손을 밀어낸 후, 그의 형 오니아스 대사제를 암살하였다.(2마카 4,30-38)
7) 1차 이집트 침공과 대승:BC 170(1마카 1,16~64)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6세는,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 아버지인, 안티오코스 3세 대제(BC 223~187)가 정복한, 코엘레 시리아(코엘레: ‘움푹 파인 곳’ 뜻으로 현재 레바논 동부 베카 계곡 일대), 팔레스타인, 페니키아의 소유권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두 왕조는 각각 로마에 사절을 보내 자기 편에 힘을 실어줄 것 요청했고 이때 로마는 중립을 지켰다. 안티오코스는 이러한 이집트의 행위를 응징하고자 침공하여 펠루시움을 점령한 뒤 본토로 진격하여 수도 알렉산드리아外 대부분 지역 점령하고 왕을 체포하였다. 그러나 로마 공화국의 개입이 두려워 꼭두각시 왕으로 세운 뒤 철군하였다(1마카 1,20).
8) 2차 이집트 침공과 대승:BC168(2마카 5,1)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6세 왕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의 처사에 반발하며 로마의 개입과 전쟁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는 즉시 함대를 키프로스로 보내 이집트 함대를 격파하고 키프로스를 수중에 넣었다. 이후 육군을 친히 이끌고 이집트로 진격하여 펠루시움을 추가로 공략하고, 하下 이집트를 점령한 후 알렉산드리아 외곽에 진을 쳤다. 이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는 완전 멸망하고, 셀레우코스 왕조가 이집트까지 전부 통치할 수 있는 형국이 되었다.
9) 로마공화국 세력 확대와 내정 개입:BC 168
로마공화국은 168년 6월 22일 그리스 제국의 하나인 마케도니아 안티고노스 왕조를 멸망시키며 더욱 세력을 확장시켰다. 로마는 사절단을 보내 이집트를 침공 정복한 안티오코스에게, 즉각적 철군 명령을 내리고 불응시에는 전쟁을 불사하겠다고 경고하였다. 안티오코스 4세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자, 로마의 포필리우스는 지팡이로 왕 주위에 원을 그리고, 안티오코스 4세에게 대답을 하기 전에는 원에서 한 발자국도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지난날 로마에 인질로 가 있으면서 로마가 얼마나 강한지 알고 있기에 다 된 밥을 내놓고 철수에 응해야 했다. 로마는 셀레우코스 왕조가 남부 시리아를 계속 영유하는 건 인정하였다.
10) 대사제 야손의 반란과 대박해:BC167:(2마카 5,11-20)
안티오코스 4세가 이집트를 침공으로 팔레스티나는 공백이었다. 이집트 원정을 떠난 왕이 죽었다는 헛소문에 대사제직을 빼앗긴 야손이 반란을 일으켰다. 성채를 제외한 예루살렘 전역을 정복하고 현임) 대사제 메넬라오스의 많은 추종자를 학살했다.
그러나 죽었다고 소문났던 안티오코스는 로마의 개입으로 이집트 정복이 허사가 되고 또한 공백기에 유단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것에 대한 잔인한 보복을 하였다. 야손이 일시 점령한 도성을 재점령하고 군대를 주둔하였다. 사제직을 차지한 야손을 추방하였다. 유다인을 무자비하게 살해하고 인신매매와 성전을 약탈 더럽힌 후, 이교도 신전과 예식인 그리스 종교를 강제하였다. 그는 유대교가 저항의 뿌리라고 여겨 유대교를 괴멸시키고자 하였다.
이 난동을 부추긴 메넬라오스는 대사제로 임명되었다.(2마카 5,23) 야손은 국외 추방되어 떠돌다가 이국땅에서 죽었다(2마카 5,5~6,11).
11) 유다 마카베오가 봉기: BC 167(1마카 2장~/2마카 8장~)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잔인한 유다인 대박해에 대해 유다 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저항운동이 일어나 유다, 요나탄, 시몬 삼형제에 의해 지속됐다. 그 결과 142년 실질적인 독립을 쟁취하고 왕과 대사제로 공식 인정 받으면서 하스몬 왕조가 시작되었다(1마카 13,41). 이 왕조는 63년 로마에 정복당할때까지 80여년간 통치하였다.
12) 정복전쟁: BC167
안티오코스는 167년 파르티아의 명군 미트리다테스 1세가 헤라트를 점령하여 인도로 가는 길목을 차단하자, 친히 군대를 이끌고 동방으로 출진해 파르티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여 상당한 영토를 되찾았다. 또한 아르메니아 군주 아르탁세스 1세가 자신의 종주권을 인정하도록 강요했다.
13) 죽음:BC164
164년 11월 또는 12월, 페르시아아 원정중 (엘리마이스의 바알 신전 약탈시도)의실패 및 패전으로 퇴각하던 중 원인미상의 중병에 걸려 병사했다(2마카 9장/1마카6,1-17). 사후 장남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가(BC164-162)가 뒤를 이었다.(1마카6,14-16)
* 164년:마카베오 가문을 중심으로 한 유다인은 예루살렘 성전을 탈환하고 정화하였다.
-9대: 164-162: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의 친아들이다.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테스는 부하 필리포스에게, 어린 아들 에우파토르를 잘 키운 뒤 왕위 계승을 부탁하였다. 그런데 왕족 리시아스가 안티오코스 5세를 임금으로 세우고 섭정하였다.(1마카 6,14-17;6,55-56;2마카10,11)
-163년:대사제직 재임명을 획책한 대사제 메넬라오스는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164-162)에게 환심을 얻고자 한 계획이 역효과를 내며 잿더미 탑에서 비참하게 처형됨(2마카 13,3-8).
*162년:알키모스가 부정한 방법으로 데매트리오스 1세(162-150)를 부추겨 대사제직 확보함(2마카 14,1-36;1마카 7,5-25).
-10대: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162-150):
셀레우코스 4세의 필리파토르(187-175) 아들인 데메트리오스 1세 소테르(162-150)가, 리시아스와 안티오코스 5세 에우파토르 왕을 암살하고 왕권을 차지하였다.(2마카 14,2;1마카 7,1-7)
*159년:대사제 알키모스 성전 안뜰 벽 철거중 급사(1마카 9,54-56)
첨부:::<대사제직 매관매직(BC 187-143 >
-셀레우코스 4세 필로파토르(187-175)부터~요나탄 대사제직 겸직(143)까지 40여년간 대사직 매관매수가 외세의 정치 혼란과 함께 전개되었다.
=시장운영)=권력 대립과 암투:
=시몬(벤야민 지파: 성전관리책임,시장운영권 암투;2마카 3,4-11)/ 오니아스(레위 지파).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175-164): 사제직 매관매직 극성/ 143 요나탄 대사제직 임명
=175년:오니아스 대사제 동생 야손은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 왕권을 잡을 때, 형 오니아스와 시몬은 사제직을 두고 대립중이었다. 야손은 오니아스를 제치고 금품으로 대사제직 매수 후 친그리스 행위 일삼음(2마카4.7~5,29)
=172년:시몬의 친동생 메넬라오스가, 야손보다 더 웃돈을 주고 사제직 매수함(2마카 4,23-29)
=170년:대사제 오니아스 피살/ 예루살렘에서 유대인 폭동 발생과 강력 진압
=167:유다 마카베오 가문 봉기 발발(1마카 2,1-70;2마카 8장~15장(1인칭시점))
=164년:유대인 성전 정화와 봉헌:(1마카 4,36~61)
=162년:알키모스 대사제직 매수 데매트리오스 1세(162-150)를 부추겨 매수(2마카 14,3-26)
=160년:유다 전사(1마카 9장)
=152년:요나탄 지도자+대사제직 겸직(1마카10,1.20-21)
=143년 요나탄 암살됨(1마카 12,39-53 < 특히13,23)
=143년 시몬이 유다인 자치권 획득(1마카 13,41-42)
=134년:시몬 암살됨(1마카 16,16-17):하스몬 왕가 시작
시몬의 아들 요한(요한 히르카누스 1세) 대사제와 지도자 계승(1마카 16,23-24)
-65년 마카베오)하스몬 왕조 멸망
*참조:성서백주간 도움책, 예언*교훈편/빈센트 P, 브래닉, 임숙희 번역;구약성경의 이해 역사서바오로 딸/위키백과 사전
*입력:최마리 에스텔 수녀/20260622;PM 10:24